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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외출

김봉길 2005. 08. 25.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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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외출


유치원을 못다니는 큰 딸 작은 딸과 아내가 작은 방에 나란히 누웠다. 양말과 함께 목도리며 옷들을 두세겹씩 입고, 그래도 부족해 이불을 코까지 덮고, 그리고 같은 숨찬 소리들을 냈다. 돈 많이 벌어와. 잦기침 하던 아이는 콧소리 크게 말하고, 아내는 가만히 천정 모서리만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을 하려다 밥풀 묻은 숟가락을 물그릇에 넣다 뺐다 하다 말았다. 어제 말한 최부장이나 학교 선배 좀 만나고 올께. 땀이 흘렀으면 좋겠다. 뜨거운 코끝에 맺힌 이 그렁그렁 물보다 땀이었으면 어떨까.

아침 공기가 따가왔다. 골목엔 유난히 눈물이 생길 만큼 차가운 먼지가 많았다. 사람은 자기가 해야할 일과 갈 길을 언제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꼭 알고 있는 대로만 걷고 말하고 그리고 잠들어야 하는가. 낮게 낮게 잠든 꿈이 먼지에 쌓였다. 열사나흘이 지났을 게다. 문질러 볼까. 화낸 사람만 있을텐데 지난번처럼 말이야. 더 낮게 느즈막 뒹굴다가 집을 나선 일요일 탓일 거다. 저 골목 담벼락 끄트머리에 젊은 해가 누울 듯 걸터앉은 것은. 아, 그림자에도 빛이 있었구나. 그래 또 처음 본 누런색이야. 열두시까지는 들어와요. 일어나지 않는 아내는 아직 천정만 노려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고기작거리던 두루마리 휴지 반 뼘 접어 코를 풀었다. 말갛게 다시 고이려는 것은 습관으로 생긴 내 콧물만이 아니었다. 이번은 막내 것이었다. 큰길이거나 가로수 또 그 옆이거나 보이는 것마다 흐느적거렸다. 흐드적거리는 것은 사람들 신발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나의 시간이란 잃어버린 쓰레기 봉투 속에서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는다는 것. 손톱을 깍는다는 것. 화장실에 간다는 것. 간단히 아침 체조를 한다는 것. 뚜둑 목뼈와 펑펑거리는 퍼릇 가슴 귀퉁이를 오래동안 길러 오면서 그렇게 원하는 만큼 몸을 써먹었으면서 뭐 다른 색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일까.

틀린 말과 맞는 말의 사이엔 아예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했다. 왜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죠. 그건 버릇이야. 나에겐 숨쉬는 거와 같아. 아이들은 아내와 큰소리로 따지는 일이 싫어 어제도 애써 아픈 척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루종일 기침을 해야 한다. 그럴까. 그래서 아이들이 퍼득퍼득 일어나 하늘 보고 웃음소리를 낼 수 있다면 짧아 가는 목이 더 아파도 좋을텐데. 조금 움직여야 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 저쪽이다. 저쪽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버스 소리와 햇살과 바람이 이빨자국 입술에 머물다 희끗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사라진다. (1997.12)


댓글 1개

余宣 2005. 08. 25. 오전 12:00

유치원을 못 다닌 아이도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었을 거고요. 작은 방도 넓어졌겠지요. 방도 따뜻해졌고요. 물보다 땀도 많이 흘리실거고요. 이젠 기침도 멎고 목도 길어졌고요. 가난한 세월도 세월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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