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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러브레터 2
백승훈 2013. 01. 14. 오후 11:31
3440
백승훈 2013. 01. 14. 오후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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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연애편지를 다시 읽은 잔감 때문인지 지난 밤엔 쉬이 잠들지 못했습니다.
온세상이 흰눈에 덮힌 순은의 아침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누웠으나 많은 상념들이 머릿속에 가득하여 밤 깊도록 뒤척였습니다. 유년 시절 덤불숲을 지나다가 가시에 걸린 낡은 스웨터의 올이 풀리듯 편지의 발신인에 대한 기억들이 한거번에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끝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난 가을 지리산에 사는 친구가 보내준 국화차를 한 잔 마시다 무료함을 달래려 무심코 뽑아든 책이 알랭드 보통의 ' 여행의 기술'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일독을 했던 책이라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빨간펜으로 밑줄 그어진 문장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의 심리를 우리 사는 곳에 적용할 수 있다면, 이런 곳들도 홀볼트가 찾아갔던 남아메리카의 높은 산 고개나 나비가 가득한 밀림만큼이나 흥미로운 곳이 될 수 있다. 여행의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의 즐거움이 여행지보다는 여행의 심리에 좌우되며 여행의 심리는 수용성에 특징이 있다는 말이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같은 장소를 여행해도 여행의 즐거움의 크기는 각기 다를 수 밖에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여행하기 전의 '나'와 여행한 후의 '나'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갑자기 여행 이야기를 꺼내어 뜨악해지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하니 마냥 생뚱맞은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인생은 여행이란 전제하에 그 사람과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면 그 사람을 알기 전의 나와 알게 된 후의 내가 많이 달라져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기 전과 사랑한 후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란 말이 되겠지요.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달빛 창에 비추니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만약 꿈속에 오간 길에 흔적이 있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님의 문앞 돌길의 반은 모래가 되었을겁니다
- 이옥봉의 몽혼(夢魂)-
어느날 그녀의 편지 속에 묻어온 이옥봉의 저 시를 읽고 한동안 가슴 먹먹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중에도 꿈속에 오간 길에 흔적이 있다면 문앞의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을 거란 구절에선 그만 목이 메고 말았습니다. 어느 시인은 '너를 생각하는 게 나의 일생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듯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야말로 참사랑이란 생각도 듭니다.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수백년 전의 옛여인의 시까지 빌려와 그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쉽게 답장을 쓸 수 없었습니다. 몽혼이란 시가 적힌 그 편지의 말미에 꽃지기 전에 한 번 다녀가라는 부탁인지 권유인지 아리송한 얘기가 추신으로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P.S : 시누대 바람소리 그치지 않는 오동도엔 지금 동백꽃이 한창입니다. 붉은 동백꽃이 아라비안 카페트처럼 깔린 동백숲을 돌아 나오며 나는 습관처럼 그대를 떠올립니다. 절정에서 제 목을 긋고 떨어지는 저 동백 다 지기 전에 한 번 다녀가신다면 여수 앞바다는 얼마나 설렐까요?
댓글 2개
김현배
2013. 01. 15. 오후 11:52
연애라는 것이 시간이 중요하니 시간이 잘 맞으면 바로 이곳에서 머나먼 곳 여행함과 같으니 깨어나서 끊임없이 그것을 생각한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백승훈님
백승훈
2013. 01. 16. 오후 10:43
설렘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은 늙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내가 쓰는 편지를 통해 많은 분들이 설레임의 시간 속으로 여행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배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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