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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백록담에서 당신께

present 2004. 08. 16.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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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下山)길에서
 <한계령>의 노랫말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귀농(歸農)이란 농(農)으로의 돌아감입니다.
 농(農)은 땅과 노동을 집약한 말입니다.
 
 땅인 자연으로의 귀의(歸依)는 가장 품격 높은 대지와의 호흡,
 즉 노동을 통하여 나의 자아와 우주를 합일(合一)에 이르게 합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세속의 벼슬을 버리고 고향(자연)으로 돌아가는 <비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인 노동(勞動)이 빠져 있습니다.
 지식인의 관념(觀念)만으론 실재(實在)하는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한라산에 올랐습니다.
 관음사부터 백록담까지 8.7km의 산행이었습니다.
 오르막길은 더디고 힘겨웠습니다.
 하지만 지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하산 길의 발걸음은 가벼워 여름 숲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산은 집(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세속적인 목표나 욕망은 산의 정상에 내려놓고
 나는 자연 속에서 자연(죽음) 속으로 내 몸을 움직여(노동) 걸어가고 있습니다.
 숲그늘 속으로 부서져 내리는 섬세한 햇빛과 골짜기를 휘도는 청량한 바람결과 새들의 지저귐.
 발밑에 밟히는 바윗돌의 견고함과 흙길의 부드러움.
 가만히 귀 기울이면  벌써 가을을 맞이하는 나뭇잎들이 대지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나는 전혀 서두름 없이 느릿느릿 산길을 걸어 내려오며 막막한 상념에 잠깁니다.
 속도와 축적(蓄積)과 경쟁과 억압(抑壓)의 오르막길로부터 돌아서기.
 귀농은 귀의이며 하산입니다.
 온전한 귀농은 하산처럼 아름답고 명상적입니다.
 진정한 길은 죽음에 이르는 길뿐입니다.
 외국의 어느 나라에선가는 임종의 순간에 신부가 가족들을 전부 물리치고 나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이런 주문을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제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아무 미련도 갖지 마세요.
 지금 당장 집착을 놓아 버리세요. 그렇게 하면 당신은 천국에 들 것입니다.”
 귀농은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사업이고 그 훈련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그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진리의 알을 품고 삽니다.
 당신의 자유함을 위하여 오늘도 세상은 이처럼 분주하지만 헛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열린 귀를 가진 당신들께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침묵을 선물(present)로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주섬에서

댓글 6개

운영자 2004. 08. 16. 오전 12:00

뜻깊은 선물을 주시는군요....감사드립니다...^^*

은비녀 2004. 08. 16. 오전 12:00

산에 오르며 한 발 한 발 힘겨운 내디딤을 하다보면 이렇게 깊은 사색을 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언젠가 꼭 오르고 싶은 한라산, 마음에 담는 글 감사합니다.

유도형 2004. 08. 18. 오전 12:0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서양의 사상은 대부분 발전이고 (미국의 실용주의등..) 동양의 사상은 대부분 본심이라 생각해요... 불교의 사상이 허무주의라 말하지만 헛된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올바른 것에 대한 집착을 가지라는 말이라 생각해요... 문명은 발전 할수록 편리하지만 때로는 헛된것이 발전하여 전쟁도구 같이 커다란 위험을 만들어 버려요. 마음도 발전 할수록 편리하지만 때로는 헛된것이 발전하여 우리를 커다란 위험에 빠트려 버려요..

토성 2004. 08. 18. 오전 12:00

무더운 여름에 !! 귀농(歸農)이란 농(農)으로의 돌아감입니다. 농(農)은 땅과 노동을 집약한 말입니다. 땅인 자연으로의 귀의(歸依)는 가장 품격 높은 대지와의 호흡, 즉 노동을 통하여 나의 자아와 우주를 합일(合一)에 이르게 합니다. 또한 열린 귀를 가진 당신들께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침묵을 선물(present)로 드려도 되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말은!! 당신의 자유함을 위하여 오늘도 세상은 이처럼 분주하지만 헛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해가 잘 않돼네요??

present 2004. 08. 18. 오전 12:00

분주하고 헛된 이 현재(present)는 하늘의 선물(present)이지요. 당신의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아니고서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을 곳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자유는 헛되고 분주해 보이는 그 일상에 내재한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귀를 열고, 그러나 우리가 비로소 침묵하는 이유입니다. 좀 어려워졌나요?

토성 2004. 08. 19. 오전 12:00

설명 감사합니다. 네 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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