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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파락호
파락호란 지난날 행세하는 집의 자손으로서 허랑방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혹자는 근대 한국의 3대 파락호로 흥선대원군 이하응,
형평사 운동의 투사였던 김남수, 그리고 학봉 종손인 김용환을 꼽았다.
학봉 김성일의 13대손인 김용환은 대대로 내려오던 전답 18만평,
현재 시가로 약 180억원을 모두 거덜 냈다.
그것도 모자라 외동딸의 혼수 장만 비용 마저 들고 나갔으니
가히 최고의 팔난봉이라 하겠다.
그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간 탕진했다고 믿었던 돈은 모두 만주 독립군에게 군자금으로
보냈음이 알려졌으며 파락호 행세는 왜경의 눈을 피하기 위한
철저한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거금을 아낌없이 희사한 것도 경탄할 일이지만
주색잡기,노름꾼 등 불명예스런 비난 속에서도 식구들에게 조차
절대 함구한 의지력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댓글 32개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러한 마음의 소유자가 필요한 때인거 같습니다. 서로 대통령이 되려고 상대방 비난이나 하는 사람들하곤 많이 비교가 되는 군요^^
사람은 걷을 보고 판단 해서는 안 된다
사색의 향기는 무더운 여름날 청량한 바람처럼 시원한 감동을 준다. 가슴 뭉클한 사연을 통해 정이 넘치는 사회를 보여주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것도 기쁨이다. 학봉 종손 김용환이 그렇게 훌륭한 애국자였다는 사실도 오늘 알게 되었다. 사색의 향기 문화원 운영자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찜통 더위에 몸건강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 이종수 2. leej0320 3. 한여름의 더위을 쫒아내는 것은 책읽는 것이 최고지요. 책사랑은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보여지는 대로도 제대로 못보는세상에 현인의 높은 뜻을 헤아려 산다는것은 어려운일이다 내가 어려움을 당할지언정 그런 파락호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것이 아니겠는가
좋은책들을 잘선정해서 알려주심감사합니다
그야말로 오른손이 한 일 왼손이 모르게 하셨네요. 과연 나는 저리 할 수 있을까? 자랑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내 욕구를 잠재우며 올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겠네요.
정말 무덥네요. 모두들 더운데 건강에 특별히 유의하세요.
아 ~ 정말로 위대한 분 이었군요. 잘 보이지 않는곳에서 선행을 행하시는 많은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멋진 파락호군요 진정한 애국자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구국 독립운동을 위해 역사의 길을 걸어 가신 님들의 숭고한 삶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아! 할 말이 없도다. 그 의지, 그 인내, 애국의 충정....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조국을 위해서. 반성하고 개선의 기회를 준 글에 새삼 감격한답니다.
늘 건강하세요!
백정현 noble7 태극기를 구입하는 방법이 여러 경로와 방법이 있으나, 사색의 향기에서 주시는 태극기는 그 무엇보다 의미가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중히 간직하여 광복절뿐만 아니라 기념일에는 꼭 게양하여 사색의 향기가 고객에게 주는 큰 의미를 계속 간직하겠습니다 .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흔한 말이 있다. \"오른손이 한 일이 왼손이 모르게 한다......\" 먼저 180억원,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금액의 숫자 앞에 경악한다. 좋은 일에 쓰인 철저한 위장술 또한 자신을 비하시키는 팔난봉 행동으로 일관하며 소리없이 변명없이 생을 마감한 김용환. 그분은 분명 자기애가 강한 조상님이다. 나를 아끼고 우리를 아끼는 '그 분의 지혜자락 꼬리'에 살랑바람이라도 맞고 싶다. 그는 자신이 정성껏 마련한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무한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를 읽으며 나를 위한 보호색 디딤돌 하나 이렇게 얹는다. '오늘의 나의 지혜는 멋진 착상의 정신력에 감탄하며, 대인의 정신력을 살짝 훔치는 것이다. '
문득 사치스러운 저의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저희 증조부와 같은 분이시군요. 저희 증조부께서도 지금 가치로 얼마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전 재산을 노름방에서 탕진했다하고, 독립군 군자금으로 헌납하고,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군자금 마련을 위해 활동하시다가 5년여 옥고를 치렀습니다. 밖에 나가실때는 정상이 아닌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누더기같은 옷을 걸치고 다니셨다 합니다. 사후에 조부께서 당신 아버지의 독립운동 근거를 찾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셨지만 허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주변 마을사람들 조차 저희 증조부와 저희 집안을 노둑놈 강도집안으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1980년경 증조부와 같이 활동하셨던 분의 아드님이 저희 마을에 찾아오셔서 서훈을 추서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독립운동가들이 건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득세하였던것에 대해 저희 증조부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저 또한 가슴이 미어지고 눈시울을 붉히게 됩니다.
학봉 김성일의 13대손인 김용환님의 보다 자세한 내용 소개가 있었다면 합니다.
날 위한 내 식구를 위하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내 주위도 돌아 봅시다. 멋 있네요!!
우리의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그런 애국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라가 존제합니다.
훌륭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들어 내놓지 않습니다.
겉만보고 판단하면 안된다. 의복은 신사를 만들어 주진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들어 내놓지 않는다.
이르는 말이다. 혹자는 근대 한국의 3대 파락호로 흥선대원군 이하응, 형평사 운동의 투사였던 김남수, 그리고 학봉 종손인 김용환을 꼽았다.
알려졌으며 파락호 행세는 왜경의 눈을 피하기 위한 철저한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선비의 길.
보냈음이 알려졌으며 파락호 행세는 왜경의 눈을 피하기 위한 철저한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주색잡기,노름꾼 등 불명예스런 비난 속에서도 식구들에게 조차 절대 함구한 의지력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철저한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거금을 아낌없이 희사한 것도 경탄할 일이지만
파락호란 지난날 행세하는 집의 자손으로서 허랑방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혹자는 근대 한국의 3대 파락호로 흥선대원군 이하응,
의지력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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