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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부석사에는 무량수전이 없다 (9)

황태영 2017. 06. 26. 오후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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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에는 무량수전이 없다
                                                                                  황태영

 

    아침을 조개로 때우고 나서 설거지를 굳이 자기가 하겠다는 딸애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난 후 나는 부루스타 위에 찻물을 끓였다. 보글보글 물이 끓기 시작하자 커피가루가 담겨 있는 일회용 종이컵에 끓는 물을 부었다.
   \" 어머, 이렇게 어린 애가 설거지를 다 하네. 착하기도 해라.\"
   수돗가에 설거지를 하러 나온 어떤 여자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커피를 마셨다. 어쩌면 저 여자는 홀애비가 혼자 키우는 딸로 오해하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설사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의욕도 없다.


  부석면 면사무소, 우체국을 스쳐지나가면서 삼거리가 나왔다. 대충 이 근처에 부석사가 있으리라 짐작되었다. 계속 직진해야 할런지 아니면 좌회전하여 올라가는 도로로 달려야 할런지 판단이 서지 않아 삼거리에 좌판을 펴놓고 수박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기 위해 그 앞에 차를 세웠다. 버스 정류소 표지판이 근처에 서 있어서 서너댓 명의 여자들이 주위에 몰려 있었다.
   \" 아주머니, 부석사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 \"
   나는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수박 파는 여자에게 물었다.
   \" 부석사유? 왜유? 흑염소 사시려구유? 주지 스님이 안파실텐데...... 부석사는...... \"
   수박 파는 여자의 느릿느릿한 말이 완전한 문장이 되기도 전에 웬 중년 여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 아이구, 잘됐네. 부석사 가는 길은 내가 아니까 나 좀 태워줘요. 내가 잘 가르쳐드릴께. \"
   \" 그리 가시는 길이면 타세요. 다미야, 넌 뒷자리로 가거라. \"
   딸이 뒷자리로 옮겨 타는 사이에 중년의 여자는 수박 파는 여자에게 \"저리 죽 가면 되지? \" 하며 황급히 묻더니 조수석에 펑퍼짐한 엉덩이를 얹었다.
   길을 잘 안다는 여자가 수박 파는 아낙에게 길을 묻다니 의아했다.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직진하기 시작했다.
   \" 부처님이 도와서 절까지 가는 차편이 생겼네. 버스도 오지 않고 택시나 타고 갈까 했는데 그나마도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절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 \"
   \" 우리나라 사람치고 절에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 \"
   \" 백운사는 정말 좋은 절이에요. \"
   백운사라니? 갑자기 웬 듣지도 못한 생소한 절이 나오는 거지 ? 너무 의아해서 물었다.
   \" 아주머니, 제가 찾고자 하는 절은 부석산데요. \"
   \" 백운사가 부석사예요. 똑같은 절이예요. \"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확실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 백운사와 부석사가 이름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절입니까? \"
   중년여자는 손등으로 이마빡의 땀을 쓰윽 닦더니 엉뚱한 대답을 했다.
   \" 작년에 생긴 절인데 그 절 주지스님이 너무 좋다우. \"
   \" 작년에 생겼다구요? 부석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니까 천년 이상은 됐어요. \"
   백운사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이 보였다. 차 한 대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폭의 비탈진 오르막길이었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 저 길로 죽 올라가면 백운사가 나오고 나 내려주고 더 가면 부석사가 나와요. \"
   두 절이 똑같은 절이라더니 어느새 다른 절로 말이 바뀌어 있었다. 더 이상 신뢰감이 가지도 않았고 좁은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내려오는 차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할지도 난감하여 일단 차를 세웠다. 도로가에 중장비로 땅을 파고 있는 인부들에게 가서 부석사로 가려면 저 백운사로 가는 길로 가면 되느냐고 물었다.
   \" 부석사요 ? 정반대로 오셨네. 저 시멘트길은 백운사 가는 길이요. 팻말에도 백운사라고 쓰여 있잖소? 저기 멀리 보이는 저 산이 도비산인데 부석사는 그 산 중턱에 있어요. \"
   나는 인부가 가리키는 산을 쳐다보았다. 내가 지나온 방향에 있는 도비산이라는 이름의 산을 황당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직장에서는 최 이사가 나를 이용해먹더니 여기서조차도 나를 이용해먹으려는 자가 있구나.



계속.

 



댓글 4개

서흥식 2017. 06. 28. 오전 06:47

ㅋㅋ 엉덩이가 펑퍼짐한 아줌마... 되는 일이 없네~~

황태영 2017. 06. 28. 오후 05:19

어떤 소재로 글을 쓸 것인가? 소재의 빈곤 상태에 봉착한 작가들은 한 때 글쓰기 소재를 얻기 위해 무작정 여행을 떠나 여행 길에 직접 겪은 일들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직접 경험으로 글로 쓴다는 것은 가장 실감나고 쉽게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지요. 엉덩이가 펑퍼짐한 아줌마도 실제로 제 승용차에 태웠읍니다. 홍상수 감독은 (아마도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나눈 사소해 보이는 대화들로 그대로 영화를 만드는 것 같은데도 놀라운 수준의 창작품을 만들어내니 그의 능력이 부러울 뿐입니다.

서흥식 2017. 06. 28. 오후 10:01

아 그랬군요. 실제 사건은 진짜니까 그걸 이용하면 <진짜 같은> 이야기가 나오겠죠?

황태영 2017. 06. 29. 오전 10:01

경험은 직접 경험(reality,즉 사실성을 높여주지요)과 간접 경험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작품 속의 모든 걸 직접 경험으로 경험할 수 없으니 간접경험(술자리에서 지인이 내뱉는 말로 하는 자서전도 이에 해당되겠고,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서)도 창작에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흑염소에 대한 축산 관련 서적을 읽으며 작품 속에 녹여들게 할 부분을 찾는 것이지요. 그리고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한국 재래종 흑염소의 기원 부분은 상상력이지요. 글쓰기에 대한 제 개인의 견해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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