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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장진성

박성실 2011. 10. 18. 오전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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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 장진성

그는 초췌했다
-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모성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이 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
제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고함치며 울음 터치며
딸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
입술만 프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 줄도 몰랐다
당신 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 원을 쥐어주자
그 돈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 원으로
가루빵 사 들고 어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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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쓴 장진성씨는 탈북자로 김일성 대학을 나온 북한 조선노동당 시인이다.
이 시에 나타난 상황은 현재 북한의 모습이라고 한다.

댓글 10개

미오새 2011. 10. 19. 오전 12:08

*성실님.. 이렇게 슬픈 시를 덩그라니 올려놓고 성실님은 왜 한마디 말씀이 없으신가요? 상상하기 어려운, 너무 참담한 현실에 그만 말문이 막히셨나요? 울부짖는 자들의 고통스런 비명이 하늘에 들리면, 그 참상을 외면했던 자들에게 큰 화가 미치지 않을까요. 기아에 허덕이는 어려운 동족을 외면한 채, 남쪽에서 누리고 있는 이 풍요의 끝이 두려운 것은 역사는 반전하고, 죄의 값은 반드시 치르게 되는 하늘의 섭리때문이지요. 물이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은 불의가 팽배하면 그 가치를 회복하고, 스스로 자정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중동지역을 휩쓸었던 자스민 혁명과 미국에서 일어나 유행처럼 번져가는 월가의 시위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생각입니다. 북녘땅의 참혹한 현실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우리들의 미약함이 부끄럽습니다.

박성실 2011. 10. 19. 오전 10:14

네 미오새님, 때로는 어떤 미사어구나 묘사보다 사실 그 자체가 더 설득력을 발휘할 때가 있죠. 이 시는 그런 시인 것 같습니다. 장진성 시인의 시각이나 언어보다도 북한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참상이 저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커 어떤 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미오새님처럼, 저의 미약함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박동수 2011. 10. 19. 오후 04:30

이 시인의 호소가 마냥 지나가는 바람소리처럼 느껴지는 귀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직도 우리들 주위에 호북(好北)의 노래로 꿈을 꾸는 무리들이 하나건너 하나일 정도인데 누가 누구를 위하여 부끄러워 해야 할지 모를 시대입니다. 주고싶어도 줄 수없고 듣고싶어도 들을 수 없는 우리의 습관과 굴레 벗어던지지 않고서는 세계 어느곳에도 없는 이 현실을 호소하기도 부끄러운것임을 먼저 알아야 할것 같군요 더욱이 동족의 개념이 희미해져 가는 이 세대에서 말입니다.

박성실 2011. 10. 20. 오후 01:39

저는 어떤 이유를 붙인다하여도 배고픈 이에게 쌀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중요하고 살아갈 권리가 있으니까요. 호소하는 것 조차 부끄러운 현실, 맞습니다.

별안개 2011. 10. 23. 오후 05:42

그냥 파르르 떨리는 시선처리, 어떻게 내가 나를 다스려야할까요... 오랜만이지요...왠지 정겨움으로 다가서는 박성실님. 부족한 저는 그저 가을빛이 너무 고와 여기저기 길에 널린 행복을 주우려고 했더니, 이렇게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그 안에 길게 머물고 급히 반성하고 가요....

김문숙 2011. 10. 25. 오후 02:26

백원에 딸을 파는 글을 언제적도 읽은 적이 있었지요. 그래요 사랑하는 딸 죽이기 보다는야 한 번 이라도 제 손으로 무언가를 한 번이리도 더 먹여 주고 딸을 먹이어 살릴 사람에게 파는 어미 심정 !!! 이건 우리들 피부에 닿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르르 치를 떨고 가슴에 피멍이 들고 종내는 가슴아픈 눈물이 흐르지요 그런데 아세요? 우리는 더 더욱 중요한 것을요 딸의 생명 그 보다도 더 허잘 것 없는 것에 팔아 넘기는 아픔과절망에 대해서는 마취된 채 모르는 척 살아가지요.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 어떤이는 죽음을 어떤이는 피를 어떤 이는 통곡을 어떤 이는 부활을 --- 게다가 , 믿는 다고 외치면서 애써야 할, 정작 반드시 해야 할, 믿는 자가 지켜야 할 도는 실종된 이 부패 -- ---

김현배 2011. 10. 25. 오후 11:52

살아가면서, 어디선가 들리는 물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개선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북한의 현실에 대해 우리가 당장 어찌할 방도는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위치에서 통일로 가는 길을 경주한다면, 어느샌가 평화로이 물소리 들리는 벌판에 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성실 2011. 10. 28. 오전 09:47

별안개님, 의 표현은 항상 뭐랄까, 작고 예쁜 별 같다할까요? 얕은 바람이 스칠때도 그것을 다 느낄 수 있는 민감한 그런 별 누가 이런 이야기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있을까요? 누구나 엄마가 있으니 말이예요. 아이를 낳고 나니, 더 와 닿는 것이 사실이고요.

박성실 2011. 10. 28. 오전 09:49

부패. 얼만큼 몸부림치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다른 기준에서 부패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이 요즘 제가 가지고 있는 의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북한에서 100은 우리돈으로 30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엄마의 치마를 끌어 앉고 울었을 딸을 생각하니 그저 아플뿐입니다.

박성실 2011. 10. 28. 오전 09:50

통일로 가는 길, 분분한 의견은 아마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겠죠. 한 가지 길을 선택하라 선동하는 것, 서로 비난하는 것, 그것이 정말 공산당이겠죠. 그런데도 요한갈퉁의 책 제목처럼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는 하염없이 어렵고 포기하고 싶으니, 저는 참 미약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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