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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대국으로의초대)제15편

김병국 2016. 05. 06. 오후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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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의 손에 들려진 것은 곰의 쓸개 웅담(熊膽)이었다. 중국에 오기 전 경동시장 약정골목에서 어느 늙은 약초꾼에게 들은 ‘옛날부터 곰을 잡은 사람은 웅담(熊膽)을 몇십개나 팔고도 아직까지 손안에는 진짜 웅담(熊膽)이 들려있다’ 라는 말이 생각났다. 진품은 부르는 게 값이었고 비싼 값으로 구입을 했다 해도 진품을 만나기란 힘들었다. 그가 한의원을 하는 동안 진품은 단 한번밖에 못 볼 정도로 매우 귀한 약재로 알려져 있었다. 대접에 물을 담아서 웅담을 조금 떼어 돌아가는 형태를 본다는 사람, 먹물 묻은 접시에 웅담 조각을 떨어트리면 웅담 주변은 먹물이 묻지 않고 퍼진다는 사람, 하여간 비싼 만큼 방법도 여러 가지였다. 그는 선장에게 자신 만이 아는 특별한 방법을 알려 주었다. 단 한기지 방법은 웅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에 넣어 봐야 안다고 설명해 줬다. \"눈에 넣어도 아무렇지 않을까요?\" 준석은 넌지시 웃었다. \"가짜는 눈이 멀 수도 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선장은 준석의 의도를 알았는지 고맙다며 그에게 깊은 호감을 가졌다. \"웅담의 효능은 피를 맑게 하는 청혈작용(淸血作用)이 우선입니다. 열을 내리고 황달(黃疸)이나 악창(惡瘡) 그리고 치질이나 간질을 치료하는데도 쓰입니다.\" 넘어져 멍든 데, 소화 불량일 때, 여자들 피부가 거칠고 피로할 때, 양기가 부족 할 때도 쓴다고 했다. 선장이 갖고 있는 웅담은 크기로 보아 그 보자기부터가 가짜인 듯 했다. 그러나 소중하게 간직했던 모양으로 보아 진품인 줄 알고 있는 선장에게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선실로 돌아와 동료들과 앞으로의 일정을 의논했다. 웅담은 그들의 충분한 얘기 거리가 되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으로 귀한 약재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징조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을 떠난 지 불과 몇 시간인데 벌써 정인이가 있는 서울이 그리웠다. 그녀가 손에 쥐어 준 쪽지 생각이 났다. 좁은 선실 공간에서 흐릿한 불빛 아래서 준석은 마치 무슨 보물지도라도 몰래 보듯 호기심과 두근거림으로 주머니 속에 접혀 있는 하얀 쪽지를 꺼내어 펴 보았다. 까맣게 써 내려간 글씨체는 그녀의 성격처럼 단아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님 에게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 저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랑을 알려 주신 분께 이제 저는 당신이라 부르겠습니다. 당신의 진솔함으로 저는 마음을 열었습니다. 가슴에 멍들듯 쌓여 있던 지나온 저의 생활들은 당신으로 부터 치유되고 있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저는 저를 찾고, 당신으로 인해 참 인생을 알고, 당신으로 인해 많이 행복합니다. 이제 당신은 제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님입니다. 제가 서른 몇 해 동안 맞아 온 날들은 다 같지 않은 날들의 연속 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모든 걸 참아야만 했던 비참하리만치 처절했던 악몽의 시간들을 당신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론 당신과 행북한 날로 살겠다고 세상의 모든 신께 아니! 당신께 약속드리겠습니다. 반갑고 귀한 감정을, 제가 모르던 순수한 사랑이 무언지를 당신은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 분을 위해 남은 저의 인생을 당신께 맡기고, 당신과 같이 공유하고픈 마음 간절합니다. 아무쪼록 몸 건강하시고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그 때를 기다릴게요. 낯선 곳이라 걱정이 많이 돼요. 도착하시는 대로 연락 꼭 주세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의 정인 올림.' 신뢰를 바탕으로 행복했다는 그녀의 간절한 마음은 준석에게 그리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아 ! 정인이가 보고프고 그립다.’ 순간 준석은 정인을 위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선생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보세요?\" 동료인 박한구의 말에 준석은 보던 쪽지를 처음처럼 접어 옷 속 깊이 넣었다. \"그만 잡시다, 내일 오전이면 중국에 도착합니다.\" “네 잡시다.” 그는 불을 껐다. 준석은 눈을 감아보지만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정인과 처음만나 눈 웅덩이에 빠졌을 때도 생각 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그 시간은 너무도 황홀한 순간이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만일 그 때 거기서 나오지 못했다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녀와 처음 사랑할 때의 환희와, 황홀함, 그리고 행복감도 생각해보았다. 준석은 자기가 살아 있는 한 오직 그녀만을 사랑 할 거라고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앞뒤가 막힌 듯 좁은 공간이 배 안임을 알려 주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하선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몹시 바쁘다는 느낌을 받고 손놀림이 바빠졌다. 동료와 셋이 식권을 사는 데 뒤에서 누군가가 식권 한 장을 달라고 했다. 뒤를 돌아보니 어제 그 선장이었다. 준석을 본 선장은 같이 식사를 하자고 청했다. 동료 들은 의아한 듯 준석에게 같이 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나란히 걸으며 선장은 준석에게 어제 그 약 덕분에 오랜만에 잠도 푹 잘 잤다고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선장은 준석에게 은밀한 제의를 했다. “이 곳 선상에서는 많은 약재들이 오고 갑니다. 소비처만 있다면 얼마든지 약재를 구할 수 있어요.” 선장의 그런 말은 우리 한번 같이 장사를 해 보자는 말인 듯 했다. 선장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갑자기 받은 제의에 어리둥절했지만 불법만 아니라면 좋은 사업 일 것 같았다. \"불법이 아닌가요?\" \"불법이라뇨? 근무외의 일인데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준석은 웬지 쉽게 응하고 싶지 않았다. 중국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준석에게 그것도 어제 처음 본 그에게 그런 제의를 한다는 것이 뭔가 미심쩍다고 생각했다. 또한 보따리 장사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준석은 동료들과 의논을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선장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며 선장실로 가자며 준석을 끌었다. \"하선해야하는데요.\" \"그건 걱정 마세요. 시간이 충분합니다.\" 준석은 선장을 따라 그의 방으로 갔다. 선장은 서심 없이 007 가방을 꺼내어 준석에게 열어 보였다. 가방 안에선 몇 개의 웅담과 사향이 나왔다. 그가 보기에 좀처럼 구할 수 없는 사향이었다. 노루 과에 속하며 높은 산 바위와 비탈진 곳을 좋아하고 날렵하기가 비호같다는 국노루의 배꼽이 사향(麝香)이다. 사향주머니와 숫놈의 그것이 탯줄처럼 이어져 암놈을 부를 때 향을 분출해 유혹하는 역할과, 상처가 나거나 아플 때 사향을 핥아먹고 스스로 치료하기도 한다. 향이 너무나 강해서 천리에서도 암놈이 냄새를 맡고 온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다. 옛날엔 궁중 여인네들이 사향을 허리에 차고 다니며 남자들을 유혹하거나 특히 임금님의 총애를 받으려고 했으며, 또한 임산부가 냄새를 맡으면 유산을 한다고 해서 주위를 요하는 약재이기도 했다. 준석은 무언지 모를 호기심에 흥분하고 있었다. \"실하고 바늘을 좀 주세요.\" \"그건 왜요?\" \"있으시면 좀 줘보세요?\" 선장은 침대뒤쪽에서 비취색 단지하나를 들어 올리더니 그 속에서 실과 바늘을 준석에게 꺼내주며 뭔가 배우려는 듯 가까이 다가앉았다. 갑자기 멍하게 귓가에선 ‘윙’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이명이 들렸다. 바늘과 실을 꺼낸 그 단지를 본 순간 두 눈엔 불꽃이 튀듯 번쩍거렸다. 준석이 잠시 머뭇거리자 선장은 “배 멀미를 하십니까?”하며 무순 비방이라도 꺼내줄 모양이었다. “아 ! 아닙니다.” 준석은 바늘에 실을 끼고 매듭 서너 마디를 중간 중간 올 매었다. 바늘에 낀 실을 사향중앙을 관통시켜 훌터내렸다. 사향을 통과한 실엔 사향분진과 털들이 묻어나왔다. 우선 냄새로 감별 하고 성냥불로 그 실을 태웠다. 실은 파 파 팍 소리를 내며 타 들어갔다. 사향은 당사향(唐麝香), 진사향(秦麝香), 토사향(土麝香)이 있는데 그중 제일은 토 사향이다. 준석이 들고 있는 사향은 분명 진품인 토사향 같았다. 사향은 해독작용을 하고 관맥(關脈)을 잘 통하며 귀사(鬼砂)를 치고 경계(驚悸)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부르는 게 값인 웅담(熊膽) 보다도 더 진기한 약재였다. 무엇보다도 준석이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바늘과 실을 담아두었던 비취색 나는 단지였다. 준석은 취미생활로 고화나 도자기를 수집하고 있었기에 한눈에 고려청자를 알아본 것이다. 그의 눈이 정확하다면 국보급 고려청자가 틀림없어보였다. 선장도 준석도 침묵을 지켰다. \"명함 있으시면 주시겠습니까?\" 선장은 준석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그냥 이름만 적었습니다.\" \"언제 돌아올 예정이신 지요?\" \"한 열흘정도 있을 겁니다.\" \"중국엔 진기한 것들이 수 없이 많아요. 한국에 도착하시면 꼭 연락 주십시오.\" 선장은 준석에게 일방적인 약속을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준석은 상기된 얼굴로 동료들을 만났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동료인 최 동규는 걱정하듯 준석에게 물었다. 준석은 동료들을 모아놓고 선장과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동료들은 뜻하지 않은 소식에 흥분을 하며 이제 우리는 돈을 벌수 있다고 좋아했다. 중국 위해 항(港)에 정박했다는 방송 소리에 서로들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준석도 말로만 듣고 영화로만 보아왔던 모자 쓴 중공군이 보고 싶었다. 이제 그 실체를 볼 수 있다는 미지의 설레임과 진귀한 보물들을 생각하며 흥분돼 있었다. 승객들은 먼저들 하선하려고 짐들을 꺼내 놓느라 부산떠는 사람들 사이를 준석 일행은 간단한 손가방 하나씩 들고 입구로 나갔다. 벌써 사람들은 줄을 서 있었고 군중들 사이에 그들도 끼어 있었다. 어느새 선장은 준석에게 다가와 잘 다녀오라며 관심을 보였다. 준석은 배에서 내려올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는 선원들을 뒤로 하고 공산국 중국 땅에 첫발을 디뎠다. 여기가 중국 위해시 위해 항(港), 준석은 감개가 무량(感慨가 無量) 했다. 준석의 일행은 입국수속을 하려고 줄을 섰다. 한 시간이상을 기다려도 좀처럼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중국을 만만디라 했던가, 여기서부터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세관원은 이것저것 같은 동료끼리 말을 하면서도 줄을 서 있는 입국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의 불손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공산주의라는 특수성을 알기 위해 그들이 하는 대로 주시하고 있었다. 중공군 차림의 경비원인 듯한 사람들이 영화나 사진으로 보아왔던 대로였지만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진 않았다. 사상만 다르지 사람 사는 곳은 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만에 수속을 마치고 나오는데 ‘김준석 선생님 환영 합니다.’ 라고 쓴 종이를 든 여인이 있어 준석은 그녀에게 다가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어서 오시라요.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네다.\" 그녀는 이북 사투리로 준석의 일행을 맞았다. \"네, 안녕 하십니까?\" 사전에 연락 해놓은 조선족 가이드 송순자 였다. 얼굴도 예쁘고 사투리긴 했지만 한국말을 아주 잘했고 사근사근하며 눈웃음을 치는 미인 형이었다. 여기저기 구식 옷을 입은 상인들이 따라와 팔 물건이 있느냐며 추근 덕 거렸다. 그들은 한결 같이 한국말을 하고 있어서 그들은 깜짝 놀랬다. 중국이 아닌 타임머쉰을 타고 30년 전 1960년대로 돌아간 우리나라의 한 시골 터미널 같은 착각이 들었다. 준석의 일행은 미스 송을 따라 바쁘게 택시를 타고 대련시로 향했다. 도시를 빠져 나와 시골길을 달리는 차안에서 흘러나오는 중국 노래와 경음악이 그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처음 접하는 공산주의의 문화라 그런지 그는 더욱 관심이 갔다. 그리 성능이 좋지 않은 스피커에서는 가늘고 긴 여운의 중국음악이 준석을 신비로움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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