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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브리카이 2

박성실 2011. 07. 11. 오후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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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브리카이 2
= 박성실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병원 내 게스트하우스로 옷장 하나, 침대 둘,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방은 병동 끝에 자리했는데 침대 위에 앉으면 복도 쪽으로 난 창으로 각 층을 연결하는 비스듬한 장애인용 계단이 내다보였다. 계단에는 종종 환자 보호자 혹은 외래환자들의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보통 넋을 놓고 무엇을 기다리거나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햇살아래 졸고 있는 여인네의 직각으로 늘어진 귀라던가 구부러진 코, 사리(인도 여성의 전통의상) 사이로 늘어진 거뭇거뭇한 살, 긴 속눈썹을 가진 남자의 노란 쌈바(인도 음식으로 카레와 비슷하다)를 능숙하게 비벼 먹는 오른 손, 그것을 먹어치우던 누런 이, 싸온 물통을 기울여 손을 간단히 씻고 옷에 쓱쓱 문지를 때 잡히던 미간의 주름, 음식 찌거기에 달려드는 새들을 쫓는 성의 없는 손까지, 멍하게 그들을 훔쳐보면서 나는 이곳이 인도구나 하고 생각 했다.

 병원에서 내가 딱히 두드러지게 하는 일은 없었다. 일주일에 3번 병원 뒷길을 따라 나가 가뭄으로 가늘게 늘어져 있는 들판을 걷는다. 갈증이 목구멍에 돋아날 쯤 황색 모래를 뒤집어쓴 하얀색 간호학원 건물이 보인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그곳에 가서 그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학생들과 이야기 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병원을 돌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저녁이면 일과를 마친 젊은 의사들을 만나 농담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인도의 햇살은 지루했다. 나는 인도의 더위가 내 정신까지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열기 속에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동기조차 녹아내리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내가 떠들 수 있는 지식이 얼마나 있으며, 의사들과 이야기 한들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환자들을 만나는 것도 그랬다. 병실에 들어가면 열개가 넘는 눈들이 나를 향해 꽂혔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 머쓱하게 웃고는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생각하게되는 날들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설사가 시작됐다. 병원 매점에서 배고플 때마다 사먹었던 완두콩이 문제였다. 낮에 찾아온 도레라지 박사님께 설사를 한다고 했더니 박사님은 나를 의사에게 바로 데리고 갔고 의사는 간호사에게 지시해 휠체어를 가져 오게 했다. 그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나를 휠체어에 앉혔다. 그렇게 해서 시골 병원에 찾아 온 한 멀쩡해 보이는 외국인은 휠체어에 앉아 병원 반 바퀴를 돌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1인실 침대로 옮겨졌다. 입원 환자가 된 것이다. 설사 조금 한 것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인가 마냥 쑥스럽기만 했던 나는 그날 저녁, 고열과 설사, 구토에 시달렸다. 그날 밤 토사물을 받아내던 커다란 양동이는 두 개로 늘어났고 그들은 미지근한 코코넛을 다량 사가지고 와 계속 마시라고 했다. 그러나 코코넛은 소용없었다. 코코넛은 물론이고 내가 태어나서 먹은 모든 음식을 게워내야만 끝날 것 같았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급기야 탈수에 시달리던 내 손은 조리개 모양으로, 발은 발레리나의 곧추 세운 발처럼 굳어 버렸다. 나는 무서웠다. 처음 본 외국인 입원환자를 구경하러 왔던 하얀 사리를 입은 간호사들은 정신없이 나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액 양을 늘렸고 마침내 내 몸은 늘어졌다. 나는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맨 먼저 보이는 것은 밝게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간호사들이었다. 그들은 병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했는데, 레몬 죽을 만들어 왔다며 먹어보라고 했다. 뭐, 나중에는 그것도 다 토하고야 말았지만 무심결에 지나치던 그들의 얼굴이 들어 온 것은 그 때부터였다. 인사 한 번 한 적 없는 그들이 미소로 건네준 따듯한 죽을 뜨면서 나는 그들의 이름이 궁금했고 몇 호에 사는지, 어느 파트에서 일하는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매일 밤 찾아가 농담을 건네던 의사도 생각났다. 그들은 영국에서 공부를 한 수재였고 자신의 권리나 명예보다는 이곳 달릿 마을에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삶은 그곳에 있었으나 나는 감히 그것을 알아 볼 가슴이 없는 사람이었다.

댓글 3개

별안개 2011. 07. 11. 오후 06:38

\"달릿 마을\"의 그 자리에 서성여집니다. 기다렸어요. 진실된(?) 가슴이 있는 분, 박성실님의 \"앰브리카이 2\" 소식을요. 혹, 벗어나기일까요? 내안의 내가 그 어떤 아픔 뒤에 따라오는, 성숙일까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의 거리는, 내가 먼저 손을 뻗어 이해하고 사랑하며 농익은 농담을 건내야함을 알아갑니다. 고마운 글, 잘 읽고 가요. ^^

박성실 2011. 07. 12. 오전 10:41

별안개님, 감사합니다. 기다렸다는 말이, 뭐랄까 감동적이예요. 감사해요. 그러게요,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당겨져 서로를 알아보려면 누군가 먼저 가시 거리로 들어와야 하는 것 같아요. 오늘은 앰브리카이의 마지막편을 올리려고 해요. 끝까지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려요. 별안개님, 이름이 참 예쁘고 신선합니다.

김현배 2011. 07. 14. 오후 09:13

그들의 삶은 그곳에 있었으나 나는 감히 그것을 알아 볼 가슴이 없는 사람이었다. 타인에 대한 마음은 쉽게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그들과 함게 한 것이 없으면 마음도 없는 거겠지요. 사람은 때로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것만 같아도, 떠돌며 꾸던 꿈, 힘들었던 일들, 그것이 소중한 마음으로 다시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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