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삼창빌라

박성실 2011. 04. 25. 오전 11:08
4959

삼창빌라

- 박성실

도로변 이십오 평 전세 오천짜리 빌라가 속내를 드러냈다. 어느 집은 분홍 꽃 어느 집은 황금 줄무늬 어느 집은 노란 병아리, 내가 장만한 첫 울타리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자리 군대 간 첫 애가 태어난 고향, 사람들이 남기고간 이야기 구석구석 맺혔다.

봄이면 빌라 마당에 피어오르던 하이얀 목련 치맛자락 나긋이 폴락이고 연보랏빛 라일락 향수가 담장 너머로 진동하던 곳, 차도도 없던 중계동에 처음 지어진 4층 빌라는 혹여 4층 사는 친구가 생일잔치라도 할라치면 한번 가보고 싶어 친하지도 않은 친구에게 선물이라도 미리 안겨주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단정하게 머리빗은 아이들의 자전거가 한가롭게 돌아가던 그곳에서 경비 초소 밑에 살고 있던 개미마저도 남달라 보였다.

봄이 깊어지자 철마다 돌아오던 바람이 온기 없는 빌라에 들었다. 바람은 벽돌이 이십삼 년간 뒤집어쓴 먼지를 일으키며 주변을 돌더니 두드릴 창 없는 방에 거침없이 들어가 앉는다. 잠잠한가 싶더니 이내 휘청거리며 일어나 '쓰레기 투하 금지' 팻말 앞 수북하게 쌓인 쓰레기를 훑는다. 그것도 성에 안 찾는지 '축 재개발' 플래카드를 들썩거린다.

빌라 마당에 중장비 기사 아저씨 스러진 목련 밟고 담배 물었다. 아저씨 지켜보던 목련 나무 보란 듯이 잘려 나간 가지에 연둣빛 새순을 틔운다.



댓글 19개

박종영 2011. 04. 26. 오전 10:08

재개발 지역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슬프게 잘려나간 목련의 아픔도 읽습니다. 연둣빛 새순을 피우기 위한 뿌리의 인내가 마음에 걸립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동수 2011. 04. 26. 오후 12:46

공능동을 떠난지 15년이 되었는데 중계동 삼창빌라 이름을 들으니 오랜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네요 이제는 흔적조차 찾아 볼수없는 곳 뒷길(구길) 곳곳에 담장을 넘어 내어밀던 꽃들 일찍 내어밀던 목련들의 넋은 어디로 이사를 했는지 아마 정을 나누던 삶들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려하게..............박성실님 잘 읽고 감사 드립니다.

미오새 2011. 04. 26. 오후 04:55

*성실님.. 한 때는 주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였던 삼창빌라가 이제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글쓴이의 감정은 꼭꼭 숨겨 놓은 채, 차분하고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신 걸 보면, 성실님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함이 엿보입니다. 울타리 낮은 집, 마당이 있는 집, 담장 너머로 장미꽃이 보이는 집들은 사라져가고, 내밀한 사연과 추억들은 콩크리트 벽속에 묻혀 버리는 마구잡이식 개발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요. 중장비기사의 발에 밟혀 이즈러져가는 꽃잎과 연두빛 새 순으로 돋는 목련에서 미약하지만 몸짓으로 항거하는 분노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꽃들은 지고 있지만, 성실님 마음은 항상 꽃피는 봄날같기를...

정상근 2011. 04. 26. 오후 11:50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20번이 넘는 이사를 끝맺는 마지막 이사를 했었지요. 연립주택으로,, 그 당시에는 서울에는 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던 시절이 아니어서 다가구 주택이 그리 흔치 않았었더랬습니다. 저희집은 3층 이었었는데,,안방의 창에서 내려다 보면 앞집에 이쁘장한 여학생(정신여고 다녔었고,,학교 갈 때마다 같은 버스 탔었고,,대학엘 입학했는데 같은 학교에 입학한 것을 3학년이 되어서야 알았음)의 조그마한 창문이 보여 시간날 때마다 훔쳐봤던 기억이...ㅎ 박성실님 글로..오래된 추억하나 꺼내어 봅니다. ^^

박성실 2011. 04. 27. 오전 11:05

시인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빌라마당은 또 다른 봄의 현장이네요.

박성실 2011. 04. 27. 오전 11:08

아, 그러셨군요. 저도 그 길을 기억하는데요. 구길이라고 불렸죠. 친구한테 삼창빌라가 헐린다고 하니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아, 사진이라도 찍었어야 하는 건데... 내가 살던 동네의 흔적은 항상 저의 과거와 함께한다는 걸 삼창빌라를 보면서 느꼈네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성실 2011. 04. 27. 오전 11:13

오새님, 웬지 오늘은 이렇게 불러보고 싶네요..흐흐 그러게요... 제가 감정을 숨겼나봐요. 바람의 심술과 목련의 노력이 있을 뿐.... 그래도 미오새님은 제 마음을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재개발이라는 것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 그저 삶 안에 있었고 지나가고 있고 사라진다는 것이 아쉽고 애처로웠습니다. 그 목련 나무는 뽑힐테죠? 어디로 이사를 갈까요? 화려한 봄의 한 구석의 모습이네요. 미오새님의 봄에도 꽃과 향기가 함께 하시기를......

박성실 2011. 04. 27. 오전 11:25

하하, 로맨스인데요? 감사합니다. 추억의 한 장면을 듣는 것은 참 재밌습니다.

최다원 2011. 04. 27. 오후 08:24

연두빛 새순은 희망이네요 소망이고 바램이고 꿈입니다 우리 가슴에 꿈틀거리는...

박성실 2011. 04. 28. 오전 09:34

네 시인님, 희망이네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소모하고 변덕을 부리지만 나무는 한결같네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새 2011. 04. 28. 오후 01:07

*성실님.. 미운 짓을 하면 다시 \"미\"자를 붙여 주실건가요? 성실님께서 주신 답글의 첫 줄에 \"웬지\"라고 쓰셨는데, \"왠지\"와 \"웬지\"가 아무래도 헷갈려서 인터넷의 지식검색과 국어사전을 찾아 보았더니, \"왠지\"가 바른 표기라고 되어 있는것 같아요. 이쯤 되면, 시어머니에게 고자질하는 시누이의 미운짓처럼 보이겠지요. 오기(誤記)를 지적하는 모습이, 미울 \"미\"자를 다시 찾을 수 있을 만큼의 미운짓으로 보였으면 좋겠는데... * 피학적인 사람이 결국 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실님. 강한 것은 결국 도태 된다고 믿는 미오새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아요. 성실님처럼 체계적인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위의 윤선생님과 성실님이 주고 받은 글 중에서 문득 눈에 띄는 구절이라 여기에 덧 붙였습니다.

박성실 2011. 04. 28. 오후 01:34

호호 역시, 오새님이셔요. 저도 그걸 찾아 봤었어요. 그런데도 왠지와 웬지의 느낌은 다른 걸요. ㅜㅜ 남편은 항상 주관적인 단어사용은 적절하지 않다고 하지만, 저는 그게 참 어렵네요. 뭐, 이런 정도의 일로 미'자를 되찾고 싶어하셨다니, 하하 미운 이라는 뜻 말고 아름다울 미'를 붙여 드리고 싶은데요? 미오새님, 권력이라는 것이 오랜동안 여려형태로 바뀌어 왔지만, 그들은 어쩌면 모두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약할 때는 관용을 외치고 강할 때는 강압을 행하는 '권력의 속성'이라는 아픈 말을 써야하겠군요. 그러나 한편 지도자라 이름받고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상당수가 피학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 들었어요. 저도 강한 것은 도태된다는 말에 덧 붙여 봅니다. ^^ 건강 유의하세요~~~

포아풀 2011. 04. 29. 오후 07:52

늦은 인사 드리고 가요, 성실님. 주말 잘 보내세요. 글은 천천히 다시 읽을게요.

김현배 2011. 04. 30. 오후 07:30

봄의 바람과 이에 꿋꿋이 일어나는 목련의 생명력. 결국은 삶이란 생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성실 2011. 05. 02. 오전 10:32

네 포아풀님, 늦으셨다고 하신 말 끝에 숨이 차네요. 건강은 괜찮으시죠? 여기저기서 콜록 거립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항상 관심가져 주셔서 기쁩니다. 저는 시인님의 팬이거든요 헤헤헤

박성실 2011. 05. 02. 오전 11:18

봄 바람이 심술났습니다. 이제는 뙤약볕이 그리워지네요. 삶이란 생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생명력이 가득한 봄에 생각하게 되는 문구입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상근 2011. 05. 02. 오후 06:37

포아플님 요즘 봄처녀 하신데요???..바람 나셨나베??..ㅋㅋㅋ 자주 안보이시네요 ^^ㅎㅎㅎㅎㅎ

정채균 2011. 05. 06. 오후 12:13

잠실벌에 시내버스 종점이 있던 시절 막차를 떨치고 문 닫은 포장마차 안에서 모기 뜯기며 한 숨 붙이던 70년대 기억... 밤 근무하고 창경원에서 아침 퇴근 길 버스에서 졸다보면 초가가 남아 있는 기자촌까지 갔던 80년대 기억 갑자기 재개발, 재건축 바람이 불고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지요...

박성실 2011. 05. 09. 오전 09:45

어느날 남편이 그러더군요. 얼마나 '구차한'일이 많으면 구차하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단어마다 맺혀 있는 각자 개인의 기억, 그것을 불러내는 일은 참 근사한 일입니다. 재개발, 저의 기억을 나누니 다른 이들의 기억이 공유되는군요. 감사합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