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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식인종)제17편
김병국 2016. 06. 06. 오후 08:01
4943
김병국 2016. 06. 06. 오후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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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생활 4년만에 온 가족이 다 모인 것은 날이 어두워서였다.
그날 준석은 처음으로 맛있는 닭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밤새씩씩 거리며 소화를 시켜야 했다.
준석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원산으로 나들이 간 몇일 후 갑자기 전쟁이 다시 시작되고 1.4후퇴라는 민족 대 이동으로 인해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생이별의 대 참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몇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여동생 하나 되리고 피난을 나와 식구들을 찾느라 부산으로 마산으로 할 것 없이 남한 구석구석을 다 돌아 다니셨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길에서 준석이를 만나 식구를 찾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4년이면 준석이도 이만큼 컸을 텐데' 하며 놀고 있는 얼굴이 온통 때국물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자신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준석이 지금 생각해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넓은 땅 어딘가 에서, 이렇게 길에서 부자가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지극하신 효심에 하늘이 도우신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 후 그의 가족은 가마니 집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집, 빗물이 떨어지지 않고 춥지도 않은 그런 집이 얼마나 좋았는지 어린준석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손으로 가리키며 '우리 집이 여기예요. 아줌마! 아저씨! 저기가 우리 집이에요. 지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길거리에서서 저기가 우리집이라며 지나는 사람들을 잡고 마구 자랑하던 그 때,
어린 준석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치 못해 며칠을 앓은 적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갓난아이의 출생이 많아졌다.
생활의 어려움을 이기려고 남자는 물론 여자들까지도 생활 전선에 나서야 할 때였다.
두뇌가 명석한 준석의 아버지는 거기에 착안을 해서 아이를 업고도 일을 할 수 있도록 끈 달린 누비포대기를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다.
그것이 불티나게 팔리자 채 만들지 못해서 또 연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번에 드르륵 누빌 수 있는 자봉틀을 만들었던 것이다.
남들이 1장을 만들 때 그의 아버지는 20장 30장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고, 수원 중심가에 그의 아버지가 직접 설계한 멋진 이층 양옥집에서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때 그 시절엔 어린준석의 눈에도 장롱 서랍마다 옷 대신에 돈이 그득 그득 들어 있는 것이, 마치 흥부가 박을 타서 금은보화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것 같았다.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그 후 그의 아버지는 서울로 옮겨 평화시장 근처인 종로 5가에 있는 디긋자 형태의 한옥집에 정착 하셨다.
그 때의 평화시장은 판자로 다닥 다닥 지은 집이라 잦은 화재가 발생해 많은 재산을 잃곤 했었다.
얼마 안 있어 건축을 할 것이라고 예측을 한 그의 아버지는 시장 점포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말 빠른 상인들은 금새 소문이 나더니 점포가격이 몇 배가 뛰어 올랐다.
준석이 중학생이 되던 해 준석은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총소리를 듣고 집으로 달려 온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또다시 전쟁이 났다며 생필품을 챙기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기도 했다.
4.19 학생 의거가 발발한 것이다.
며칠만에 수천 수만 명이 한길에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이리로 저리로 이쪽 저쪽에서 '부정선거 다시 하라, 독재정권 물러가라.' 고 외치며 밤새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체류까스와 총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총에 맞아 하나 둘 피흘려 쓰러지고 학생들은 피를 보자 더 격분해서 그들과 맞섰다.
점점 더 불어나는 군중들을 향해 급기야 정부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도 합세한 군중은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어 흩어졌다.
총에 맞은 학생들을 부축하고 숨느라 부상자를 둘러메고 집집마다 숨어들었다.
순경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며 학생들을 색출해 내느라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중 한 남학생이 부상을 입고 준석의 집에 숨어들었다.
그는 아주 잘생긴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는데 준석의 어머니는 그를 극진히 치료하고 대접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직 순경들이 깔려 있으니 자고 다음날 가라며 그를 붙들었다.
몇일을 집에서 숨어 치료를 하고 돌아갔다 그런 인연으로 그 서울대 대학생은 준석의 집에서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게된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의 산림이 많이 훼손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다 이태리에서 포푸라 묘목을 수입해 삽수를 무상으로 전국에 배포하셨다.
포푸라는 아무 데서나 잘 자라며 특히 오염된 물질을 먹고 자라는 나무였다.
또한 아스피린을 만드는 원료이기도 했다.
그 때부터 쓰지 못하는 하천 부지나 강가엔 키 크고 싱그런 포푸라 나무가 줄을 이어 심어졌다.
지금의 강남 일대의 냇가 옆이나 길가에는 으레 수양버들과 포푸라 나무가 있었고 우리나라의 새로운 거리풍경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셨다.
그로인해 그의 아버지는 강남일대에 수십 군데에 수양버들과 포푸라농장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땅의 평수가 자그마치 20만평이 넘었다.
그 당시 현금이 많았던 관계로 화폐계획으로 많은 손해를 본 그의 아버지는 무상으로 배포한 포푸라 나무를 다시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성냥과 젓가락, 도시락 등을 만들어 팔아 다시 일어 서셨다.
준석이 장사와 기업의 차이를 알게 되었던 시기도 그 때였다.
장사란 이득만을 추구하지만 기업은 사회에 이바지하며 더불어 벌어야 한다는 것을 그의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준석도 아버지의 사업수완을 이어 받았는지 그가 늘 꿈꾸어 오던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종합병원을 짓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중국이 그러한 일을 이룰 수 있게 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런 관계로 준석은 한의원엔 점차 출근이 뜸해지고 그는 사업으로 나서게 되었다.
체질상 사업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준석은 이제 사업가로 동분서주(東奔西走) 하며 건재상을 들락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금광을 알아보겠다고 인도네시아에 갔던 낭걸이가 찾아왔다.
낭걸은 계획서를 준석에게 들고 와 사업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곳 실세를 만났다며 같이 찍은 사진과 자세한 계획서를 준석에게 보여 주었다.
준석은 이미 사업 대상을 중국으로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 광산업에는 투자 할 수가 없었다.
낭걸은 인도네시아를 가면 발리섬이 있다며 여행 삼아 가보라고 했다.
\"낭걸아, 다음에 여행 삼아 한번 가보고 그 일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하자.\"
\"그래, 시간이 나는 대로 갔다 와 봐 아주 좋은 곳이야. 난 계속 다른 사업거리를 찾아 볼게.\"
\"안정된 사업으로 알아봐. 금광 같은 건 너무 생소해. 사업자금도 많이 들고.\"
낭걸은 그 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선한 인상으로 남들이 부담감 없이 접근을 잘 했다.
준석은 그런 낭걸이를 참모로 두고도 싶었으나 두뇌회전이 느린 관계로 준석은 그저 낭걸이의 기반을 잡아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며칠 있으면 정인이 생일이라 그는 그 때 그녀와 같이 인도네시아에 가보고 싶었다.
그녀를 만나 여행 계획을 세우고 낭걸이가 전해준 사업들 과 여러 가지 자료를 모으며 준석은 신이 나 있었다.
며칠 후 간단한 여행준비를 하고 그들은 들뜬 마음으로 만났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두 사람만의 외국여행이 그들에겐 더 할 수 없는 설레임 이었다
준석이 혼자 중국 갈 때와는 전혀 다른 들뜬 기분은 온 세상이 그의 것인양 가슴이 벅차올랐다.
간단한 음료와 기내식이 나왔으나 설레이는 마음에 마시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녀와 하늘에서 식사를 한다는 신선 같은 기분에 창밖을 보니 솜같은 구름이 목화솜처럼 뭉개뭉개 피어올랐다.
순간 집에서 아빠가 언제 올까 기다리는 두 딸들과 같이 이런 구름을 보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도 했다.
‘얘들아 미안하다 이 못난 아빠는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여행을 왔단다.
너희가 크면 이 아빠를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준석은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사과를 바라고 있었다.
준석은 두 딸만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곤 했다.
준석은 이미 저세상에 가고 없는 아내에게서 헤어나려고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저기 다니며 색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겼다.
백화점에서 쇼핑한 면으로 된 천에 나염으로 야자수 나무가 그려진 남방으로 갈아입었다.
\"인도네시아 사람 같은 데.\"
\"당신도 그래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국적인 모습에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보이는 인도네시아 거리 풍경은 야자나무와 아사이베리등 이름 모를 나무들이 까만 열매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건축양식이 한국과는 매우 달라 인상적이었다.
지나는 사람들은 거의 키가 작아 보였으며 피부는 까무잡잡했다.
영어가 서툴기도 했지만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듣던 영어와 억양이 달라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호텔 명함을 내밀고 운전수에게 모든 걸 맡겼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거리 구경을 하자며 나왔다.
호텔 입구에서 택시 기사들이 다가와 택시를 타라고 쫓아다녔다.
'구경 타요. 타요' 하며 서투른 한국말을 하며 따라다녔다.
그들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말이 통하는 한국말을 하는 그 기사가 반갑기도 해서 그 택시를 타고 거리 구경을 했다.
거리는 어느덧 해가 지고 이국적인 가로등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호텔 룸에 들어서니 도마뱀 한 마리가 벽에 붙어 있어 그녀는 침대위로 올라가 무섭다고 내려오질 못했다.
그들은 밤새 그놈을 잡느라 한바탕 소동을 일으켜 잠을 설쳤다.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염불소리가 아침 햇살과 함께 그들이 자고 있는 침실 안으로 들려 왔다.
인도네시아 인들은 스피커를 통해 온 동네에 방송하듯 염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식사를 한 후 호텔에서 소개한 가이드 미스 조와 시내 관광을 했다.
불교 사원과 집집마다 불당을 세워 놓고 열심히 기도하는 그들은 그런 의식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 일찍 숙소로 들어와 어제 못 잔 잠을 청했다.
다음날 오팔 보석을 사러 가기로 일정을 세웠기 때문이다.
정인은 블랙 오팔을 사러 간다고 한껏 들떠 잠을 설치는 것 같았다.
몇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간 다음 배를 타고 또 몇 시간을 간다는 말에도 정인은 신이 나 있었다.
여자들은 왜 유난히 보석을 좋아할까?
다음날 가이드 미스 조와 코로와이 족 2세인 야쿠쿠라는 인도네시아인과 쌍발 비행기를 탔다.
기내에서 야쿠쿠가 뭐라 말하자 통역으로 미스 조가 일러주는 주의사항을 듣고는 준석과 정인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오팔을 사는 곳이 식인종(食人種) 코루와이 족이 사는 마을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내려 찦차를 빌려 타고 비포장을 몇 시간을 가니 시내를 벗어나 넓은 강가에 닿았다.
구명조끼도 없는 고기잡이배를 타고 강 건너 울창한 숲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다.
누런 강물과 야자수가 우거진 강가의 숲은 음침하기까지 했다.
사람 고기를 먹는다는 식인종, 그 말은 정인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준석은 모험을 즐길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어 흥미진진한 모습이었다.
강가에 내려서 다시 통나무배로 갈아타고 갈대를 헤치며 얼마를 갔을까.
사람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는 밀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가엔 키만한 수초로 덮여 있어 긴 삿대로 배를 밀고 밀림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우거진 숲의 강 옆 경치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뜻하지 않은 경치에 감탄을 하며 정인은 카메라 셧터를 연신 눌러 댔다.
그들이 가는 곳이 야쿠쿠의 고향이라 했다.
야쿠쿠를 따라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영화로만 보아왔던 밀림,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그들은 서로 손을 꼭 잡았다.
나무에 늘어진 넝쿨이 뱀처럼 보여 등골이 오싹 오싹 했다.
야쿠쿠는 손으로 입을 두드려 묘한 소리를 냈다.
\"오우 야오 아호 우야라.\"
그들만의 신호였다.
삿대로 배를 미는 야쿠쿠를 따라 뒤뚱대는 통나무배에 몸을 맡긴 채 긴장과 스릴 속에 수초가 무성한 습지를 거슬러 올라갔다.
물속에서 악어가 나올 법 한 분위기에 정인은 준석의 곁을 떨어지지 않았다.
습지의 물빛처럼 하늘빛도 잔뜩 흐려 있었다.
이곳은 비가 오면 밤톨만한 물방울이 떨어져 온몸이 멍이들 정도로 아프다는 소리에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아래 부분만을 가리고 망을 보는 사람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준석의 일행을 감시 하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뛰웅뛰웅' 풀 피리소리도 그들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밀림에 도착한 그들은 높은 원두막처럼 생긴 집으로 안내되었다.
\"여기가 식인종이 사는 곳인가요?\" 정인은 겁먹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준석의 뒤에 바짝 붙어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들은 서로들 알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표정이 없는 원주민은 정인이만 쳐다보고 얘기하는 통에 그녀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야쿠쿠는 가이드에게 뭐라고 말했다.
오늘은 식인종 코로와이 족이 사는 곳은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말에 정인은 안도를 했지만 준석에게는 실망이 더 컸다.
미지의 종족과 밀림의 동물을 찾아가는 모험심은 삽시간에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사랑하는 정인과 덩쿨을 헤치며 보석을 찾아가는 기분은 살아 있다는 행복감을 마음껏 맛보게 해 주었다.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덩쿨, 이따금씩 나타날 법한 커다란 비단 뱀과 독거미 등 위협의 동물들로 정인은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준석은 긴 나무 가지를 하나 빗겨 들고 삐죽이 나와 있는 풀들을 툭툭 치며 야쿠쿠를 따라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오팔을 가공한다는 그 곳엔 살인적인 말벌이 있다고 했다.
그 벌집을 잘못 건드리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며 아무 나무나 건드리지 말라고 미스 조가 야쿠쿠의 말을 통역했다.
준석은 섬찟한 기분이 들어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 던졌다.
그런 길을 30분쯤 가다 가파른 산으로 올라갔다.
열대지방의 열기를 안고 산을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정인은 숨을 헐떡이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정상인 듯 편편해지더니 물보라가 뿌려지고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곳에서 그들은 잠시 쉬었다.
바로 앞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다가서서 살피니 20여 미터나 되어 보이는 폭포가 굉음을 내지르고 나타났다.
어느새 왔는지 야쿠쿠는 절벽 끝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야쿠쿠는 옷을 입은 채로 절벽에서 멋진 폼을 잡고 뛰어 내렸다.
영화에서 보는 슬로우 모션처럼 날아가는 야쿠쿠의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그런 광경을 본 정인은 준석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도 뛰어 내릴까요?\"
\"글쎄... 자신 있어?\"
\"자신은 없지만 준석씨와 같이 라면 뛰어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은 손을 잡고 폭포수 밑을 내려다보았다.
아래에서만 쳐다보았던 폭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장관은 신선이 살고 있다는 무릉도원 같았다.
절벽 주변엔 이름 모를 풀과 작은 꽃들이 마치 채색을 한 듯 물색과 조화를 이루고, 깊어 보이는 검푸른 물은 폭포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찔해요\" 정인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준석의 옆에 바짝 다가섰다.
준석도 회오리치는 물결을 내려다보고는 몸의 열기가 식어 지는 것 같았다.
순간 준석은 정인의 눈빛에서 아주 강렬한 메시지를 받았다.
준석은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한 듯 정인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고 다시 폭포수 끝으로 다가갔다.
정인도 순순히 그를 따라 나섰다.
\"좋아 우리 새처럼 한번 날아 보자.\"
\"예, 알았어요. 저는 눈을 감을 게요. 저를 끌어 당겨 주세요.\" 정인은 그 곳에서 떨어지면 죽을 것만 같았다.
허나 준석과 같이 라면 지옥이라도 좋았다.
둘은 숙연한 자세로 잠시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어쩌면 그런 무모한 행동이 모험 일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서로에게 신뢰와 믿음으로 승화된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 소리나 외쳐 봐\"
\"네\" 그들은 손을 잡고 허공에 몸을 던졌다.
\"아 - 악---\" 정인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는 폭포수 굉음에 휩싸여 들어갔다.
준석의 외침도 여지없이 흡수되고 말았다.
회음(會陰) 부위가 끊어질 듯 짜릿한 전율에 그들은 정신을 빼앗겼다.
새가 된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커다란 왕관을 그리며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정인은 물 밖으로 얼굴을 내 밀었다.
그들은 서로를 확인했고 이제 그들의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기고 있었다.
폭포수의 굉음을 뒤로 하고 떨어지는 수압에 물매를 맞으며 폭포를 빠져 나왔다.
멋있다는 표현이었을까?
야쿠쿠는 고개를 좌우로 약간 흔들며 준석에게 미소를 보냈다.
준석도 그에게 멋 적은 표정으로 약간 손을 들어 보였다.
정인은 옷이 젖어 달라붙은 자신의 몸매를 준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고 싶지가 않았는지 준석의 뒤에 숨었다.
야쿠쿠를 따라 그들은 가파른 산을 10여분을 더 올라갔다.
야자수 잎으로 두른 집이 나타났다.
야쿠쿠는 멈추라는 손짓을 하고는 그 집으로 들어갔다.
정인은 그가 식인종 코로와이 족 2 세라는 걸 알고 있는 터라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가 들어가서 무슨 음모라도 꾸밀 것만 같았다.
준석도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의당 있어야 할 미스 조가 보이지 않았다.
준석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인아 뛰어.\"
그는 정인의 손을 잡아끌고 아래쪽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정인은 영문도 모른 채 그에게 끌리듯 뛰었다.
'후다닥' 소리에 숲속에서 미스 조가 놀란 기색으로 바지를 치켜올리며 그들을 따라 뛰었다.
\"무슨 일이에요\"
준석은 미스 조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잠시 준석은 헐떡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엉거주춤하게 멈춰 섰다.
\"식인종에게 잡혀 먹힌 줄 알았잖아요\"
준석은 이마에 맺힌 땀을 옷깃으로 훔치며 자신의 엉뚱한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정인과 미스 조는 준석의 말을 듣고 배를 잡고 웃었다.
잠시 후 야쿠쿠가 나오더니 그들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 곳 주변엔 희귀하게 생긴 조개 껍질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그렇다면 이 높은 곳이 바다였었단 말인가!
숲 속에선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와 나무 위에선 작은 원숭이가 '깩깩'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었다.
그들이 비집고 들어간 곳은 밖에서 보기 보단 꽤나 넓었다.
10 여명이 굴레를 돌리며 무엇인가를 갈고 있었다.
그것은 정인이 좋아하는 보석 오팔이었다.
까무잡잡하고 무섭게 생긴 온몸에 기하학적 무늬를 새긴 그 남자는 구석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곳 원주민은 거의 반나체로 생활하며 키와 몸집이 매우 작았다.
그들은 머리에 띠를 하고 있었는데 그 머리띠는 그 곳에서 서식하는 커다란 쥐의 꼬리로 만든다고 했다.
행운이 온다는 그 머리띠를 족장인듯한 사람이 정인과 준석의 머리에 매어 주었다.
두 사람은 쥐꼬리라는 말에 께림직한 기분이 들었지만 족장의 성의를 생각해서 박쥐 이빨이 달린 쥐꼬리 머리띠를 그냥 하고 있었다.
그 곳은 사탕수수가 빽빽히 자라고 있었다.
그 즙을 그냥 짜서 햇볕에 수분을 증발시키면 사탕 덩어리가 되어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이들은 간식으로 즐긴다고 했다.
커다랗고 색이 튀어나올 듯한 블랙 오팔 두 개를 샀다.
웬만한 사람은 이곳을 구경도 할 수 없다며 미스 조는 은근히 생색을 냈다.
\"오팔은 어떻게 생기는 거예요?\"
정인은 오팔에서 나오는 오묘한 빛을 요리조리 살피며 준석에게 물었다.
\"오팔은 땅속에 묻힌 조개들이 몇 만년의 세월이 흘러 화석처럼 돌이 되어 생긴 거야.\"
\"그렇게나 오래 걸린 거예요?\"
\"응, 모든 광석은 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땅속에서 높은 압력으로 결정되어 있다가 지각 변동으로 인해 땅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어떤 보석은 화산 폭발로 인해 용암이 분출 할 때 나오게 되지. 그것이 바로 보석이야.\"
\"네 에\"
그녀는 서로 하나씩 반지를 하자며 대각선으로 메고 있는 준석의 가방 깊숙이 넣으며 빨리 백화점에 가서 셋팅 구경을 하자고 했다.
그들은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정인은 산에서 내려올 때 준석이 메고 있는 가방이 덜렁거린다며 등 뒤에서 가방이 덜렁거리지 않게 꼭 묶어 주었다.
이런 밀림에서 하루 숙박을 하려했지만 숙박 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그들은 그냥 여기저기 섬 주변을 구경하고 가자고 했다.
예쁜 색깔의 오팔처럼 생긴 돌들을 주워 모아 가방 가득 넣었더니 묵직해서 준석의 어깨가 축 쳐질 정도였다.
석양이 물들고 바람이 조금씩 불어와 서늘할 때 그들은 서둘러 정글을 빠져 나왔다.
나올 때는 흐르는 물에 통나무배를 좀 수월하게 배 있는 곳까지 밀고 나왔다.
통나무배에서 내려 고기잡이배로 갈아타야 했다.
바위로 올라가 배와 연결해 얹어 놓은 폭이 좁은 나무다리를 건너 배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야쿠쿠가 먼저 들어가 선장을 도와 시동을 걸고 미스 조와 정인이가 뒤뚱거리며 들어갔다.
준석이 다리를 건널 때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와 파도가 치며 나무다리가 5미터 아래로 떨어 졌다.
준석은 '어' 소리와 함께 돌이 가득 든 가방을 멘 채 물에 빠졌다.
그는 밀려오는 물결에 물을 먹은 듯 허우적거리며 점점 거세어지는 강물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가방을 벗어요. 어떻게 해요. 구해주세요\" 정인은 소리를 질렀다.
미스 조는 발만 동동 구르고,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선장과 야쿠쿠는 긴 장대를 물속에 넣고 준석을 건지려 했다.
준석은 무거운 가방 때문인지 혼탁한 강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끈으로 묶은 가방을 벗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계속 물을 먹고 힘을 잃어 갔다.
몸은 식어 떨어진 체온은 힘을 약화시키고 다 빠져 버린 기운은 준석을 물속에 잠겨 있게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그는 물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맥없이 손만 물결에 허우적거렸다.
생명의 벼랑 끝에서 이제는 죽나 보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준석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위험해요. 들어가지 마세요.\"
정인이 물에 뛰어들려 하자 미스 조는 정인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렸다.
정인은 미스 조를 뿌리치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물속은 혼탁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준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정인은 계속 잠수를 했다.
몇 번의 잠수를 해서 준석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정인은 준석이 메고 있는 가방을 묶어 놓은 끈을 풀고 묵직한 가방을 벗겨 주었다.
순간 준석은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준석은 본능으로 그것을 움켜잡았다.
그녀도 물을 먹고 힘을 잃었으나 온 힘을 다해 준석을 물 밖으로 끌어 올렸다.
준석은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갑자기 시원함을 느끼고는 이제는 천당(天堂)이구나 싶었다.
정인은 기진맥진해 물가에 몸을 반쯤 내 놓은 채 널부러지고 말았다.
야쿠쿠와 미스 조는 준석을 끌어올렸다.
준석이 가슴이 답답해서 눈을 떠보니 평평한 바위 위였다.
미스 조가 준석의 배 위에 올라타고 앉아 두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다.
준석은 물을 토해놓고 '후' 하고 숨을 내 쉬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정인이도 옷이 젖은 채 맥없이 누워 있었다.
그는 힘없어 늘어져 있으면서도 정인을 찾고 있었다.
준석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폈다.
메고 있던 배낭이 없어졌다.
정인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오팔을 물속에 빠트린 걸 생각하니 준석은 너무나 허탈해했다.
준석은 긴장대를 들고 물가를 휘저었다.
아무리 찾아도 배낭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깟 오팔이 뭐 중요해요? 당신이 이렇게 살아 계시잖아요.\"
정인은 물에 젖은 준석을 어루만지며 의젓하게 말했다.
\"정인씨 아니었으면 준석씨는 고기밥이 되었을 거예요\" 미스 조는 그에게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정인씨가 구했어요. 당신들은 새로 태어났으니 오래 살겠어요.\" 미스 조는 하늘이 주신 천운이라며 그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정인이 나를 살렸다니'
힘없이 늘어져 누워 있던 준석은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정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정인을 바라보는 준석의 눈엔 촉촉히 물기가 배어 있었다.
육지로 나오니 좀 전의 악몽에서 벗어난 준석은 진정이 되고 있었다.
몇 시간 사이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것처럼 느껴졌다.
정인은 구경을 하다가도 연신 준석의 볼에 뽀뽀를 하곤 했다.
야쿠쿠는 당신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며 두 분을 위해 축가를 불러 주겠다고 인도네시아 노래를 불러 주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쳐다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주위사람 들이 박수를 치는 것이 잘 부른 것 같았다.
거리를 지나다 보니 좀 커다란 공장 같은 건물 앞엔 거의 군인복장을 하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길거리의 교통순경은 하나같이 키가 작은 데다 아랫배가 불룩 나와 있어 아주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못사는 사람은 하나같이 말라 있었지만 잘사는 사람들은 저들과 같은 체형이 많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이 더운 나라에서 가죽잠바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햇빛만 가리면 덥지 않은 곳이 습기 없는 열대 지방이다.
거리를 조금 벗어나니 물소들이 여기저기 강가에 모여 있고 첨벙대며 물장난을 하는 어린 아이들이 천진스럽게 그들 부모가 바라보는 앞에서 놀고 있었다.
정인은 준석과 저들처럼 천진스럽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담보로 정인의 사랑을 확인한 준석은 앞으로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 이라도 하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을 했다.
그들은 며칠간의 일정을 마치고 그 곳 특산물인 흑단으로 만든 나무 인형 몇 개를 사 들고 인도네시아를 떠나 서울로 왔다.
준석이 집에 오니 연주와 연지가 반가이 뛰어 나왔다.
자칫 했으면 너희들을 못 볼 수도 있었다고 물에 빠진 얘기를 해주었다.
연주가 \"아빠, 그러니까 외국에 다니지 말아요. 아빠가 안 계시니까 공부도 잘 안 돼요.\"
준석이 이것저것 선물을 꺼내 놓으며 정인과의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준석에게 있어 정인은 그의 모든 것이 되어 버렸다.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준석에게 그런 건 다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몇일후 중국을 가야했다.
정인은 준석을 따라 가겠다고 매달렸다.
\"중국 비자를 받았어요.\" 그녀는 준석이 중국에 있을 때 비자를 받아 놓았다고 했다.
\"어디 봐요?\" 그녀는 얼른 여권을 내 밀었다.
중화인민 공화국이란 글과 별이 새겨진 파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좀처럼 받을 수 없는 중국비자를 정말 받아 놓은 것이었다.
그를 향한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지 알 것 같았다.
\"나도 같이 가고 싶지만 일행도 있고 일정이 있어서 구경을 제대로 할 수도 없어,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볼게\"
댓글 2개
이정현
2016. 06. 07. 오후 09:10
맘을 졸이며... 두 분의 사랑이 긴장감 있고 싱싱한 생동감이 미소짓게합니다 사랑... 그 사랑은 지구를 벗어나도 두고 가기 어렵겠네요 나도 해 보고 싶은 사랑...
이정현
2016. 06. 07. 오후 09:39
선생님~~ 감사합니다 참 재미있고 흥미진진합니다 100 편까지 다 쓰시려면 고생 많으시겠지만 선생님 글 기다리는 독자 생각하셔서 바쁘셔도 힘이 드시고 시간 없어도 자주 올려주셔요 날이 더워집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선생님 덕분에 좋은 시간 갖게되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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