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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시장 배추를 위한 중모리

김봉길 2006. 09. 21. 오후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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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시장 배추를 위한 중모리
영등포 차소리도 그 숨결도 죽이는
영일시장 끄트머리 밤
희끗 이내 머리카락 사이로
이슬 무늬 잔비가 내린다
어디를 보아도 내 것 같은 시장 구석
집으로 가는 보도블록 발길마다
추적추적 배추향내 채일 수밖에
이제 갓 올라온 트럭마다
가슴 가득 배추 산더미 넘실댄다
비닐 지붕 다섯 여섯 둘러치고
서로 밤도와 지키리라 아낙들
배추 옷 신문지 떼어내어
새색시 배추 겹겹 단장하는
늘그막 아낙들 손 장갑이 번쩍이다
아 그래, 그럴 것이네
뉘 볼까 먼저 얼굴 내밀고 싶은 것
배추잎이거나 옷이거나 벗을수록
꼭 한번은 새 얼굴 되겠지
아 그래, 처음 옷 벗을 때 좋았어라
고이 간직해온 속살 보드라니
뉘 슬픔인 듯 어찌어찌 감출리야
밤새 또 그 이야기
어제처럼 다시 듣는 일이야
내일 들어도 즐거워야 하느니
아 너도나도 기막힌 인생이더라
머리 꼭대기 고층 건물 창마다
내년이라 점점 무지개 불빛 켜질 즈음
서서히 다른 시장 배추가 될
아직은 영일시장 배추들
슬픔 가득 배추 트럭도 사라지고
그 배추 다듬는 아낙도 사라지고
밤 구름 배추 따라 홀홀 사라지면
어디라 영일시장 하늘에 두고
나는 어디로 사라질 것이냐
(주) 영일시장;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에 있던 농산물도매시장 이름.
지금은 강서구로 이전 중이다. 그 자리에 대형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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