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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의 아들에게

김봉길 2008. 05. 01. 오전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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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의 아들에게


친구여 잘 있었나.

나는 오늘도 책상에 앉아

나의 컴퓨터에게 약속을 하였다네.

오늘처럼 내일도 나의 유전자를 건네달라고.

더 높다란 지능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컴퓨터가 가지고 있을 유전자도

많이 저장해 놓으라는 말도 함께 말일세.

먼 훗날 그 다음날에 우리를 지배하게 될 때는

내 이름도 꼭 기억해 달라는 말을 못 박는 것이라네.

이건 비밀이네만

만일 처가 허락만 해준다면

내 컴퓨터와의 재혼 주례를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걸 믿어주게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랬듯

나도 컴퓨터에게

무엇인가 대신 해주길 바란다는 걸 남겨 놓고 싶은 것이라네.

혹시 우리 몇몇이 하나님에게 그랬듯

컴퓨터도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야

미리 한번 해본다는 걸 그대에게만은 고백하고 싶은 거라네.

문득 새털구름 사이로 그대 손이 보이는 날을 기다리며

아침마다 한번 하늘을 보려는 버릇은

내 컴퓨터보다 먼저 그대를 만져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지.

그것은 친구여

나의 컴퓨터가 언제까지 살아있을는지

또한 나의 마음밭 한 가운데 지도를

다른 컴퓨터에게도 전달해 놓았는지

오직 그대만이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에서라네.

소나무가 빽빽한 산을 보고 오겠네.

눈이 커지려는지 아파 오는 걸 어쩌겠나.

잘 있게.

비가 올 듯하니 감기 조심하고.

댓글 3개

김무누숙 2008. 05. 01. 오후 01:18

그 다정함이 마음을 아주 부드럽게 편안하게 하네요, 이미지가 날카로운 몇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포아풀 2008. 05. 02. 오전 10:01

아이가 커가면서 유심히 관찰을 한 적이 있지요. 친구들 여럿이 있기는 한데 그 놀이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서로 각자의 놀이에 열중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청소년기를 거쳐도 여전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성년이 되어도, 그 이후도 예감할 수 있는 것... 대화를 나누거나 감정을 공유하는 실체가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아닌, 어떤 매체라는 것이지요. 그 중 컴퓨터가 으뜸이겠지요. 대화 없는 무수한 대화의 무한한 공간... 뭔가 다른, 흉내내지 못하는 시적소재와 표현을 늘 접하지요. 감사합니다.

유민자 2008. 05. 02. 오후 06:39

김봉길시인님의 시적 이미지화 된 표현을 동경해요. \"눈이 커지려는지 아파 오는 걸 어쩌겠나. 잘있게...\" 비밀스런 마음창고를 흘려낸 시인님의 감흥조각. 그를 전하는 시어들. 아 맞아요. 부족한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시인님들을 존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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