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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있거라(A Farewell to Arms, or Poems)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or Poems)
백 원 순
#아무리 인터넷일지라도 보잘 것 없는 시인의 시를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를 위해 무성의한 댓글로 작별 인사를 한다는 게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싶어, 저의 마지막 시를 보내드립니다. 그동안 이 공간에 시나 글을 쓰면서 많이 아프기도 하였고 눈물도 나 홀로 찔끔 흘리기도 하였지만 쓰디 쓴 칠흑 같은 인생의 어둠(bitter)의 골목길에서 방황할 때 저 먼 하늘에 반짝이는 ‘사랑초’ 같은 작은 별을 보고 삶의 희망과 달콤함(sweet)을 노래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릴 적 여름날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워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수를 비롯한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며 누워 있을 때 밝은 별똥별(유성)이 무한한 공간인 밤하늘을 잠깐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인생과 사랑도 그 유성처럼, 스치고 지나간 그 후, 오래토록 긴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poems)도 마친 가지구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내가 시를 쓸 때도 마찬가지로
내가 강의를 할 때처럼
내 시를 보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이 세상 살아 있는 동안
시를 쓸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를 썼다
내 부족한 영어 실력일지라도
내 강의에
단 한 사람이라도
듣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나의 강의에 대한 준비를
성심껏 하여
그 시간에 강의를 했었다
시를 쓴다거나
강의를 하는 것은
모두 언어를 매개로 한 것이고
시를 쓴 후
강의를 한 후
시인은 그의 시가 그에게
강사가 그의 강의가 그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
그 시인이
인터넷에 시를 쓴다면
그 강사가
사회생활에 은퇴한 사람들(어르신들)을 위해 강의 한다면
시인이나 그 강사나
모두
기약할 수 없는
(종교인이 설교나 불문을 말하면
십자가 앞의 헌금함이나
인자하신 부처님 아래 금전 함에
과부의 때 묻은 동전 한 잎이 들어갈지 모르지만)
다음 생애를 위해
시를 쓰고 강의 하고
내가 제일 서러운 것은
내 강의를 들으시던 어느 어른신이
어느 날 보이지 않아 물었을 때
그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또 그렇게 강의를 하고
인생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내가 강의를 한 영어교실에서
산전수전 다 격은 어르신들이
스승의 날 이다 고
자식들에게나 손주들에게 탄 용돈을 모아
자식 같은 강사인 내게 봉투를 건네는 것이었다
내가 시를 쓸 때나
강의를 할 때
사람을 생각하고
시를 쓰고 강의를 했던 것 같다
옛날 고대 어느 마을에
마을 사람들과
스님 한 분이 살고 있었다
고대이다 보니
그 마을 사람들 습관 중에
인육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깨우친 스님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수많은 설법을 통해 고치려 했지만
그 마을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스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몇 날 몇 시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마을 어귀에 나타날 것이니
그를 잡아서 너희의 인욕의 욕망을
채워라하고 말씀하시고 사라졌다
그 날 그 때에
마을 어귀에는 붉은 옷을 입은
알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나고
마을 사람들은
욕망에 굶주려 그 사람을 바로 죽여서
얼굴에 삿갓을 벗겨 확인하여 보니
그 사람은
그들이 지금껏 존경하며 말씀을 듣고 바라보던
바로 그 마을의 스님이었고
그 후로
그 마을 사람들은
사람의 고기를
먹지 안했다는 이야기를
내 기억에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인가 가물 하지만
국어책에
단편 소설에 등장하여(붉은 옷)
그 당시는 이해를 못했지만
이 나이에 생각이 나는 것은
시를 쓴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 구나 하고
늦게 깨달았거나
그래도
시를 못 쓰더라도
사랑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남은 내 인생에
오래토록 묻고 싶은
마지막 주제인 것 같다
댓글 3개
보내드릴 수 밖에 없지만 인연이 있어 다시 뵈옵기를 고대해 봅니다^^
영어의 해석은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좀 더 느끼느냐의 미묘한 늬앙스 차이가 아닐까 해요.
전해 주신 시와 글은 소중한 표현이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다시 만날 기회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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