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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찾게 된 연유

김현배 2011. 05. 11. 오후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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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꾸었다.
절망의 구덩이에서
극적으로 탈출하기를,
사랑의 배반자들 사이에서
극적으로 사랑을 찾기를.
그렇게 꿈을 꾸었다.
사람을 살리는 희망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존재는 심장에 있으면서
나의 꿈과 가장 멀어 있었다.
나의 지식도
그 다음으로 내 희망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나의 정신도 그 다음으로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나를 몰아야 했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절망의 구덩이가 필요했고,
내게는 사랑의 배반자가 필요했다.
그것이 한낱 나라는 존재가 할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 옛날의 고행자처럼.
어리고 어린 나의 정신은
동물이 되기로한 것이다.
야성의 동물이야 말로,
세상의 조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리라.
그리고 모든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는
동물이 되고자
그렇게 몰아댔다.
세상으로 몰았던 그것 때문에
수많은 장애가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절망할 뻔 했다.
그러나 매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나를 동물로 몰아갈 때의
원대한 꿈.
나에게 그 꿈이
빛이요 희망이 되어
나를 지켜주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이 나를 지탱해주었고,
또한 나의 사랑이
나를 지켜주었다고 믿는다.
한 찰나에,
나에게 절망의 구덩이와 사랑의 배반자는
내 꿈속에서 말고는
언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느끼게 된다.
내 꿈속의 절망과 배반에서
나온 내 꿈속의 희망
그것이 가지를 뻗으며
나오고 있다.
고통의 무덤에서
커다란, 거부할 수 없는
희망을 발견한 지금
되돌아 보면,
아! 정말로 내가
고향으로 가고 있구나!
집으로 가고 있구나!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고향의
따스함 속에서
지난 날을 마무리하고,
내 존재의
새로운 날을
열고 싶다.

댓글 6개

박동수 2011. 05. 12. 오전 10:00

성서에보면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가깝게 있는 것은 항상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멀리 보이는 신기루같은 것이 꿈이되어 스스로의 현실을 벗어나 그기서는 어떤 성취가 있을줄 생각한 끝에 그것이 자유를위한 탈출이라고 정당화하여 떠났던 아들이 후회와 깨우침으로 돌아오는 날 탕자의 낙인을 받는 비유지요 세상에 탕자를 받아드리는 곳은 오직 고향뿐이라는 비유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유\"의 하나일 겁니다. 물론 영적인 고향을 가르키는 비유이지만 인간에게는 영육을 다 합쳐도 역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은 하나일 뿐입니다. 내가 떠나온 곳 肉으로는 故鄕, 靈으로는 신의 요람(搖籃) 즉 에덴이라는 겁니다. 감사 합니다. 님의 건강과 평온이 있기를 바랍니다.

포아풀 2011. 05. 12. 오전 11:30

글 잘 읽었습니다. 고향이라는 말에 이끌려 저도 왔네요. 뜸하다가... 원점으로 온 기분이랄까요.

김현배 2011. 05. 12. 오후 07:39

이제는 고향에 거의 다 왔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현배 2011. 05. 12. 오후 07:43

홀로 꿈만 꾸던 사람이 세상에서 만족을 찾는 것 그것이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박종영 2011. 05. 15. 오전 12:56

고향은 누구에게나 추억이고 그리움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현배 2011. 05. 15. 오전 10:31

추억의 그곳. 이제 그곳만 생각합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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