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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3. 의지적 운명관)

박상덕 2012. 06. 22. 오전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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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우주기원론과 창조신화)


- 3. 의지적 운명관 -
우리가 사는 곳은 어디냐?
자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실재하는 세상이다.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신들이 노니는 영지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⑴
신의를 지키며 정직하고 양심껏 잘하는데 기대만큼 안 된다거나
거꾸로 대충대충 적당히 눈치껏 해도 생각보다 잘 되는 것이
안 믿거나 적당히 믿는 척해서 벌 받아 그랬다거나
아주 잘 믿어 복 받았다고 한다면, 어찌 황당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자애로운 하늘은 우리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어 정신이 나날이 더 맑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하늘이 크게 되라고 하는 말씀의 요지이며, 베풀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큰 은혜이다.
장사하는 곳을 보면 좋은 말씀을 써서 잘 보이도록 벽에다 걸어 놓은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착각하여 우리가 신의 세계에서 사는 줄 안다. 이는 열심히 살라는 덕담일 뿐이다.
하늘이 할 일이 없어 인간세상까지 내려와 간섭하겠는가. 그건 무당신이나 하는 도깨비짓이다.)

이는 신본주의 시대에 하나 뿐인 정서원리(整序原理)에 가둬진 상태에서
끝없는 최면에 취해 관념의 노예가 되었을 때나 통용되던 얘기가 아니냐.
그러니 믿느냐 안 믿느냐를 떠나서 하늘의 섭리라고 해야
결과가 맘에 미치지 못할 경우나 다르기라도 할 때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수긍이라도 할 수 있고
더욱 중요한 '누구에게나 맞는 열린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엔 믿음으로 설명 되는 것 이상으로 다른 경우가 훨씬 많다.)

물론 무한한 하늘을 인간이 알 수 없기에 더욱 그렇게 여기게 된다.
그러니 상식에 맞춰 그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인줄 알고
잘 돌아가는 중에도 순리를 역행하듯 놀랄 일이 비일비재하여
잘난 사람이 미끄러져 떨어져도 견디며 이겨낼 수가 있고
처진 사람이 올라가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좋고 나쁜 것에 반응하는 것은 누구나 갖는 인정이다.
예로 든 두 가지 경우의 뒤풀이를 보면 확연히 차이를 알 수 있다.
안 된 쪽은 재수가 옴 붙었다고 투덜거리며 애꿎은 곳에 화풀이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강 물속엔 돌마다 사연이 가득하다.⑵
심사가 우울할 적에 잘못된 인사들처럼 빠질 생각일랑 말고
그 옆을 거닐며 큰소리로 이렇게 내질러라.
뭔가 꽉 막혔던 체증이 단숨에 사라질 것이다.
\"한강아! 너는 알고 있겠지.
그 깊은 물속에 통절하고 원통한 사연들을 숨기고 있을 뿐이지,
너는 다 알고 있을 거야.
밑바닥에 널려 있는 돌 하나마다 우리의 못다 푼 한(恨)들을
한 가지씩 품고 있을 거야.
한강아! 네가 좋아하는 돌 하나 여기에 있다.
피 맺힌 한을 맘껏 담을 큰 그릇이다. 네게로 던져주마.\"
그래도 안 풀리나?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생각하기 나름을 말한다.
그러니 긍정적으로 보고 딴 곳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매사를 그렇게 하면 가슴을 조이던 압박감에서 해방될 것이다.
옛날 일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莫我知也夫)⑶'하며
세상을 돌기만 하던 성인도 있었다. 그래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남이 알아 줄만한 능력을 기르려고 힘써야 한다.⑷'고 했다.
아리송한 게 세상일이라고 광고하듯
잘 된 쪽은 살맛난다고 환호하며 인생 역전의 진한 감동을 만끽한다.
'은혜의 빛이 세상에 넘친다(恩光衍世)'
어디에서 듣기도 많이 들었던 말투로 난리법석을 떤다.
물론 화풀이로 돌 던질 일도 없고, 조이던 가슴도 확 터졌다.
\"윗동네 김가네 둘째라며! 개천에서 용 났지 뭐.\"
남의 일인데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난다.
이런 기쁨도 예전에는 가끔씩 느꼈는데, 반가운 소리도
요즘 세태에선 로스쿨처럼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
그마저도 힘들게 되었으니 시류에 따라 맞춰 산다 해도 안타깝다.
몇 푼의 시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어설 기회가 뒷받침 되어야 옳다.
사람들은 이익이 난다면 비호같이 달려들고, 손익에 울고 웃고
의도에 거슬리면 분통을 터트리며 한탄을 하기도 하지만
세상은 산술(算術)처럼 되지 않고도 어김없이 돈다.
어느 경우는 경우라고 할 수도 없는 황당한 일도 있다.
올바르게 산자가 요절하는 것도 세상이고,
천벌을 받을 자가 천수를 다하는 것도 세상엔 흔하다.⑸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달라도 너무 달라
수천 년을 내려오며 역사에도 오르고 성인의 말씀에도 올랐다.⑹
재미있는 일도 있고, 깜짝깜짝 놀랄 일도 상상외로 많다.
슬프고 괴로운 일이 거의지만, 웃을 일, 보람된 일도 대문 밖에 널려있다.
이게 다 이승을 사는 인간이 짊어져야할 많은 것들이다.
좋든 싫든 운명으로 받아들여야할 것들이다.
이승을 잠시 들렀다가는
정거장쯤으로 여기는 삶은 어떨까?
인간을 규범의 틀 안에다 완강하게 가두고
하나의 가치만을 종용하는 종교에서는 흔한 교리의 하나다.
지나가는 나그네거나 뜬 구름 정도로 여기니 정을 줄 리 만무고
세상 살며 부딪치는 일에 진정성이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내세에는 이승에서 하기 나름으로
화려한 팡파르가 기다린다고까지 했으니 더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승에 부정적인 의식을 가지면 삶은 비공리적이 된다.
존재계로부터 받은 그대로만 인정할 뿐이니 그것에만 매이고
하는 행위는 모두 피동적인 인식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무감은 오직 한길로만 연결하여 생각하고
행복이나 불행도 한순간의 구름이니 그의 몫이 아니게 여길 것이다.
그게 신념이라면 나름의 기준대로 신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가 세상에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의미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도달할 목표는 왜곡되고, 사는 목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걸 진정이라고 믿는다. 안타까운 삶이다.
인생백년이 부평초이고, 뒤끝이 있는데 뭔 미련을 두느냐는 삶이다.
하지만 허무를 소중히 보는 귀허(貴虛)는 아니다.
귀허는 이승을 귀히 여기는 또 다른 형태의 삶이지
이승을 둘렀다가는 나그네로 보는 부정적인 삶은 아니다.
옛 말씀에 '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눈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고,
물을 건너면서도 젓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⑺고 했는데
이승이 딴 데냐? 헛짓하지 말라고 자꾸만 휘저으니 근질근질하다.
어떤 이는 이렇게 살았다.
'내 명은 내게 있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我命在我不由天)'
당돌함과 불굴의 용기와 옹골찬 기개가 치열하다.
'천길 바위틈을 뚫고 솟아나와, 구강(九江)에 이르러 배를 띄운다.
(瀉從千仞石, 奇逐九江船)'는 시를 지어 앞으로 할일을 다짐까지 했다.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설계하고 실천하였다. 운명에는 투쟁적이었다.
짐승처럼 제 것만 위해 살지 않았고, 내세의 세계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이는 인간의 존재이유를 무엇보다 존중하고,
오직 이승의 삶을 어느 것보다 귀히 여기며 살려는 삶이다.
당연히 내 몫으로 주어진 이승은 소중한 삶이기에 더욱 열성적이었다.
주어진 운명이라고 흐르는 강물처럼 내맡기지 않고 맞섰다.
양심에 비춰 옳다고 판단되면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가진 것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나눔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인본(人本)을 중시하는 긍정적인 생각은 항상 진취적이었고,
성실을 다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게끔 삶을 이끌어주었다.
그는 《다경(茶經)》을 저술하기 위해 남북으로 수만리 길을
산간오지, 고산준령도 마다 않고 수시로 답사하였다.
평생을 그 일에 바쳤던 그는 어느 날,
'아! 하늘이 만물을 낳아 기르는 데에는 모두 지극히 오묘한 이치가
들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만 얄팍하고 하기 쉬운 것만을 취하려 한다.
(於戲! 天育有萬物, 皆有至妙, 人之所工, 但獵淺易.)/《다경》「六之飮」'
그 만큼 하늘에 감사하며, 역경을 마다않고 최선을 다해 산 인물도 드물다.
그는 진심으로 하늘의 고마움을 알았고, 진정으로 하늘을 경외하였다.
그는 다성(茶聖)이라 추앙받는 육우(陸羽, AD 733∼804)⑻다.
신분계급이 뚜렷한 봉건사회에서 부모조차 모르던 고아출신이었다.
사람은 운명대로 한평생을 살아도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서 일생의 족적이 달라진다.
마음은 생각을 품어내고, 행위는 생각에 의해 좌우된다.
마음인 정신에 의해 행위가 정해지니 이는 작의(作意)라 한다.
그러니 정신이 매우 적극적이고 동시에 자발적이면
이때는 긍정과 능동인 삶일 때로 용기 있는 강직한 모습이다.

(고난의 시대에 고통과 검열의 위협에 희극을 연출하며 '교만의 잣대'에 굴복해야 했지만,
실험정신과 창조의 진실을 옹호하며 영롱한 보석으로 빛을 비추는 피렌체의 선구자 갈릴레오와
변혁의 새 시대에 창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우주기원론을 주장한 스티븐 호킹이 좋은 예이다.)

반면에 정신이 겪게 되는 위치에 서있게 되면
이때는 부정과 피동인 삶이니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행동이 된다.

(맹목으로 신앙을 갖고, 맹신에 빠져 제 조상이나 민족도 제쳐놓는 헛된 신념 자들이 좋은 예이다.⑼)

정신이 자유롭게 올바른 관념을 가지면 필연적으로 행동이 따르지만
반하여 구속적이거나 적절하지 못한 관념에 빠지게 되면
정신은 필연적으로 겪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신을 어느 것에다 매여 놓으면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어찌해야할까?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지만
주어진 운명을 나름으로 해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운명이 소리 없이 계획을 세워놓은 후에는
예정에 따라 끝날 때까지 이끌어줄 것인지
진행과 결과까지 각자에게 지워 줄 것인지
결정을 보류하고 기다린다면
스스로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하늘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러니 매이면 매인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하기 나름에 달렸다.
'운명이란 내가 하늘로부터 받아 타고난 것이요,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다.
(命者, 我之所受, 而有者也.)'라는 의미에는 그런 뜻도 담겨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바른 것이라면 얽매인 사고에서 벗어나 최선을 다해라.
운명의 이면에 감춰진 자유를 찾는 것, 결코 수월하진 않겠지만,
최선을 다하여 사는 자에게는 분명코 주어지는 영광일 것이다.
하늘도 배려하고, 바름의 표징을 번쩍이며 힘을 보태주지 않는가.⑽


* ⑴ 설화나 신화는 그 추구하는 목적을 위하여 우리의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특별한 것들로 채워지고 이뤄지는 형태를 갖춤으로서 내용이 우리의 인식세계를 벗어나거나 비합리적이거나 이치에 맞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중요하게 여기는 권선징악의 방법이나 형태도 다르며, - 지옥을 뜻하는 헬(hell)이란 단어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여신 헬(Hel)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헬은 악한 자가 가는 곳인 얼어붙은 하계(下界)의 지배지이다. 활활 불타면서 영원한 고통을 주는 그리스도교의 무저갱(無底坑,Abyss; 계 20:2-3)의 불바다와는 달리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지옥은 꽁꽁 얼어붙은 곳이다.① - 어느 경우에는 기상천외하거나 황당하게 결말지어지는 것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의 홍수이야기도 구절별로 뜯어보면 생각지 못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한 번의 홍수에 의해 생겼다는 불가사의한 것들은 현상계(現象界)에서는 불가능한 현상임에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원리는 신화 속의 요술처럼 자연법칙마저 무시하며 초현실적이었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져있다.
  단 한 번의 홍수로 거대한 골짜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나 -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을 단 한 번의 홍수로 만들 수 없다. - 극히 상세한 층의 생성이나 퇴적물이 숲의 화석의 층을 이룬 것 등은 오랜 기간을 통하여 고도의 그리고 정밀한 물리화학적작용으로 축적되지 않고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② - 최초의 진핵세포(眞核細胞, eukaryotic cell)의 화석은 14억 내지 15억 년 전에 형성된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단 한번으로 그 만한 시간대의 지층이 순간적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 이를 엉뚱한 방향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신을 욕보이는 인간의 오만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수면에 운행하시며, 첫째 날부터 시작하여 여섯째 날까지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었다. 이 일을 다른 각도에서 전체의 알고리즘(Algorithm)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을 지은 여섯째 날까지는 오직 초월적인 신만이 존재하던 신의 세상이었다고 한다면, 여섯째 날에 인간을 만듦으로서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이 열린 것으로, 신은 인간에게 세상을 물려주고, 일곱째 날부터 안식을 취한 것이다.(창 2:2-3) 그것은 일곱째 날부터는 섭리(자연법칙)만이 적용되는 세상으로 바뀌었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 ① 데이비스(Kenneth C. Davis) 著/이충호 譯, 전게서,「5장 도끼의 시대, 검의 시대/켈트족과 북유럽 신화」
- ② 켄트(Kent), 올슨(Olsen) 共著, 1992, 《Bill Hyde》, '한 번의 홍수로 어떻게 극히 상세한 층이 생길 수 있을까? 어떤 지층은 두께가 6km에 달한다. 만일 이것이 자리 잡는데 400일을 허용하고 홍수 이후의 압축은 무시한다고 해도 하루에 15m의 퇴적물이 쌓여야한다. 그런데도 암석의 화학적 성질에 따라 아주 깔끔하게 층층이 쌓였다. (예로, 수직방향으로 몇 센티미터 내에 탄소성분 비율에 따라) 격렬한 대홍수 상황에서 어떻게 하루에 15m씩 쌓이면서도 이렇게 깔끔하게 정렬이 될 수 있을까? 탄소성분이 많은 퇴적층이 10000㎢의 영역에 30분 동안 쌓이고, 다음에 탄소성분이 적은 층이 30분 동안 쌓이고 하는 식의 끝없는 반복이 가능한 일일까?'
* ⑵ 우리 속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
* ⑶ 《論語》「憲問篇」
* ⑷ 《論語》「里仁篇」,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벼슬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벼슬에 합당한 능력을 가질 것을 근심하며,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남이 알아 줄만한 능력을 기르려고 힘써야 한다.)'
* ⑸ 《史記》「卷六十一伯夷列傳 第一」, 天道無親,常與善人.㉠ 若伯夷、 叔齊, 可謂善人者非邪? 積仁絜行如此而餓死! 且七十子之徒, 仲尼獨薦顏淵爲好學. 然回也屢空, 糟糠不厭, 而卒蚤夭. 天之報施善人, 其何如哉?(천도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 하지만 백이, 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인가? 그들은 이와 같이 인과 덕을 쌓고 청렴고결하게 살다가 이렇게 굶어 죽었다! 또한 공자의 고제(高弟) 칠십인 가운데 중니(仲尼)는 오직 안연(顔淵)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推賞)했다. 그러나 회(回)는 가끔 쌀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일까?)
  盜蹠日殺不辜, 肝人之肉, 暴戾恣睢, 聚黨數千人橫行天下, 竟以壽終. 是遵何德哉? 此其尤大彰明較著者也. 若至近世, 操行不軌, 專犯忌諱, 而終身逸樂, 富厚累世不絕. 或擇地而蹈之, 時然後出言, 行不由徑, 非公正不發憤, 而遇禍災者, 不可勝數也. 余甚惑焉, 儻所謂天道, 是邪非邪?(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포악 방자하여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으나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이것은 그가 어떤 덕행을 쌓았단 말인가? 이러한 것은 가장 현저한 예라 하겠지만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이 도(道)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도 종신토록 일락하여, 부귀가 자손 대대로 끊어지지 않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 길을 걸으며 공명정대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發憤)하지 않고, 시종 근직(謹直)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화(災禍)를 당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매우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천도라는 것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 《老子》/「道德經 第79章」, '和大怨, 必有餘怨, 安可以爲善,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큰 원한은 풀어도 앙금이 남으니 큰 원한을 푼다고 어찌 선이 되겠는가. 성인은 빚 문서를 지니고 있을 뿐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 덕이 있으면 빚은 저절로 갚아지고, 덕이 없으면 빚을 억지로 받아 낸다. 하늘의 도에는 사사로움이 없고, 언제나 선한 사람 편에 선다.)'
  [解] : 큰 원한은 완전히 화해할 수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인간으로서는 불감당한 일이다. 그러니 완전히 화해할 수 없는 큰 원한을 쌓지 않도록 매양 조심하며, 쇠를 백 번 단련하듯이 꾸준히 정진하여 수양을 깊이 쌓아야하며, 당연히 홍연(洪淵)의 아량을 갖추고 세상을 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 ⑹ 중국 대륙을 이천년도 훨씬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천하를 온통 피바다로 물들였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BC 770∼BC 221)가 나온다. 그 당시 동쪽 끝의 산동성에 자리하고 있던 작은 나라인 노(魯)에는 기구한 운명을 갖고 태어난 두 형제가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노나라는 국조(國祚)가 쇠잔했던 소국(小國)이었지만, 공자(孔子)가 태어났다는 상징성과 《춘추》의 무대로서 빛이 난 나라이다. 형인 유하혜(柳下惠)①는 벼슬이 일개 대부(大夫)에 불과했지만,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큼 현명한 인물이었으며, 동생인 도척(盜蹠)은 후세에 도적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됐을 만큼 전설적인 대도적으로 살았던 잔인무도한 냉혈한이었다. - 후대에 내려오며 형제간의 처지가 그들과 비슷하면 빗대어 말하는 속악한 표본이 되었다. - 한 배에서 태어난 같은 형질의 유전자를 가진 형제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삶을 살았던 것이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는지 여러 주장이 난무한다. 달라도 너무나 다른 형제의 모습은 놀라움의 정도를 넘어서니 그럴 만도 하다. 일설에는 유하혜와 도척은 형제지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장자/도척편》에서 형제간으로 간주하고 있으므로 그에 따르는 것이 맞을 것 같고, 또한 도척에 대해서 춘추시대의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실재한 인물이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고 말하기도 하나, 《사기열전/백이편》에서 그를 실존 인물로 다룬 점을 보면 그대로 인정하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형인 유하혜는 화(和)의 덕(德)이 있고, - 이 부분은 지면 관계상 생략 - 지조를 생명으로 여겼던 인물로써 당시 노나라에서는 크게 추앙 받았던 현인(賢人)이었다. 그의 인물됨을 《논어》나 《맹자》② 등의 여러 곳에서 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상당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공자는 유하혜를 평하면서 '뜻을 굽히고 자신을 욕되게 하면서까지 말을 도리에 맞게 하고, 행동을 사려에 맞게 하였다. 이로써 일관 하였다.③'고 말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일화를 보면 그의 됨됨이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유하혜는 사사(士師) 벼슬을 하였는데, 세 번이나 면직을 당하였다. 이를 보고 어떤 이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렇게 되어도 다른 나라로 떠나지 아니 하는가? 유하혜가 대답하기를 곧은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려면 어디를 가더라도 세 번은 면직을 당하지 않겠소. 도의를 굽혀서 사람을 섬긴다면, 결코 조국을 떠날 필요는 없을 것이오.④'라고 대꾸했다. 유하혜는 군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부당할 정도로 낮은 관직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것도 영전은 고사하고 세 번씩이나 면직을 당하였다. 그러나 유하혜는 '뜻을 낮추고 자신을 욕되게 하면서까지' 그것을 견뎠다. 그리고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가능한 도(道)를 말하고 행하였다. 유하혜는 외곬로 어렵게 살았지만, 결코 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곧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동생인 도척은 극악무도하고 방약무인하여 그 악행이 천하에 떨쳤다. 《사기/백이열전》편에 보면 '그는 성격이 포악하여 날마다 무고한 사람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죽이고, 심지어는 사람의 간을 생으로 먹었으며, 또한 수천의 부하를 모아 도당을 만들고 - 《장자/도척편》에서는 9,000명 정도라고 구체적으로 기술하였으나 장자가 병사들의 숫자까지 확인하고 적은 것은 아닐 것이다. - 천하를 횡행하며 여러 나라를 뒤흔들어 놓기도 하였다. 그런 패역(悖逆)한 자가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고 개탄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가 어떤 덕행을 쌓았기에 가능했단 말인가? 과연 천도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라며 하늘을 원망하고 있다.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 억장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느꼈던 사마천이지만 어찌하겠는가. '무릇 세상의 사물은 봄에 태어나서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에 수확했다가 겨울에 저장한다. 이 천도야 말로 하늘의 가장 큰 법도이다.(夫春生夏長, 秋收冬藏, 此天道之大經也.)'라고 섭리를 강조할 뿐으로, '만일 사람들이 이 천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천하에 기강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사계절이 변화하는 하늘의 커다란 순리를 결코 버리면 안 될 것이다.(弗順則無以爲天下綱紀, 故曰 四時之大順, 不可失也.)'라는 말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였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의 독백이 허공을 가를 뿐이다.
- ① 유하혜(柳下惠) : 춘추시대 초기에 노나라의 대부(大夫)로써 성은 전(展)에 이름은 획(獲)이고 자는 자금(子禽) 혹은 계(季)이다. 녹으로 받은 식읍이 유하(柳下)이고 시호(諡號)가 혜(惠)다. 유하에서 산다고 이를 호로 삼았으며, 문인들이 혜(惠)라는 시호를 올릴 만큼 현자로 추앙받았다. 유하혜는 《논어》「미자편 第2章」에서는 벼슬길에 초연한 사람으로, 8章에서는 일민(逸民=벼슬을 놓고 낙향했거나 은거하고 있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기술되어 있다. 노희공(魯僖公) 26년(BC 634)에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그는 사람을 제나라 진영으로 보내 그 군사들을 물러나게 했다. 능란한 변설과 밝은 예절로 이름이 높아 공자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또한 직도(直道)를 지켜 임금을 섬기고 진정한 화(和)를 이룬 사람이라고 해서 맹자에 의해 이윤(伊尹), 백이(伯夷),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으로 추앙되기도 했다. 대도(大盜)의 대명사로 쓰이는 도척(盜跖)은 그의 동생이다.
- ② 《孟子》/「公孫丑章句上 第九(伯夷柳下惠)章」, '柳下惠, 魯大夫展禽, 居柳下而謚惠也. 不隱賢, 不枉道也. 遺佚, 放棄也. 阨, 困也. 憫, 憂也. 爾爲爾至焉能浼我哉, 惠之言也. 袒裼, 露臂也. 裸裎, 露身也. 由由, 自得之貌. 偕, 幷處也. 不自失, 不失其止也. 援而止之而止者, 言欲去而可留也.(유하혜는 더러운 임금한테 벼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작은 벼슬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다. 나아가서 벼슬을 하면 자기의 우수한 면을 숨기지 않고, 반드시 자기 소신대로 하였으며,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궁하여도 성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비록 내 곁에서 옷을 벗고 몸을 드러낸들, 네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꺼운 기색을 하고 그들과 더불어 같이 하면서도, 그 스스로 올바름을 잃지 않았다. 그는 조정을 떠나려 하다가도 끌어 머물러 있게 하면 머물러 있었다. 끌어 머물러 있게 하여 머물러 있는 것은 역시 물러나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③ 《論語》「微子篇」,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 ④ 《論語》「微子篇」, '柳下惠爲士師, 三黜. 人曰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 ⑺ 《회남자(淮南子)》「第10 무칭훈(繆稱訓)」, '蒙塵而欲毋眯 涉水而欲毋濡 不可得也.'
* ⑻ 육우(陸羽, 陸子羽, AD727∼804) : 성은 육씨(陸氏), 이름은 우(羽), 자는 홍점(鴻漸). 중국 다도의 개조로서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인물. 《다경(茶經)》의 저자. 출생지와 부모는 알 수가 없고, 용개사(龍蓋寺)의 지적선사(智積禪師)에 의해 11세까지 양육되었다./《신당서(新唐書)》「券196 육우전(陸羽傳)」
  '마시면 쓰나 목에서 단것은 茶이다.(啜苦咽甘茶也.)' 《다경(茶經)》에서 차(茶)의 맛을 두고 육우가 한 말이다. 그러나 어찌 차(茶)의 그 오묘함을 한 마디로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마신다는 것의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飮之時義遠矣哉!)'는 참뜻을 올바로 헤아리게 만든 육우의 정신은 겁(劫)이라 한들 지워지지 않고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후대에 다성(茶聖)이라 추앙을 받을 만큼 차(茶)에 대해 뛰어난 재주와 혜안(慧眼)을 지니고 있었던 육우가 11세 때인 天寶 元年(AD 742)에 용개사(龍蓋寺)에서 뛰쳐나와 속세로 되돌아온 것은 여러모로 보아 하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차(茶)의 역사를 말할 때, '당(唐)에서 일어나고 송(宋)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다'라고 말한다. 차(茶)를 이용한 역사야 당연히 당나라보다 훨씬 이전부터였지만, 음다의 도(道)를 세워 예(藝)로 승화시킨 당나라부터가 진정한 차(茶)문화가 시작된 시기이고, 북송(北宋)에 와서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북송말(北宋末) 채조는 《철위산총담(鐵圍山叢談)》에서 \"차(茶)의 흥행은 당나라 사람에 의한 것이고, 본조(本朝)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본조의 우능(祐陵) - 휘종(徽宗 8대, AD 1100∼1125), 《대관다론(大觀茶論)》을 저술/논자註 - 시기에 다양한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였는데 그 후로 더 이상 이루어진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기회가 달 때마다 하는 얘기다. 어떻게 차(茶)를 마시든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니 말할 것은 못 되지만, 차(茶)를 굳이 육우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음미해 본다면, 비록 차(茶) 한 잔을 마시는 간단한 일이라도 그만한 마음의 다짐을 가지고 차(茶)를 마실 줄 알아야 기본적인 소양(素養)을 갖췄다 할 것이다. 육우의 《다경(茶經)》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때에 이르러서는,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不可一日無此君), 집집마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실 거리(比屋之飮)'가 되었다는 극찬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육우의 전기를 다룬 《문원영화(文苑英華)》「券793 육문학자전(陸文學自傳)」이나 《신당서(新唐書)》「券196 육우전(陸羽傳)」 이외에 육우에 관한 많은 전(傳)을 위시하여 서(序), 발(跋), 찬(贊)등을 살펴보면 일생의 대부분이 유랑생활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국의 차(茶)산지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하였음은 물론이고, 차(茶)를 알리고, 차(茶)를 통해 수많은 인사들과 교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의형제인 경능태수(竟陵太守) 최국보(崔國輔)가 선물한 나귀를 친구로 삼았으며, 그도 없을 때는 오로지 혼자 몸으로 수십 년간의 그 엄청난 여정을 꾸려왔다. 그가 다닌 곳을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도 지구를 한 바퀴는 더 돌았을 것이다. 후대사람들은 육우가 《다경(茶經)》을 세상에 내어 놓음으로서, 차(茶)를 마실 때는 세밀하게 가려 달여 천천히 품음(品飮)함으로서 음다(飮茶)의 요체는 정미(正味)함을 맛보는데 있음을 가르쳤으며, 육우가 인간에 태어나고서부터 세상에 봄차 마시는 일을 서로 전하게 되었음은 옥항상제도 탐을 내는 청복(靑福)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육우의 일생을 보면 세속의 이(利)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참람(僭濫)하는 일이 넘쳐나는 세상에도 그는 상도(常道)를 지킬 줄 알았다. 천 칸이나 되는 큰 집이라도 밤에 누우면 길어야 팔 척 뿐이요, 좋은 밭이 수백만 이랑이라도 하루 먹는 것은 기껏해야 두 되에 불과함을 깨닫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늘 남루한 옷을 입고, 짚신을 신고 다녔으며, 초계(苕溪)의 물가에 띠(茅)집을 짓고 칩거하며 오로지 차(茶)에 관한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그는 농가(茶園,茶山)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람들이 느끼는 차(茶)의 실제를 물어 이를 기록하였고, 곳곳의 샘물을 직접 맛보며 질을 살폈다. 평생을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했으며, 때때로 시(詩)도 짓고, 저술도 하며 은자(隱者)와 같은 생활을 즐겼다. 다음의 육선가(六羨歌)는 욕심 없는 단면을 한마디로 말해 준다고 하겠다.
             육선가(六羨歌) / 육우
황금 술통 부럽지 않고 (不羨黃金罍①)
백옥 술잔 부럽지 않네 (不羨白玉杯)
젊어서 관직에 드는 것 부럽지 않고 (不羨朝入省)
늙어서 고관되는 것도 부럽지 않네  (不羨暮登臺)
천번 만번 부러운 것은 서강의 물 따라 (千羨萬羨西江水)
내 고향 경릉성으로 내려가는 것       (曾向竟陵城下來)
- ① 뇌(罍)는 은(殷)의 중엽부터 주(周)초까지 상용하던 청동기물이다. 산뇌(山罍)와 세뇌(洗罍)가 있다. 산뇌는 제례 때에 쓰는 현주(玄酒)나 앙주(盎酒)를 담는 술독이고, 세뇌는 술잔을 씻는 용도로 쓰였다. 춘추시대에 와서는 아주 다양해졌다. 당시의 그릇 종류는 작(爵)이 1승(升)이고, 고(觚)는 2승 크기이고, 치(觶)는 3승으로 향음주(鄕飮酒)의 의식에 쓰였던 뿔잔이다. 고도 처음엔 골각기(骨角器)였으나 토기나 청동기로도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각(角)은 4승, 산(散)은 5승이었다. 1승은 약 0.9홉 정도다. 《논어/옹야》에 '고가 더 이상 고가 아니게 되었으니, 고는 어디로 갔는가!(觚不觚, 觚哉, 觚哉.)'하는 말씀이 보인다.
* ⑼ 《周易》「習坎卦」 '初六 習坎 入于坎窞 凶.(초육은 습감에 감담으로 들어감이니, 흉하다.)
  논자 주 : 초육효(初六爻)의 입우감담(入于坎窞)은 감도 구덩이이고, 담도 구덩이란 뜻이다. 종종 잘못된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육체가 구덩이에 빠지고(마음을 들여놓고), 나중에는 그 구덩이에 마음까지 몽땅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마음의 뿌리까지 빠지니 관념의 노예가 된다.) 그러니 '마음까지 함정에 빠지지 마라.'고 경계하는 것이다. 인간이 똑똑한 척 하지만, 제 꾀에 제가 넘어가기가 십상이다. 그런데도 백이면 백 다 물어보면 자신은 믿음이나 신념으로 살기에 전혀 아니라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그런데 맹신으로 가득한 사이비 종교를 믿는 이들을 보면, 부정적이고 단정적이고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조상을 극진히 받든다든지, 효를 조행(操行)의 기본으로 삼는 것조차도 인색하고, 미풍양속까지도 주지(主旨)에 맞지 않는다고 꺼려하며, 일부 심한 자는 버려야 되는 인습(因習) 쯤으로 가벼이 여기기까지 한다. 참으로 패역한 짓거리를 일삼는다. 옛말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지혜롭다고 과신하지만, 몰아다가 그물과 덫이나 함정 속에 넣어져도 이를 피할 줄 모른다.(人皆曰予知, 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 而莫之知辟也.)/《중용 7章》'고 하였다. 고(罟)는 그물(網)이고, 확(擭)은 우리(檻)이며, 함정(陷阱)은 구덩이(坑,坎)이다. 모두 짐승을 속여서 잡으려는 도구다. 인간의 마음에 덮여진 데가 있음을 통렬하게 지적하였음을 어찌 모를까?
  김구는 《백범일지/나의 所願/1. 민족국가》에서 '근래에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나라를 어느 이웃 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나,/…/그는 제 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길이 없다./…/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 흥망이 공동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위에 남는 것이다.'고 했다. 뭐가 올바른 생각인가? 빠져도 정도껏이지, 만약에 조상이나 민족을 우습게 본다면, 그건 종교도 아니다.
* ⑽ 《장자》「도척편」에서 유하혜는 공자가 동생인 도척을 회유하러 산채로 찾아가려하자 극구 말렸다. '마음은 치솟는 샘물같이 끝없고, 의지는 회오리바람같이 사나우며, 힘은 어떤 적이라도 막아내기에 충분하고, 그 말재주는 자기의 비행을 정당화시키기에 충분하다네, 제 마음에 들면 좋아하지만, 마음에 듣지 않으면 성을 내며 함부로 욕을 해대니, 선생은 부디 가지 말게나.' 누구보다 동생을 잘 아는 형으로써 가슴이 아팠겠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숙명적으로 겪어야했던 너무나 상반된 두형제의 관계이지만, 처음부터 그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는 상상조차하기 어렵다. 어찌되었던 도척은 불역(不易)의 진리를 어겼다, 그런데도 그에게 주어진 제재란 인간의 잣대로는 없었다. 천도(天道)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늘의 그물은 넓고 광대하여 그 그물의 눈이 성글지만 선악의 응보는 반드시 내리고 절대로 실패하는 일이 없다.(天網恢恢疏而不失/《老子 任爲篇)》)'는 말씀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니 이 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사마천의 한탄은 어떠한가? 이처럼 도척은 수없이 많은 이를 탄식케 한바와 같이 평생을 온갖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으면서도 천수(天壽)를 모두 누리며 살았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결말에는 끔찍하다 못해 섭리마저 되새기게 한다.
  과연 천도라는 것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우리를 깊은 회의에 빠지게 한다. - 도척의 사례는 너무나 극단적인 삶이라 극히 예외일 것 같지만, 오늘날에도 비슷한 경우가 흔하다. 패륜아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국민에게 크나큰 고통과 해악을 끼쳤던 독재자라든가, 죄지은 부자도 하늘의 잣대로는 다르지 않다. 하늘이 내려준 현명함이나 부유함을 오로지 자신을 위하는 데에만 쓰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다를 것이 하나 없는 도척이다. - 공자는 도척의 예에 대해 '지향하는 길이 같지 않을 때에는 더불어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라고 하며 그것은 각각에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부귀(富貴)라는 것이 뜻대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시장의 문지기라도 나는 사양하지 않을 것이려니와, 만일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 살겠다.①'고 말했다. 생각외의 방향이지만, 그 이상은 어찌 해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뜻을 돌이켜 선(善)하게 바꾸실 수가 있다. 그는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렇게 하실 수가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가? 그것은 그의 뜻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째서 그가 다른 데에 뜻을 두시는지는 오직 그만이 아신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정도 이상으로 지나치게 지혜로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존 칼뱅, 《기독교 강요(基督敎綱要)》'는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전도서에서도 신은 우리들 인생의 모든 때를 '날 때와 죽을 때' 사이에 두었다고 했다. 물론 하늘의 섭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고 이후에도 있는 것이지만 땅(現世)에서 '때'를 논할 때는 그 두 사이라고 하였다. '신만이 시종(始終, from the beginning to end)을 알고 행할 뿐이고, 우리가 현재를 벗어나서 무엇을 측량한다는 것은 허락되어있지 않다.(전 3:11)'고 강조하며, 그 이후는 오직 하늘의 뜻에 맡겨진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의 능력으로 하늘의 운행을 간섭하기는 불가능하다.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공리(公理)로써, 이에 의해서 질서체계가 정해진 바대로 모두가 움직이는 것이니 결국은 그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전도서에서 누누이 '때'를 말하는 것도 무지한 인간의 착각을 지극히 경계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 말씀이 타당한지도 모르겠다. 그 이상은 우리 사고(思考)의 용기가 가지는 한계 너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유의 깊이가 금단의 한계 너머로 이어질 수가 없는 불안함이,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없어 보이고, 모든 일은 애써 행하는 노고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극악무도한 도척과 같은 인물이 천수를 다하는 모순이 하늘이 가르치는 질서의 표본이라고 본다면, 그를 통해서 무엇이 바르고 그르다는 선악정사(善惡正邪)를 바로 드러내 보임으로서 사필귀정의 뜻이 그 안에 담겨져 있음을 깨닫도록 길을 놓았다고 한다면, 인간이 그것을 수긍하고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를 위하여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덴마크의 종교 철학자이자 실존주의(實存主義,existentialism) 철학의 창시자인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Soren Aabye, AD 1813∼1855)의 아버지인 미카엘 페더센 키에르케고르(Michael Pedersen Kierkegaard, AD 1756∼1838)의 예를 보면 어떨까? 이에는 몇 개의 사안으로 나눠 살펴봐야하겠지만, 단순히 인과로만 살핀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덴마크 서부의 유틀란트에서 그 지역의 가난한 농부의 일꾼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에서의 생활이니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희망마저 사라지는 비참한 꼴이 되었다. 심신이 지쳐있던 어느 날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믿어왔던 신이 자신의 고통과 가난에 무관심하다는 생각에 배신감을 느끼자 서러움은 절망감에 휩싸이고 믿음은 격분으로 돌변했다. 그는 맞은편 언덕 위에 뛰어올라 하늘을 향해 크게 욕을 하며 처절하게 저주까지 퍼부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인지 코펜하겐에서 목재상을 하고 있던 삼촌이 일을 같이 하자며 그를 불렀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번창하기 시작하여 말년에는 수도 코펜하겐에 5채의 집을 소유할 만큼 큰 부자가 되었다. 이것에는 어떠한 뜻이 담겨 있는가? 통념으로는 신을 저주할 정도이면 괴팍해진 심성이 오히려 장사에 지장을 주었을 것은 빤하다. 그게 아니라면 남을 속였거나 탈법을 일삼았을 것이다. 설마하니 하늘이 지상의 일까지 나서서 번창시켰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여간 그 후로 키에르케고르의 가족에게 엄청난 불행이 닥쳤다. 이는 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걸쳐 가족이 차례차례 죽어가는 비통함을 가슴에 담고 살아야했다. - 어머니와 6명의 형제 중 5명이 요절했다. - 늙고 병이 들자 아버지는 그 옛날 자신이 신에게 퍼부었던 저주에 대해 아들에게 소상히 밝히며 때늦은 후회를 하였다.
  키에르케고르는 후에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장수가 하느님의 축복이 아니고, 오히려 저주라는 것을 그때에 비로소 알았다. 또 나는 우리 가족들의 뛰어난 정신적 천분(天分)이 단지, 서로 괴롭히기 위해서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였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우리들 모두보다도 더 오래 생존해야 할 운명을 걸머진 하나의 불행한 인간을 보았을 때, 나의 주위에 죽음의 정적이 짙어 가는 것을 느꼈다. 하나의 죄가 전 가족의 머리 위에 뒤덮고 있음이 틀림없다. 신의 형벌이 그 위에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런 불경(不敬)을 저질렀음에도 하늘은 어찌해서 그대로 내버려두었던 것일까? 도척이나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의 예에서 보듯이 신이 너그러워서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섭리란 결코 따로따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인간에게 베풀어지는 긍휼(삼하 24:14, 시 79:8, 애 3:22)'이나 '범죄를 일삼는 인간에게 베풀어지는 인내(출 34:6, 롬 9:22)'도 신의 선이기에, '인간에 대한 계시와 행위 또한 진실하시다.(시 117:2, 신 7:9)'는 것이 맞는다면 모든 현상이 진실함이며, 물리법칙만이 통용되어야 하는 이 세계에서, 필연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진화의 한 단면인 생멸(生滅)과정이라고도 설명될 수가 있다. 따라서 그가 오래 산 것은 생물학적인 관점에선 단지 기능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악행을 통해서 부장(否臧=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하늘이 우리에게 준 것이다, 라고 알 뿐이다.
  하늘은 이승의 인간에게 생명을 주면서 존재할 가치를 함께 주었으며, 본령(本領)을 왜곡하거나 윤색하는 것은 각자의 의지로서 행하는 것일 뿐,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창 1:28)'는 하늘의 깊은 뜻을 창세기부터 감당하지 못하였던 원초의 전력처럼 인간의 속성은 언제나 자기본위로 작위(作爲)와 악작(惡作)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늘은 오로지 통치라는 이름으로 피조물을 존재목적에 맞게 다스린다. 그런데 이러한 통치는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 피조물(시 104:21, 잠 21:1)'을 망라하고, '큰일과 작은 일(시 126:2-3, 마 10:29)', '일반적 일과 특별한 일(시 127:2, 잠 16:33)'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선행과 악행(행 14:16, 빌 2:15)' 등의 모든 영역이 그 대상이다. 따라서 이런 하늘의 통치는 인간으로서는 그 양식을 알 수 없고, 또한 그 누구도 이 역사를 막을 수 없다. 비록 어느 누가 하늘에 대한 대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도리어 그것은 위대한 목적을 이루는 데 이용될 뿐이다. 하늘이 내리는 버력(하늘이나 신령이 사람의 죄악을 징계하느라고 내리는 벌)은 《성경》의 '노아의 대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불세례'나 수메르의 《에누마 엘리시(Enuma Elish)》와 《길가메시 서사시 (The Epic of Gilgamesh)》에 기록된 '대홍수'를 비롯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민간전승으로 내려오는 175개나 되는 '대홍수의 전설'에서 보듯이 인간이 모두 절멸되는 구조로 짜여있다. 그에 비한다면 도척이 저지른 행위는 행짜에 지나지 않는다. 온 우주를 주관하는 공리(公理)는 이처럼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방법을 통하여 세상을 주관하고 있다. 그저 주어진 작은 것에서 크게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 ① 《史記》「卷六十一伯夷列傳 第一」, \"子曰, '道不同不相爲謀', 亦各從其志也. 故曰, '富貴如可求,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 舉世混濁, 清士乃見. 豈以其重若彼, 其輕若此哉?\"
사마천은 이 구절을 쓰며,
 - '道不同, 不相爲謀.'은 《論語》「衛靈公篇 第40章」에서 인용.
 - '富貴如可求,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은 《論語》「述而篇 第11章」의 '富而如可求,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에서 '富而如可求'를 '富貴如可求'로 변형하여 인용.
 -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는 《論語》「子罕篇 第29章」의 말씀을 인용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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