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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늑대 10

한민 2008. 04. 10. 오후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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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미는 눈물을 훔치고 서둘러 옆집 미옥에게로 향했다.

  미옥은 한참 동안 뜸을 들이다 혜미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선배는 그 다음날 죽고 창균이는 소년원에 들어갔어. 네가 없어서 내가 대신 몇 번 찾아갔었는데 꼴이 말이 아니더라.”


  혜미는 그 날 이후 일주일 동안을 시름시름 앓았다.

  그녀는 그녀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것이 창균으로 하여금 더욱더 우발적인 행동으로 몰고 간 것 같아서 너무 괴로워했다.

  

  그녀의 부모들은 서울에서 공부한 탓에 몸살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월례고사 성적표가 집에 도착하자 대경실색하였다.

  그녀의 성적표는 터무니없는 성적으로 밑바닥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이전처럼 다그치지 못했다.

  그것은 뭔가 모르게 달라진 그녀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건강하고 긍정적이었던 혜미는 누가 보더라도 웃음을 잃고 만사에 의욕을 보이지 않은 채 눈에 띄게 몸이 불어가고 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아무런 의욕 없이 학교를 오가던 혜미는 성적이 하위권이라서 대학 진학 할 무렵에는 진학할 만한 학과가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체육학과의 경우에는 웬만하면 4년제는 들어갈 수 있었던 시절이었고 그녀가 다니던 학교는 4년제 대학 진학률의 숫자놀음에 혈안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담임선생님은 그녀의 적성이나 성향과는 관계없이 그녀의 진로를 부영대학교 체육학과로 정해버렸다.


  塞翁之馬새옹지마 라고나 할까, 건장하고 씩씩한 부영대학교 체육학과의 분위기는 혜미의 성격과 생각을 바꾸는데 일조 하고 있었다.

  덩치에 비해서 의외로 순진하고 건강한 젊은이들과의 생활을 통하여 혜미 는 조금씩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되찾게 되었다.

  이학년 때부터 그녀는 요가를 전공으로 선택하여 밤낮으로 매달렸고 졸업반이 될 즈음 에는 보는 사람마다 부러워하는 몸매를 만들게 되었다.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에 겪은 쓰라린 추억은 서서히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어진 스쳐지나가는 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그해 겨울.

  읍내에서 몇 안 되는 금연 다방 ‘모데라토’

  검정고시를 패스하여 형기가 감형되어 예정보다 일찍 출교한 창균은 상기된 얼굴로 혜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뜨거운 물이 테이블 위로 올려지기가 무섭게 창균이 입을 열었다.

  “마이 춥제?”   

  “고생했지.”

  “고생은 뭐, 수양 좀 했지.”

  “이제부터는 날 찾지 말아줘.”

  “혜미야.”

  창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혜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고등학교 시절의 악몽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고 생각해.”

  “.................”

  “좋은 친구로 마무리하자.”

  창균은 한참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염치없는 놈이 되긴 싫다.”

  “미안해.”

  “미안할 거 없다. 나도 그냥 경쟁하듯 널 좋아했던 거니까.”

  “경쟁하듯이 라니.”

  “창옥이 너에 대해 하도 애틋하게 얘기 하길래 그런 순수한 감정이 잠시 부러웠는갑다. 내가 지고는 못산다 아이가. 오히려 내가 미안타. 니가 더 잘 될 수도 있었는데. 괜히 나 때문에. 잘 살그라.”

  “기억에도 없는 창옥이 자꾸 끼어드는 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따로 시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끝난 것도 아닌 거야.”

  창균은 먼저 일어서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혜미는 그의 등 뒤가 보기 싫은 건지 볼 자신이 없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한참동안 앉아 있던 그녀는 한 줄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날 저녁부터 혜미는 다시 열병을 앓았다.

  몇날 며칠을 고열에 시달리다가 겨우 일어난 일어나자마자 뭔가에 홀린 듯 두 번 째 상경을 서둘렀다. 졸업식도 회피한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독기를 품고 일에 매달려서 단숨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간혹 바람이 전하는 창균의 소식이 들렸다.

  창균은 지방에서 사업가로 성장했다는 것과 그녀의 친구 미옥과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참석은 창균도 미옥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어서 이 역시 애써 외면하고 일에 매달렸다.

  행복에 겨운 미옥의 부재중전화가 서로 주고받은 소식의 전부였다.

  “가시나야, 그래도 바쁘이께 얼마나 다행이고, 창균씨, 생각보다 순하더라. 창옥씨가 사회 봤는데 완전히 아나운서 뺨치데. 그라고, 니 함 볼라고 그리 난리를 치는데 전화번호 갈키주도 되나? 생각해보고 연락도.”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하는 일들이 손에 익을 무렵 그녀에게 갑자기 공허함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살아간 것 같았다. 그 무렵 그녀는 이성관계에서도 관성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변에서는 눈에 차는 사람을 찾는 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원정경기에서는 더더욱 속빈 강정 이었다. 사실 그녀가 친구들 앞에서는 요란하게 ‘콜렉션’입네 하고 온갖 잰 체 하였지만 겨우 나이트클럽에서 밤새워 춤추고 룸에서 노래한 게 전부였다.


   그녀는 틈만 보이면 들이대는 타입을 혐오하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유형은 경멸했으며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스타일은 무시했다. 그런데 그녀가 이번에는 틈을 충분히 보였는데 들이대는 것도 아니요. 가진 것을 과시하지도 않으면서 자신감 충만한 사내를 만난 것이다.


  혜미는 과거의 필름이 한 사내의 흐릿한 잔상과 ‘한영준’ 이라는 이름에서 머무르자 서둘러 시계를 보았다. 열한시를 넘겨버린 시계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혜미를 바라보며 자정을 향하여 째깍거리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댓글 2개

포아풀 2008. 04. 10. 오후 11:27

그랬어요. 대학진학율 높이려고 적성에도 안맞는 예체능계로 내몰던... 먼 옛날 일이지요.

김문숙 2008. 04. 11. 오전 02:22

혜미의 적성은 무엇일까 ? 한민님은 아실터인데--- 작가님은 이미지의 라인 구성에 몰두 하시는 것 같습니다. 즐겁게 보고 있읍니다. ㄱ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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