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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存法 9條 10項

김봉길 2010. 12. 08. 오후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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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存法 9條 10項
  - 떨어진 가방고리를 위함

전철 5호선에서 2호선으로 갔다
낮보다 더 환한
영등포구청역 밤 승강장이었다
겨울 땅보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세 번째 뒹구는 검은 가방
또 떨어지는 가방 고리가 슬프다

가방 고리는 제몫을 다했으리라
어쩌다 모르는 곳에서 또 부서지리라
모든 것은 반드시 부서지는 법
너나없이 알고 있었지
그러나
잊고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을
가끔 생각이야 나겠거니
그날이 바로 오늘이라
얼굴 가까이 주어 들여다보는 가방

다시 부서진 가방 고리를 만지며 
그래
무엇이든 반드시 사라지리라
오랜 버릇인가
가방끈 쓰다듬어 고개 끄덕인다
그래
이 다음 순간 사라질 수 있으리라
또 땅바닥에 떨어질 내 가방처럼
그래 그래도
슬픈 말 하나 걸 일 없어
누구하나 말 하나 걸어올 이 없어
고리끝 비틀어 가방에 매달아
휘영청 어깨 아프게 걸친다

오늘은 상관없는 날인 듯
어제처럼 집으로 가든
가방 따라 뒹굴든 상관없는 날인 듯
지난 가방처럼 무엇이 들었는지
얼마나 들었는지 몰라도 되는 날
언제 안녕하며 사라질지
슬며시 사라질지 몰라도 되는 날
그래서 오늘도
또 심심하거나 슬프거나
어느 쪽이든
어느 쪽이 되든 상관없어진 날

문래역으로 가는 전철소리가 들렸다
다가올수록 크면 클수록
더 가까워지는 숨결 사이사이
하양 기쁨들
아하, 한번 또 가방 떨어뜨릴까
가방 고리야 훌쩍 달아나버리게

 

댓글 8개

박종영 2010. 12. 08. 오후 11:56

가방 한 개의 고리에서 발생하는 이성적 사고, 그리고 하루를 접고 돌아가는 전철역에서 바라보는 사물과 시간의 차이,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눈빛,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드리며, 문운하십시오 김봉길님.

박성실 2010. 12. 09. 오전 10:03

의식의 흐름이 촘촘하네요.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아닌 일에서 삶이 보일 때가 있죠. 그리고는 그것을 모른척 아무렇지도 않은척 지나가고 싶은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이 도착하는 소리가 크게 다가올 수록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치려 했던 마음의 요동함이 커져 또 다시 가방을 떨어뜨려 의식을 전환시킬까 하는 마음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닌지요... 그것이 생존법....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김봉길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을 읽으면서 저의 마음을 읽게 되네요. 좋은글 감사드려요.

이시종 2010. 12. 13. 오전 10:12

저는 시는 잘 모르지만 그대의 시를 읽으며 그자리에 제가 서 있는 듯하네요.그러한 삶을 경험하며 오늘에 이르렀으니까요. 그래도 살아지더이다.잊었던 마음속 깊은곳 경각의 종소리가 들리는 같아... 고맙습니다

포아풀 2010. 12. 13. 오전 11:17

생존법 9조 10항... 시인님의 연작시를 읽으며(전에 동일 제목의 시가 있기에 추측...) 내 분신이었다가 어느날 아무 인연도 아닌 것처럼 떨어져나가거나 무심코 쓸모없다고 버린 내 체취 묻은 흔적들을 생각해봤습니다. 나와 10년을 가까이 한 양산을 쓰레기통에 넣으려다가 아니지 싶어 기어이 집에와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속엣말을 해주었지요. 생명 없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은 내 동무였으니까요. 이야기가 빗나갔습니다.

김봉길 2010. 12. 13. 오후 03:03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한 사랑이거나 애증을 지니고 있죠. 그러한 것들이 추억이되고,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느껴질 때 살아있음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곤 하죠. 나로부터 사라지는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일, 평생 즐겁게 해야할 일인 듯 느껴지는 흐린 날의 오후 겨울입니다.

김봉길 2010. 12. 13. 오후 03:05

이시종 님의 '경각의 종소리' 여운이 아직도 울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개 숙여도 사라지지 않는 경각의 종소리가.

김봉길 2010. 12. 13. 오후 03:07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야 아무리 더 해도 지나치지 않겠죠? 좋은 겨울 가지시길요.

김봉길 2010. 12. 13. 오후 03:09

저물어 가는 올 한해도 박종영 님의 아름다운 매듭이 빛나시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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