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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子間의 잠자리

유태복 2006. 04. 01. 오후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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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子間의 잠자리
글 / 백록 유태복
나의 하루 의무를 모두 마친 어제 밤 시간이 21시 40분.
날씨는 무척 매섭게 추운 날이었다.
차가운 강풍이 세상을 휘 감아 선박출항이 모두 결항 한 상태이고 한라산은 눈발이 내린다고 뉴스는 추위를 강조 시킬 정도로 날씨는 매서웠다. 그러나 나는 가야 할 곳이 있다.
생모님이 계신 제주시에서 30여키로 떨어진 한림읍이다.
오토바이 타고 어떻게 가겠냐고 하면서 걱정하는 나의 pr단원들과 마누라.
날씨가 따스하면 엽지기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너무 추워서 나만 가기로 맘먹고는 항상 그렇게 변함없이 입고 다니지만 양복위에 바람이 안 통하는 우의를 입으면 속으로 바람과 빗방울이 모두 해결이 된다.
즉 우의는 내 자동차 보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엔진역할을 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야간 운행은 시작했지만 30여km는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기에 모두 걱정을 하는 것이다.
날씨와 도전이라도 하는 듯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사히 다녀 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까만 밤 전조등을 백으로 곧게 뻗은 도로를 찬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밤에 달리는데 어찌 생명에 위협을 안 느낄까 마는 모든 것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 하며 달렸다.
기름도 거의 없었지만 오토바이가 쓰러질 것처럼 바람이 몹씨 불어와서 가는 길에 주유소에 가서 유통에 가득체우니 9000원이 들었다. 이것이면 출퇴근 하는데 열흘은 족히 타고 다닌다.
기름에 한결 무거워진 오토바이는 바람에 조금은 안전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춥고 늦은 밤이라 거리에 차들도 한산해서인지, 45분 정도 쉬지 않고 질주 하니 목적지인 어머니 동네 도착했다.
계부님의 초하루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는 제주를 사야 해서 슈퍼에서 소주 한 상자와 초코파이 두 상자를 사서 들고 들어갔다.
소주와 과자류는 생전에 아버님도 좋아 했던 것이라 갈 때마다 과자봉지를 사고 간 버릇이 있었지만 동생4명들도 술을 좋아 하고 그리고 한집에 3명씩이나 되는 조카 12명에게도 차례를 끝나고 나면 즐거움이 될 것 같아서 초코파이를 택했다.
“어머니 아들 와 쑤다. “ 하며 생명모(헬멧)와 우의를 마루에 벗어 놓고 있으니 어머님이 부엌에서 나오면서 \"애구 애야 이 밤에 이게 무슨 일고?\" \"돈 좀 줭 택시를 타고오주기\" ”저녁은 어떵 먹어 시냐? “
“예 조냑먹었쑤다. 어 춥쑤다. 방이 이거 뭐꽈? 냉방 인게 마씸. 도똣헌 물이나 혼잔 줍써.”
“아 아버지 마시던 인삼액 다 먹었 쑤강? “하며 내가 사서 보낸 것이 생각나서 어머니에게 늙어 응석을 부려 보았다.
“반 병 남아 있져. 기여 그 것 혼자 타 주크메 구둘에 이시라. “ 하며 따스한 모정으로 밤길을 달려온 나를 위로 해 주는 것이 어머님이 끊임없는 사랑인가.
집에 아내에게 걱정할 까봐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를 걸었다.
마누라 왈 “오늘은 어머니와 같이 자니 좋겠네?” 하며 질투 하는 느낌을 들게 하는 목소리였다.
위층에는 내 바로 밑에 동생식구가 살고 있다.
이층에 올라가 보니 첫째조카는 고3이라 집에 아직 안 들어 왔고 둘째는 방에서 뒤치닥거리고 있었고, 막내는 자고 있었다. 제수씨도 큰방에서 나오면서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 아니 이 밤에 또 오토바이 타고 오셨어요?”
“그럼 언제 내가 오토바이 안 타고 온 것 보아쑤?” 전천후라니까. 하고 조카에게 추리닝 한 벌을 빌려서 갈아입고는 어머니 방으로 내려 왔다.
어머니와 한 방에 같이 잔다는 것은 한 달 전 초하루와 이번이 두 번째, 그 기분이 좀 찡하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모습이 많은 주름살로 얼룩이 져서 있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 속이 상 했지만 밀어 내는 세월을 미워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살면 얼마나 살 것인가? 80세? 90세? 앞으로 5년? 10년? 하며 앞으로 살날을 생각하니
속울음이 날 것 같아 전등을 끄며 어머니 옆에 들어 누웠다.
3살 때 어머니와 같이 있는데 나보다 16살 위 큰형님이 나를 데리고 시내로 와 버리는 바람에 16년 이란 세월을 어머니 얼굴 한번 못 보고 그냥 헤어져 있다가 19살에야 겨우 찾아 처음 어머니를 본 그 순간은 그냥 덤덤했다.
과연 이분이 나의 생모인가? 의심반 진심반 하며, 별이 별 생각이 다 했던 그때 그 추억이 잠시 스크린처럼 스치면서 가슴을 짓눌렀다.
“애야 내가 자동차 사주크메 탕 뎅기라! 이제 나이 들어 감시메 오토바이 이젠 그만 타라게.” 하며 어머니의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가 정겨웠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 저는 현재 오토바이가 최고우다. 공항에 월 55천원 주차료 안 내지요. 세금 없지요. 일년에 보험료 십이삼만 원과 한달에 기름값 3만원이면 떡을 치다가도 남아요. 주차 공간 필요 없지요. 내 오토바이로 다른 사람 주차 공간 안 뺏어서 좋고요, 시장, 골목길 못 가는 데가 없고 기동성 빠르고요. 이만 하면 교통수단으로는 최고지요 뭐, 좀 춥고 힘든 것 정도 못 참으면 일생을 어떻게 이겨 나가며, 이렇게 좋은 혜택을 어떵 누릴 수 있쑤강?. 회사 직원이나 성당식구들이나 학교 동창들이나, 나를 아는 사람은 모두 자가용 사라고 권 하지만 저는 작은 교통수단인 오토바이가 최고 쑥 우이우다 ”
어머니는 포기 했다는 듯이 \" 경허민(그러면) 새 오토바이 사 주크메 새것 탕 댕기라(타고 다녀라)\" 하며 어머님은 새것을 권장 했지만 나는 \" 교통수단을 교통수단으로 잘 굴러 가면 만족하지 꼭 새것이라야 하는 것은 사치우다. 돈 드리멍 새거 살 필요 어시난 걱정허지 맙써. 어멍 건강이나 조듭써\" (어머니 건강이나 걱정하세요) 하며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자정이 훌쩍 넘었다.
어머니는 오늘처럼 나와 둘만 있을 때면 지금까지 맏자식이 고생하며 살아온 것에 가슴 아파 하며 \" 느 어릴 때 나에게 있는 것 가만히 놓아 두어 시민 느 고생 안 허곡 나 고생 안 허곡, 느영 나영 둘이만 행복허게 살아실걸......, \" 하며 나에게 하소연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러나 난 그 말에 동요 되지는 않는다. 그 어머니가 이야기 하는 세월은 이미 지나버려서 다시 돌아 올수 없기 때문이다.
잠을 붙이자니 별이 별 생각이 다 나서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도 새벽은 왔다.
아침이 되니 나를 뺀 4형제식구들이 각자 맡은 차례 제물을 들고 모여 들기 시작했다.
어머니로서는 내가 제일 큰 맏아들이지만 이곳 문씨 집에 아들 4형제 중 맨 막내 옆에 서서 차례를 지낸다.
제사법도 나의 유씨 집안에서 하는 것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뭐라고 안 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고 동생이 하자고 하는 대로 했다.
3개월 전에 돌아가신 계부님 초하루 차례를 지내고 나서, 가지고 갔던 디키를 꺼내 어머니에게 같이 사진 찍자고 권유했다.
어머님은 “사진은 무슨 사진, 이런 꼴로 어떻게 찍냐? “ 하시는 것이었다.
“아 그냥 이신데로 자연스럽게 찍읍써. 어머니 보고 싶을 때 자주 보잰 마씸.” 하며 막내 동생에게 디카샤터를 누르라고 부탁을 하는데 바로 밑에 동생이 “ 사진을 찍어서 뭘 하려고요?” 하며 달갑지 않은 투정을 부리는 느낌을 받았지만, “ 응 어머니 보고 싶을 때 보려고.” 하며 4판이 사진을 찍었는데 다행이도 딱 한 장이 잘 나왔다.
어머니가 검은 비닐봉지에 싸 주는 양배추 두 덩어리와 고구마줄기 말린 한 봉지를 싸 주면서 집에 가서 반찬 해 먹으라는 것 이였다.
이것이 어머니가 자식에게 정을 주는 참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며 나는 오토바이 트렁크에 어머님의 주신 그 정성을 담고 직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 출근길은 어제 밤 보다 한결 포근한 느낌 들었다.
마치 어머니의 포근함같이…….
포근한 어머니와 한밤을 세워서 하느님도 알아서 날씨가 포근하게 해준 것이 아닌가?
사무실까지 아무 일 없이 도착하여 어머니와 부인에게 걱정할 까봐 도착 보고를 전화로 했다.
아내 왈 \" 어머니와 같이 잔 소감이 어때?\" 하며 물어 오는 것이었다.
나는 '좋지 뭐' 하며 웃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어머니 모습을 얼른 보기 위해 사진을 컴퓨터에다 담고 바라다보니 정말 잘 나왔고 좋았다.
이 기분은 오로지 나와 하느님만 알 것이다.

댓글 4개

은비녀 2006. 04. 01. 오후 11:15

제주의 풍경과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모습.....제주에 가고 싶어지네요^^. 어머님과 더 많이 행복하시길빕니다.

유태복 2006. 04. 06. 오후 06:11

은비녀님 격려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청정제주에 언제든지오세요 환영입니다. 요즘은 노란 유체꽃향기와 연분홍 벗꽃향기로 가득차 있어서 여행이 한결 즐거워들 합니다. 은비녀님 보람찬 사월이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안중엽 2006. 04. 08. 오후 10:56

어머니에게 자식은 항상 어린가봐요!! 고부간에 질투는진담이든 농담이든 언제나 있고요 ~

유태복 2006. 04. 09. 오후 11:04

두 청춘 남녀가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이였다고 합니다. 남자는 그 여자를 무척 사랑했는데 여자는 남자에게 날 정말 사랑하면 어머니의 염통을 가지고 오라고 했더랍니다. 그 남자는 고민하다가 드디어 어머님의 주무시는 순간 어머님의 염통을 들고 그 여자에게 뛰어 가다 그만 넘어 졌는데 손에 들고 가던 염통의 땅에 떨어 졌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님의 염통을 다시 손에 쥐는 순간 아들에게 \" 얘야 어디 다치지 않았니?\" 하는 소리가 들리 더랍니다. 이렇게 어머님은 자신을 죽이는 아들에게 까지 걱정을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생각나게 해주신 님의 댓글에 감사 합니다. 제주는 지금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입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꿈꾸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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