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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의 노래
깡통의 노래
제 속을 다 주고 소리 못 내는 속절
채이면 채일수록 엎드리다 나뒹굴어
그들은 낮은 곳이 좋아 구를까
구르는데 익숙해진 깡통이다
알맹이는 제 재주에 나리님께 바치고
종 시늉에 밟히면 밟힐수록 모 나 엎드리고
차이는 대로 처박힌다
어디가 안전지대인가? 까지도 알지 못하는 처절함
부딪치고, 쭈그러지고
찧어지고 깔리어도 몸부림 외에 말이 없다
또 퍼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구걸이 아름다울 수 있나
아부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살아야 함이니 비굴함 앞에 구르는 재주
삶의 노래, 삶의 진창에 누비다 깡통이 된 비창
대가란 누더기 걸쳐야하는 현장 누에들
속박이란 말인가
족쇄란 말인가
몸부림이란 말인가
제 몸의 알갱이를 게워낸 것이란 말인가
제 몸에 부어야할 토설장이란 말인가
평생직장도 옛말이다
벗어나면 자유란 말도 옛말이다
난쟁이 퍼즐 끝없는 한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불이행의 속박이요
생명 앞에 약속 배반인 이유 중
절벽에 매달려봐야 아는 진실이다.
[東源]
댓글 3개
요즘 세월이 많이 변하여 , 남자들이 아이를 기르고 , 양육비를 직장 샐활하는 여자들에게 , 청구 하는 소송을 낸다고 합니다 .남여의 책임 여하가 바뀐 것인가요 ?
본문 주에 일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핵심은 아닙니다. 사회의 단면이랄까요 제가 서울에는 거지도 없고 서울에는 깨끗한 줄만 알고 있었는데 아~좋게 말해서 자꾸 노숙자라 말하는데 어찌 씀씀이가 헤픈것 같습니다 그들도 역사의 한 모퉁이입니다. 역시 저 또한 삶의 한 부분에 단면입니다. 이춘영 시인님~ 선생님께서 주신 말씀에 크게 공감은 못하지만 솔찍히 지장을 잃고나면 나면 어디에 가겠습니까? 투잡 아니면 나쁜기로 빠지기가 일수입니다. 마누라도 자식들도 거들떠 보지 않는 가족일 때 가장이란 이름을 달고 가는 곳은 일부 한정되어 있을 겁니다 남자는 어찌보면 참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를 공경하다보면 오히려 가화만사성이지요, 허나 있으나마나 하다 생각해 늘어진다면 그 또한 한 인간을 소외 시키는 것이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건강한 씀씀이를 지녀야한다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새빠지게 사랑하고 새빠지게 가장이란 명찰을 달고 움직였으나 큰 틀에서 벗어나야만할 사연이 적용되면 정말 죽음 아닌 죽음에서 자신을 관찰하는데 그 부분에서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시기도 있습니다. 한데, 가족 구성원이 그 한사람의 잘 못인가를 대못을 박아 버립니다. 그 분은 어디를 가야 할 까요?
저는 사회상을 뉴스에서 하길래 남녀의 성이 바뀐것 같아서 ...... 우리집도 너무 듣는 귀가 많은 남편이 몸속에 진실한 말찾는다고 여자관계가 복잡한듯하여 , 애들도 다 키웠지만 , 저자체가 바람과는 먼지라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은 같으나 , 큰 상처를 낼듯하여 그럽니다 . 제가 본바로는 서울에 아주 못살아서 토속음식을 정식으로 몇대째 하는 상인들이 자꾸 바뀌고 . 대학에 학생들이나 새옷을 갈아 입지 , 거의 노숙자요 , 일없이 거리를 헤메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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