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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에서

박성실 2012. 03. 22. 오후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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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에서
= 박성실
 내가 처음 그들을 본 것은 가을이 시작되던 어느 날이었다. 몸이 별로 안 좋았던 나는 회사에서부터 줄곧 폭신한 요 위로 기어오르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6시 반경 상계역은 당고개행 전철이 토해 낸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개찰구를 빠져나와 육교로 들어섰다. 거기에 그 남자가 있었다. 시선을 멀리 보낸 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가 뒤집어쓰고 있는 절망이 내 안에서 넘실거렸다. 돌아섰다. 그곳에 남자를 막아 앉은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남자 앞에 앉아 판매용으로 조달해 왔다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해 보이는 분홍색 신데렐라 머리끈과 백설 공주 머리띠를 차가운 돗자리 위에 어지럽게 늘어놓고 있었다. 발길을 돌렸다. 마음이 조금씩 늦게 따라 왔다. 현관을 들어서자 세 살 난 아이가 엄마를 부르며 달려 나왔다. 아들을 안으면서 나는 그들을 잊었다.

  1981년 내 나이 세 살이 되던 해, 불이 났다. 지하실에 내려갔던 아빠는 미쳐 빠져 나오지 못했다. 집은 불속에 사라졌고 아빠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젊고 잘나가는 사업가였던 아빠는 부모님과 더불어 아내와 딸 셋과 다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불이나자, 동업하던 아빠의 친구는 도주했고 아빠에게 빚을 내줬다는 여럿이 찾아와 엄마에게 차용증서를 내밀었다. 당장 타버린 집값은 빚 갚는데도 모자랐다. 그뿐인가, 전세 보증금이 50만원이던 시절, 병원은 화상부위를 소독하는 비용으로 매일 12만원을 요구했고 결제 없이는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빚쟁이들이 돌아간 집터에 앉아 여섯 살, 세 살, 한 살이던 우리를 보며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동생은 고모네로 보내졌고 나머지 식구는 중계동 언덕배기, 현숙이 언니네 문간방으로 이사했다. 엄마는 매일 같이 경찰서 매점으로 출근했다. 나는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다가 붉은 해가 의성이네 앵두나무에 걸리면 집으로 돌아와 아빠 옆에 앉아 요술공주 밍키를 보았다. 그러면 엄마가 돌아왔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따듯한 그 품에서 나는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라고 생각했다. 요술공주 밍키처럼 세상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그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미 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노파는 물건을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서그러운 미소로 물건을 사람들에게 내 보였지만,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몇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 머리끈을 보고 있었다. 안심이었다. 달라진 것은 그뿐 아니었다. 남자가 한걸음 당겨 앉아 노파 옆에서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그 후 그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그가 혼자 나와 있었다. 그는 홀로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신데렐라와 백설 공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이동 소재의 의원 물리치료실에 취직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나는 조금 일찍 도착했다. 물리치료실 선배가 아직 오지 않아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편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9시가 되자 환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능숙하게 침대에 누워서 선배를 기다렸다. 나는 섣불리 무엇을 하기가 주저되어 선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날 아침 원장님은 선배를 불렀고 돌아온 선배는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말했다. “원장님이 내일부터 나오지 말래.” 이게 무슨 말이라는 말인가, 나는 그 길로 원장실을 노크했고 이것도 계약인데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부당하니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을 더 일했다. 토요일 낮 다시 들어간 원장실에는 볕이 잘 들었다. 흰 가운을 입은 그가 볕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 흰 편지 봉투에 담긴 25만원을 내밀었다. 봉투를 건네받은 나는 말없이 인사 했다. 내가 나오자 그는 선배를 불렀다. 그는 선배를 통해 나에게 더 나와 줄 수 있는지 물어 왔다. 선배는 분개했다. 그리고는 절대 안할 것이라 대답 했다며 그의 악덕함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다. 우리는 씁쓸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나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나를 저만치로 밀어내는 것 같았다. 내가 꿈꾸던 분홍빛 세상에서 나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공주가 되어야 마땅했지만, 처음 내가 만난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현실의 벽은 높아만 보였고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도 고민이었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일주일간 수백 번 고쳐 쓴 시나리오는 허망했다. 결국 25만원을 든 봉투를 던지듯 부모님 앞에 놓으며, 원장님이 더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에 틀어 박혔다. 밖으로 나가 당장 다른 일을 구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났다.

 그날도 나는 방안에 누워 있었다. 퇴근한 엄마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내가 쳐다보자 엄마는, “인생 살다 보면, 힘든 순간이 있다. 그것이 한 번일 수도 여러 번일 수도 있다. 힘내라.” 글쎄, 사회 초년병의 패잔을 위로하는 말치고 이 말은 상투적이었다. 조금도 특별하지 않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를 쳐다 볼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네’라고 대답했다. 나는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갔다. 물이 ‘쏴-’소리를 내며 세면대로 쏟아졌다. 일순간 내 가슴에 들어찼던 순간들이 물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에 내가 있었다. 나와 꼭 닮았다던 젊은 날의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나를 향해 서 있었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가슴에서 요동쳤다. 물이 하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며칠 만에 나타난 노파는 부쩍 야위어져 있었다. 남자는 무슨 일인지 뒤편에 앉아 있었다. 노파의 시선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따른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손을 뻗어 아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노모가 다시 세상을 향하여 돌아앉는다. 그리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위에 흐트러져 있는 분홍빛 신데렐라 머리끈과 백설 공주 머리띠를 정성껏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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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곳에 썼던 시를 수필로 풀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창고에서 글을 끄집어냈다.

댓글 10개

김현배 2012. 03. 22. 오후 03:25

분홍빛 신데렐라 머리끈과 백설공주 머리띠의 꿈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네요 소중한 꿈, 이어가는 행복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박성실님

박종영 2012. 03. 23. 오전 05:53

오랜만에 뵙습니다. 안녕하시지요? 한동안 이곳 사이트에 글을 주지않아서 거시기 했는데 좋은 글로 찾아주시어 감사합니다. 언제부턴가는 몰라도 이곳 문학의 향기 코너가 어지러운 글들이 올라와 난삽해서 그런지 몰라도 2005년 초창기 부터 좋은글을 올려주시던 유민자 작가님, 미오새 시인님, 최인구 시인님, 정채균 시인님 박성실 시인님, 윤고방 시인님,포아풀 시인님의 글이 보이지 않아 섭섭하기도 합니다. 봄이 왔는가 했는데 다시 춥습니다. 이 봄에 늘 건강한 시간 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박성실 2012. 03. 23. 오전 09:41

늘 관심 감사합니다.

박성실 2012. 03. 23. 오전 09:44

예 제가 일도 일이지만, 사실 다른 걸 좀 써보느라 정신이 없었답니다. 틈틈히 와 보겠습니다.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그 인사가 저도 그리웠네요. 건필하십시오, 박종영님

미오새 2012. 03. 23. 오후 12:50

*성실님.. 모퉁이는, 초라한 좌판을 벌린 노파를 바라보는 하나의 풍경이기도 하지만, 생존의 처절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지난 시절로 돌아가는 기억의 길목 같기도 해요. 세살적의 사건을, 세살 아기를 둔 엄마가 되어 잿빛하늘같은 우울한 현실에 대비하여 풀어가는 섬세하고 객관적인 표현이 돋 보입니다. 공주와 왕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일텐데, 분홍빛 꿈과 현실은 왜 괴리가 클까요. 거리의 모퉁이에서 삶이 버거운 사람들을 매일 만나면서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자연도 봄맞이 대청소를 하는것 같지요. 계절의 한 획을 긋는 비가 내리는걸 보면... 창밖의 빗소리에 기분은 가라앉았지만, 이제 생각속에 새겨진 성실님의 웃음소리 떠올리며 혼자 웃을 수 있을 만큼, 그 웃음소리에 중독 되어가는 것 같아요.

박성실 2012. 03. 23. 오후 01:41

네 미오새님, 글의 맥락을 정확하게 짚으셨네요.제 속을 훤히 읽으셨네요. 이제 비평가 하셔도 좋겠어요! 이 글은 작년에 써두었던 것인데, 사실..(귓속말: 모 잡지 공모에 당선되기도 했었답니다. 운이 좋았어요... 이차저차 등단 하지 않겠다고 해서 당선자자 없음 공고를 내게 만들었던;; 후회돼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보이는 세상이 넓어졌네요. 웃음소리! 혼자 웃으실 수 있담, 더이상 제 것이 아니네요. 계절의 한 획을 긋는 비' 라는 표현 멋집니다. 정확한 표현을 만났을 때의 반응 1. 시원하다 2. 내가 먼저 저 표현을 썼어야 하는 건데 미오새님 다녀가신 시간, 갑작스런 상사의 지시로 회의안을 만드느라 점심 먹으러 못 나갔더니, 커피 탄답시고 부은 물에 숟가락을 넣고 마구 마무 저었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발칙한 상상을 하네요. 소리도 지르고 뭔가 잡고 흔들다 놓는.. 그러다 혼자 웃었습니다.

김현배 2012. 03. 23. 오후 02:00

우리 모두는 고단한 삶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는 신데렐라 머리끈으로 상징되는 공감이란 희망은 어느새 흐르고 흘러 모두를 어루만진다 좋아요

미오새 2012. 03. 25. 오후 04:25

*박작가님.. 어쩐지 글을 읽으면서 \"성실님\"이나 \"지원맘\"보다는 박작가가 더 어울리는 호칭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는 귓속말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없겠지요. 휴일 오후...엄마랑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을 지원이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박성실 2012. 03. 26. 오전 10:41

좋다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 희망이라는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고단한 삶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들춰내고 싶지 않은 날들이 더 많습니다. 공감을 하셨다니, 님 안에도 고단함과 희망이 있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그 마음은 제 글이 아니라 님의 것입니다.

박성실 2012. 03. 26. 오전 10:54

어머 왜 이러세요, 저는 그냥 이웃집 아낙입니다. 오늘 아침 햇살이 자꾸 저를 꼬득이네요. 나가고 싶어요, 사무실에서.. 그러나 나가도 갈 곳이 마땅이 없고, 심술궂은 매선 바람에 시계만 보다 돌아올겝니다. 그래도 봄은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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