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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베이다

사색의향기 2019. 12. 10. 오전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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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종이 한 장이 스친 순간
손끝에서 가느다란 핏물이 비어져 나왔다


물고기 비늘처럼 돋아나는
비릿한 통증


오후 두 시의 나른한 날빛 속에
희끗, 그의 흰 등이 보이다
사라진다


뒤늦게 비어져 나오는 신음을 삼킨다
베인 줄도 모를 만큼 무뎠고,
무뎌야만 했을 것이다


나를 오랫동안 끌고 다닌 것은
모호한 실금들,
나는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했다
그리고, 질문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았다


스윽-
붉은 핏물을 닦아낸다

나는 하얀 종이처럼 스쳐 지나가기로 한다
 

- 김이안, 시 '종이에 베이다'



모르고 지나친 작은 상처들이 어느 순간 엄습해올 때가 있습니다.
스윽, 손가락 핏물을 닦듯 혹은 무딘 듯
나를 진정시키며 다시 지나가는 날들입니다.

댓글 7개

강주화 2019. 12. 10. 오전 08:58

시인의 표현에 섬찟 했어요. 칼도 아니고 종이에 베이는 일인데....ㅎ 저도 종이를 많이 쓰는 일인지라 종종 베이곤 합니다. 조금만 조심하면 될텐네 베이고 나면 억울해요~ㅋ

문희 2019. 12. 10. 오전 11:09

인생의 한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김덕식 2019. 12. 10. 오전 11:13

감사합니다..

박종영 2019. 12. 10. 오후 02:11

A/4 용지에 베인 일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피가 나서야 알게되는 상처, 가벼운 것도 힘을 합하면 상처를 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민재 2019. 12. 10. 오후 05:07

예리한 종이의 경고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되는 경험이 있는거 같아요

zuro59 2019. 12. 10. 오후 05:38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하루가 아무일 없듯이 무디게 느껴지는 날들도 많습니다...살짝 난 상처도 바로 처치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하는 경우도 있고요...무디어지는 것, 하지만, 너무 그러진 말아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안성훈 2019. 12. 12. 오전 08:43

별거 아닌거 같은 종이에 베여도 피가 나듯 별거 아닌거 같은 종이에 쓰인 글에도 피가 나 상처를 입을수 있음을 문득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은 말을 조심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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