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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
최다원 2011. 09. 14. 오후 10:40
4154
최다원 2011. 09. 14. 오후 10:40
4154
발인//최다원
이제
묻힌다.
한 많은 세월 수많은 사연이 묻히려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해 준 베옷 한 벌 차려 입고
벌레들과 친구하려고 가려 한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려 한다
굳은살 깊게 박인 손과
다 타고 재만 풀풀 날리는 앙상한 가슴과
고단한 삶의 멍에로 전율하던 심장과
자식의 성공만을 염원하던 손가락의 소망과
예리한 바늘 끝이 무수히 찔러대던 허벅지와
눈물 마를 사이 없던 짓무른 눈을 이제 감고 묻히려 한다.
일본인의 처녀 사냥을 피해 열다섯에 시집을 와서
6/25사변으로 빨갱이들이 창고에 몰아넣고 석유를 뿌려 태운 남편의 시신을
스므살에 찾아온 새댁은 유복자의 태동을 느끼며
세 살짜리 손을 잡고 실신했었다
육십 삼년 수절하는동안 떠나지 않던 고독과
늘 함께 따라다닌 외로움이 통곡하지만
일구러진 영정속의 사진은 침묵할 뿐이다
할 말이 많다는 말인 가
할 말이 없다는 말인 가
다 아는데 굳이 말할 필요까진 없다는 말인가
다 가지고 들고 한평 반의 공간에 누우려한다.
너무나 변해 좋아진 세상과 성공한 아들을 두고
안타까운 아들은 땅을 치지만
흙탕물 거친 물살로 모질게도 흘러간 세월은 저만치 가 버리고
남은 건 너무 많이 사용해 펴지지 않는 무릎과
들리지 않는 귀와
초점잃어 희미해 잘 보이지 않는 눈
입술의 한쪽 끝 마저 일그러진 영정속의 그녀는 허공에 시선을 정지했다
한 많은 세월아. 아,,,,,
탱탱하던 햇살도 느슨하고
흘러가던 구름도 멈추고
하릴없이 지나가던 바람마저 고개를 숙인다.
칠성판에 반드시 누운 낡고 허물어져 누덕 누덕 기워진 껍데기
영혼의 옷은 이제 흙으로 돌아가려 하고
눈물로 지샌 수많은 나날들은 줄을서서 허공에 산화되려 한다
이제 이별이다
지금은 돌아갈 시간 흙에서 빚어진 고향으로 귀소한다
문상객이여 조문객이여 그대들에게 주는
마지막 초라한 만찬이니
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우리 취하자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없지만
원통하고 분하고 애련의 가슴으로
영혼은 이곳을 맴돌것이며
떠나기 힘든 발걸음이리라
흔들리는 나뭇잎은 안녕을 고하는 손사레이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은 언니의 못 다한 사연일게다
이제 우린 서로 다른 길목에 서 있다
눈물을 흘려준다는 말인가
매미들이 통곡을 한다
*사촌언니 발인하며
댓글 3개
김현배
2011. 09. 15. 오후 10:44
고단한 삶이 안식을 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고통은 도장처럼 고인의 몸에 찍혔지만, 고인은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셨습니다. 언젠가 영원의 강에 도달하면, 믿음으로 살게 되길 바랄뿐입니다. 삼가며 고인의 명복을 비옵니다.
김정흠
2011. 09. 17. 오전 11:04
어떤 사람도 죽음을 아름답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다가 임종순간이되면, 어떤 사람도 두려움을 맞아야 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 또한 가슴이 미어집니다. 사람에게나 어떤 생명체에게도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죽음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소명, 생을 마감한 모든 분들의 소망을 함께 지는 것이지요. 다원님께서 더 힘내시고, 행복한 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별안개
2011. 09. 19. 오후 05:58
소리없이 웅웅거리는 것들이 존재하는 삶. 세상을 뜬다는 고요속으로 가슴을 에이는 순간을 맞이해요. 울음속으로 세월을 풀어요. 말없음표로! 느낌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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