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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넘이

포아풀 2008. 05. 22. 오전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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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파근하게 하루를 풀어내는
늙은 해가 토해내는 빛은
최 영감 떠난 후 오래도록 남아 흐르던
질펀한 붉은빛을 닮았다
앉은 자리 풀도 마른다던 영감의 지독함은
사 홉들이 소주병에 담은 멀건 죽을 넘기며
달빛 훤한 밤 밭일을 했다는 일화로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상여를 떠메고 가던 마을 장정들
노인의 인색함을 대신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가게 앞에 엿처럼 들러붙어 고인을 볼모로 흥정을 했고
상주는 넉넉한 술이며 담배로 상여꾼들을 달래
장지까지 무사히 모셔야했다
그 많은 재산 아까워 어찌 눈을 감았을까,
입들이 분주했지만
목련의 뽀얀 분내가 온 마을 코끝을 간지럽히던 봄날
교정 한 편에는
노인의 공덕비 수줍게 세워지고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학교 부지가 생겼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새떼의 지저귐으로 퍼져나갔다
강물을 붉게 물들이고도 모자라
서녘을 활활 태우는 해처럼
노인의 마지막 길도 저렇게 붉은 여운이었구나,
보이지 않는 둥그런 그림자를 남기는 강물 위로
먹물이 소리 없이 번지고
어느새 찾아든 어스름 꼿꼿이 허리를 편다

댓글 15개

이임영 2008. 05. 22. 오전 09:47

어떻게 살든 목적 의식을 갖고 그 일에 정진을 하고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은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가는 길이었으면 좋을 것 같가요...아름다운 수채화처럼 펼쳐진 포아풀님의 글밭에서 머물다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손일갑 2008. 05. 22. 오전 11:27

반갑습니다 포아풀님 늙은해는 뭔가 다라도 다르네요 참말 이미지를 아름답게 그리면서도 뭔가 여운을 남기고 가는 시 대단합니다 현재 활동하시는 시인이시죠 많이 가르쳐주세요 꼭 꼭 꼭 먹물이 소리없이 드리우는 어둠이 세우는 허리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네요 혹 노인의 굽은 등을 말하는것인지요

포아풀 2008. 05. 22. 오후 09:03

이임영 님, 손일갑 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에 과평을 주셨네요. 그냥 편히 감상하셔요. 먹물이 번지듯 강물에 어둠의 그늘이 드리우고... 어스름이 꼿꼿이 허리를 편다고, 본격적인 어둠이 시작된다고, 하루가 진다고, 밤이 온다고... 부족하지만 그렇게 해석을 달아볼까요?

미오새 2008. 05. 23. 오전 11:17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해를 지구 저편의 누군가는 동트는 아침의 해로 바라보고 있듯이... 최영감님은 자신에게는 철저하게 인색하셨지만, 이웃에겐 베풀줄 알으셨던, 존재의 목적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실천하며 사셨던 분 같아요. 혹시 그 최영감님이, 격랑의 바다같은 \"아버지의 바다\"를 일엽편주, 작은 배로 외롭게 건너시던 그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니신지요? 이 곳에 글을 올리시는 주기를 스스로 정하시고 그 원칙을 지켜가시는 포아풀님의 모습과, 최영감님의 고집스런 모습이 어딘가 닮아보여서 ... 작은 도랑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밭 고랑을 따라 상여를 메고 장지를 향하던, 어릴적 할아버지의 장례식 모습이 연상됩니다. *포아풀님..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은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작년 어느 봄날, 예정에도 없이 남산의 케이블카를 타셨다는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나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포아풀 2008. 05. 24. 오전 08:36

지는 해가 붉다... 오래도록 여운이 남지요, 해넘이는. 강물이나 바다로 해가 들어간 듯 지고 나서도 한동안 둥근 그림자가 남더군요, 오래도록 지켜봤던 경험으로는. 그 해넘이의 광경을 바라보며 유년의 기억 한 자락 가져왔습니다. 시는 체험과 상상의 부산물이라지요. 대상이 누구인지는 그냥 미오새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미오새님의 기억력과 센스에 제가 놀랄 때가 많습니다. 저도 잊고 있던 일을 기억하시네요. 이번 일요일은 아마도 친정어머니와 보내지 않을까... 생신을 기념해서 막내동생과 여행 중이십니다. 오늘 오시면 내일 점심이나 같이 해야지요. 이럴 땐 아들이 훨씬 좋네요. 어머니 모시고 다니고... 저는 맏딸 노릇을 못하고 있답니다. 미오새님의 휴일이 빛나는 햇살처럼 눈부시기를...

최인구 2008. 05. 24. 오전 11:48

내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나간 추억에 여운을 삼키고 있을 때 나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는 해오름을 보면서 다가 올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강한 다짐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왜 전혀 지금까지 하지 못 하였을까요? \"포아풀 & 미오새 커플님\" 요즘 두 분이 사이가 서운해 보이시더니 둘 만이 통하는 텔레파시를 주고 받으며 소통하고 계셨군요... 포아풀 님~! 만의 글쓰시는 주기라...음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근데 미오새 님은 오래 전부터 알고 계셨다~! 역시 두 분은 사귀는게 확실합니다.

포아풀 2008. 05. 25. 오후 07:00

최인구 님~ 개구쟁이 님~ ㅎㅎ 종씨라 봐줬다! 오랜만이시군요. 최인구 님이 오시면 재미도 있고 기분도 좋아져요.

미오새 2008. 05. 25. 오후 10:41

*몇십년째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고, 한번 그집의 음식을 맛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다시 찾아 온다는 어느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할머니사장님께서, 음식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하늘이 내려다보는 간장과 된장을 결코 소홀히 할수없었으며, 온갖 정성을 다하여 3년이상 묵힌 것을 쓰기 때문일꺼라고 하더군요. 포아풀님..예의 탱탱한 웃음으로 크게 한번 웃으시고, 집안의 막내동생같은 인구님의 짓궂은 장난에 노여워 마소서. 인구님이, 집안의 큰 누님뻘되는 포아풀님에게, 발효와 숙성의 오랜 시간을 거친 정갈하고 깊은 장맛같은 정을, 그 정이 그리운 속내를 우회적으로 흘리는 이야기에... *그리고, 인구님.. 미오새처럼 포아풀시인님의 열혈팬이 되어보세요. 다음 글이 기다려지고, 시인의 말 한마디에 하루의 기분이 달라질테니...

포아풀 2008. 05. 26. 오후 04:04

에궁... 황송한지고... 인구님 덕분에 웃었는걸요. 그러고보니 인구님이 막내동생쯤 되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제 맘대로 ... 죄송해요. 미오새님, 기분 좋은 발걸음 감사합니다.

김문숙 2008. 05. 27. 오후 05:38

는적는적 해넘이 넘어 가도 늦어도 빨라도 언제든 밤이야 오는 것, 포아폴 님의 시의 세월이 나를 불러 세워 좋은 시 읽고 갑니다.

미오새 2008. 05. 27. 오후 07:38

*커피에 대한 중독이 염려되어 커피를 끊었더니 아예 감성을 자극하는 분위기까지 단절되는 느낌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커피 한잔을 들고 포아풀님이 보이는 창 앞에 앉았습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꼭 연서 같은 느낌이라... 전에 같으면 \"사색의 향기\" 영문표기에 충실했다고 둘러대기라도 했지만, 이제 도메인주소가 바뀐다니 무슨 핑계를 대야할꼬... 포아풀님..오월이 가기전에 고개들어 오월의 하늘, 한번이라도 더 바라보소서..

포아풀 2008. 05. 28. 오후 04:33

는적는적 해넘이 넘어가는... 그 표현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납니다, 김문숙 시인님. 감사합니다.

포아풀 2008. 05. 28. 오후 04:41

미오새님, 연서가 아닐지라도... 조금은 설레는데요. (너무 솔직했나? ^^) 커피중독... 저는 커피없으면 일이 안돼요. 이건 분명 중독이지요? 적당히 흐리고 적당히 촉촉한 날이네요. 이런 날은 차분해지네요. 그래도 오월의 하늘은 여전히 좋네요. 미오새님도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하늘 한 번 보세요. 고맙습니다.

미오새 2008. 05. 31. 오후 07:30

*포아풀님.. 신행길의 새각시처럼, 수줍은 듯 조심스런 걸음으로 사색의 향기에 처음 모습을 보이시던 무렵, 어느 토요일의 댓글에 제목을 \"주말의 편지\"라 썼더니 화들짝 놀라시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연한데... 이제 연서라는 이야기에 미동도 않하시고, 여유롭게 넘기시는군요. 어느 비 오는 날, 자주 찾으시는 찻집, 석류나무가 보이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포아풀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 싶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시는지, 저 만큼 앞자리의 미오새에겐 눈길 한번 안주시고 앉아 계시는 모습이... *황사가 아직 남아있는 하늘이지만, 그래도 2008년 5월의 마지막날이라 자꾸만 시선이 하늘을 향합니다. \"새 술은 새 푸대에\" 라는 말처럼, 포아풀님의 발걸음 무겁게 했던 지난 일들이 말끔히 정리된 새로운 기분으로 유월 맞으시기를 바람니다, 포아풀님 !

포아풀 2008. 06. 02. 오후 10:02

유월을 바쁘게 맞았습니다. 뭐가 그리 실속도 없이 분주하기만 하던지요. 미오새님의 유월 시작은 어떠셨어요. 저녁에 천둥치고 비가 쏟아지고... 그 빗속을 마구 뛰다가 들어와보니 집이 좋긴 좋네요. 미오새님, 지금은 안온한 밤을 맞고 계시겠지요. 편한 밤 되시고, 행복한 유월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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