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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에 비 그치고...

미오새 2008. 06. 19. 오전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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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사에 비 그치고...

  소나기 한 줄금 지나가고
  늦은 햇살.
 
 요사, 툇마루를 넘나드는
  산 비둘기 울음에
 
인연의 자리, 그리움 돋았는지
  하늘에서 못 다 내린 비
  동녀의 눈에 고여가는데...
  어미 품 떠나온지 얼마나 되었을까
  울먹이는 몸짓에 그림자도 흔들려
  바람은 제 탓인 냥 
  풍경만 울리고 지나가네

  기약없는 이별이 못내 서러워도,
  산문의 계를 받들지 않고
 
긴 머리 지켜낸 대견함에
  머릿결,
무심히 치올려보는 작은 손짓은
 
세상 길 미련일까 
 
마음 가는 곳에 눈 길 머무는지,
 
행장여미는 할미를 힐끔거려도,
 
매몰 찬 손끝으로 시선을 뿌리치네

  풍경소리에 귀를 세우던 할매
 
 바람에,  풀잎 이슬 떨구듯
 
 눈물 한 줄기 고개 돌려 감추고
 
 앞 산 그림자에 밀려난 짧은 햇살에
 
 서둘러 절 문을 나서는데
 
 긴 그림자 앞 세운 걸음, 허허롭네

  세상 이치 서툴러도, 저 가야 할 길 아는 듯
  노 스님 장삼 자락에 얼굴을 감추었어도 
 
빼꼼히 고개 내민 눈길은
  저 만큼 
멀어지는
  할미의 구부정한 등에 멈추어있네

  비 그친 하늘에 한 조각 구름, 
  홀로 재를 넘고, 
 
그리움처럼,
 
소나기 지나 간 골짜기마다
 
물안개는 피어오르네.

 

  ** 후기 /  이 글의 동기가 되어 주었던 한 소녀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몇 해전 여행중에 비를 피해 잠시 머물렀던 봉화군의 어느 작은 절.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로 눈물 글썽이며 요사 툇마루에 앉아있던 
 
 열살 무렵의 작은 소녀를...
 
 무병 (巫病)을 앓고 있었는지 집에서는 까닭없이 시름거리다가도 절에 오면,
 
 꾀병처럼 아픈 곳이 없어 진다던 아이.
 
 그래서 그 날도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절집에 맡겨지던 아이.
 
 차라리 집에서 아플망정 절에 있긴 싫다고 울며 버티던 그 아이가,
 
 그 어린 나이에도 긴 머리가 여자의 자존심처럼 느껴졌는지 삭발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할머니의 제의를 체념처럼 받아들이던 아이.
 
 두 눈에 눈물이 그렁이던, 그리움 깊어 보이던 그 소녀의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산사에 비는 그쳤지만, 엄마그리는 마음에 내리는 비는 언제 쯤에나 그쳤을지...
 
시름시름 앓는 어린 딸을 절집에 떼어놓고 돌아 설 모진 걸음이  감당키
  어려웠을까, 할머니를 딸려보낸 그 아이의 엄마는...

  감히 글로 옮긴다는 생각은 못했었지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는지, 그 때의 광경이 포아풀님의 詩  \"산사, 비\"에 자극되어
 
작은 글이 되었습니다.
 
치기(稚氣) 어린 솜씨로 흉내는 내본다지만, 고명하신 시인님께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항상 조심 스럽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지금 미오새가 딱 그 짝이라....   

댓글 8개

포아풀 2008. 06. 19. 오후 03:20

\"아서라, 마음 가는 대로 둘 일이다 애써 상처 지우려 하지 말라는 듯 노승의 목어소리 한바탕 파도로 쓸고 가는데 마악 돌아서는 그의 젖은 어깨에 닿은 내 눈에 불현듯 잊었던 얼굴 되살아난다......\" 처마 밑에서 비를 긋던 어느 행자. 그의 젖은 어깨에 닿은 눈에 잊었던 얼굴 되살아나듯 미오새 님은 어느 동녀를 생각하셨나요. 무병을 앓던 그 동녀, 지금쯤은 그 산사를 내려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을까요. 아님, 다른 길로... 그 동녀를 바라보던 미오새님의 촉촉하고 따듯한 눈빛이 보이는군요. 치기어린 솜씨라 하셨나요, 미오새님. 아니요...... 제가 부끄러워지는군요. 미오새님의 글에 오래도록 잠기고 있답니다. 보여드릴 수도 없고... 그 소녀가 자라난 사연 한 자락 적어볼까요?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 미오새님의 마음을 끌던 그 소녀, 소녀티를 다 벗지 않았을 테지만 먼 훗날 어느 인연의 자락에서 만들지도 모를 사연이라는 것을... * 山經 오래 전 선원 들었을 때 주지승이 제 전생이 나한이었다는 군요 머리 깎고 출가할 팔자라 하더이다 나한전(羅漢殿)을 바라보던 그가 고요로 팽팽히 당긴 시간을 흔들며 나직이 말을 보낸다 정말 나한을 닮았다고, 옆모습 훑던 시선이 문득 그의 마른 등에 꽂힌다 그에게 업힌 적 있었다 마음 많이 아프다, 아프다 해도 세상에 나를 받아주는 곳 있어 이 순간 아프지 않구나, 그의 등에 몸을 얹었고 까닭 모를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렀다 불가에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요 가을 산 싸한 공기를 헤치며 그의 말이 다시 헤엄쳐온다 네에…… 모깃소리로 기어드는 대답을 뱉으며 마음이 축축이 젖는다 그의 짧은 머리가 볕에 반짝거린다

김문숙 2008. 06. 19. 오후 03:40

풀잎과 산새와 비와 , 안방이 아닌 뒷편이나 옆에 있던 툇마루, --- 동녀와 요사채 등굽은 선사. 삶이 지나가 굽어진 할미의 등--- 구름이 스쳐가고 바람이 스쳐가고 세월이 그리하고 우리의 사랑은 어떤 흔적으로 남아 돌까요?

최인구 2008. 06. 19. 오후 05:03

부산 기장군에 가면 용궁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절 이름에서 느껴지 듯...바닷가 옆에 있는 절이지요. 용궁사 초입에 이런 문구의 비석이 있습니다. \"한가지 소원만 비소서\" 열살 소녀가 만약 이 비석을 보았다면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요? 아마도 할매 손잡고 집에 가게해 달라는 소원 말고는 다른 바람과 욕심은 없었겠지요... 저는 비석 앞에서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욕심이 많다는 반증이겠지요... 미오새 님~! 저도 여행을 무척 좋아하고요...산사에 머무르는 것도 좋아한답니다. 반갑습니다.

월산 2008. 06. 20. 오후 05:20

산비둘기 울음 이란 글을 보니 생각이 나는군요. 어렸을적 어느분의 수필을 읽었던 기억이... 짝잃은 수컷 비둘기였나 보더군요. \"기집 죽고 자식 죽고 망건 팔아 술사먹고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던가요. 산비둘기의 울음 소리가 들릴때면 의례이 이말을 대입해보며 따라 부르지요. \"기집 죽고 자식 죽고...\" 미오새 님! 덕분에 가슴이 뻥 뚫린듯한 느낌을 맛보게되는군요.

미오새 2008. 06. 20. 오후 07:29

*포아풀님.. 그 아이도 이제 봄 바람에 가슴 부푼 순이 나이쯤은 되어 가겠지요. 그 후, 회복되어 엄마품으로 돌아 갔기를 바라지만, 세상 이치 깨우칠 만한 나이가 되어도 낫지 않으면 스스로 머리를 깍고 출가할지도 모르지요. 가끔 산행에서, 산 비둘기 울음 들려오면 그 소리에 더 서럽게 눈물짓던 그 아이가 생각나는군요. 답글로 올려주신 \"산경\"은 오래도록 붙들고 포아풀님의 정서속으로 몰입해 보겠습니다. 며칠 전에 포아풀님을 그냥 한번 불러 보았더니 포아풀님 역시 \"그냥\"으로 화답하셔서 그냥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 보았지요. 미온적이거나, 애매모호하거나 우유부단의 의미로 생각하기 쉬운 단어 였는데, 그 뜻은 너무나 의외였어요. \"더 이상의 변화없이 그 상태 그 대로\".. 그래서 그냥의 뜻을 담아 한 번 더 불러 봅니다, 포아풀님..! *저 아래 다녀가신 인구님과 더불어 포氏남매의 정감넘치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미오새 2008. 06. 20. 오후 07:39

*문숙님... 만약에 문숙님께서 인구님의 글에 소개된 용궁사 초입의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준다는 비석앞에 지금 서 계신다면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요? 절제와 배려와 이타의 정신을 실천하시는 기독교 교인이신 문숙님답게 개인의 소원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다녀가신 귀한 걸음에 감사드려요, 문숙님.

미오새 2008. 06. 20. 오후 08:13

*인구님... 인구님의 순발력이 놀랍네요. 가녀린 소녀 이야기에 용궁사 초입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비석을 연상시키는 걸 보면... 지난번 인구님의 감성을 자극한 사랑의 기운이 인구님의 잠재된 순발력까지 회복시킨건 아닐지 ... 그 비석 앞에서 인구님은 무슨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빌었을까요? \"모든 일들이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지기를\" 이렇게 빌어도 한 가지 소원에 속하지 않을지... 우리 모두는, 유한한 시간 머물다 사라질 \"몸\" 보다는 언제인가는 영원한 세계로 향할 \"마음\"이 먼저 서로 소통하고 있으니, 이런 인연을 두고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라 하지 않을까요.. 둘이서 바라보는 차창 밖의 비내리는 풍경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될꺼예요. 비가 내린다는 이번 휴일에는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오시기를...

미오새 2008. 06. 20. 오후 08:22

*월산님... 멀쩡한 사람에게도 산 비둘기 울음은 애간장을 녹이는데, 새록새록 그리움돋는 마음에 들려오는 산 비둘기 울음은 참 감당키 어려울 듯 싶어요. 소품같은 작은 글에, 다녀 가신 월산님의 귀한 흔적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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