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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에서

박성실 2010. 12. 07. 오후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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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에서

 = 박성실


퇴근길
지하철역 상가로 연결된 통로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다
시선을 멀리 보낸 중년의 남자와
그 남자를 막아 앉은 노파
그들이 올라앉은 차가운 돗자리에는 신데렐라 머리끈, 백설공주 머리띠가 있다

유년시절

바람 몰아칠 때 엄마는
외투를 벗어 품에 안은 나를 덮었다
앙상한 어깨를 들어내고도 춥지 않다 했다
그 때 나는 핑크빛 동화 속에 있었다 


회사에서 그만나오라고 했던 날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 했냐고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등 돌리며 돌아 온 짧은 대답
세상은 원래 그런거라고
그날 밤 엄마는 말했다
괜찮다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노파의 한 손이 아들의 손을 덮는다
얼굴에 번지는 서글서글한 미소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따라가며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를 어루만진다
========
모자지간으로 추측되는 이들은 몇개월간 계속 보였는데, 아들과 혹여나 눈이 마주칠까 지날 때마다 땅을 보기 일수였다. 왠지 눈을 마주치면 내 안에 있는 절망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고 해야할까.... 그것을 막아 앉은 것이 저 노파였다. 그녀는 사지로 내 몰린 것만 같은 아들을 뒷쪽에 앉히고 앞쪽에 앉아 어디서인가 판매용으로 조달해 왔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양의 신델렐라 머리끈과 백설공주 머리띠를 팔았다. 나는 그냥 지나가기에도 멈춰서는 것도 자신 없어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늦게 따라 왔다.

댓글 14개

박종영 2010. 12. 07. 오후 02:09

혼자가 아닌 세상을 지키는 어머니, 그 위대한 위력앞에서 추운 겨울이 녹아내립니다. 모퉁이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세상의 내용, 절절한 싯귀에 젖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박성실 시인님.

박성실 2010. 12. 08. 오전 10:23

어느날 엄마가 쓰러져 토하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그 뒤로 회사를 그만두셨죠. 그 때 처음으로 엄마를 잃을까 겁이 났던 것 같아요. 잘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잘 안되는 사랑, 내리사랑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한다면 거스르는 사람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러네요. 그 아저씨, 누구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마지 못해 나와 있다는 표정의 그 아저씨 어머니를 봐서도 잘 되셨으면 좋겠어요. 시인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상근 2010. 12. 08. 오후 12:17

에고..모퉁이 돌아서면 뭐 좋은 일 있을래나 그러고 잔득 기대하고 돌아갔더니..ㅠㅠㅎ 마침 오늘 아침 잔득 흐린 하늘처럼 모퉁이 돌아선 공간에 노모와 중년의 남성이.. 둘이어서 따뜻함도 또 둘이어서 더 쓸쓸함도 함께.. 아고 오늘은 밑에 박종영님 글부터 박성실님 글도 말이 잘 안돕니다..ㅋ

박성실 2010. 12. 09. 오전 09:26

네 그냥 그런 이야기가 모퉁이 돌아가니 있어요..^^ 엄마가 되고 보니, 특별한 노력없이도 아이가 추우면, 위험하면 막아서게 되더라고요...그게 참 신기해요. 아침에 신랑에게 시를 보이고 혹평을 한 바구니 들었더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앞으로는 좀 퇴고를 하고 올려야겠어요...ㅜㅜ 삶의 모퉁이에서 들려 오는 소리, 그리고 모퉁이에서 했던 이야기가 길마다 산재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상근님^^

최인구 2010. 12. 09. 오전 10:26

신기하게도 어릴 적 엄마 등에 업혀 망토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잠에서 깨어난 기억이 가끔 환영처럼 떠오르곤 합니다. 중년인 아들의 바람막이가 되고픈 노파의 심정, 혹은 모성적 본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망각했던 죄인의 신분을 되새김하게 되네요. 성실 님~! 일타 쌍피라는 화투용어 아시죠.^^ 흙에서도 얼은 손을 쬐고 갑니다. hello~!

박성실 2010. 12. 09. 오후 04:25

일타 쌍피라을 사실 모르는데, 헤 얼마전 점심을 먹고 혜화역 근처 초콜릿 카페에 가서 열심히 두리번 거렸는데 남몰래 젊은 남자들만 유심히 봤더니, 오해는 살지언정 즐거웠습니다.. 하하;;;; 어디계셨어요. 눈 한번 마주칠까 했더니만^^ 이야기가 자꾸 생겨나서 즐겁습니다. hello~ 인구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노파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냥 보이는 모양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비슷한 마음을 공유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인가 봅니다. 그 점이 참 재밌어요.

미오새 2010. 12. 09. 오후 05:44

*성실님.. 비록, 동화속 이야기일지라도 신데렐라, 백설공주가 되고 싶은 꿈을 누구라도 한번쯤은 꾸면서 성장했을 그 수 많은 사람들이, 막상 초라한 좌판에 놓인 신데렐라 머리 끈, 백설공주 머리 띠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나쳤을까요. 그리고, 그 할머니와 나이 든 아들에게 관심을 보였거나 마음에 통증을 느끼며 지나 간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요? 그 할머니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절망의 덫에 걸린 것처럼 힘들었다면, 그들이 보이지 않는 우회의 길을 찾을 수도 있었을텐데 마음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까지 오랫 동안 그 길을 지나 다닌 성실님은, 자신의 걸음보다 늦게 따라 오는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아예 그 곳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지... 괜찮다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 어머니의 삶을 지탱케하는 처절한 이유가 그 말씀 속에 숨어 있는것 같아서, 절박한 세상이지만 자식을 위해 모질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한 세상 살아내야 했던 어머니들의 깊은 사랑이 그 말씀에서 느껴져 숙연해 지는것 같아요. 분주한 일상에 감각은 무디어져서 누구라도 방관하고 지나치기 일쑤이지만, 성실님처럼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은 지각(知覺)이 살아 있어서 미세한 자극에도 큰 고통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위에 다녀가신 인구님. 고스톱 용어 중에는 일타 오매도 있어요.

박성실 2010. 12. 10. 오전 10:38

ㅋㅋ 이김에 고스톱을 좀 배워야겠는데요. 영 대화가 안되네..^^ 미오새님은 운동을 좋아하시나요? 호흡이 길어요. 그런데도 술술 넘어가게 읽혀지니 참 좋습니다. 저는 운동하는 것도 싫어하고 폐활량도 적어서 그런가 글의 호흡도 길지 못한 것 같아요. 신데렐라, 백설공주에 대한 이야기 맞아요. 저도 그런 꿈을 꾸었죠. 모든 인생이 그렇게 해피앤딩일 거라고 말이죠. 핑크빛 꿈을 꾸었어요. 그리고 가끔 지칠 때 그 마음을 꺼내 놓기도 해요. 어머니가 막아서는 것이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나의 핑크빛 세상을 어루만져 주면서 말이죠. 헤헤 어찌 쓰다보니 자평이 됐네요. 어제는 남편하고 모퉁이에서 이 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물론 이어지는 혹평, 심지어 자기가 시를 고쳐가지 왔더라고요. 그런데 맘에 안들더라고요. 그래서 지적된 부분을 제가 또 수정을 했어요. 그랬더니 신랑은 그거 맘에 안든데요. 생각해 보니, 문체와 관점의 차이가 있더라는 말이죠. 그 사람 고유의 문체라는 것이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과 저는 참 다르거든요. 그래서 같이 살 수 있고 좋아요. 헤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생각하니, 잘 쓰는 시라는 것은 상당수의 사람의 공감을 얻어낸다는 것인데(포아풀님의 글만 봐도), 저는 남편의 공감대도 얻기 힘드니, 아직 멀었나봐요. 또 다르게 생각하자면, 포아풀님은 물론이고 미오새님의 글도 제가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또한 그 문체와 특성을 좋아한다는 것이니,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서 없나요? 눈이 많이 내렸어요. 눈 내리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세상이 조용히 도래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새롭게 찾아 온 조금 다른 세상에서 행복한 날 되세요. ㅋㅋ

이상용 2010. 12. 11. 오전 10:31

잔잔한 글 잘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항상 자식들을 위해서 정작 당신의 삶은 그 다음이지요... 추운 날씨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요~

박성실 2010. 12. 13. 오전 09:10

네 전달력이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어떻게 모성이라는 것이 습득되는 것인지 참 신기합니다.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용님, 추운날 들 건강하세요~

포아풀 2010. 12. 13. 오전 11:11

몸은 오는데 차마 휙 돌아서지 못하고 서성이는 마음이 모자의 누추한 돗자리에 머리끈에 머물렀을까요. 그러나 선뜻 행동하지 못하는 마음... 동정도, 안쓰러움도 결국 사랑에서 나온다지만 어떨 때는 그런 내 마음도 사치같을 때가 더러 있기도 해요. 과연 나는 그들보다 나은 사람인지... 2010년을 돌아가는 모퉁이에서 성실님께 늦은 안부를 드려요. 성실님으로 인하여 생기가 돌고 흥미도 돋고 더불어 함께하는 즐거움도 누린 해입니다.

박성실 2010. 12. 13. 오후 01:12

네 사치스럽다, 거추장스럽기까지하다, 그래서 수치스럽기도 미안하기도 하다...뭐 그런 감정들이 저에게도 수십번 오고 갔습니다. 가끔은 지혜로운 대처법 같은 강령 있음 편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1장 안쓰러움이 동할 때, 제2장거절하기 힘들 때, 제3장 이별할 때...뭐 이런식으로다가.. 포아풀님, 저도 인사를 전할께요. 천천히 읽습니다. 저는 올 해 이곳에서 안식을 누렸습니다. 포아풀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채균 2010. 12. 17. 오후 01:56

할머니 혼자라면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지만 뒷쪽에 앉은 아들 모습에 가슴이 저립니다 어서 밝고 풍요로운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성실 2010. 12. 20. 오전 09:48

네, 누구나 잘 사는 세상 뿐 아닌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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