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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 (가슴알이의 시작) 제13편
김병국 2016. 04. 14. 오후 07:37
4458
김병국 2016. 04. 14. 오후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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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은 이렇게 맑은 공기에 그림 같은 집에서 준석과 같이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해 보았다.
그들은 행복했던 순간들을 뒤로하고 차를 세워 둔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뻥이가 준석을 보고 꼬리를 치며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만큼 묶어 놓은 줄을 마구 잡아 당겼다.
어느새 중개가 다된 뻥이 새끼 두 마리가 준석의 주위를 에워쌌다.
정인은 무섭다고 준석의 옆에 꼭 붙었다.
\"괜찮아요. 이놈들도 순해요. 물지 않아요.\" 개 짖는 소리에 장씨가 마굿간에서 말을 끌고 나왔다.
준석이 가장 아끼는 칠성이다.
별장에서 쉬는 날 아침엔 항시 말에게 운동을 시키는 시간이었다.
그가 이 곳 별장에 오는 이유 중 하나는 이놈 칠성이를 보고 싶어서이다.
산책겸 칠성이를 타곤 했는데 이젠 늙어서 탈수가 없다.
말을 바꿔야 하는 데도 준석은 칠성이를 내칠 수가 없었다.
아래쪽에 있는 저수지를 갔다 오는데도 땀을 흘리는 것을 본 준석은 그 이후론 칠성이를 타지 않았다.
1년 전만해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황갈색 털이 지금은 부시시하게 거칠어져 있었다.
칠성이는 준석을 알아보고 코를 벌름거렸다.
\"저리들 가, 저리가. \"
장씨는 개를 쫓으며 손을 젓고 있는 아저씨의 옷이 얇아 보였다.
\"춥지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다음에 오면 두꺼운 옷 한 벌을 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젠 그렇게도 음침하던 저수지 옆길도 오늘은 아름답게만 보였다.
\"저도 말이 타보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한 번도 못 탔어요.\"
\"다음에 오면 타 보세요. 가르쳐 드릴게요. 말은 사람의 마음을 다 알아요. 마음씨 나쁜 사람은 낙마를 시키죠.\"
\"정말요? 그럼 안탈래요.\"
\"아니 ! 정인씨는 마음이 나쁜가 보죠? 겁내는 것을 보니.\"
\"제가 언제요?\"
그녀의 작은 움직거림에도 그녀만의 향기가 났다.
준석이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도 이 냄새를 맡았고 어제도 이 자스민 향을 맡으며 사랑을 나주지 않았던가.
이젠 눈을 감고 냄새만으로도 그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젯밤 그녀와의 사랑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준석은 서울로 올라가면서 이곳에 올 때와는 또 다른 감회에 젖어 있었다.
라디오에선 외국 여자 가수가 호소력 있게 부르는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가 흘러 나왔다.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당신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i thought the sun rose in your eyes
나는 당신의 눈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습니다.
and the moon and the stars were the gifts you gave
나의 어둠을 몰아낸 달과 별은
to the night and the empty skies my love
당신의 선물 이었습니다
the first time ever i kissed your mouth
당신의 입술에 처음 입을 맞추었을 때
i felt earth turn in my hand
이 세상이 내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like the trembling heart of a captive bird
손에 잡힌 작은 새처럼
that was there at my command my love
내 가슴은 사랑으로 떨렸습니다.
the first time ever i lay with you
당신 곁에 처음 누웠을 때
and felt your heart beat close to mine
당신의 심장을 나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i thought our joy would fill the earth
우리의 행복이 세상을 채우고
and would last till the end of time my love
이 세상 끝까지 계속 될 것을 알았습니다.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당신을 처음 본 순간......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l face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맑은 목소리는 어젯밤의 그들의 마음을 노래로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어젯밤 벽난로 장작불 빛에 비춰진 자신들의 황홀했던 모습을 그리며 두 사람은 노래에 취해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듯 희망에 가득 찬 그들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차창으로 보이는 산과 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도착한 그들은 서로의 눈인사만으로 헤어졌다.
준석이 한의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한의원엔 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석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빠른 걸음으로 진료실로 막 들어서려는 순간 그는 한 여인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아주 반가운 여자 손님이 아이를 데리고 와 있었다.
너무 반가워 달려가 손을 덮석 잡을 뻔한 여인, 윤지혜
‘그녀를 못 본지 얼마 만인가!’
철 지난 옷차림을 하고 깡마른 딸의 손을 잡고 한의원 문을 드나들었던 그 여인에게서, 비록 옷차림은 남루했지만 얼굴에서 풍기는 고고한 기품으로 인해, 그는 그 때 어릴 적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그 여인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다시 젊어진 것이라는 착각이 들만큼 많이 닮아 있었다.
처음 그 여인이 한의원을 찾은 때는 4 년 전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어린 딸을 데리고 한의원을 찾은 그 여인은 아이가 매일 누워만 있으려고 하니 무슨 병이라도 난 것이 아닌지 걱정스레 물었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옷은 추위를 이기기에는 좀 부족한 옷차림들이었다.
아이는 영양이 부족한 탓에 뼈와 가죽만 남아 있었다.
그 여인도 창백한 모습으로 매우 야위어 있었다.
그들 모녀를 보고 옛날 피난시절 기억이 되 살아난 준석은 자신이 고생했던 생각에 다시금 눈이 충혈 되고 있었다.
식량이 부족해 학교에서 나누어준 분유(粉乳)를 타러 양은그릇을 들고 줄을 길게 서곤 했던 그 때, 그 분유를 밥에 찌면 돌덩이처럼 딱딱해져 그걸 간식 삼아 들고 다니며 먹었다.
그 시절 아이들은 지금 이 여인이 데리고 온 아이처럼 말라 있었다.
준석은 피난시절 가마니 집에서 살 때를 되씹고 있었다.
옛날 그의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약을 구걸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더 올리며 준석은 눈앞이 흐려 왔다.
\"아이에게 약을 먹입시다, 부인도 안색이 안 좋으신데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십니까?\"
준석은 그 여인을 조건 없이 돕고 싶었다.
\"예, 저는 괜찮아요. 약값이 얼마인가요?\"
그 여인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준석에게 물었다.
\"......\"
\"약값이 얼마나 되나요?\" 다시 묻는 여인의 목소리에 준석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 아이 거니까 약값이 너무 쌉니다. 돈이 없으시면 나중에 주셔도 됩니다. 아주머니도 드세요. 외상으로 해 드릴게요.\"
\"저는 약이 필요 없어요.\"
\"엄마가 건강해야 자식도 건강해집니다. 약값은 나중에 돈이 생기면 그 때 가져오세요.\"
\"혹시 아이가 토하거나 배알이를 할 때는 인근에서 자라는 쑥을 뜯어서 먹이세요.\"
무슨 일인지 그녀는 준석의 호의를 쉽게 받아 드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돈이 생기는 대로 꼭 갚을 게요.\"
지혜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면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준석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사실 지혜는 그저 아이가 어떤 병인지 알아나 보려고 돈 한 푼 없이 한의원을 찾은 것이다.
준석은 그냥 약을 지어주고 싶었으나 그녀가 거절할 것 같아 나중에 달라고 했다.
준석은 녹용 등 값비싼 보약을 넣어 그 여인 것과 같이 두 재를 처방(處方)했다.
“다 드신 후 잊지 말고 꼭 오셔야 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건 건강입니다. 약값은 외상도 되니까 꼭 오세요.”
몇 번이고 돌아보고 인사하는 그녀에게 준석도 다시 한 번 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대신했다.
\"예,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후부터 지혜는 이맘때마다 자신이 직접 뜨개질한 벙어리장갑이며 쑥떡을 싸들고 와서는 준석에게 건네주곤 했다.
점점 좋아지는 딸의 모습을 흐뭇해하며 항상 준석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준석은 매년 몇 차례씩 옷가지와 얼마간의 생활비를 그녀가 사는 달동네 단칸방에 몰래 들여 밀곤 했었다.
그 때 당시 지혜의 남편은 뺑소니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동네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없는 돈에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이웃에 궂은일을 찾아다니면서 했고, 아이의 교육과 자신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했다.
둘러보면 이런 사람은 많았지만 준석은 자신 어머니의 옛날 모습과 너무도 많이 닮아 있어서, 지혜를 친동생처럼 도와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 어느 날 준석은 선물 보따리를 잔뜩 사들고 신이 나서 지혜의 집을 찾아 갔다.
지혜의 집엔 낯선 아주머니가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윤지혜씨 계신가요?”
“이사가셨는데요.”
순간 준석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불길한 생각마저 했다.
\"어디로 가셨는지 알려주세요?...\"
준석은 하얀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우리가 이사 올 땐 이 집이 비워있었어요 , 모녀가 살고 있다가 몇 달 전에 친정 오빠가 있는 지방으로 이사를 했다는 소릴 이웃에서 들었어요. 매우 심성이 착한 분이었나 봐요. 주위에서 무척 아쉬워들 하세요.\"
그 아주머니는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하면서 준석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준석은 허탈함을 뒤로 하고 집으로 오면서도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잘 살아야 하는 데......'
언제 올 것인지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3년 동안 지루하게 기다렸던 차에 그녀가 이렇게 다시 찾아와 주다니......'
준석은 잃었던 동생을 다시 찾은 듯 매우 기뻤다.
보고픈 사람은 언제 보아도 반가웠다.
지혜의 얼굴에선 건강미가 흘렀고 옷차림도 제법 세련되어 있었다.
기품 있던 얼굴은 더욱 성숙해 보였다.
건강미는 머릿결에서 볼 수 있다는 그의 망진법에도 그녀가 건강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지혜의 생활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준석은 무척 기뻤다.
멍허니 바라만 보던 지혜는 여러 사람 앞에서 준석에게 큰절을 올렸다.
\"이러지 마세요. 창피하게 .\"
준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지혜를 일으켰다.
\"선생님 정말 고마웠어요.\" 지혜는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울먹이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자식마저 죽이는 게 아닌가 했던 5 년 전 그 때, 그렇게 힘든 시절 자기들 모녀를 마치 한 식구처럼 돌봐 주었던 준석에게 그녀는 어떻게 해야 자기의 마음을 전할지 몰라서 그냥 그렇게 큰절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지혜는 준석이 베풀어 준 은혜를 가슴에 안고 준석이 알려준 쑥에 효능에 대해 신뢰를 하고 쑥떡 장사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오늘날에 성공이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결혼으로 인해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자기도 성공해서 남을 돕고 싶다는 일념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나이가 있어도 무엇이든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그녀는 어려운 의학 공부지만 남보다 몇 배 더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직 준석이 자기에게 베풀어준 사랑의 보답이라고 지혜는 생각했다.
지혜의 얘기를 들은 주위 사람들은 준석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어쩐지 여긴 약값이 싸다 했지요?\"
한 아주머니의 말에 앉아 있던 다른 환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안은 순식간에 들뜬 분위기로 머지않은 크리스마스를 자축하는 듯 온정이 감돌았다.
준석에게 있어 그 날은 참으로 행복하고 흐뭇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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