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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속의 상념(想念)

박상덕 2008. 11. 08. 오후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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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속의 상념

  새날의 여명(黎明)에 밀린 궁창(穹蒼)에는 갓 피어난 매지구름 몇 자락이 암회색이 그대로인 남서쪽 끝을 시커멓게 덧칠하고 있었다. 그 쪽으로 이름 모를 야트막한 산등성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에 우뚝 솟은 멧부리가 자리하고, 구름은 그 위로 분수가 솟듯이 치솟아 올랐다. 새벽녘의 진한 어둠을 조금씩 걷어내며 보랏빛으로 바뀌는 동녘하늘에 뒤지지 않으려는 듯이 어둠의 농도를 더욱 짙게 하여 산마루부터 빈틈없이 칠해 나왔다.
  하늘은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자 더욱 짙게 드리운 남서쪽이 동쪽하늘과 극명하게 대비되고, 북서쪽 중간은 칠흑(漆黑)을 잃어버린 허여멀게진 그대로의 밤으로 남은 절묘한 삼분(三分)의 나눔을 만들었다. 총총히 빛나던 새벽별은 오도 가도 못하는 다급한 처지에 안타까운 눈물을 씻어내고, 반이나마 남아있던 달빛의 조급증은 길섶의 앙상한 나목(裸木)위로 내려와 밤 끝의 희미한 달그림자를 주저앉히듯 앉혔다.
  어디서부터 끌고 왔는지, 아파트 앞 도로에는 가랑잎을 한 아름 끌어안은 회오리바람의 거친 소용돌이가 강마른 논바닥에서나 뒹굴었을 바싹 마른 한 무더기의 덤불까지 강한 흡인력으로 그 안에 뭉뚱그려 품고는 맹렬한 기세로 휘돌리다 끝내는 민들레씨앗을 바람에 날리듯이 그것들을 하늘높이 날리고는 가쁜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지난 가을만 같았어도 부지런히 동네를 쏘다니던 집나온 누렁이가 쫓아다니면서 냅다 소리를 내질렀을 법한데 그마저도 사라지고 없는 올해는 살풍경(殺風景)이 되었다.
  회오리의 내친걸음은 주저함이 없었다. 지나는 길마다 들쑤시며 머리맡의 자명종시계처럼 큰 파열음을 만들었다. 초봄쯤이었던가? 학생들 입학기에 맞춰 담장 한 귀퉁이에 내걸었던 '환경을 생각하자'는 구호가 적힌 낡고 빛바랜 플랜카드가 찢기는 헝겊 특유의 가쁘고 질긴 소리는 어느 구도자(求道者)가 목청껏 내지르며 갈구(渴求)하는 소리보다 반향이 컸다. 어둠이 강요한 침묵과 고조(高調)된 긴장은 참을성을 잃어버린 비틀린 바람에 의해 결국은 무너진 것이다.
  그것은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이 없었다. 깊이 잠든 새벽의 정적이 그 소리에 깨지자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사위(四圍)를 밝히려고 나섰던 새날의 여명은 동녘하늘을 깨우면서 몸부림을 쳤으나, 그렇지 않아도 어둠이 초썰물 때처럼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고, 새벽안개마저 깔리며 희뿌옇게 된 그곳까지 떼로 몰려간 구름이 완전히 뒤덮어버리자, 이내 꺼져버리고 무채색으로 변한 하늘아래는 온통 끄느름해졌다.
  빗방울은 한두 방울씩 떨어지며 창문을 화선지 삼아 대나무 잎을 촘촘히 그렸다. 아직은 초보티를 벗지 못했는지 생기 넘치는 대나무 이파리는 보이지 않고, 서툰 운필(運筆)만이 들쑥날쑥하며 복숭아 잎이나 버드나무 잎을 그려놓기도 하고, 길게 미끄러진 것은 늘어진 갈대 잎을 닮기도 했다. 수억 년을 갈고 닦았을 솜씨임에도 아직도 붓끝은 눈을 뜨지 못했는지. 그 길은 너무나 험하고 멀기만 하다.
  빗방울은 어느새 빗줄기로 변하여 그나마 애쓴 흔적을 모두 지웠다. 달보고 짖는 개처럼 철없는 덤불이 다시금 가을 속을 바람 따라 구르고, 낙엽이 제멋으로 흩어지며 그리움을 빗물로 수(繡)놓은 산책길을 뜨악한 눈길로 밟으며 상념(想念)에 빠졌던 그날의 새벽은, 달갑지 않게도 궂은 날씨가 메꿎은 짓거리로 헤살질 하는 가운데 무엇인가 불길한 전조(前兆)를 일러주는 경고음을 안고 그렇게 부닥뜨렸다.하늘과 땅에서 비와 바람이 엮는 엇박자의 이중주 속에서 쌀쌀한 늦가을은 입동(立冬)의 문을 제철대로 열었다.



  늦가을 비는 가뭄 끝의 단비처럼 때를 맞춘 듯이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오랜 가뭄을 해갈시켜주었다. 비는 어제 아침부터 하루 내 쉼 없이 내리기는 하였으나 빗발은 웃비 내리듯 오락가락하였다. 그러다 저녁 무렵에는 구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더니 어둠이 내리자 밤을 기다렸다는 듯이 빗줄기는 낮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숨기고 있던 마각을 드러낸 야수처럼 굵은 장대비로 돌변하여 퍼붓듯이 쏟아졌다.
  왜바람 물불 안 가리고 사납게 몰아세우듯, 강한 돌개바람까지 동반하여 밤새껏 베란다 창문을 여기저기 사정없이 두드려대며 밤잠도 설치게 하였다. 주변 하수도는 몰려드는 빗물을 감당하지 못하는지 금세 여기저기 큰 웅덩이가 생기고 마다않고 지나던 차마다 곤욕을 치렀다.
  이 계절에 내리는 비 치고는 꽤나 내렸는데도 하루 왼 종일 내린 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결국은 일을 낸 것이다. 사람이 게을러서 물이 넘쳤는지 아니면 하늘이 노하여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퍼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비온 뒤끝이 사나운 모습으로 변했다.
  세차게 내리는 기세가 너무도 등등하여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더니 어둠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시르죽었는지 조용히 내리던 어제 낮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얼마 후에는 잦아든 빗소리에 바람소리조차 뜸하더니 급기야는 간데없이 사라졌다.
  애간장을 태우며 하얗게 밤을 새우더니 새벽녘이 되자 거짓말처럼 그친 것이다. 늦가을의 밤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공포는 그제야 제자리를 다시 찾은 듯, 평화란 질서의 평온함을 의미한다면 그런 평화를 갖게 되었다.
  비오는 소리를 들으면 보슬보슬 소리를 내거나 주룩주룩 소리를 낸다. 보들보들 부드럽게 불어오는 명지바람타고 사뿐히 내릴 때는 보슬보슬 소리가 나고, 작대기같이 굵은 비를 몰아와 퍼붓듯 휘몰아칠 때는 주룩주룩 거친 소리를 낸다. 그러나 어젯밤부터 밤새도록 창밖에서 들렸던 소리는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귀에 익은 그 소리가 아니었다. '그 골짝 동백나무 잎사귀만 푸르고/대숲에 베인 칼바람에 붉은 꽃송이들이 뚝뚝' 떨어지던 그런 섬뜩함이 이는, 금속성의 날카로운 떨림이 온몸을 휘감듯 소름 돋는 소리였다.
  비오는 소리는 소리흉내를 낸 말이니 누구나 비슷하게 들려야하지만, 어젯밤처럼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서 다르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귀에 대고 살며시 속삭여주는 연인의 감미로운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 여름날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과 함께 쏴아∼하며 쏟아지는 소나기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청량제를 마신듯 시원한 기분까지 들게 한다. 낭만과 함께 오는 이런 비는 누구나 환영하는 즐거움을 주는 비다.
  그러나 비로 인하여 보금자리마저 날려버렸거나 비로 인하여 중대사를 그르쳤던 씁쓸한 경우를 당한, 비에 유감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사뭇 다를 것이다. 비오는 소리란 커다란 잡음이나 엄청난 소음으로 들릴 것이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는 온상(溫床)에 지나지 않으며 불행을 불러오는 원흉(元兇)으로 여길 것이다. 그것은 진저리나는 증오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비가 물 폭탄이 되어 쏟아질 때는 저주의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비가 내리는 것은 구름이 올라 비가 되는 것이니 자연현상의 하나이다. 계절도 아직은 늦가을이니 눈이 아니고 비가 오는 것도 당연하다. 진실한 불변부동(不變不動)의 섭리는 빈틈없이 완벽하게 작용하는 그대로의 것이고 모든 것은 그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하늘에는 사시(四時)의 운행이 있으니 때에 맞추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가을에 내리는 가을비를 대하면 무엇인가 남은 것이 있어 가슴 한쪽을 짓누르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이렇게 마음까지 심히 감사나워지게 하는 것은 계절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가 주는 의미로 인하여 감정의 톤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섭리마저 비켜가는 그 의미는 무엇일까?
  어찌해서 이 계절을 바라보면 마음이 어지럽고, 정(情)과 연(緣)이 더더욱 떠올려지고, 늦가을이라는 계절의 끝자락이 유한(有限)의 삶을 사는 우리네 인생과도 비교되는 것이 많게 느껴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를 보는 것처럼 불안감을 갖게 하여 유독 별다른 상념(想念)에 싸이도록 만드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
  끊어버린 생(生)의 진실에 대한 연민(憐愍)을 깊이 간직한 채 속절없이 내리듯 하는 늦가을 비가 공허(空虛)만을 뒤에 남긴다고 말하는 것이나, 겨울의 깊은 잠 속에서도 청자 빛 부활을 꿈꾸며 내리는 겨울눈을 보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낭만을 애기하며 분위기를 타는 것도 모두가 삶의 가운데서 상념이 만드는 것임에도 정신적 소심(小心)에 시달리거나 완전한 욕구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맑게 개인하늘을 기대하고 발코니로 나섰으나 혼자만의 바람일 뿐으로 기대는 속절없이 꺾였다. 비 그친 다음의 개운함은 고사하고 온통 찌푸린 잿빛 하늘에는 비를 잔뜩 머금은 시커먼 매지구름이 한 무더기씩 떼를 지어 동쪽방향으로 빠르게 지나갈 뿐으로 여명의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발코니 한가운데에 나란히 놓여있는 난대(蘭臺)위에 가지런한 풍란(風蘭)1)들의 잃은 빛만큼이나 하늘은 활기가 없다.

* 1)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AD 1891∼1968)는 난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는 「풍란」이라는 수필에서 '완당(阮堂) 선생이 한묵연(翰墨緣)이 있다 듯이 나는 난연(蘭緣)이 있고 난복(蘭福)이 있다. 당귀자, 계수나무도 있으나, 이 웅란(雄蘭=풍란)에는 백중(伯仲)할 수 없다. 이 웅란은 난 가운데에도 가장 진귀하다.'고 하였다.
  이어서는 '나는 어느 집에 가서 그 집 난(蘭)을 보면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겠다. 고서도 없고, 난도 없이 서화나 몇 점 붙여놓아야 비록 화려광활하다 하나 그건 한 요릿집에 불과하다. -中略- 빵은 육체나 기르지만 난(蘭)은 정신을 기르지 않는가?'라고 했다.
  그는 풍란(風蘭)을 찬한 시(詩)에서 \"잎이 빳빳하고도 오히려 영롱(玲瓏)하다/썩은 향나무 껍질에 옥(玉) 같은 뿌리를 사려 두고/청량(淸凉)한 물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사노니/꽃은 하이하고도 여린 자연(紫煙) 빛이다/높고 조촐한 그 품(品)이며 그 향(香)을/숲 속에 숨겨 있어도 아는 이는 아노니\"라고 읊었다.
  풍란은 누추하고 보잘 것 없는 바탕 위에서도 고결함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비록 숲 속에 숨겨져 있다하나 은은하게 기품(氣品)과 향기(香氣)를 피어내니 높은 인격을 갖춰야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눈에 띠지 않는 곳에 감춰져 있다 해도 동일한 정신적 깊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면 알 수 있다는 것으로 정신적 삶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한 크기와 깊이를 가진 인품을 지녀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난이니 감상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풍란(風蘭)
  풍란은 오래전부터 길러졌으며 인간과는 친숙한 식물이다. 풍란(風蘭)이란 이름은 바람이 솔솔 잘 통하고 공중습도가 비교적 높은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외에도 '그윽한 향기가 매혹적으로 풍기는 난초(蘭草)라는 뜻에서 유래된 계란(桂蘭)', '세속을 초월하여 높은 바위 위나 나무의 깨끗한 곳에서 고고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선초(仙草)',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여 불사초(不死草)', 그 외에도 '건란(乾蘭), 헌란(軒蘭)'등 다수의 이름으로 불린다.
  * 부귀란과 한국풍란 *
  부귀란(富貴蘭)이란 풍란의 변이종(變異種)으로 원예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동양란의 일종이다. 일본의 재배역사를 보면 일부에서만 재배하다 에도시대(江戶時代)에 부자나 귀족 등 실력자들에 의해 풍란의 변이종이 수집되어 크게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실내원예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특히 명치시대(明治時代)부터는 풍란의 변이종을 부귀란(富貴蘭)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시키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부귀란이 풍란의 변이품종이라 하더라도 일본 부귀란회라는 단체에 등록함으로써 비로소 부귀란이라고 부르게 된다.
  예(例)를 들면 풍란의 변이종이 새로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풍란의 변이종일뿐 부귀란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 그 수는 어림잡아도 수천 종에 이른다. - 같은 예(藝)가 다음 세대까지 계속되고, 분수(盆數)도 어느 정도 갖추어지고, 다른 품종에는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일본 부귀란회에 등록신청을 한 후에 등록 심사를 받아서 신품종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개체만이 부귀란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2009년판 부귀란 명감(銘鑑)'에 등록이 확정된 품종은 197종이다.
  한국풍란(韓國風蘭)은 우리 스스로 새로운 품종을 발굴하고 명명한 우리의 풍란이다. 아직은 모든 면에서 부족하여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일본을 본보기로 삼아 좋은 점을 모방하고 있지만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음으로 오래지 않아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 믿는다. 일천한 역사가 말하듯이 안타까움은 많지만 그런 와중에도 힘을 모으고 노력한 결실로 벌써 10여종의 우수한 새 품종을 발굴 등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제는 일본의 등록품종은 부귀란으로 부르고, 우리의 등록품종은 한국풍란으로 부르게 됐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우리의 풍란이 당당하게 세계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부귀란(한국풍란)은 무한엽서(無限葉序)의 식물이다. 일 년에 두서너 잎까지 새로운 잎이 나오고 그보다 적은 수의 아래쪽 잎은 낙엽이 진다. 새 뿌리는 대체적으로 중간 아래쪽에서 나온다. - 대나무처럼 한 번의 생육기간이 끝나면 그 부분의 성장은 멈춘다. - 매년 그렇게 반복하며 대체적으로 한해에 한두 잎이 더 많아질 뿐이다. 그러니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 풍성해졌을 뿐이지 변함없이 그대로처럼 보인다.
  부귀란(한국풍란)은 잎과 꽃의 모양과 무늬의 형태와 색상, 붙음매의 형태와 축(줄기)과 뿌리의 색깔 등 다양한 예(藝)를 감상의 대상으로 하며 특히 뿌리(根)의 예를 감상할 수 있는 식물로는 지구상에서 유일하다. 특별한 것은 꽃이 피면서 풍기는 청순한 아름다움과 감향(甘香)으로 이는 백미라 할 수 있다. '그 꽃이 청초하고 가향(佳香)에 넘칠 뿐 아니라 기품과 아취가 비할 곳이 없는 것「김진섭, 인생예찬」'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난이다.
  풍란이 조금은 생소한 이름인지 가끔은 풍란이 무엇이냐고 필자에게 풍란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필자도 아직은 수준이 미달이기 때문에 깊은 내용은 삼가고, 서당 개 삼년에 풍월한다고 그 동안의 경험과 주어들은 얘기를 모아서 궁색한 대답을 하곤 한다. 그리고 말미에는 조금은 흥분한 상태에서 이렇게 말한다.
  \"풍란 기르기를 취미로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낙망(落望)과 기망(企望)과 비애(悲哀)와 열락(悅樂)의 신세계(新世界)를 탐험하는 경험을 가지는 특별한 기회이며 풍란 기르기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이나 곡소비환(哭笑悲歡)으로 점철되는 인생살이와 같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남이 들으면 조금은 과장됐다는 표현이 될지는 몰라도 필자는 풍란을 한다는 것은 인생살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행복이 내적인 관조(觀照)와 교화(敎化)를 통하여 나의 내면에 위치한 불순한 찌꺼기들을 맑게 씻어내고 정신적인 건강과 만족을 이루는 데에서만이 보장된다고 한다면, 관조와 교화는 풍란 기르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예(藝)이고, 최상의 모양(態)이라고 할 수 있다. 가람 이병기는 그것을 간파한 것이다.
  * 부귀란(富貴蘭)의 역사 *
  부귀란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원예용 식물로 풍란의 변이종을 일컫는다. 개념도 그들이 창출하였고 지금과 같은 체계도 그들이 만들었다. 따라서 부귀란의 역사는 일본의 부귀란 역사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부귀란이 사람들에 의해 길러지기 시작한 때는 강호(江戶) 원예문화로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때부터 일반 원예식물군(群)과 다름없이 일부 애호가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며 길러져오다 11대 장군 가제공(家齊公, AD 1773∼1841)대에 와서 크게 발전하여 반석에 올랐다고 하겠다. 가제공은 대단한 부귀란 애호가로 부귀란이 취미원예로서 발전할 수 있는 큰 계기를 만들었다.
  가제공은 강호성(江戶城) 인근에서 산채한 부귀란을 금은 망(網)을 덮어씌워 사람 손을 타지 않게 하였으며, 가까이 가서 구경할 때는 일본도(日本刀)의 감상과 마찬가지로 숨 쉴 때 입김이 걸치지 않도록 입을 회지로 막고 보았을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이를 안 각지의 다이묘(大名, daimyo)들은 자신이 통치하던 지방의 산하(山河)를 뒤져서 풍란의 변이종을 찾아 장군에게 헌상하였다고 한다.
  당대의 실력자가 이러하니 정치, 사회적인 여건은 당연히 바뀌었다. 이것은 부귀란을 애호하는 취미가 상류사회로 넓게 퍼져나가게 하는 시대풍조를 만들게 하였다. 전국각지에서는 부귀란 애호회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났다. 비로써 『부귀란(富貴蘭)』이란 아명(雅名)이 붙여지고 '부귀(富貴)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난(蘭)'의 뜻으로 상류계급만이 즐기는 원예로 정립이 되었었다. 이때가 부귀란의 최초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좌 : 에도시대에 부귀란이 진귀하게 애완이 되고 있었을 때를 재현한 모습
  우 : 홍공작(紅孔雀) - 다른 종류에서 볼 수 없는 우람한 잎 자태를 지니고 있다. 축 부분이 붉게 물들고 라사엽(羅紗葉)이 특징이다. 1991년도에 등록되었다. 특이한 볼륨으로 인기가 높은 품종이다. 대형에 비해서 잎의 두터움은 다소 얇다고 느껴진다. 잎의 폭은 매우 넓으며 골이 깊다. 니축에 니근으로, 붙음매는 일문자에 가까운 파형이다.

  두 번째 전성기는 소화(昭和) 초인 1920년대 말부터 전쟁이 시작되는 소화 18년인 AD 1943년 이전까지라 할 수 있다. 그중에 주목할 사건은 소화 14년인 AD 1939년에 각지의 부귀란 애호회가 하나로 뭉쳐 '대일본 부귀란 연합회'를 결성한 일이다. 이때에 스모(相撲, sumo)의 심부를 본 딴 명감(名鑑)을 처음으로 제정하였다. 오랜 숙원이었던 부귀란에 체계를 세워 혼란을 방지함은 물론이고 더 큰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부귀란의 가격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고가였기 때문에 일부 계층에서만 즐길 수밖에 없는 한계는 여전하였다. 그러니 어쩌다 귀한 품종을 소장하는 행운을 얻게 되면 요정에서 주식(酒食)을 제공하고 피로연을 베풀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 고가의 난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한다. 위 그림의 '홍공작(紅孔雀)'은 애호가들이 갖고 싶어 하는 부귀란 중에 하나이지만, 20여년 전만해도 손바닥 반도 안 되는 크기에 잎이 대여섯 개인 난 1주(株)에 일억 원 이상을 호가(呼價)하던 고가의 부귀란이었다. 요즘에는 증식도 잘 되어 적으나마 입수가 용이한 적합한 가격으로 되었으니 취미애호가들을 위해 다행이라 하겠다.
  세 번째 전성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잿더미위에서 꽃 피었다. 이 시기는 발전된 과학기술의 이용과 변화된 시대상에 걸맞게 일부계층이 아닌 불특정의 많은 다수가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황폐화시켰으며 부귀란계도 마찬가지였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뜻있는 몇몇 작은 모임들이 간간이 조그마한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겨우 숨을 쉬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런 와중에 중흥의 기틀은 의외의 곳에서 만들어졌다. 무기력한 세월을 그렇게 보내다 소화 48년인 AD 1973년에 '일본 부귀란회'와 '근기 부귀란회'가 주최하고 '일본 장생란 연합회'가 공최(共催)하는 대규모의 풍란미술전을 대판(大阪)의 차구산 본점요정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행사는 뜻밖에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부귀란 인구를 크게 늘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활기찬 오늘을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유상(有相)의 원예라고 하던 부귀란이지만 이제는 품종도 다양해지고 개체 수도 많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어느 정도 대중화가 되었다고 하겠다.
  산야에 자생하는 풍란을 채취해서 취미감상의 원예식물로 재배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원복 11년(AD 1698)에 간행된 패왼익헌의 화보가 있다. 그 1절에 오잡조, 복주부지 등 다른 책에서 인용한 것으로 풍란의 생태, 재배법, 약효 등이 소개되어 있다.
  예(例)를 들면 '풍란은 높은 나무에 기생하고 그 뿌리는 땅에 닿지 않는다. 이것을 따서 종려나무의 털로 엮어서 나무 밑이나 선반 밑에 걸어두고 때때로 물을 부어준다. 물속에 담았다 꺼내도 좋다. 그 꽃은 황백색으로 난(蘭)을 닮았다. 난산(難産)의 산모에게 이것을 걸어주면 순산하게 된다.'는 등 관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약용 식물로도 재배한 것 같다.
  안정 2년(AD 1855)의 충란견입경에는 조금 어설픈 디자인이지만 118품종이 게재되어 있는데 그 중 27품종이 일품물(一品物)이라 하니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응 2년(AD 1866)에 발행된 부유란경경에는 101품종이 게재되어 있고 그중 24품종이 일품귀품으로서 별도로 취급되어 있다.
  산채품이 증식되어 하나씩 제자리를 잡아가고 잘 알려진 품종에서 새로운 변이종이 나오기도 하면서 웃기고 울리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풍란은 그 변화가 활탈(滑脫)하여 '풍란은 둔갑을 한다. 둔갑해서 출세한다.'라고까지 말한다. 무지(無地=녹색바탕)에서 무늬가 나오고, 호(縞)에서 복륜(覆輪), 중투(中透)로 변한다. 때로는 복륜에서 역복륜으로 바뀌고 잎 모양도 장단(長短)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변하는 등 이런 생각지도 못한 변용변상(變容變相)이야 말로 풍란 원예만이 가지고 있는 묘미라 할 수 있다.



  좌상 : 비복륜(羆覆輪 )          우상 : 십이단(十二單)
  좌중 : 자신전(紫宸殿)           우중 : 아마미 묵(奄美墨)
  좌하 : 서운(瑞雲)               우하 : 청왕복륜(靑王覆輪)
  풍란의 변이종인 부귀란(富貴蘭) : 부귀란은 백여 점 가까이 소장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풍란을 소장하는 기쁨을 아직까지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는 무언가를 아직도 채우지 못했는지 한쪽으로 부은 심술 통을 더욱 크게 늘릴 뿐으로 쉽사리 물러날 것 같지 않다. 구름이 짖게 드리운 하늘만큼이나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텁텁해졌다. 그렇다고 매일의 하늘이 오늘처럼 우울한 기분을 만들지는 않는다.
  온 세상이 고요히 잠들고 하늘은 보랏빛 색채로 아름답게 물들이는 그런 새벽에는 연분홍 비단결 빛살타고 흘러드는 뒷산의 꽃향기 가득한 청아한 공기가 두 볼을 건드리듯 스치고 지나면 부드러운 그 결을 느끼면서 아침을 상쾌하게 맞는다.
  지금도 눈에 선한 과거의 기억 중에 하나이지만, 예전에 살던 집에서, 아파트보다는 땅 딛고 살던 그 집이 좋다. 그 옛날 큰 집처럼 울대를 간간이 세우고 그 사이를 잡목이나 싸리로 단단하게 두른 손때 묻은 울타리의 운치나 노적가리 듬성듬성 쌓여있는 시골동네의 풍경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정이 많이 든 그 집이 좋고 지금도 '오붓이 살던 집'이라고 부른다.
  그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던 소년이 있었다. 아직은 어린 중학생이었는데 언제나 집 앞에 와서는 끝날 집이 되어 지쳤는지 기껏해야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신문이에요!\" 하고 외치고는 신문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남은 힘을 다하는지 무뎌진 발걸음을 다잡이하여 오던 길로 냅다 뛰어갔다.
  그때쯤에는 어슴푸레한 새벽하늘을 붉게 물들였던 아침 해도 눈부신 빛으로 대지를 환하게 밝혀주어 큰길 쪽으로 되돌아 뛰어가는 소년의 갈 길을 비춰주었다. 그 애의 조그마한 등에서 모락모락 솟아난 김이 몰아쉬는 가쁜 숨에 숨어 있던 입김과 한데 어울려 흩날리듯 공중으로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숙연해진다. 소년이 길고 좁다란 골목어귀를 벗어날 즈음에는 밝은 햇빛이 역광으로 비추어 제색깔이 감춰진 까만 몸체위로 눈부시도록 하얗게 반사된 성긴 김만 날아오른다.
  잠깐의 순간이었다. 밝게 빛나며 영롱하게 반짝이는 거룩한 영혼의 빛줄기를 대하는 엄숙함을 갖게 하였다. 소년의 작은 이마에 송골송골 굵게 맺힌 땀방울이 풍기는 삶의 모습에 더해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가 주는 메시지는 잊을 수 없는 진한 삶의 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가슴 뛰는 행운이었다.



  언젠가 그 애의 생일이었다. 예쁜 털장갑을 선물로 준비하고 그 새벽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 털장갑을 낄 시기가 아니었지만, 어느 땐가 털장갑이 갖고 싶다고 말한 기억을 떠올려 일부러 털실을 사다가 손뜨개질로 예쁘게 만들었다. - 그날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새날의 여명(黎明)에 쫓기면서도 반짝거리며 자신의 모습을 뽐내던 별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하얀 안개와 고운 이슬로 온 세상을 감싸주는 평화로운 새벽을 맞으며 소년을 기다렸다. 쾌청하게 새벽을 연 하늘까지도 소년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소년은 그 새벽에 나타나지 않았다.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것은 그런 때이다. 잠깐 쬐다가 사라진 여우볕의 뒤를 따른 새벽을 깨우는 삶의 소리 위로 수만 가닥의 싱그러운 아침햇살이 마구 쏟아져 내린 후에 해맑은 빛이 세상을 온통 밝게 비쳐 검은 장막에 드리운 어둠의 색깔보다 조금은 느끼한 회색도시의 빛바랜 색이 찬란한 천연색으로 바뀔 때까지 줄기차게, 그러나 지치거나 물리지 않고 그 소년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늦은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앞마당 한쪽을 엷은 도홍색(桃紅色) 물감으로 연붉게 물들이며 온전히 뒤덮고, 옆 건물 목욕탕의 그림자가 크게 기지개를 켜며 높은 굴뚝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뒤엉킨 담쟁이가 몇 년이나 걸려 만들었는지 커다란 헤고 판으로 바뀐 담을 뛰어넘을 때쯤 되서야 소년은 맥없는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같이 살던 할머니의 병간호로 하얗게 밤을 새다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어 배달시간을 놓쳤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모락모락 김이 나던 소년의 조그만 등을 다독거려주며 그 애의 할머니를 뵈러 같이 나섰다.
  영선(嬴羨)한 살림 때문만이 아니다. 남 생각이 꼭 넉넉한 재물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살림살이가 힘들었어도 그런 정도의 잔인정은 흔했다. '춥고, 배고픔의 근심이 없고, 생활이 풍족해야 비로소 사람은 예절을 안다.(衣食足而知禮節)'고 한 관자(管子)의 말이 언제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광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도 인정머리가 앞서야 가능한 것이다. 근래에는 옛날과 비교가 안될 만큼 생활이 풍족해졌음에도 삭막해지는 사회만큼이나 인정이 메말라가는 것을 볼라치면 그저 아쉬운 마음만 들뿐이다.
  언젠가 25층이나 되는 고층아파트의 23층의 한 곳을 분양받고는 그 높은 곳에서 살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하필이면 아파트냐고 안사람에게 푸념을 해보기도 했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부질없는 얘기였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그대로 느껴지고, 자연에 동화되어 함께 어울리며 살 수 있는 단독주택을 아늑하게 꾸미면 사람살기에 더욱 좋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사람도 길짐승이나 마찬가지로 땅에 붙어살아야지, 날짐승처럼 공중에서 살려고 하느냐고 우스개 소리를 해보기도 했었다.
  혼자만이 갖는 느낌일 것이다. 아니면 별천지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의 환상이라고 해도 좋다. 사는 곳이 너무 높은 곳이라 그럴 것이다. 땅과 너무 멀리 떨어져 땅의 기운을 받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태고이래로 누구나 간직하고 있던 대지의 향수가 그리워지는 크기만큼 사람이 사는 인정(人情)을 점점 느낄 수가 없는 것이라면 너무나 서글픈 결론인가?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남을 돕는 일은 대단히 고귀(高貴)한 일이며 우리 자신을 숭고(崇高)하게 만든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는 크든 작든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옛말에 '대단찮은 은혜를 베풀고도 평생토록 감은(感恩)하는 일도 있지만, 천금으로도 한때의 환심조차도 얻지 못하는 수가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똑같이 베풀고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결과가 달라지거나 엉뚱하게 바뀔 수가 있다. 아무리 절망에서 헤매는 사람을 돕기 위한 행위라도 그 방법이 상식에 어긋나거나 진정성이 결여되면 안 되는 것은 여느 삶과 마찬가지다. 그것이 올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간(世間)에서 회자(膾炙)되지도 않는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한 흘러간 사건이 되었지만, 얼마 전에 몇몇 기업의 탈법적인 기업행위가 불거져 국민의 비난여론이 비등해지자 재산의 사회헌납이라는 궁여지책으로 격앙된 사회분위기와 국민감정을 무마하려던 희대의 사건이 있었다.
  그들이 기부하겠다고 내놓은 금액은 천문학적인 어마어마한 액수였지만 그런 방식의 시혜적(施惠的) 기부행위는 오히려 국민에게 조롱만 당하게 되어 본래의 좋은 취지가 무색해졌다. 팔천억 원이나 일조 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거금을 출연(出捐)해도 같은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그 일을 통하여 자신의 치부(恥部)를 감추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다른 탈법적 행위를 하기위한 기만적인 술수로 이용하는 것이라면 이는 크게 지탄을 받을 일이다. 그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니,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잡음이 이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을 베풀 때, 그것은 물질만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베푼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베푸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것은 거짓 마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을 돕는 행위는 바른 마음과 진실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 베푸는 마음의 순수성과 행위의 진정성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게 되므로 그들의 거부감을 줄이는 간과할 수 없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순수한 마음이 앞설 때 아픈 상처를 제대로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진정한 행위가 나설 때 고픈 배를 제때에 배부르게 하는 진짜 빵이 된다. 오래전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만난 두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한분은 언제나 \"말일쎄\"로 운을 떼면서, \"말일세, 봉사란 베푸는 것이 아닐세. 봉사란 가슴(마음)을 나눠 갖는 것일세. 그래야 정말로 배부른 음식이 되고, 진정한 위로도 되는 것이지.\"
  할머니 한분은 아주 오래되었다. 20년 가까이 되니 90년대 초쯤 된다. 계절은 초봄이었는데 봄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할머니는 노력봉사를 하기위해 날을 잡아놨으니 빠질 수 없다고 하면서 그 비를 맞으면서 왔다. 건강이 걱정되어 그 날일을 말렸더니 그 말씀에 오해를 했는지 서운해 하면서 한 말씀이다. 지금도 진한 감동과 충격으로 남아 그 때를 생생하게 한다. \"달동네 산다고 마음까지도 거지인줄 아는가!\" 그 할머니는 찻길에서 30분 이상은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산동네의 제일 꼭대기에서 혼자 살았다.
  가진 것은 많으나 아주 조금 밖에 베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겉모습만을 알아주길 바라며 베푸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다 무엇 때문일까? 모두가 물루(物累)에 갇힌 가난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의가 없는 가짜 선을 행한 것이다. 결국에는 그들의 잘못된 욕망으로 그들은 베풀고도 그것을 불결하게 만든다.
  반면에 가진 것은 조금밖에 없으나 그가 가진 전부를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굳게 믿으며 삶의 자비를 믿는 사람들로서 그들의 주머니는 결코 비지 않는다. 그들이 언제나 갖고 있는 그 기쁨은 바로 그들이 받은 값진 보상(報償)이 아니겠는가.
  나쁜 것은 그늘에 숨어 있기를 싫어하지만 반대로 좋은 것은 언제나 겉에 드러나기를 싫어한다. 남을 의심하거나 속이는 것은 자신이 먼저 속는 것이고, 남을 믿는 것은 남들이 모두 진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홀로 진실하기 때문이다.



  창밖을 보니 난간에는 흐르다 남은 빗물이 아직도 그대로이다. 남아 있는 빗물에 가해진 중력은 그것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한 방울씩 방울을 만들어 준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제법 큰 옥구슬이 되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깜빡이듯 반짝거리다 제힘에 겨워 아래로 떨어져 그 옛날 떠나 온 제 고향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그들이 모두 떠난 후에 남는 것은 베란다 창문에 새겨진 흐르다 말라버린 도랑물처럼 널찍하게 그려진 선명한 빗물자국이다. 비올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일이지만 위쪽 집에 내린 빗물이 내린 대로 흐르지 않고 괴이하게도 거실 창문 한가운데 부분으로 모이면서 흐르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유한(有限)2)을 가진 것은 어느 것이나 그렇게라도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빗물에 무슨 유한이냐고 따진다면 그만이지만.

* 2) 태초에 창조(創造)가 있었다. 무(無)에서 형(形)을 받아들고, 사유(四維)의 음양(陰陽)을 합하고, 우주를 밧줄로 이어 해와 달과 별을 빛나게 하였다. 사방팔방은 끝없이 퍼지고, 높이는 가늠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깊이 또한 헤아릴 수 없게 하였다. 없음(無)에서 있음(有)으로 해서 천지와 만물에는 영겁(永劫) 속에 신진화멸(薪盡火滅)까지 흔적 없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해도 반드시 개개에게 시종(始終)이 주어진 실체(實體)가 주어졌으며, 이는 고유한 형(形)과 질(質)을 갖고 있는 유한(有限)의 섭리가 굴레로 씌워졌음을 의미한다.
  그 옛날 전한(前漢)의 유안(劉安)도 이에 대해 《회남자(淮南子)》「券14 전언훈(詮言訓)」편을 통하여 말하기를 '모든 것은 하나에서 생겨나는 데, 그 만들어진 모습은 각각 달라서 새도 되고, 물고기도 되고, 짐승도 만들어 지고 이를 일러 여러 분류의 물건이라 한다. 온 사방은 종류별로 모이고, 물건은 무리대로 분류되니, 성품과 목숨이 각기 다르다. 모든 것은 형태가 있어 격이 생기며, 서로 통하지 않으며, 분류대로 만물을 이루어 그 대종(大宗)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것을 생(生)이라 하고 죽어가는 것을 궁(窮)이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물(物件)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물건이 아닌 것이 없으며 물건이며 물건인 것이다. 물건이란 물건은 즉 만물이라는 것은 멸함이 있다.'고 유한으로 결론을 지었다.
  창조는 오직 하나 밖에 없었으나 기록은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그것은 사유(思惟)의 방식이나 준거(準據)가 서로 달라 방법도 다르게 창출(創出)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세상의 모순처럼 자기합리화를 위하여 그렇게 행(行)한 것으로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하나의 혼돈에서 시작하는 대강(大綱)은 그러하고 나머지 구차한 것은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떠한 전설(傳說)이나 교리(敎理)라 해도, 그것이 어떤 형태와 수단이었던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 이후에는 유한(有限)으로만 사물(事物)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창문은 고친다고 고쳤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그랬다. 새로 입주한 집이니 처음부터 잘못된 공사임이 분명한데도 제대로 고쳐지지가 않았다. 두어 번인가 열심히 와서 고쳤지만 별무신통(別無神通)이라. 지금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비가 그치면 전쟁의 상흔(傷痕)처럼 도랑물이 흐르다 말랐던 자국같이 창문에다 일정한 흔적을 남겨 비 그친 후에는 부랴부랴 물청소를 해야 하는 수고가 남지만 그대로가 좋다.
  아파트라는 별세상 같은 곳을 생각해 보라. 가끔가다 본의 아니게 아래윗집 간에 공통의 관심사로 한마디씩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니 그보다 좋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일로 여러 번 만나다보니 이제는 아래위가 서로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복중에도 큰 복이 아니겠나.
  언젠가 딱 한번 뒤끝이 깨끗한 적이 있었다. 비온 후의 공통의 관심사가 사라지자 그것도 신기하여 아래위집이 만났다. 깨끗한 비가 왔었던지 아니면 아파트 외벽을 청소한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했기 때문이었던지 둘 중의 하나이거나 두 가지가 겹쳤거나 해서 생긴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날 저녁에 두 집식구가 모여서 축하 파티를 했다. 비록 꿈같은 한 번의 해프닝이었지만 그걸 보면 우리 주변이 얼마든지 깨끗해질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환경에 찌든 삶을 사는 우리에게는 좋은 경험이고 상서(祥瑞)로운 조짐이다.



  초점을 멀리 잡아 정문 앞쪽을 바라보면 수령이 꽤나 됨직한 큰 은행나무 한그루가 밤비에 홍건이 젖은 채로 나 홀로 장승처럼 어색하게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나이에 걸맞게 초록의 잎들을 무성하게 달고서는 고고(孤高)한 거인으로 주위를 감싸주며 모든 나무의 수호수(守護樹)인양 자리하고 있었다. 그랬었다. 한때는 빛접게 서서 청록의 활기찬 생명력을 구가하며 주위를 호령하였었다.
  가을이 한창 제멋을 내고 있을 때였다. 그 나무는 큰 덩치에 걸맞게 은행을 주렁주렁 매달아 풍성한 가을의 결실을 소담스럽게 보였다. 한번은 산책을 하다 그 근처를 지나는데 낯모르는 아줌마 몇이서 은행을 줍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는 것은 뭐라 하겠냐만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강제로 떨어지게 한다.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한마디 했다. \"아주머니! 비록 한낱 나무에 불과하지만, 은행나무가 열매를 제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은 길짐승이 먹으라는 것이고, 그대로 매달아 두는 것은 날짐승이 먹으라고 남겨두는 것입니다. 나무조차 그토록 사려가 깊은데 우리가 그보다 못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붉으락푸르락하더니 그대로 내 뺐다.
  우리는 언제나 모자람을 느끼고, 가진 것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항상 고해(苦海)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을 산다. 번뇌와 망념으로 몸과 마음이 괴롭힘을 당하고, 탁(濁)하고 욕(辱)됨을 만나게 되면 끔찍하게도 삶과 죽음사이를 흘러 다니는 경우까지 맞닥뜨린다. 이것은 모두다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이니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에 불과한가.
  하늘이 짊어지어준 짐을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것은 그 은행나무도 마찬가지다. 계절이 바뀌자 자신의 내일을 알기라도 하듯이 가을 색을 만들며 하나 둘 자기 살점을 떼어내다 끝에는 애면글면 붙잡고 있던 마지막 잎마저 놓아버리고 이제는 볼품없는 앙상한 가지만을 생명 없는 표본인양 내보이는 영락(零落)한 쓸쓸함만 남았다.
  분수 옆 정자를 뒤덮은 담쟁이덩굴의 좌절하는 허망함에도 똑같이 생명줄의 단절을 예약한 슬픔만이 더하고, 한 귀퉁이에 덩그렇게 마주 놓여있는 나무의자의 궁색해진 초라함에도, 그 앞에 나란히 놓인 등받이가 빛바랜 나 홀로 벤치의 지친 기다림에도 한세월을 같이 지낸 동정(同情)과 사랑이 슬픔으로 똑같이 묻어난다.
  정(情)이 있으니 연(緣)이 생겼다. 그 정은 아직도 그대로요 그 연도 아직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모두가 끊어지려 하는가? 정이 다하면 인연도 끊어진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그 정을 떼어놓는가? 은행나무 밑을 지날 때마다 그리움만 세세하게 묻어와 가슴 한 쪽이 애달파지고 이슬진다.



  가을비에 젖은 창밖은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다. 겨울을 재촉하며 내리는 가을비는 몰이꾼처럼 낙엽 진 노란은행잎을 도로 끝 하수구로 쓸어 모았다. 언제 떨어졌는지 시커멓게 변색된 여러 잎들 중에서 유별나게 샛노란 은행잎 하나가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멀어지는 가을의 끝자락을 끌어 잡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좌절만이 허공을 휘저을 뿐이다.
  창밖을 두드리는 계절의 끝자락 비는 냉혹한 현실을 말해주듯 날랜 칼끝의 예리함으로 샛노란 은행잎의 어리석은 생각을 송곳처럼 찌른다. 돌아가는 계절의 길목에 서서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섬뜩한 절망감이 온몸을 덮으려고 한다.
  계절의 순환은 태초(太初)이래의 섭리인줄 알면서도 변화하는 계절 중에 가을의 끝자락에 설 때마다 마음이 감사나워지는 것은 장승이 되 버린 은행나무의 지난 여름날의 영화(榮華)처럼 그 때의 정취(情趣)가 그립기도 하지만 사라진 생(生)의 진실에 대한 연민(憐愍)의 정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엊그제 마지막으로 불태운 만추(晩秋)의 감흥은 아직도 가슴속에서 수그러들지 않았고, 그때의 흥분도 그대로인 채 고이 간직하고 있으나, 매섭게 불어오는 칼바람은 옷섶을 거침없이 파고들며 무정하게도 일말의 온정(溫情)도 허락지 않는다.
  어제의 흥취(興趣)는 간곳이 없다. 이제는 색 바랜 초겨울의 태양이 겨운 걸음을 옮기며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에 내려앉을 뿐이다.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뻥 뚫려 허전해진 내 마음의 공동(空洞)은 그 무엇이 채워지지 않은 채 가슴 한 켠을 짓누른다.
  애련(哀憐)에 젖은 이 마음은 시인(박우복)만이 「흐르는 계절」의 아쉬움을 시(詩)로 말하고, 노래(歌)로 들려줄 뿐이다. 그나마 변화의 당위성을 노래해 주는 이가 있어 비어버린 마음 한 구석이나마 채우는 행운을 얻었다.

  \"담쟁이 이파리를 데운 햇살이/가느다란 줄기를 타고 내려와/가을의 허리를 밟고 방황을 하면/강물은 가슴을 적시며 흘러가고/바람은 눈물을 적시며 흘러갈 때/그저 침묵만 고집하던 세월도/흐름만은 멈추지 못한다.\"



  비올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손가락질하지만, 기실은 그쪽 하늘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치수(治水)를 잘하여 물길을 바로 잡는 것은 어느 일보다 중요한 국사(國事)이며, 극심한 피해를 보는 백성을 위하여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농경(農耕)을 위주로 하던 시대에는 농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홍수와 가뭄이 가장 큰 재앙(災殃)이었다.
  지금은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이해하지만 옛날에는 그것이 분노(忿怒)한 하늘의 뜻이라고까지 여겼었다. 그래도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가뭄은 아무리 심해도 다소나마 곡식을 거둘 수가 있지만, 큰 수해는 농작물뿐만 아니라 농토까지 유실되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주는 피해는 내일이 없을 만큼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도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이제는 수재(水災)가 매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홍수가 났다하면 천재지변으로 돌리고, 남 탓으로 여긴다. '범이나 외뿔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귀갑(龜甲)이나 옥(玉)이 궤 안에서 깨졌다면, 이는 누구의 잘못이냐?(虎兕出於柙, 龜玉毁於櫝中, 是誰之過與.)' 범이냐? 옥이냐? 하지만 그런 식의 변명도 그때뿐으로 소귀에 경 읽기이다.
  먼 옛날 세상이 아직도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덜 깨인 시절에도 현명한 지도자는 황하나 나일강의 역사가 말하듯이 치수를 첫 번째로 해결하였다. 실로 형언할 수조차 없었던 그 험난한 치수사업을 효과적으로 완수하여 후대를 위한 귀감을 만들지 않았는가. 고대중국의 대우(大禹)가 황하의 치수(治水)를 끝내니 물길이 제대로 잡혀 사람들이 안주할 수 있었다고 오래전의 기록이 전한다.3) 이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民惟邦本)'이며 백성이 제일로 귀하다는 민위귀(民爲貴)사상을 근저(根底)에 가짐으로서 가능했던 것이다.

* 3) 《상서(尙書)》「우공(禹貢)」편에 '우(禹)가 땅을 나누니, 산을 따라 나무를 베어내고, 높은 산과 큰 내를 가지고 경계를 정했다(禹敷土, 隨山刊木, 奠高山大川).' 이리하여 천하가 아홉 개의 큰 땅으로 나누어졌으며, 기주(冀州), 연주(兗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양주(梁州), 옹주(雍州)가 그 이름이라고 했다. '아홉 주가 다 같이 질서 잡히고(九州攸同), 사방의 바다 구석까지도 사람이 살게 되었다(四隩旣宅). 모든 산의 나무를 베어 길을 내고(九山刊旅), 모든 강물은 근원부터 잘 흐르도록 터놓고(九川滌源), 모든 호수 물은 방죽으로 잘 막아 놓았다(九澤旣陂).'는 기록이 있다. 치수(治水)가 끝나니 황하가 물길을 제대로 잡았음을 말하고 있다.

  비가 조금 더 내렸다고 상가지하에까지 빗물이 들어차고 집안에까지 빗물이 넘쳤다면 이것이야말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니겠는가. 그 물을 퍼내면서 한 바가지마다 한 번씩 욕이나 실컷 퍼부어라. 그리고 그것으로 견뎌야 한다. 억울하지만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렇게 불합리한 것을 일상으로 겪을 수도 있고 그것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벼락 치는 하늘도 속이며 사는 우리가 만든 사회의 구조가 선택한 왜곡된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본까지 틀려질 수는 없다. 수증기가 공중으로 올라 구름이 되고 눈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현상이고, 물이 높은 위치에서 낮은 위치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이것이 모두 정해진 인과율(因果律)과 결정론(決定論) 등에 따라 일어나는 천지의 이법(理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마다 하늘의 뜻에 반하는 역행(逆行)을 저질러 재앙을 불러놓고는 내 탓이라는 말은 없고, 오로지 원인을 하늘에게 돌리고 하늘만을 원망한다.
  우리의 탐욕은 그렇게 어리석기 짝이 없다. 구불구불 제멋에 겨워 흐르는 하천의 치수를 예로 보아도 알 수 있다. 물 흐름을 제대로 잡는다고 유로(流路)를 곧게 잡고 콘크리트로 말끔하게 제방을 쌓는다. 하천을 미끄러운 유리대롱처럼 만들어 놓고는 할 일을 다 했다고 만족해한다. 그러나 하늘이 장구한 세월동안 이루어놓은 것을 하루아침에 입맛대로 뜯어 고치는 잘못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른다. '하늘에 순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하늘을 거슬리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고 후세를 사는 사람들을 경계한 말씀은 여기에도 해당이 된다. 어찌 이를 잊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생은 고해(苦海)이니 그 행로에 고통이 따르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어린 중학생이 등에서 모락모락 김이 날만큼 뛰어다녀야 하루는 시작을 알리고, 늙으신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고달픔도 소년에게 주어진 긴 여정중의 하나이다.
  세상은 혼자서 살 수가 없으니 미우나 고우나 이웃끼리라도 서로 비비며 살아야한다. 비올 때마다 흘러내리는 빗물을 재료로 삼아 아래윗집에서 인재다 천재다 악을 쓰며 삿대질도 해야 그나마 아파트에서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인간세상처럼 보인다. 각축장(角逐場)으로 변한 치열한 경쟁사회가 짐 지어준 숙제를 푸는 것도 된다.
  사람들을 기만하고 희롱하다 궁지에 몰린 인사들의 가당찮은 언행에는 도리가 없다. 파렴치한 행위가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그 잘난 얼굴을 손으로 가리려고 안간힘을 쓸 때는 더욱 가관이다. 그렇게 하면 인간 세상에서는 감춰질 줄 모르겠으나 하늘은 어찌 속일 것인지를 묻고 싶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인정도 많았다. 낮은 곳에서는 그렇게 겸손했음에도 땅(根本)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본성(本性)에서도 멀어지는 어리석음은 무엇이 원인일까?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인사가 너무 많아 안타깝기도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멋 적어 도망간 아줌마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진정 어리석음이 어리석음이 아니요, 진정 부끄러움이 부끄러움이 아니다. 어리석은 줄 모름이 진정 어리석음이요, 부끄러운 줄 모름이 진정 부끄러움이다.'고 했는데 '이치를 따르는 것은 집안을 보존하는 근본이다.(循理保家之本)'는 내말 뜻을 곡해하지 않고 알아듣기는 들었을까?
  만나면 헤어지는 슬픔이 있는 것이 인생이고, 제살을 도려내는 은행나무처럼 그런 아픔이 와도 피해갈 수 없음을 알아야한다. 인생이란 유한의 삶이니 계절의 변화나 순환처럼 언제나 끝자락을 만드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니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면서 그 끝자락을 붙잡고 슬픈 이별노래를 연습하여야한다.
  삶의 고빗사위가 어디 한두 번으로 끝이겠는가. 제 몸 하나 간신히 지탱하기에도 힘든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근근이 버티고 살아야하는 강인함을 배워야한다.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만난다고해도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높이가 23층이나 되는 곳에서 산다고 해서 아래보다는 천국과 조금쯤 더 가깝다고 우기지만 그렇다고 천국에 더 빨리 도착하는 급행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창밖을 내다보면 모두가 발아래에 놓여있어 구름위에 떠있는 신선이라고 우겨도, 남보다 배운 게 조금은 넉넉하다거나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밝다거나 해서 미립이 났다고, 죽음에 대해 깊은 사유(思惟)를 필요로 하는 것이나 내일을 꿈꾸는 미망(彌望)도 언제나 절실한 것은 너나없이 모두가 마찬가지다.
  지금은 계절을 잊고 바람과 햇볕이 어우르는 사시사철 초록의 싱싱함만이 존재하는 다시 찾은 '잃어버린 낙원'과 같은 곳에 살고 있고, 하늘 꽃의 고고한 자태와 향(香)과 색(色)이 한없이 넘쳐나는 속세에 감춰진 '신(神)들의 영지(領地)'에서 쉬고 있으며, 누군가 시샘의 덧을 놓아도 빛과 색과 향기의 향연은 모든 것을 그대로 빨아드려 황홀의 바다로 빠지게 하는, 그래서 로미오가 줄리엣을 향한 더없는 사랑을 만들기 위해 택한 '사랑의 지혜를 주는 베란다'에 앉아있다 한들, 그것은 모두다 한낱 꿈꾸기 놀이에 불과하다.
  자연은 만물의 시작과 과정 뿐 아니라 그 최후까지도 섭리함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사과나무에 사과열매가 열린다고 놀란다거나, 의사가 환자가 열이 있다고 놀란다거나, 키잡이가 역풍(逆風)을 보고 놀란다면 말할 수 없이 부끄러운 것처럼, 그곳도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그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도 풍란이 사는 동네인 '비밀의 정원'같은 발코니에 넘쳐나는 생명의 소리는 가을비에 젖은 창밖의 강요된 세상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또 다른 생각에 빠지게 한다. 상념(想念)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想念由心故有)


「Hope has a place」

(Enya)

댓글 1개

포아풀 2008. 11. 09. 오후 08:55

\"하늘에는 사시(四時)의 운행이 있으니 때에 맞추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가을에 내리는 가을비를 대하면 무엇인가 남은 것이 있어 가슴 한쪽을 짓누르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이렇게 마음까지 심히 감사나워지게 하는 것은 계절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가 주는 의미로 인하여 감정의 톤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섭리마저 비켜가는 그 의미는 무엇일까?\" 가을 비 속의 상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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