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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어버이 기리는 추모문집 '잔잔한 감동'
어버이 기리는 추모문집 '잔잔한 감동'
십남매 함께 쓴 <아버지의 가장 긴 나들이>
며칠 전 내 손에 들어온 책 한 권, 200쪽이 조금 넘는 A5변형판(신국판·150×225mm)의 작은 책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장 긴 나들이>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은 날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여느 책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 왼쪽, <아버지의 가장 긴 나들이> (도서출판 계간문예ㆍ비매품)
오른쪽, 펼친 책장 속의 화보 ‘아름다워라, 아버님 어머님의 발자취’
'고(故) 정영준 장로·하금악 권사 추모문집'이라는 어깨제목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아버지의 가장 긴 나들이>는 부모님을 여읜 아들 딸 십남매가 '어머니 떠나신지 10년, 아버지 1주기'를 맞아 어버이를 기리는 글들을 써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부모님 추모문집이 어디 이 하나뿐이랴 만, 한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열리는 이즈막에 부모님을 추모하는 글을 읽는 일은 예사롭지 않다.
책에는 여섯 아들과 네 딸이 빠지지 않고 다 한 편씩 올린 글이 실려 있고, 이들 아들딸의 짝이 된 사위와 며느리들의 빙부님과 장모님,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 글도 담겨있다.
이 책 속 아버지는 90평생을 올곧은 신앙인으로 양보와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산 정영준 장로이며, 어머니 역시 75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애오라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하금악 권사다.
책장을 펼치면 '아름다워라, 아버님 어머님의 발자취'라는 화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스물세 살의 청년과 열일곱 살의 규수가 혼례를 치렀을 때의 빛바랜 사진부터 아들 딸 낳아 장성시키며 손자 손녀들을 보기까지의 편린들이 깃들어 있는 40여 편의 사진을 보게 된다. 화보에 이어 전 한국장로신학대학교 이사장이며 진주성동교회 원로목사인 장선옥 목사의 머리글과 고 정영준 장로의 설교문 두 편(승리적 생활의 비결·아버지께 돌아오라)도 실려 있다.
1·2·3부로 갈래를 나눈 본문의 1부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십남매의 사랑이야기', 2부는 아들딸들의 짝들이 쓴 '사위, 며느리의 합창'이다. 그리고 부록인 3부는 이 집안의 맏아들이 쓴 진양 정씨의 가문사 '우리집 약사-남해 사촌에 살으리랏다'와 편집후기로 꾸며져 있다.
십남매의 어버이 고 정영준 장로와 하금악 권사는 당신들의 삶을 아름답고 보람되게 가꾸었을 뿐만 아니라 여섯 아들 네 딸을 하나같이 다 훌륭하게 키워 저마다의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몫을 충실히 수행하는 인재로 성장시킨 것으로도 이웃의 귀감이 되는 어른들이다.
두 양주분의 첫 소생인 맏딸 신애씨를 비롯해 둘째딸 성애씨, 셋째 딸 천애씨, 막내딸 민애씨 등 네 딸이 모두 자신들이 속해있는 교회의 권사로 활약하는 등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이 댁의 맏아들은 전 동주대학 교수이자 문학박사인 정길웅 박사로, 41년 6개월간 교직생활을 했으며 황조근정훈장을 수훈한 학자이다. 진주천성교회의 담임목사인 정길철 목사가 둘째아들이고. 경남 양산시 웅상출장소 정진철 소장이 셋째아들이다.
온누리교회 장로이며 월간 <좋은생각> 정용철 발행인이 넷째, 애드모아 대표 정민철씨가 다섯째, 진주법원에 근무하는 정병철씨가 막내아들이다.
\"아버지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분하지도 않으신지….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 사업하시면서 어려울 때도 내색 한 번 아니하시고 어머님과 의논하시고 찬송하시고 기도하시던 모습…. 우리들은 좋은 부모님 밑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이런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6쪽 정신애(맏딸)의 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중에서
\"우리 어머니는 처녀시절 누구나 탐내는 근동에서 가장 뛰어난 규수였습니다. 인물 좋고, 마음씨 좋고, 솜씨 좋아 못하는 것이 없는 얌전한 처녀를 왜 갯가로 시집보내느냐고 흉을 봤지만, 어머니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습니다.\" -57쪽 정신애(맏딸)의 글 '어머니 사랑합니다' 중에서
두 분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는 맏딸의 글에는 부모님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 화보 속의 빛바랜 사진 중에서… △왼쪽은 스물세 살의 청년과 열일곱 살의 규수가 혼례를 치르고 난 뒤의 사진. 신랑 옆 두루마기 차림의 어른은 신랑의 부친 정태수 옹.
△오른쪽 위는 2005년 추석에 양평 둘째 딸 집에서 함께한 온 가족. △아래는 어느 해 여름
지리산 휴양지에서 피서를 즐겼던 네 딸과 네 사위.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자 아버지는 세 끼 식사, 빨래까지 어머니 몫의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다가 너무 쓸쓸해하고 병원도 멀고 해서 진주로 이거했다. … 어머니가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는 날이 다가왔다. 1996년 4월 25일 아침에 진주 칠암동 현대 APT 큰딸 집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얼마나 이 세상살이가, 자식 낳아 기르기가 고생스러웠던지 편안히 눈감은 어머니의 웃음 띤 모습은 평화, 자비, 은혜 충만, 성스러움까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먼저 보낸 아버지는 9년 7개월간을 홀로 남아 건강하게 지내다 2005년 12월 4일 밤에 운명했다.\" -81쪽 정길웅(맏아들)의 글 '부모님 노후생활' 중에서
'혼자 남게 된 아버지는 그 전보다 더 자주 자식들 집을 들러 간절한 기도를 해주시는 한편 진주시내 노인복지센터에서 사귄 노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가끔씩 횟집의 합승버스를 불러 한턱 쓰시는 재미로 소일하셨다'고 맏아들은 만년의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다.
\"층층시하에서 어머니는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러나 토요일부터 주일을 준비하시던 모습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정갈한 한복으로 단장하고 바닷가 산길을 따라 타 동네를 지나 예배당에 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87쪽 정성애(둘째딸)의 글 중에서
\"나는 부모님이 다투시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철이 좀 덜고 나서 다른 집들에 그 흔한 부부싸움을 보고 희한하게 생각하였다. 부부의 평화관계가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비로소 배우게 된 지금 다시 한 번 두 분 어른께 감사드린다.\" -99쪽 정길철(둘째아들)의 글 '회고와 감사와 기대' 중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내가 돌아가면 너희들은 모이기 힘들 것'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의 유언은 당신이 살아 있을 때처럼 1년에 몇 번씩이라도 모이라는 것이었다.\" -109쪽 정진철(셋째아들)의 글 '아버지의 유언' 중에서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 (중략) / 어머니 몸은 절대 아프지 않은 어떤 특별한 몸인 줄 알았습니다. / (중략) /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 (중략) / 아버지는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 아버지 안주머니에는 늘 돈이 넉넉히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 (중략) /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 아버지는 우리가 객지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126~127쪽 정용철(넷째아들)의 글 '오해' 중에서
월간 <좋은생각>의 발행인이기도 한 이 댁의 넷째아들은 안 그래도 맛깔스럽고 감칠맛 나는 글로 많은 고정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전문작가이지만, 이 추모문집 속의 '오해'라는 시는 특히 가슴을 '짠'하게 한다.
다섯째아들(정민철)은 '마지막 나들이'라는 글에서 \"내 아버지는 밝고 낙천적으로 나를 이끄셨고, 내 어머니는 따뜻한 감성으로 품어주신 분이셨다\"고 회고하고 있고, 막내아들(정병철)은 이 추모문집의 '표제'인 '아버지의 가장 긴 나들이'라는 글을 통해 다시 돌아올 길 없는 먼 나들이를 하신 어버이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
아플수록 운동을 해야 된다면서 / 새벽 5시를 지나자, 밖에 나가서 걷자하신다. / 아버지가 복도 손잡이를 붙잡고 걸으시는 거리는 / 기껏해야 병실 저쪽, 복도 끝에 있는 의자에 가서 / 잠시 앉았다 오는 것이었지만 / 지금의 아버지에게는 그 길도 짐이 되시는 것 같았다. // 우리 10남매를 키울 때에는 이 보다 더 힘든 길도 많았을 텐데… / 그 때는 아무 내색도 없으시더니 / 이제는 세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 아슴아슴 멀어져간 먼 날을 회상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신다. -135쪽 정병철의 글 중에서
이렇듯 아들·딸들이 한 목소리로 부모님을 칭송하며 기리고 있는 가운데 사위와 며느리들이 올려놓은 글 또한 애달프고 서러운 정념이 딸 아들 못잖게 절절하다.
맏사위(윤효선·진주제일교회 장로)는 \"빙부님과 장모님께서 10남매를 자손으로 남기신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이는 \"아들이나 딸 중 하나만을 두고 싶어 하는 21세기의 부모들과 비교해서 말하자면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수고와 고통과 희생에 개의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하셨던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독자들에게 묻고 있고(160쪽), 맏며느리(김선자·전 남해여중 교사)는 \"아버님, 어머님! 다시 만날 그때까지 하늘나라 낙원에서 즐겁고 편안히 계시옵기를 바랍니다\"는 소망(167쪽)을 적고 있다.
둘째사위(백시종·소설가)는 병역문제로 장인어른을 난감하게 해 드렸던 추억담을, 넷째며느리(박영희)는 \"곁에 계실 때 잘해 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시어머님의 사랑이 가득한 인자한 모습\"(175쪽)을 그리워하고 있다.
막내사위(이수호) 역시 \"계실 때 더 잘할 걸\"이라는 회한과 함께 \"사랑하는 아내의 아버지와 십여 년 함께 지내면서부터 그분이 본향으로 돌아가시는 그때까지, 또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이 확실히 달라지지 않았느냐\"며 자신에게 묻고 있다.(176쪽)
<도서출판 계간문예>에서 펴낸 이 추모문집은 비매품이라 서점에 깔리지도 않았다니 이를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은 한갓 아쉬움이다. 그러기에 작은 이 추모집 한 권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을 나는 더없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 1개
잔잔한 감동이네요. 자녀가 고인이 되신 어버이를 기리는 문집은 저도 보아왔습니다. 제 아는 분도 그렇게 글을 내셨지요. 그 문집을 보며 부러웠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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