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옮겨온 글
<특별기고> 정종암 칼럼니스트. 前 정당 대변인/문학평론가.시인,수필가
2011년 11월 25일 (금) jja-news@nate.com
요즘은 시인(이하 수필가 포함)들이 길에 밟힐 정도로 넘쳐 난다. 전국민이 작가인 듯한 작가공화국을 연상케 한다. 무지한 탓이었는지 편법에 능하지 못함인지 3년 연속 신춘문예 본선에 오르고도 번번히 실패하다가 125편이나 쓰고는 겨우 등단한 필자 역시 시인이란 반열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 결코 명시인만은 아니다. 등단시 언론의 조명을 받을 때에는 멋 모르고 잠깐 우쭐했던 것조차 부끄럽다. 졸작이지만 두 번이나 시집을 내고도 이제는 너무나 '부끄러운 시인' 이란 이름일 뿐이다.
금년도부터 주변의 두 남녀로부터 '시인' 이 되고 싶다는 의뢰를 받았다. 작품이 되면 추천하여 심사하겠다고 다섯 편 이상을 보내라고 했지만 다들 두 편밖에 보내오지 못했다. 그들은 더 이상의 작품이 없다면서 평하는데 너무 깐깐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곳에서는 등단시켜 준다고 아우성인데 왜 그러냐는 식이다. 등단하는 게 그렇게도 쉬운 모양이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지만, 마구잡이 등단만은 안 된다는 평소시의 소신을 무색케 한다.
그러나 둘은 얼마 전 '시인' 이 되어 있었다. 몇 번의 강의 끝에 누군가 자기 시를 고쳐서 등단시켜 주더란 것이다. 책값, 심사비 명목으로 사례비도 지불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함에는 철저한 검증도 없은 게 뻔하기에 모자란 듯한 시인이 모자라는 새끼시인을 배출한 셈이다. 세상에 시인으로 등단하는 길이 그렇게도 많은지, 하나의 까페에 불과한데도 여러 곳에서 '등단을 시켜 주겠다' 고 쪽지를 보내오는 웃지 못할 일도 번번히 벌어진다. 이러한 '전국민의 시인화' 에 앞장서는 이들의 행위는 가관이다. 부단한 노력과 명작을 창작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떼거리로 어울려 다니며 '나 시인이다' 이기에 올곧은 작가까지도 일반인들로부터 외면받는 사태에 이르렀다.
일부 시인들은 산을 깎아 이 지구상 대한민국에만 있을 법한 '시비(詩碑)동산' 이란 이름하에 작품 하나 비평을 받아보지도 않은 채 자비로 비석까지 세운다. 산 자의 비석이 공동묘지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 우습지 않나. 하나의 조형물 앞에 엉덩이를 까발린 채 천지신명께 소원이라도 빌듯이 절까지 하는 이도 있다. 엄동설한 속 '월하(月下)의 공동묘지' 에서 걸레로 청소까지 하는 정성을 다한다. 살아생 전에야 자신이 정성을 다 할 수 있겠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을 시비를 그들의 사후에는 염라대왕의 사제들은 물론 성묘조차 않으려는 후손들이 돌보지 않을 것은 뻔하다.
이러한 이들은 기고 시 고료를 받기는커녕 도리어 홍보비조를 지불하고 자신을 대단한 시인인 것처럼 각색하기도 한다. 문학지나 동인지 발간에는 대체적으로 시와 수필만이 차지한다. 소설이나 평론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시인이기 전에 평론가로써 감히 비평해 보면 아주 형편 없는 문학지가 많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심지어 어느 문학지는 소설 부문 신인상 작품이 수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낯이 화끈거리는 작품도 더러 있다. 도대체 문학지 발간이 아니면 그 많고 많은 직업 중에 그렇게도 할 일이 없나. 그러고도 그 신인상을 덥석 받는 이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자칭 'XX문학' 이란 이름하에 문학지 발간을 한다면서 기고 의뢰가 들어 온 적이 있다. '일기인지 수필인지 또한 현대시조인지 자유시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작품도 버젓이 기고되어 편집을 하는 중이었다. 시와 수필 작품이 부지기수로 많지만 허접한 듯한 문예지에 기고하는 자체를 주저하기에 꺼리는 편이다. 그러한 나머지 동류의 작품에는 함께하는 게 싫었기에 표절될 우려로 그동안 발표를 미루었던 원고지 100매가 넘는 평론을 안면상 마지 못해 보낸 적이 있다. 무료 기고도 은혜를 베푼건데 발간하고는 출판비를 청구함에 어이가 없음을 겪는다.
많은 문학지가 있어야 하나. 자신의 일천한 필력을 숨기고 등단 대열에 동승해야 하나. 누구나 시인일 수 있다. 그러나 등단은 아무나 시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학지 지탱과 패거리 확장을 위해 질 낮은 작가 배출은 독자들로부터 외면만 있을 뿐이다.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자체 문학상에 외국의 저명한 시인 이름을 차용하여 명작가인 것처럼 독자들을 속이기도 한다. 정작 자신들은 한 줄의 글도 읽지 않으면서 패거리 문화에 젖어 '나 시인이다' 고 외쳤을 때 일반인들은 콧방귀 뀌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만의 놀이패' 는 즐거운 모양이다.
진정한 작가라면 죽어서도 작품만으로 말할 뿐이다. 창작에만 몰두할 뿐 문학계를 대표한다는 양대 단체에 회원가입 자격이 되어도 가입조차 않는 작가들도 많다. 패거리 문화와 마구잡이 등단은 물론 노년들의 추한 감투싸움에 얼룩진 단체로 변질되었음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올곧은 창작에만 몰두할 때 죽어서는 문단계의 역사가 \"대한민국 작가였다\" 고 기록되고 평가하지 않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많고 많은 '너도나도 시인' 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文)으로만 말하는 자세를 가지자.
댓글 6개
개인시집5권을 내고도 항상 조심하는게 나의 詩作의 마음이다. 시를 쓰면 쓸수록 시인이된 것이 부끄럽기만한 마음은 없어지지를 않는다 바로 시창작이 너무 어렵고 힘드는것 같다.그런데 시인은 정말 많이도 태어나는 현실이다. 어떤 문단에서 한 동안 심사를 본적이 있다. 그 중에 도저히 안된다는 사람이 어느새 시인이라는 명함을 보란듯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것을 보며 \"참\" 소리를 내면서 심사를 그만 둔 적이있다. 위의 글은 근래 같은 마음으로 글을 올려놓은 것을 검색에서 보고 정종관 평론가의 심정을 알것같아 행여 여기도 공감을 갖고 참고가 될것같아 올려 봅니다. 많이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음... 차마 눈뜨고는 보기 싫은 그런 폐단들을 볼 때마다 거룩한 성전에서 순결한 비둘기를 사고파는 자들 같아 보입니다. 때를 따라 온몸을 뒤덮은 허물을 벗는 뱀처럼 지혜롭고 태어날 때부터 하늘에 속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들, 머잖아 그 모든 상을 둘러엎는 불 같은 바람의 역사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갈 날이 올 것입니다.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은 수정되어야 하니까! 그런데 그래도 끝까지 멈추지 않는 자들이 있자나요 왜? 발등에 쌓인 숱한 고민의 티끌은 언제든지 떨어버리면 그만일 뿐이죠. 마침내 허무의 가루로 부서지는 심장으로는 결코 살아 숨쉬는 생명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도 무엇이 부족하여 더욱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강퍅한 이들에게 어울리는 환경은 망각의 골짜기에 흐르는 공허한 환상 뿐이려니,
김시월님 글 좋습니다. 허무의 가루로 부서질 부정한 사람들 다시 저 밑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그들을 믿어봅니다
한알의 겨자씨만큼의 올곧음이 있었다면 공허를 심는 일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겠지만 무엇이 명예인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정의로 추대되는 현실이 아프기도 하지요 물론 어느 시야로 보면 나 역시 같은 부류일지는 모르지만 가슴은 늘 먹먹 합니다. 답글 감사 합니다.
도대체 언제쯤? 그런 일이 나타날까 궁금한 분들에게, 바로 지금! 이미 오래전부터 잘못된 관행과 폐습으로 인한 온갖 부조리한 내용에 관하여 수정과 삭제를 거듭하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진보하는 역사의 모퉁이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가슴과 가슴으로 통하는 뜻이 맑고 깨끗한 한결같이 참 아름다운 그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피 끓는 심장의 일편된 너 나 할 것 없이 따로 또 같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순간에서 영원까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자신의 과오를 뉘우쳐 수정할 줄 알았던 본디 선한 베드로와 같은 심장은 결국 믿음의 향기를 발하고 그저 말로만 주를 섬기며 달콤한 키스로 양심을 팔아먹은 가룟유다와 같은 심장은 배반의 향기를 발할 뿐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록이 어떻게 남겨지는지 아십니까?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갈수록 더욱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는 우리의 마음 창가에 오직 행함과 진실로서 눈부시게 환한 빛의 그림자로 남겨지는 기록 외에는 그 무엇도 영원한 기록으로 남지 못할 것입니다. 흐린 기억 속에 잊혀질 기쁨은 도리어 슬픔이 되고 뚜렷한 기억 속에 추억될 슬픔은 도리어 기쁨이 되리니, 누가 알겠습니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어도 끝내 모를 사람은 알아도 못알아먹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며 살다 가는 인생을 두 번 살 자 누가 있답니까?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다고 착각하고 자빠지는 사람들, 손바닥 위를 헤매는 쥐며느리처럼 손끝 모르고 지나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도대체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반갑습니다. 위 글쓴이입니다. 감히 저가 작가이기 전에 비평가로서 한번 읊조리지 않을 수 없어 2개 언론에 기고한 것이 여기에서 서로 한국문인들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모습들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글은 지난 1.5자 3,000부 발간한 졸저인 시사평론집 <보통사람들의 아름다운 도전>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 대한 99%이상이 찬동하고 있습니다. 정말 개개인이나 단체를 보고 이래서는 안된다는 관점에서 필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건강과 문운이 함께 하시길 빌면서... 栢山/정종암 드림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