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 나비는 꽃에만 앉는 것이 아니다 」

유민자 2010. 11. 05. 오전 05:04
5054

 

「 나비는 꽃에만 앉는 것이 아니다 」

                                                                                                                         -  유 민 자 -

                                            





   언제 여우비가 내렸던가싶다.

   들쭉날쭉 내렸던 비가 햇살에게 자리를 완전히 양보한다. 빗줄기가 멈칫거리며 쉬어가는 사이 햇살이 해밀 속에서 웃고 있고, 춤추는 구름이 누가 더 높이 오르나 내기 한 판을 벌인다. 푸른 빛사이로 커다란 별빛 하나를 그어대며 달려드는 햇살이 눈부시도록 하얗다.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선 돌배나무 끝, 매미의 울림이 너무도 커서 다른 소리는 그저 그 소리에 묻히는 듯 하다.

   장맛비 뒤에 온 한 여름 노래. 우리네 생의 순환이 그 매미의 존재 뒤에 숨어 더불어 공명을 울리며  여름 그늘 속에 얌전히 앉아 있다. 순간, 하얀 나비는 어디에서 왔는지 나뭇잎 사이로 재롱을 떨며 하늘거린다.  잠시 후. 햇살이 좋아 집밖으로 젖은 우산을 말리려 펴놓았더니, 청초한 나비가 우산대 꼭지에 앉아 한참을 쉰다.

   올망졸망 작은 꽃무늬 우산은 '나비의 뜰'인가 보다.  여유를 즐기는 줄 알았던 검은 점이 박힌 그 나비는 한 쪽 날개가 찢긴 듯 오들거리는 날개의 떨림이 느껴진다. 


   ‘ 나비는 어디에 숨었다가 날아와 어디에서 쉬다가 이리로 들어선 것일까?’

                                                                                      
    소낙비 속에서 생채기가 난 것일까?  
   내가 엄마나비인양 햇살에 젖은 날개라도 말려가기를 기다   리며, 그 어떤 작은 소리에도 놀라 날아갈까 봐  내 숨소리마저 죽인다. 지친나비를 내려다보며 쉼이라는 언어를 떠올린다.  
   쉼이라는 사람그늘에 아스라이 떠오르는 엄지언어는 어머니다. 엄마의 그늘 그리고 유년의 생각이다. 갑자기 나를 어루만지던 엄마의 손길이 그립다. 꿈결에서라도 어머니를 보게 되던 행복한 날을 떠올린다.


   “아침 먹어, 밥 먹고 가!”


   어머니가 들려주는 찰기어린 그 목소리가 또 그립다. 어머니가 내미는 온도와 감촉으로 그 밥 한 덩이가 먹고 싶다. 행여나 그 비싼 제주 옥돔 한 상자가 추석선물로 들어온 날. 어머니의 눈초리에는 귀한 손이 방문하면 주려하기보다는, 옥돔 한 마리는 튀기고 싱싱한 몇 놈을 또 골라 옥돔을 듬뿍 넣어 끓였던 그 미역국 한 사발의 사랑. 무조건 사랑이다. 

   정말 늦어서 바쁘다고 말하며 휑하게 나섰던 유년의 시간 열차마다 자식사랑이 실려 있다. 생일날 아침. 미역국을 끓이다 말고 한 수저라고 먹이려 내밀던 엄마냄새가 승얼승얼 피어오른다. 왠지, 그 구수함은 세상의 헛헛함을 가시게 할 것 같다.


  오래된 옛날 중학교 시절. 난 엄마를 향해 불효의 목소리를 크게 한 방 날린 적이 있다. 온 가족이 양평으로 물놀이를 갔었는가 싶다. 아마도 외갓집 사촌을 포함한 남녀노소가 먹을거리 잔칫상이 너무도 흥겨워 한 마음으로 우르르 웃을 때, 갑자기 나는 한 켣에서 목을 놓아가며 울부짖었다. 왠지, 나만이 아버지가 없는 현실이 너무 싫어서 있는 힘껏 고함쳤다. 

   \" 나도 아버지 데려와!  왜, 나만이 아. 버. 지. 없는거야! \"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리셨을까. 이미, 내나이 세 살때 돌아가신 아버지.  오로지 나만이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막둥이 딸. 뜬 구름 같은 항변에  내 입을 손으로 막다가 ,  '너, 왜 그러느냐?' 는 한 마디 호통 없이 그저 소리 없이 같이 우신 울 엄마. 

그냥 그대로 시간이 흐른 후에, 내 손을 슬며시 당기셨다. 엄마의 손.  생손을 앓아서 패인 손톱 때문에 유달리 두리뭉실한 엄지손가락을 쭉 펴시며 내 손위로 포개셨다. 


   \"밥 묵자…….맛있는 것 많아…….\"

  중학생이던 나라는 존재는 홀로 오형제 대학공부까지 모두 시키신 어머니에게 너무나 큰 실수를 저지른 철부지 막둥이였다.

세상살이 고개 숙이는 법을 알아가는 지금에서야,   어머니의 빈방을 추억하며 내 나이가 무르익어간다.  어머니 가슴으로 향했던 쓰디쓴 언어의 흔적들, 지우고 싶다. 그저 숨고 싶다. 

  세상의 어머니는 왜 그다지도 뜨끈한 한 끼 밥을 더 먹이려고 안달을 피울까. 세상을 덥혀줄 온기는 어머니가 주시는 둥근 밥그릇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밥알을 닮아 있다.  엄마, 무심결에 두 입술을 맞닿아본다. 지금. 왠지, 그 분의 눈빛은 푸른 물빛으로  아롱거린다.


   비 개인 날, 나비의 물기를 털어주려던 내가 오래된 습관처럼 유년의 그늘이 그립다. 늘 이렇게 나 홀로 가슴가득 그리움이라는 습기 머금고 서성댄다.  유리창에 비스듬히 부딪히던 빗방울들이 빙그레 돌다 둥글게 모여들다가 그저 아래로 흘러내리는 소낙비행렬, 그 비스듬한 사선은  세상 속에서 바로 서지 못하는 못난 나처럼 보이고 빙그레 웃는 커다란 방울은 한 고봉의 밥숟가락에 모인 밥알을 닮아 있다. 김 오르는 밥한 톨의 엄마온기가 또 다시 그립다.

  슬며시, 내게로 다가선 흰나비는 울 엄마의 혼은 아닐까. 세상을 향해 투정만 부리지 말라는 신호음이다.  나도 하양나비처럼 이미 생긴 찢겨진 생채기를 햇살에 말리고, 내일이라는 꿈을 꾼다. 가만한 바람에 쉬어가며 구멍 난 상흔을 메운다. 오늘이라는 풍경 속에는 그리움이 살아 정신을 놓기도 하고 설렘이 살아 사랑을 나누기도 하다가,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향해 가랑비를 그려댄다.

  8월의 끝. 새벽녘에는 벌써 더넘바람이 분다. 세상을 읽는다. 미궁 속은 새까맣게만 보이는 듯해도, 가녀린 빛은 어딘가 숨어 산다. 숨은 햇살을 쫓아다니며 바람결을 잡기도하고  홀로 하는 숨바꼭질놀이로 울고 웃으며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만들고 그린다.


  더넘바람은 고개 숙인 나인 것이다. 그 순결한 바람 향을 온 몸에 휘감고 정겨운 사람 곁에 선다. 가만한 바람도 기다린다. 가끔은 삶이 블랙홀이 되어 동굴홀릭에 갇히기도 하지만, 세상물결 너머에는 작고 큰 돌부리위로 그냥 그대로 흐른다. 세상사의 순리다. 이제, 내 몸에 흠씬 젖은 엄마사랑을 내리사랑으로 척박한 세상에 내어놓는다.

  ‘아! 그렇구나.’하는 긍정의 언어를 포옹한다. 팔랑거리는 나비 한 마리, 어머니의 빈방으로 들어서는 꿈을 꾼다. 내 마음대로 길몽이다. 아, 평화로운 밤꿈을 꾸자.  그래, 오늘도 내일도 희망하는 낮꿈을 꾸어보자.


  나비는 꽃에만 내려앉는 것이 아니다. 갈색 머리위에도 참하게 앉는다. 내가 좋아하는 나비 핀이 되어 머릿결 사이로 날렵하게 앉아있다. 간혹, 하늘빛나비 두 마리, 청빛 나비 한마리가 구불거리는 파마머리위에 꽃처첨 착하게 앉아 비상을 준비한다. 꽃과 나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 사랑을 달맞이한다. 물색없는 사랑으로 익어간다.

  온갖 나비는  비가 오면 꽃내음따라 뜰에 흘러들어 햇살을 맞기도 하고, 물기를 머금을 수 있는 버섯그늘에도 둥그런 토란잎 밑에서도 쉬어간다.

  나비의 은신처는 느낌 따라 찾아나서는 조각그늘이다. 

  나비는 꽃에만 앉는 것이 절대 아니다.

  행복한 그늘은  충청도 사투리인 내버려유로 그저 흐르는 긍정의 노래다. 



글과 영상/ 유민자드림

댓글 4개

김재원 2010. 11. 05. 오후 06:03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금방이라도 가을비가 내릴듯 잔뜩 흐리지만 글 속에서는 형상도 실체도 잡히지 않고 아스름한 , 지금은 저만치 밀려나 있는 8월의 어느날을 보는 듯 합니다 엊그제같은 한 여름의 풍경이 이제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비 찾아들 꽃도, 꽃을 찾을 나비도 없는 겨울의 문턱이라서 ? 길잃은 나비 한마리 사뿐히 머리위에 내려 앉을 것 같은데 머리 들어보면 역시나 지금은 잔뜩 흐린 초겨울입니다 예쁜 글과 영상속에 머물다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유민자 2010. 11. 06. 오전 07:30

가끔은, 졸필의 제가 쓴 글을 읽어 내려 가지만, 스스로가 쓰지 않은 듯 낯설을 때가 있어요. 이렇게 저보다 더 낯익은 듯 읽어주신 김재원님의 정겨운 댓글으로 그 아스름한 추억을 공유해요. 사색의 향기 문학기행을 다니며 그 따뜻한 시간을 공유하면서도, 사색의 창을 오래도록 두드리지 못했어요. 송구하고 감사드려요. 길잃은 나비 한마리. 그 잔뜻 흐린 날의 오늘은, 내일의 햇살을 맞이하려는 징검다리 인걸요. 내일의 풍경을 꿈꾸는 지금! ^&^

포아풀 2010. 11. 08. 오후 11:28

여전하시군요. 고운 글과 영상은... 잘지내셨는지요.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수필가님. 영상에, 글에, 나비처럼 살포시 앉아 세상을 보고 있어요. 며칠 후면 정말 오랜만에 뵙겠네요. 반갑습니다. 이곳이 정겨운 분들로 북적거려요.

유민자 2010. 11. 09. 오전 12:06

송구해요.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렸지요. 진정, 사색의 향기의 오래된 사람들. 우리 모두가 그리운 지금이예요. 며칠 후, 우리가 되어 뵈어요.... ...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