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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간섭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어릴 때부터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길들여진다. 부모로부터,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그래서 어른이 되면서 더욱 누군가를 간섭하는데 익숙해지는 것 같다. 이러한 일은 수없이 대물림하면서도 나만은 간섭당하지 않는다고 소리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 큰 소리가 더 클 수록 또한 자유로운 삶의 의지에 대해 수없이 되새김질 하고 있는 것이란 것. 나는 무엇이고 누군가라며.
그러나, 제아무리 반성하고 되새김질해도, 세상은 좋은 시간을 저 홀로 갖도록 그대로 두지 않는 것 같다. 서로 어떠한 방법이든 간섭을 해야 하는 것이 세상사 일이니 말이다. 간섭하는 이유란 서로 먹히지 않기 위함, 또는 서로 좋아해야 하기 때문이요, 혹시 그렇다면, 살아있기 위해 또 그 살아있음을 계속 느끼기 위함이며, 물론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죽지 않기 위함이라고도 말한다.
어쩌면 시시콜콜 간섭이란 자기 자랑에 다름아닐 것이다. 뭐 그리 많은 자랑거리가 있을까? 인사하는 것도 그렇다. 잘 있었느냐, 잘 있어라, 좋은 날이다, 건강하냐 등등 서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도 마찬가지. 서로 자신의 모습을 대등하게 유지한고 싶은, 그래서 서로 간섭을 허용하면서 동질감을 유지하고 싶은, 결국 이 또한 서로 함께 자랑하는 일인 듯하다.
시간만 되면, 나 자신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살아왔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럼을 모르는 일이 참 신기하다. 지금도 그러하거니와, 결국 나 자유를 느끼기 위해, 그래서 신나기 때문에? 클클, 어리석게도 이 말을 하고 있는 지금도 벌써 나는 내 시간의 건드림으로 넘어져 있는 것을 말이다. '하, 지금도 자랑스랍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 여기라는 있음을 느낄 수 있어 자랑스럽다, 시간이 나를 건드린 만큼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 라고 넘어진 채 자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컷 자랑한 다음, 그 순간마다 즐거움이 무너지는 것을 본다. 고개 깊이 또 숙이고, 조용한 세상이 한 백년 하얗게 지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한 마디 말하고 밥을 먹을 수는 있을까. 아니 할 말이 없어지는 방법은? 할 말을 잊고 지내는 버릇은? 하얗게 잊고 지내는 버릇이 혹여 구름 보는 일이 아닐는지. 구름 세며, 구름 색깔 바라보며, 그 모양 손끝 따라 가노라면, 스스로 만든 즐거움도 잊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다시 많은 세월이 흐른다해도 하얗게 구름을 보아야 하나니.
간섭에 자유롭지 못한 지금을 살고있으니, 원컨대, 가장 짧게 울지도 웃지도 않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 누구에게 말 하더라도 살짝 웃음이 흐르다 멈추기를. 아하, 어찌할 것인가? 흐르는 사이 그 사이마다 하고 싶은 이내 말 때문에, 살아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 이내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힘이 들어간 시간, 그 시간도 내 시간인가 하여 다시 바라다 본다. 누군가를 간섭해야 하는 나를. 반드시 간섭당하고야 마는 나를.
그래도 조금은 다행이다. 나이 조금 들면서, 내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되어. 아마 그럴 것이다. 어쩌면 더 나이가 든다는 일은 어떠한 간섭에도 익숙해진다는 것이리라. 나이라든지 자유라든지 시간이라든지 간섭이라든지 그 어떠함에 상관하지 않고, 그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다 떠났다. 그랬댜, 이 세상에 나도 살아있음을 느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냐.
댓글 6개
나는 무엇이고 누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초라하고 작은 나를 생각할때 더욱 서글퍼 진다. 지금 이순간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하는데도 나는 무엇이고 누구지 하고 질문을 되새김하고 있다.
그 질문의 되새기는 일이란 어쩌만 숨쉬는 일과 같아 보입니다. 끝과 숨 멈춤이 같은 말일 듯!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간섭에 익숙해지는 순간 나 자신이 세상을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다는것이 행복한 것 입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지금입니다!
김봉길 님 철학을 한 배 가득 배웁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습니다.
간섭이 많은 세상....그져 ㅎㅎㅎㅎ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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