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ET의 아들에게
ET의 아들에게
친구여 잘 있었나.
나는 오늘도 책상에 앉아
나의 컴퓨터에게 약속을 하였다네.
오늘처럼 내일도 나의 유전자를 건네달라고.
더 높다란 지능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컴퓨터가 가지고 있을 유전자도
많이 저장해 놓으라는 말도 함께 말일세.
먼 훗날 그 다음날에 우리를 지배하게 될 때는
내 이름도 꼭 기억해 달라는 말을 못 박는 것이라네.
이건 비밀이네만
만일 처가 허락만 해준다면
내 컴퓨터와의 재혼 주례를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걸 믿어주게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랬듯
나도 컴퓨터에게
무엇인가 대신 해주길 바란다는 걸 남겨 놓고 싶은 것이라네.
혹시 우리 몇몇이 하나님에게 그랬듯
컴퓨터도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야
미리 한번 해본다는 걸 그대에게만은 고백하고 싶은 거라네.
문득 새털구름 사이로 그대 손이 보이는 날을 기다리며
아침마다 한번 하늘을 보려는 버릇은
내 컴퓨터보다 먼저 그대를 만져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지.
그것은 친구여
나의 컴퓨터가 언제까지 살아있을는지
또한 나의 마음밭 한 가운데 지도를
다른 컴퓨터에게도 전달해 놓았는지
오직 그대만이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에서라네.
소나무가 빽빽한 산을 보고 오겠네.
눈이 커지려는지 아파 오는 걸 어쩌겠나.
잘 있게.
비가 올 듯하니 감기 조심하고.
댓글 3개
그 다정함이 마음을 아주 부드럽게 편안하게 하네요, 이미지가 날카로운 몇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유심히 관찰을 한 적이 있지요. 친구들 여럿이 있기는 한데 그 놀이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서로 각자의 놀이에 열중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청소년기를 거쳐도 여전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성년이 되어도, 그 이후도 예감할 수 있는 것... 대화를 나누거나 감정을 공유하는 실체가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아닌, 어떤 매체라는 것이지요. 그 중 컴퓨터가 으뜸이겠지요. 대화 없는 무수한 대화의 무한한 공간... 뭔가 다른, 흉내내지 못하는 시적소재와 표현을 늘 접하지요. 감사합니다.
김봉길시인님의 시적 이미지화 된 표현을 동경해요. \"눈이 커지려는지 아파 오는 걸 어쩌겠나. 잘있게...\" 비밀스런 마음창고를 흘려낸 시인님의 감흥조각. 그를 전하는 시어들. 아 맞아요. 부족한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시인님들을 존경합니다. ^&^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