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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참을성이 많다

사색의향기 2016. 09. 02. 오전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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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철문이 바깥을 힘겹게 밀었다
녹슨 늑골 사이, 손 하나가 슬며시 빠져나오고
폐활량을 늘린 골목이 서둘러 손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보이지 않는 등을 배웅하는 늙은 목소리가 저 안쪽에서 구겨졌다
뻐꾸기 벽시계가 감정이 삭제된 울음을 일곱 번 반복하고 돌아갔다
고개 뺀 키다리 꽃이 바깥을 중계했다
한 도막의 기억이 새순을 밀어 올리는지
문밖이 궁금한 틀니가 흘린 말들을 집느라 골목이 몸을 튼다
지문 닳은 페이지를 넘기면 어슴푸레 내력이 읽히는 골목은
언제부터 골목이었을까 
낱장이 부욱 뜯겨도 함께 늙어가는 집들이 다시 기록을 채운다 

문 열고 나온 입들이 소문을 부풀려도
퉤 퉤 몰상식을 뱉거나 덜 꺼진 고민을 발로 짓이겨도 묵묵히 귀만 세우는 골목

골목은, 참을성이 많다

- 시, '골목' -


남녀가 부둥켜안은 장면을 흘긋거리던 사춘기가 있습니다.
그때, 가로등 꺼진 골목은 그들의 부끄러운 사랑을 확인하던 장소였지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골목은, 함부로 걸어도, 소중한 누군가의 손을 잡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민낯을 가려주는 곳, 대로변으로 나갈 수 없는 마음을 가려주는 곳임을.
누구에게나 골목 같은 비밀은 있습니다.
그렇기에 훤히 읽히지는 않지만, 공감하기도 하지요.


- 최연수 시인


댓글 26개

Rose 2016. 09. 02. 오전 07:13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는아침~~ 주마등처럼 옛추억이 스쳐지나간다 옛시절이 그리운 것일까 더 더욱 비가 내려 가을을 타는듯 하다~~ 바이올린의 현악에 마음실어본다 오늘은 가을비속에 마음이 젇어들듯 하다

윤준섭 2016. 09. 02. 오전 07:22

매일 아침 조간 신문 머릿기사를 읽듯 신선한 글향을 맡을 수 있는 생각의 향기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윤준섭 드림

안성훈 2016. 09. 02. 오전 09:21

풍경이 그려지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진광 2016. 09. 02. 오전 09:43

산동네 골목길이 생각나네요

박종영 2016. 09. 02. 오전 10:02

골목길의 추억, 사랑, 그리고 그리움이 어두운 골목에서 일어납니다. 그래도 묵묵히 받아주는 골목의 포용이 추억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서현 2016. 09. 02. 오전 10:29

선경이 펼쳐져 있는 청도고을까지 골목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김덕식 2016. 09. 02. 오전 10:43

감사합니다..

서용칠 2016. 09. 02. 오전 10:59

고샅길이든 강물이던 구불구불해야 속도가 느려지고 사색할수있는 시간을줍니다 현대인은 직선만을 고집하여 과속하고 빨리빨리병을 만들고 오직 결과만을 종용합니다

정창훈 2016. 09. 02. 오전 11:53

예전의 골목길을 걷고 싶네요... 지금 있는 곳은 그런 추억이 없지요...

zuro59 2016. 09. 02. 오전 11:57

골목길을 돌며 친구들을 불러내어 온골목을 휘젖고 놀던 그때가 그립네요... 요즘은 그렇게 아이들이 요란한 골목이 없네요...밤늦게 속삭이던 연인들도 없고요... 다 추억으로간 비밀들이 많았던 골목....

오세진 2016. 09. 02. 오후 01:51

그런 골목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시대의 흐름이겠지만 아쉽네요~~

이봉철 2016. 09. 02. 오후 05:22

좋은 글입니다

채성옥 2016. 09. 02. 오후 06:00

골목길에 대한 잔상이 떠오르는 글이네요. 감사함으로 읽습니다.

서윤 2016. 09. 02. 오후 08:37

골목길, 가로등밑에서 늦게 들어오는 형이나 동생을 기다리는 생각이 떠 오릅니다.

유은주 2016. 09. 02. 오후 08:56

그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아이들이 늙어가듯 골목도 세월따라 함께 늙어가겠지요, 그래서 자식들 기다리는 늙은 마음들이 항상 서성이는 곳이 골목이겠지요

림 2016. 09. 02. 오후 09:04

캄캄한 골목길, 드러내고 싶지않은 골목길.

박종덕 2016. 09. 04. 오전 07:16

삶을 재생한다면 골목의 역사는 참 재미있을 겁니다 슬프기도 하구요

박혜경 2016. 09. 04. 오후 02:53

골목이 이제는 서로에게 냉담한 무관심한 무서운 곳이 되어가는 듯..

박미자 2016. 09. 19. 오후 06:24

골목길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로군요,

저녁놀 2017. 06. 21. 오후 06:36

누구에게나 골목같은 비밀이 있습니다.

국 2018. 07. 21. 오전 09:17

낱장이 부욱 뜯겨도 함께 늙어가는 집들이 다시 기록을 채운다

자영 2018. 07. 21. 오전 09:27

낱장이 부욱 뜯겨도 함께 늙어가는 집들이 다시 기록을 채운다

윤 2018. 08. 02. 오전 11:20

누구에게나 골목 같은 비밀은 있습니다. 그렇기에 훤히 읽히지는 않지만, 공감하기도 하지요.

림 2018. 08. 04. 오전 11:20

드러내고 싶지 않은 민낯을 가려주는 곳, 대로변으로 나갈 수 없는 마음을 가려주는 곳임을. 누구에게나 골목 같은 비밀은 있습니다.

김산우 2018. 10. 29. 오전 09:42

가로등 꺼진 골목은 그들의 부끄러운 사랑을 확인하던 장소였지요.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종 2019. 03. 11. 오전 10:50

문 열고 나온 입들이 소문을 부풀려도 퉤 퉤 몰상식을 뱉거나 덜 꺼진 고민을 발로 짓이겨도 묵묵히 귀만 세우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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