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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라는 책

포아풀 2011. 02. 08. 오후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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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읽혀지지 않는 책장을 대충대충 넘긴다


그늘 벤치에 앉아 한쪽 다리를 책상으로 얹어

한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책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앉은 남자

그가 책을 읽는 것인지 책이 그를 읽는 것인지

나는 신기한 듯 바라보며 그와 어울린 풍경이

마치 한권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 혹은 그 남자라는 글자와

나무와 하늘과 물과 새와 사람이라는 글자 어우러진

두툼한 책

나는 매번 그 책을 다른 맛으로 읽어내곤 했다

하지만 독서는 어느 늦가을을 끝으로 심드렁해졌다

그 사람이 생략된 겨울책은 삭막해

아무도 없는 벤치를 나는 속독으로 훑고 갔다


겨울의 한 페이지가 밋밋하게 넘어간다 

 


댓글 14개

박성실 2011. 02. 08. 오후 02:23

공감대라는 것은 참 신기합니다. 제가 설레임으로 훔쳐 보았던 그 남자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실제로 그 사람을 본 것인지 혹은 상상 속에서나 이 글을 통해서 본 것인지 정확하게 변별해 내기도 힘듭니다. 그저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고 그 벤치와 나무도 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 남자, 나무 아래 책과 서로 마주하고 있던 그 사람과 책, 그 사람을 떠 올리면 그 책이 생각나고, 그 책을 떠올리면 그가 생각나고, 그리고 벤치를 생각하면 그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 온도가 여전히 그 벤치와 나무에서 느껴져 여러번 다른맛으로 읽어내던 그 책이 어느날, 그가 없다고 느껴졌다면 나는 다시 그 책을 읽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책은 더 이상 그 책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겨울은 참 밋밋하네요. 시를 읽는 것도 포아풀님의 계절의 한 편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포아풀님의 글이 오늘 참 반갑습니다.

박종영 2011. 02. 09. 오전 12:04

그 라는 책 한 권의 읽힘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더하여 밋밋하게 사라지는 겨울의 한 페이지가 시린 길위에 놓입니다. 귀한시에 머물며 감사드립니다.

눈사람 2011. 02. 09. 오전 10:00

무인도에서 지은이가 없는 책 한권을 읽고 있는데 문득 지은이가 누구일까 궁금해 졌습니다 迷妄의 기다림 속으로 꽁꽁 얼어붙은 바람을 부수며 벤치 옆에 눈사람 하나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눈사람은 푸르른 인간성을 담고있는 노자의 물(上善若水)을 읽으며 봄을 기다림니다 겨울나무의 목소를 읽을수 있게 하는 그 책의 저자를 추측하고 기대하게 하네요 오매불망 한시대의 하늘을 적셔 오는 포근한 언어들을 푸드득 일깨우며 다가온 이름없는 겨울새도 빛나는 갈증 속으로 날아와 책 한페이지를 소리내어 읽어주네요 덕분에 두툼한 인생의 책한권을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설레임을 일깨워 주는군요 늦가을 지워진 그사람이 영혼의 꽃잎 태우는 촛불 되어 태양의 늪을 건너고 있음이 읽혀 지는군요 이제 겨울에 벤치에 않아 그 누군가를 읽지 않아도 되는 회통의 義를 한모금 마시고 나의 어리석음 근처에서 밋밋한 향기를 매일 전해주는 사색의 향기를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상근 2011. 02. 09. 오후 04:29

'내 자신이 세상에 대한 시각이 밋밋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일까?'..곰곰.... 남들과 다르게 너무 빨리 세상을 심드렁하게 바라보기 시작해서 인지 저는 연애도 제대로 못해 보고 젊은 시절을 보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더 흘러갈 수록 세상에 대한 밋밋한 감성은 더해가겠지만, 차라리 온전히 달관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달관의 끄트머리엔 아직 세상에 대한 미련이 한가닥 남아 있는 것 같으니...쩝~~ 글을 읽으며 젊음으로부터 오늘까지를 한번 훑어보게 되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포아풀 2011. 02. 10. 오전 01:45

성실님의 공감대라는 말씀에 찌릿찌릿 전율이... 뭔가 소통하는 느낌이랄까요. 댓글로 시 한 편이 다 해설이 된 듯합니다^^ 몹시 추운 겨울나기, 며칠 날이 느긋해지는가싶더니 다시 추어지네요. 건강하셔요. 저도 물론 반갑습니다.

포아풀 2011. 02. 10. 오전 01:46

감사합니다. 늘 귀한 시로 대접해주시니 좀 더 잘써야겠다는 반성을 합니다. 아직 겨울의 페이지에 그냥 머물러 있네요.

포아풀 2011. 02. 10. 오전 01:51

저는 지금 지은이가 없는 책을 읽고계셨을 눈사람님을 떠올립니다. 혹여 날이 따뜻해지면 모습을 감추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노자의 물을 읽으며 봄을 기다리는 그 옆에 제가 아마도 걷고 있을지도 모르니 둘러보세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만 빠꼼 내놓은 채 속독으로 그 벤취를 훑고 가는... 기침으로라도 인사를 나누시지요...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포아풀 2011. 02. 10. 오전 01:54

저도 세상에 대한 시각이 아기자기하지 못해 난 아마도 여자가 아닌갑다... 했지요. 생김새만 여자라고 놀림도 받지만 천성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는 것은 희망을 잡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기대감에 찬 오늘이고 내일일 것 같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안개꽃* 2011. 02. 17. 오후 11:00

시린 겨울이 가고 있네요 읽혀지지 않는 책 한권과 어떤 한 글자에 고정되어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한채 밤을 세워버린... 지금은 누렇게 퇴색되어 어느 책장 한 귀퉁이에서 졸고 있네요...

포아풀 2011. 02. 18. 오전 01:51

그럴 때가 있지요. 어느 글자에 고정되어 마음의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는... 안개꽃님의 일상의 페이지가 생동감으로 충만하시길 빌어요.

미오새 2011. 02. 25. 오전 09:08

*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하여 웬만하면 2월 24일에 꼭 오고 싶었는데, 세상살이 마음 먹은대로 될 것 같으면서도 날자 하나 맞추어 오는 것도 어려우니.... 꽃이 화려하고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그 수명이 십여일을 넘지 못 할 것이고, 오래도록 변치 않을 것으로는 아무래도 마음 만 한게 없을 듯 싶어, 2월 24일을 기념하는 의미로 여기 우직한 마음 한 조각 내려 놓고 갑니다. 포아풀님... 포아풀이라 쓰고, 무슨 일에나, 어떤 상황, 어떤 관계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라 읽습니다. 마음 한 조각에 이어 이름풀이는 덤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연애상습범들의 상투적인 어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주파수를 시인님께 맞추고 생각을 집중하면 생각은 물론, 표정까지 어렴풋이 전해진답니다. 이제 색 바랜 고깔모자를 벗으시고 초록향기를 준비하여야 할 때, 생동하는 봄 기운에 몸도 마음에도 원기를 회복하셔서,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 보여 주시기를 바람니다. 이제 봄이 오면, 겨울 내내 비어 있었던 그 벤치에도 책읽는 사람 돌아 오겠지요. 한 권의 책을 읽듯 겨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통하여 생각의 접점을 찾아 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겨울의 한 페이지를 밋밋하게 넘기고 있는 작가의 모습까지도 아울러서 겨울의 한 풍경으로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요?

포아풀 2011. 02. 26. 오전 10:48

미오새님, 반갑습니다. 무척이나 바쁘셨군요. 저도 뜸했지만 미오새님이 아니 보이셔서 궁금했습니다. 우선 감사의 말씀 드려요. 미오새님의 예리함에 다시 한번 놀라는 중입니다. 축하의 말씀 정말 깊이 깊이 담아두겠습니다. 이제 전에 씌워주신 고깔을 고이 포장해두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전 같지 않게 기억도 깜빡거리고, 눈도 흐릿해져서 잦은 실수를 하는 통에 어딜가나 걱정만 남깁니다.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현배 2011. 02. 26. 오후 01:22

그 사람이라는 글자와 책이라는 맥락. 삶의 모든 것을 말하는 듯하네요. 그 사람이 없다... 사랑없인 덕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

포아풀 2011. 02. 28. 오후 12:32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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