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앰브리카이 3

박성실 2011. 07. 12. 오전 10:43
3237


앰브리카이 3
= 박성실
퇴원 후, 몸이 회복이 되 가자 나는 무엇인가 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성의 없게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을 내가 도울 수 있을까 궁금했고, 내가 만난 의사와 간호사가 만나고 있는 환자들이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암병동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주로 구강암 환자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6명의 환자들이 누워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커다란 눈들이 낯선 외국인을 향해 꽂혔다. 머쓱해진 우리는 보호자가 없이 혼자 누워 있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간단하게 인사하고 내 소개를 하려던 참에 등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나를 향해 물었다.

“누구요!”
“아, 그냥 얘기를 좀 하려고요, 낫게 해달라고 기도도 함께 하고…….”

내가 당황하는 기색이자 그녀는 더 의기양양해 진 듯해 보였다. 그녀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당신 어느 계급이야?”

이게 무슨 말이라는 말인가? 무슨 계급이라니?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녀의 커다랗고 명료한 눈이 대답을 내 놓으라며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돌렸다. 나는 결국 한 번 멋쩍게 웃어 보이고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 나왔다. 사람들의 눈이 나를 좇았고 나는 수치심과 두려움을 뒤에 남겼다.

나는 숙소로 돌아왔건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내 머리 속은 물음으로 가득했다. ‘어떤 계급에 속해 있지? 지금 만난 것은 무엇이지? 왜 도망치듯 돌아설 수밖에 없었지?’ 이런 질문들이 내 주변을 떠돌아 다녔지만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어 말라 있는 병원 일대를 우물이라도 찾는 듯 돌아다녔다.

무엇이었을까? 오래간 멍해졌던 나는 그냥 그 일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저 다국적 기업이 인도정부로부터 지하수를 사들여 콜라를 만들고 있고 주민들은 물대신 콜라를 사먹고 갈라진 땅을 보며 비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에 개탄하면서 의사들과 간호사지망생들과의 수다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나의 망각이라는 기재는 한동안 그 보호자를 내 기억에서 밀어냈고 나는 그녀를 잊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면서 가끔, 그녀의 확신에 찬 눈빛이, 나를 향했던 분명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당신 어떤 계급이야?“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그 보호자가 정말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 어쩌면 ‘당신 누구야?’ 정도 물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그날 왜 그녀의 말을 그렇게 들었을까, 왜 변변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을까, 혼쭐이라도 난양 도망쳤을까?

이치에 맞지 않다고 단순하게 무시했던 그들의 삶과 대면했을 때 나는 그저 도망쳤을 뿐이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 있었을 뿐 그들의 삶의 무게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사는지 그것을 보려하지 않았던 나는, 그런 편협한 시각은 잘 못된 것이라고 설파하려는 거만한 태도로 그들에게 다가섰고 그 본심이 그들의 삶과 만나자 나는 도망쳤다. 결국 레몬 죽을 끓여 온 그들의 마음만큼도 그들에게 주지 않으면서 그들보다도 더 큰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그들과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정말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실제로 어떤 계급에 속해 있었을까? 어쩌면 다른 면에서 나는 불가촉천민이었을 수도 있다. 성공한 삶을 살면서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 본능 속에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존중받는 소수가 항상 되기 바랐다.

한국에 돌아와 이따금씩 생명의 소중함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가 있다. 한 인간이 가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 져야하는지 설파하면서, 한 편으로는 나누고 싶지 않고 지켜졌으면 하는 내 삶을 본다. 나는 아무것도 희생하고 싶지 않으나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고 바란다. 누군가를 보면 저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자로 재면서 친절해야할 사람, 무시해도 되는 사람, 그냥 지나칠 사람 정도로 나눈다. 나는 존중받고 싶고 나는 브라만이기를 원하고 나는 결국 내가 그런 계층의 사람이 아니어서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날 내 귀에 들렸던 그녀의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돈다.

‘당신 어떤 계급이야?‘

댓글 9개

별안개 2011. 07. 12. 오후 06:06

그래도 이렇게 무언가 하고싶어서, 손을 잡으려 했던 박성실님의 참 모습만을 떠올려지는 지금이예요. 글속의 묘사에서 인도에서의 그 상황에 어우러진 한 폭의 상황극이 훤히 그리지는 글, 열중해서 읽었어요. 도망쳐 나온 그 무안함은 아무것도 아닌걸요. 부족한 제 생각에는요.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은 성실님의 참된 용기 그리고 참한 배려만으로도 '삶의 성공적 발상' 인 듯 해요. \" 당신 어떤 계급이야?\" 아마도 저라도 꽁무니바람처럼 쌩 도망쳤을거예요. 타지에서 온 우리는, 오랜기간동안 지켜낸 인도의 계급사회를 당연히 알수 없지요. 다만, 인도의 계급사회를 '이해의 눈길'로 바라보아야겠지요. 졸필의 제가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박성실님의 '이성과 감성'을 사모해요.^_^ 아! 저의 아이디인 별안개는, 안개꽃보다 크고 패랭이꽃보다는 자잘한 별꽃. '야생화 이름'이예요.

박성실 2011. 07. 13. 오전 11:26

별안개님, 님 덕분에 야생화를 찾아 봤네요. 이름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예요. 김춘수님의 '꽃'에 나오는 말 처럼,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고 봐야할까요? 별안개님의 격려에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시 읽어 보니, 문제 문장들이 있어 수정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드는데요.. 다소 긴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인사를 건네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의 겉치장은 진심이라는 강력한 놈과 만났을 때 언제나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 본심을 들키지 않으려 더 두꺼운 가면을 쓰지만, 결국 삶의 진실 앞에서는 무력하더라고요. 건강유의하시고요, 또 뵙겠습니다.

별안개 2011. 07. 13. 오전 11:36

별안개 꽃의 영상이 부족한 제글인 \"올라가는 낙하산\"에 올려져 있어요.^^ 그 별안개의 모습도 그 글속에 흠씬 묘사되어 있지요. 행여 여유시간에 잠시 노크해 보세요.... 진심으로 한 눈에 쭉 읽어내려 갔어요. 인도의 그 어지럽던 거리가 떠올려졌지요. 제가요. 불쑥 그 거리로 들어갔어요. 무질서속의 조화로운 그 거리, 동냥하던 소년 소녀들의 맑간 눈동자 세상속으로 들어갔어요. 박성실님의 글덕분에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글속에 내려앉은 좋은 언어들, 공감이라는 언어속으로 들어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김문숙 2011. 07. 13. 오후 09:13

이 사색의 향기는 덧글이 붙으면 정정이 되지 않지요 답답하실 거예요 그래도 세세히 쓰셔서 잘 알아 들었으니 너무 상심 마세요 그래도 사색의 향기에서는 오자 탈자들을 넣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는 여전히 있지요 한국인 들 끼리도 질문과 대답의 골자가 들어 맞는 일도 참 드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요 곰곰히 돌아보면 당황했을 뿐 이지 사실은 그 현장 거기에 답이 있었어요 그런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는 답보다 더 넒고 깊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도망치는 것도 용기 없는 사람은 못하는 겁니다 .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것이 용장이지요 쓸데 없이 당황한 채로 주절 주절 보다는 깔끔한 후퇴 --아마 남아있는 사람 역시 그 자기의 질문을 곱ㅅ 십어 보지 않았을 까요? 누구였을 까? 왜 왔었을 까?-등등----ㅅ 십자가 금지용어에 걸린데요 분활해서 쓸수 밖에 ㅎㅎㅎㅎ

박성실 2011. 07. 14. 오전 09:44

아, 제가 그 글을 건너 뛰었군요. 별안개, 이렇게 얼굴까지 보여주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기 힘든 꽃...그런 점에서 수필가님은 일상의 세세한 부분까지 돌아보고 삶과 연결고리를 찾아가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도의 거리는 정말 무질서했어요. 소와 사람, 자전거와 오토택시, 중앙선을 향해서 양방향으로 달리는 위험천만한 버스.. 그곳에 그들만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저는 몰랐더라고요. 남겨주신 족적이 가슴에 남아 힘이 됩니다. 다시 비가 내려요. 비덕분에 늠름해진 창 밖의 나무가 오늘도 힘내라고 이야기하는군요. 좋은 하루 되세요.

박성실 2011. 07. 14. 오전 09:48

그러게요. 그래서 제 노트에 있는 것만 수정했네요. 헤헤 네,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었을지 몰라요. 그래도 요즘은 다시 그런 질문 받는다면 뭐라고 할지 생각한답니다. 웃으면서,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이웃나라 한국에서 온 박성실입니다. 옷 색이 아름다우십니다. ㅎㅎ 먹힐까요?

김문숙 2011. 07. 14. 오후 07:38

하늘에서 보내셨다고 하세요 ㅎ 그리스도 대사로 ㅎㅎ 그게 더 정확한 신분일 겁니다 ㅎ

김현배 2011. 07. 14. 오후 10:45

카스트 제도. 그렇게 어려운 개념은 아얘 생각지도 않는 게 좋을 지 모릅니다. 인도인도 그렇게 깊이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그래왔던 거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요. 카스트 제도의 모순을 모두 잊고,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광명이 오리라 생각해봅니다. 글쎄 아무리 편견이 가득한 제도라도, 그것을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는 없지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박성실 2011. 07. 15. 오전 09:34

무서운 것은 제가 가지고 살아가는 편견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여지도 없이 몸에 배어버린 가치관과 관습....그것이네요. 인식 밖의 영역. 다른 이들의 편견을 비판하는 나의 모습 속에 숨겨진 많은 편견. 그들을 통해서 본 것은 바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김현배님,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일일이 감상평을 쓰지 못했네요. 그럼 장마에도 즐거운 날들 되세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