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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필과 중용

최다원 2012. 03. 04. 오후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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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필과 중용//최다원 붓을 운용하여 글씨를 쓸 때 붓의 관을 다섯 손가락으로 잡고 써야 한다 筆(필)은 대나무(竹)를 (붓(聿)) 다섯 손가락으로 잡는다는 뜻이다 붓털의 毫(호)를 삼등분으로 나누어 붓의 끝부분인 三분의 一을 다시 三등분하여 맨 아랫 부분인 筆峰(필봉)은 骨(골)을 만들어 주고 바로 위 부분은 筋(근)을 형성하며 그 위 부분은 肉(육)을 만들어 주기에 筋(근)과 肉(육)의 사이에선 자연스레 血(혈)이 형성된다 붓의 나머지 삼분의 二 인 위 부분은 먹을 담았다가 보내주는 저수 역활을 하여 筆劃(필획)이 형성됨에 무리가 없도록 먹물을 흘려준다 필획의 끝 부분인 필봉이 획의 가운데를 지나가야 하는데 이것을 中峰(중봉)이라 한다 중봉으로 쓰여진 글씨는 힘이 있고 氣(기)가 느껴지며 골과 근과 혈과 육이 적절히 있어 비로소 活(활) 살아 있는 획이라 할 수 있으나 필획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골이 한쪽으로 몰리고 근도 혈도 형성되지 못 하기에 붓을 세우지 못하면 偏峰(편봉)이라 하고 죽어 있는 필획 이라 한다 가장 살아 있고 힘 있는 필은 錐劃沙(추획사) 나 屋淚痕(옥루흔) 으로 써야 한다 추획사란 송곳으로 모래위를 힘차게 가름을 일컫는 말이고 옥루흔이란 담벼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의 흔적을 말한다 담벼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중앙으로만 따라 흐르는 성질이 있어 중봉과 비견되기 때문이다 中峰(중봉)으로 써야 힘 있고 살아있는 필획을 얻듯 우리가 살아 가면서 추구해야 할 中庸(중용)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중심의 마음이 아닐까 어느 자리에 있든 쌓아 올린 명성에 그 사람을 망침은 편견과 오만이라 했다 욕심과 물욕과 명예에 치우침이 없이 중용의 마음과 분별력으로 날마다 비우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놓고 비우고 베풀고 나누고 난 후에 저절로 쌓이는 것은 인격과 품위 그것은 인품일 것이다

댓글 3개

김문숙 2012. 03. 04. 오후 10:09

상당히 전문적인 이야기로군요. 배우고 갑니다.

박종영 2012. 03. 06. 오전 10:34

붓의 기능과 철학적인 의미 중용의 세계관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최시인님, 건승하십시오.

김현배 2012. 03. 06. 오후 11:19

치우치지 않는 理性 대상을 편견없이 볼 수 있는 기초이겠다 제대로 보면 문도 열릴 것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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