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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시모음 51편

김용호 2025. 04. 23. 오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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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시모음 51편 ☆★☆★☆★☆★☆★☆★☆★☆★☆★☆★☆★☆★ 《1》 3월은 말이 없고 황금찬 얼음이 풀린 논둑 길에 소리쟁이가 두 치나 솟아올랐다. 이런 봄 어머님은 소녀였던 내 누님을 데리고 냉이랑 꽃다지 그리고 소리쟁이를 캐며 봄 이야기를 하셨다. 논갈이의 물이 오른 이웃집 건아 애비는 산골 물소리보다도 더 맑은 음성으로 메나리를 부르고 산수유가 꽃잎 여는 양지 자락엔 산꿩이 3월을 줍고 있었다. 흰 연기를 뿜어 울리며 방금 서울행 기차가 지나가고 대문 앞에서 서성이며 도시에서 올 편지를 기다리는 정순이의 마음은 3월 아지랑이처럼 타고 있었다. 이 3월이 두고 온 고향에도 찾아왔을까 천 년 잠이 드신 어머님의 뜰에도 이제 곧 고향 3월을 뜸북새가 울겠구나. 고향을 잃어버리면 봄도 잊고 마느니 우리들 마음의 봄을 더 잃기 전 고향 3월로 돌아가리라. 고향의 봄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 《2》 5월의 노래 황금찬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놈일까?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 있던 난초가 꽃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 《3》 5월의 창 황금찬 5월은 푸르러 가는 내 창 앞에 와서 한 밤을 말이 없다가 새벽이 되면 정다운 음성으로 나를 부르는 것이다. 비가 오는 언덕에는 어느 바레트의 채색처럼 풍경화를 수놓고 있는데 그것을 이 창 안에서 바라보기란 마음의 부담으로 하여 시계가 흐른다. 5월은 누가 간 달이냐 다시 누가 올 달이라더냐 아카시아 꽃이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것은 내 창으로 봐 액자 속의 그림 같다. 5월의 창은 언제나 미술전시회장의 입구처럼 기대가 크고, 무도회의 권유를 연주하고 있다. 5월의 내 창을 통해 보면 고호의 그림폭이 나열되고 스테파노가 부르는 무정한 사람이 들리고 때로는 가부리엘라 뚜치의 소프라노가 감돌기도 한다. 5월의 창은 참 말이 없다. 그리고 그 낮은 음석으로 해서 다정한 풍경화와 조용한 음률을 생각하는 내 하나의 유산이다. ☆★☆★☆★☆★☆★☆★☆★☆★☆★☆★☆★☆★ 《4》 5월이 오면 황금찬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놈일까?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져 있던 난초가 꽃 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 《5》 6월 황금찬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느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청이 신록에 젖었다.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 있다. 지금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한 폭의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 《6》 7월의 바다 황금찬 아침 바다엔 밤새 물새가 그려 놓고 간 발자국이 바다 이슬에 젖어 있다. 나는 그 발자국 소리를 밟으며 싸늘한 소라껍질을 주워 손바닥 위에 놓아 본다. 소라의 천 년 바다의 꿈이 호수처럼 고독하다. 돛을 달고, 두세 척 만선의 꿈이 떠 있을 바다는 뱃머리를 열고 있다. 물을 떠난 배는 문득 나비가 되어 바다 위를 날고 있다. 푸른 잔디밭을 마구 달려 나비를 쫓아간다. 어느새 나는 물새가 되어 있었다 ☆★☆★☆★☆★☆★☆★☆★☆★☆★☆★☆★☆★ 《7》 가을 황금찬 감나무 가지에 매미가 벗어 걸어놓은 여름옷 한 벌 밤 이슬에 젖고 있다 ☆★☆★☆★☆★☆★☆★☆★☆★☆★☆★☆★☆★ 《8》 가을바다 황금찬 지금 이 바다엔 아무도 없고 물새 한 마리와 나뿐이다. 우리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다. 너와 나는 항해사 파도는 우리들의 길이다. 가야 한다. 저 하늘과 산맥을 넘어서 바다는 인류의 눈물이다. 물새가 울고 있다. 나도 울고 바닷가에선 장미꽃 한 송이도 울고 있었다. ☆★☆★☆★☆★☆★☆★☆★☆★☆★☆★☆★☆★ 《9》 개미 황금찬 개미는 시작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일을 한다 개미는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생명이다 개미는 허리가 가늘다 아름답다 별도로 다이어트가 필요치 않다 하늘은 일하는 생명에겐 건강과 아름다움을 주노라고 했다 개미는 이 세상 어디에도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도 그는 거기서 일하고 있다 개미는 저주받지 않는다 영원한 축복이 있으리라 ☆★☆★☆★☆★☆★☆★☆★☆★☆★☆★☆★☆★ 《10》 겨울 기도 황금찬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장미나무 그 마른 잎새 위에 기도의 사연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눈나라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흰 장미꽃처럼 순결한 그런 사랑으로 당신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눈나라의 성문이 열리듯 그렇게 문이 열리고 마음밭에 피는 사랑의 꽃. 소녀의 아침 기도는 끝났는데 그래도 눈은 내리고 겨울 장미밭에 순결한 장미는 피고, 걸어오려나 조용히 길을 내며 기다리는 눈언덕에 당신은 찾아오려나. ☆★☆★☆★☆★☆★☆★☆★☆★☆★☆★☆★☆★ 《11》 겨울 나무 황금찬 말하려나 참고 견디어온 긴 세월 보석으로 닦은 그 한마디의 말. 한줌 자랑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오늘 이 남루한 지대에서 주저할 것이 없으리. 노을이 걷히듯 끝나기 전 한가락 머리카락에 새겨둘 슬픈 피리소리. 시대의 겨울 나무여. 말하려나 이젠 말하려나. ☆★☆★☆★☆★☆★☆★☆★☆★☆★☆★☆★☆★ 《12》 그리움 황금찬 바람이 불어도 눈뜨지 않는 나무여. 파도로 출렁이는 그리움으로 네 앞에 서 있다. ☆★☆★☆★☆★☆★☆★☆★☆★☆★☆★☆★☆★ 《13》 길 황금찬 언덕에는 미운 꽃들이 피어 있었다. 나는 언덕길을 전설처럼 걸어내리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은 오고 가는 길이라는데 왜 오늘 이 길엔 나 혼자뿐일까? 가는 길은 모두 이렇게 적막했을까? 이젠 외롭지 않다. 구름과 같이 가고 있다. ☆★☆★☆★☆★☆★☆★☆★☆★☆★☆★☆★☆★ 《14》 꽃 한 송이 드리리다 황금찬 꽃 한 송이 드리리다. 복된 당신의 가정 평화의 축복이 내리는 밝은 마음 그 자리 위에 눈이 내려 쌓이듯 그렇게 -. 꽃 한 송이 드리리다. 지금까지 누구도 피워본 일이 없고 또한 가져본 일도 없고 맑은 향기 색깔 고운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밀고 계절이 놓고 가는 선물처럼 잎이 살고 줄기가 살아나며 죽어가는 뿌리, 그리고 기후도 살게 하는 신기한 꽃 그 한 송이르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이여. 어린 행복 위에 성장한 정신 위에 가난한 금고 안에 땅 흘리는 운영 위에 꽃이여, 피어나라. 임술년 새날 아침부터 이 해가 다하는 끝날까지 피기만 하고 언제나 지는 날이 없는 꽃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 또한 높아 하늘의 천사등도 부러워하는 그 꽃 한 송이를 축원의 선물로 드리렵니다. ☆★☆★☆★☆★☆★☆★☆★☆★☆★☆★☆★☆★ 《15》 꽃씨 황금찬 눈이 쌓인 날 들을 쓸며 꽃씨를 받았네 종이 속에 봄을 싸서 서랍안에 감춘다 작은 소망을 받아 두었던 꽃씨를 뿌리며 들새들의 가슴에 황홀한 봄꽃을 심는다 기울어가는 계절에 내일의 소망을 심는다. 눈이 쌓인 날 들을 쓸며 꽃씨를 받았네 종이 속에 봄을 싸서 서랍안에 감춘다 작은 소망을 싹트는 계절 봄을 기다리며 들새들의 가슴에 황홀한 봄꽃을 심는다 기울어가는 계절에 내일의 소망을 심는다. ☆★☆★☆★☆★☆★☆★☆★☆★☆★☆★☆★☆★ 《16》 꽃의 말 황금찬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아라. 그래야 말도 꽃같이 하리라. 사람아. ☆★☆★☆★☆★☆★☆★☆★☆★☆★☆★☆★☆★ 《17》 나비의 소녀 황금찬 그 나비의 소녀도 지금쯤 늙었으리 구름의 언덕에서 장미의 노래를 부르던 나비의 소녀 내가 염소를 몰고 언덕을 오를라치면 소녀는 단발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한떨기 장미꽃을 부르곤 했었지 6월은 우리들을 슬프게 했었네 소란스러운 강물 6월은 나비의 소녀는 지금 어느 언덕에서 날고 있을까 구름은 피어 있는데 장미의 노래는 들려오지 않네. ☆★☆★☆★☆★☆★☆★☆★☆★☆★☆★☆★☆★ 《18》 나와 우주의 관계 황금찬 눈은 별을 보기 위하여 있다. 별이 없으면 눈도 무용해진다. 별을 겨누지 말라 별을 쏘지 말라 그가 눈을 감으면 내 눈도 감기고 말리라. 우주엔 별이 눈이요, 마음엔 눈이 별이다. 별이 있어 눈이 있고 눈이 있음으로 별이 있는 것이다. ☆★☆★☆★☆★☆★☆★☆★☆★☆★☆★☆★☆★ 《19》 나의 소망 황금찬 정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맞이한 이 해에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하늘같이 신뢰하며 욕심 없이 사랑하리라 소망은 갖는 사람에겐 복이 되고 버리는 사람에겐 화가 오느니 우리 모두 소망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후회로운 삶을 살지 않고 언제나 광명 안에서 남을 섬기는 이치를 배우며 살아간다. 선한 도덕과 착한 윤리를 위하여 이 해에는 최선을 다하리라. 밝음과 맑음을 항상 생활 속에 두라 이것을 새해의 지표로 하리라 ☆★☆★☆★☆★☆★☆★☆★☆★☆★☆★☆★☆★ 《20》 나의 층계 황금찬 나의 처음 층계는 꽃이었다. 갈수록 그것은 돌층계였다. 그 위의 층계는 형극이었다. 앞서간 사람들도 이 층계를 밟고 갔을까 한 층계 사이가 천 린가, 만 리 그들도 이 층계에서 방황했을까 산다는 것은 피, 그리고 땀 다시 눈물이다. 이쯤에서 머무를 수 없을까 나의 형벌을. ☆★☆★☆★☆★☆★☆★☆★☆★☆★☆★☆★☆★ 《21》 낙엽시초 황금찬 꽃잎으로 쌓아 올린 절정에서 지금 함부로 부서져 가는 너 낙엽이여 창백한 창 앞으로 허물어진 보람의 행렬이 가는 소리가 없는 공허로 발자국을 메우며 최후의 기수들의 기폭이 간다 이기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저 찢어진 깃발들 다시 언약을 말자 기울어지는 황혼에 내일 만나는 것은 내가 아니다 고궁에 국화가 피는데 뜰 위에 서 있는 나 이별을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문을 닫으라 낙엽 다시는 내 가는 곳을 묻지 말라 ☆★☆★☆★☆★☆★☆★☆★☆★☆★☆★☆★☆★ 《22》 내놓고 황금찬 봄비 속에 너를 보낸다 쑥순도 파아라니 비에 젖고 목매기 송아지가 울며 오는데 멀리 돌아간 산 구빗길 못 올 길처럼 슬픔이 일고 산비 구름 속에 조으는 밤 길처럼 애달픈 꿈이 있었다 ☆★☆★☆★☆★☆★☆★☆★☆★☆★☆★☆★☆★ 《23》 너와 나의 거리 황금찬 우리들이 만나는 날엔 언제나 태양이 없었다. 네가 비운 술잔에 달이 뜨고 나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를 네 귀에 담고 있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멀고 가까움의 거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너와 나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 《24》 달밤 황금찬 달을 보고 있었다 달이 익었다 그 익은 달을 9월의 사과처럼 따 먹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들어올린 것은 바다였다 사랑의 손톱 자국도 없는 칡넝쿨 같은 바다였다 우리가 달을 토해내자 바다도 수없이 많은 달을 토해내고 있었다. ☆★☆★☆★☆★☆★☆★☆★☆★☆★☆★☆★☆★ 《25》 梅花에 부치는 편지 황금찬 咸鏡南道 元山, 明石洞 一五번지 雨水節이었는데 濃霧 속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 두시半이나, 세시였을 것이다 뜰악 梅花 나무 옆에서 맏딸 년을 안은 아내와 이별을 했다. 『당신이 가면 어떻게 살지요?』 『남편의 구실을 못해 미안하오』 『비가 오는데 그만 들어 가요, 몸이나 조심해야지』 『큰 소리로 해선 안돼요, 그리고 제 근심은 마세요』 『딸 년이나 잘 기르오』 아내는 통 말이 없다. 나는 몇 걸음 걷다 돌아 섰다. 세살난 딸년은 梅花 가지를 잡고 놓지 않았다. 어제 같은데 十三年이다. 이제는 보고 싶지도 않다. 만나면 무섭기만 하리라. 梅花 나무는 그 뜰에 지금도 서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컸을까 열 다섯 살 났을 내 딸년의 두 길은 컸겠지 그리고 이봄에도 꽃이 피는가 당신은 그 집에 살고 있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왜 이리 무서워질까요 故鄕이면서 天涯의 땅 梅花. 오양깐에서 잠자던 송아지는 어디로 끌려갔을까 ☆★☆★☆★☆★☆★☆★☆★☆★☆★☆★☆★☆★ 《26》 바다 환상곡 황금찬 여름 바다에 오면 海員이 되고 싶다. 비단 돛을 올리고 검은 해리 전설의 인어가 사랑을 찾아 헤엄치는 그 찬란한 아침에 편지 속에 어느 독자가 보내준 해바라기씨 몇 개 지금 저 수평선 그 너머 꽃밭에서 피고 물결에 쓸리어 천 년의 연륜 빛나는 조개껍질로 목걸이를 만들어 집시의 살결 검은 여인 그 긴 목에 걸어주고 돌아서리라. 사랑의 비늘이 아직도 잠들지 않은 모래언덕에 앉아 피리를 불면 물새처럼 날아오는 바다 바다 여름 바다 불꽃 같은 열기가 식고 바다에 등불이 꺼지면 이베리아 반도 어느 고독한 섬 물새처럼 파도소리가 그리워 빈 고동들이 울고 있어라. 바다는 여름 바다는 사랑과 미움 그 사이에 살결 깊은 가슴으로 열리어 있었다. ☆★☆★☆★☆★☆★☆★☆★☆★☆★☆★☆★☆★ 《27》 별과 고기 황금찬 밤에 눈을 뜬다. 그리고 호수에 내려앉는다. 물고기들이 입을 열고 별을 주워 먹는다. 너는 신기한 구슬 고기 배를 뚫고 나와 그 자리에 떠 있다. 별을 먹은 고기들은 영광에 취하여 구름을 보고 있다. 별이 뜨는 밤이면 밤마다 같은 자리에 내려앉는다. 밤마다 고기는 별을 주워 먹지만 별은 고기 뱃속에 있지 않고 먼 하늘에 떠 있다 ☆★☆★☆★☆★☆★☆★☆★☆★☆★☆★☆★☆★ 《28》 보릿고개 황금찬 보릿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어머니가 울고 있다 내가 울고 있다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을 생각한다 에베레스트는 아시아의 산이다 몽불랑은 유럽 와스카라는 아메리카의 것 아프리카엔 킬리만자로가 있다 이 산들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 지금 내 앞에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 《29》 보석의 노래 황금찬 황홀한 모습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네 윤곽 부근에서 해가 솟고 우리는 목마르게 목마르게 너를 지켜보고 있다. 아름다움은 영원일레라 누가 네 앞에서 추악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너는 이슬 보자기 속에서 눈을 뜨고 있다. 신화 속의 이카로스도 너를 찾아 떠났고 눈속에서 피는 매화도 너를 부러워했느니라. 거기가 어디쯤이었을까? 꿈 속에서 너를 잃어버린 그 회색의 바다 나는 오늘도 찾고 있다. 영혼의 보석 한 개 하늘 문을 열고 ☆★☆★☆★☆★☆★☆★☆★☆★☆★☆★☆★☆★ 《30》 봄밤 황금찬 봄밤엔 잠이 오지 않았네 이 밤에 내가 네게 할 이야기는 행복하고도 슬펐던 긴 이야기. 목련꽃 가지에 창호지 초롱에 불을 켜 달아놓고 새벽이 올 때까지 편지를 쓴다. 내 마음 언덕에 봄 풀이 솟아나고 4월 바람은 꽃구름을 벽에 걸린 거울 앞까지 곱게 밀어 올렸다. 봄을 기다리던 겨울나무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밤바다의 물결은 아직도 멎지 않고 나의 길고도 짧은 사연은 끝이 없었다. ☆★☆★☆★☆★☆★☆★☆★☆★☆★☆★☆★☆★ 《31》 사랑과 지혜 황금찬 강물이 흐르다가 여울을 만나면 노래를 부른다. 나무는 바람 앞에서 고독한 독백으로 구름을 이야기하고. 나는 삶의 여울에선 언제나 울고 있다. 꽃은 사랑으로 피고 잎은 지혜로 자라는데. 이 밤에 외롭게 흘러가는 저 별 하나는 어느 곳에서 쉬게 될까. 삶의 사랑과 죽음의 지혜를 모르는 나는 이 바람 앞에서 망각의 피리를 불고 있다. ☆★☆★☆★☆★☆★☆★☆★☆★☆★☆★☆★☆★ 《32》 사랑의 눈 황금찬 집들의 눈은 창이고 내 영혼의 창은 눈이다 사랑은 수레바퀴와 같은 태양의 눈을 항상 뜨고 있었다. ☆★☆★☆★☆★☆★☆★☆★☆★☆★☆★☆★☆★ 《33》 사랑이 자라는 뜰 황금찬 아직도 내 체온이 식지 않은 풀 씨를 한 움큼 창 앞에 뿌려 놓고 새를 기다린다. 늙은 참새 한 쌍이 날아와 마음놓고 내 체온을 다 주워 먹었다. 따사한 정에 허기를 면하고 몸이 풀려 서늘한 표정으로 목례를 하고 얼마간 졸다가 구름 밭을 지나 어디론지 날아가 버렸다. 지금 창 앞에는 새가 두고 간 사랑이 풀잎으로 자라가고 있다. ☆★☆★☆★☆★☆★☆★☆★☆★☆★☆★☆★☆★ 《34》 산골 사람 황금찬 그는 물소리만 듣고 자랐다 그래 귀가 맑다 그는 구름만 보고 자랐다 그래 눈이 선하다 그는 잎새와 꽃을 이웃으로 하고 자랐다 그래 손이 곱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평범한 가르침 선하고 착하게 살아라 네가 그렇게 살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나는 충성과 효도를 모른다 다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못하고 살아 갈 뿐이다 오늘 내가 남길 교훈은 무엇일까 나도 평범한 애비여서 선하고 착하게 살아라 사랑하는 아들아, 딸들아 이 말 밖에 할 말이 따로 없다. ☆★☆★☆★☆★☆★☆★☆★☆★☆★☆★☆★☆★ 《35》 새 황금찬 새는 몇 십 년이나 될까 내 가슴에 집을 짓고 살았다 어느 날 칼날의 날개를 펴 둥지를 떠나고 말았다 빈집은 바람이 부는 날 울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 새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네. ☆★☆★☆★☆★☆★☆★☆★☆★☆★☆★☆★☆★ 《36》 숲 속 작은 집 황금찬 새가 되고 싶어 산으로 가네 노래부르는 새가 그리하여 너 닫힌 창 앞에서 문이 열릴 때까지 사랑의 노래를 부르리 꽃이 되고 싶어 들로 가네 겨울에도 피는 꽃이 사랑이 그리워 뿌리로 옮아다니며 너의 뜰에 하늘 향기로 피어나리 꽃이 되고자 새가 되고 싶어 숲 속 작은 집 주인 되어 돌아가리 ☆★☆★☆★☆★☆★☆★☆★☆★☆★☆★☆★☆★ 《37》 신문을 사는 마음 황금찬 신문을 펴 본다. 그 사면에 내 눈을 모을 만한 기사가 없다. 그대로 덮어둔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산다. 변화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사건이 없어 살아오는 내 생활이 이상하다. 부부 싸움은 변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애정을 촉구한다고 남들의 말이다. 나도 다투고 싶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신문을 펴놓고 말이 없다. 의사가 낮잠을 잔다. 무의미하다. 그러나 환자가 오면 무서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신문에 사건이 실리기를 바란다. 하지만 큰 사건을 보면 나는 그 신문을 찢어 버리고 만다. 나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무미건조한 기사 속에서 또 하나의 기사를 찾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란 차라리 신문을 사는 것이다. ☆★☆★☆★☆★☆★☆★☆★☆★☆★☆★☆★☆★ 《38》 아침 황금찬 아침을 기다리며 산다. 지금은 밤이래서가 아니고 아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침을 맞으면 또 그 다음의 아침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아침을 이에 맞았고 또 맞으리 하나 아침은 기다리는 것이다. 이미 맞은 아침은 아침이 아니었고 이제 맞을 아침이 아침일 것 같다. 아침을 기다리는 것은 그 아침에 날아올 새 한 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 《39》 어머니 황금찬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네게 일러 주는 말을 잊지 말고 자라나거라. 네 음성은 언제나 물소리를 닮아라. 허공을 나는 새에게 돌을 던지지 말아라. 칼이나 창을 가까이 하지 말고 욕심도 멀리 하라. 꽃이나 풀은 서로 미워하지 않고 한 자리에 열리는 예지의 포도나무 강물은 멎지 않고 흐르면서 따라 오라 따라 오라고 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강물같이 흘러 바다처럼 살아라. 포도송이에 별이 숨듯… 바닷속에 떠 있는 섬같이 살아라 하셨다. 어머님이- ☆★☆★☆★☆★☆★☆★☆★☆★☆★☆★☆★☆★ 《40》 어머님의 아리랑 황금찬 함경북도 마천령 용소골 집이 있었다 집이라고 해도 십분의 4는 집을 닮고 그 남은 6은 토굴이었다 어머님은 봄 산에 올라 참 꽃 진달래를 한 자루 따다 놓고 아침과 점심에 왕기에 꽃을 담아주었다 입술이 푸르도록 꽃을 먹어도 허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 날에 어머님이 눈물로 부르던 조용한 아리랑 청천 하늘엔 별들도 많고 우리네 살림엔 가난도 많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무산자 누구냐 탄식 말라 부귀와 영화는 돌고 돈다네 박꽃이 젖고 있다 구겨지며 어머님의 유산 아리랑 ☆★☆★☆★☆★☆★☆★☆★☆★☆★☆★☆★☆★ 《41》 영혼은 잠들지 않고 황금찬 내 영혼은 잠들지 않고 깨어 있으니 바위도 눈을 뜨고 살아서 흐르고 있는 강물이며 저 숲 속을 빠져가는 바람은 모두 나의 호흡이다. 낮에 눈을 뜨는 것은 영혼이 아니다. 영혼은 모든 것들이 눈감을 때 비로소 눈을 뜨나니 언제나 푸른 별들과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42》 오렌지 향기를 바람에 날리고 황금찬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석양은 먼 들녘에 내리네 염소의 무리는 이상한 수염을 흔들며 산을 내려오네. 종이 울리네 황혼의 묏새들이 종소리를 따라 바람에 날리는 억새꽃같이 호숫가 숲으로 날아드네. 머리에 가을 꽃을 꽃은 소녀들이 언덕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교회의 종소리는 우리들을 부르네 이 석양이 지나면 또다시 우리들은 아침을 맞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지고 촛불 위에 눈이 내리네 눈 위에 순록의 썰매는 달리고 그리하여 우리들도 어제의 소녀가 아니고 오렌지 향수가 하늘에 지듯 우리들의 향기도 지리 종이 울리네 숲 속에서 새들이 무상을 이야기하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소년들은 노래를 부르네. ☆★☆★☆★☆★☆★☆★☆★☆★☆★☆★☆★☆★ 《43》 우수절 부근 황금찬 모두 울고 있다. 이 계절엔. 오고 있는가 비도 내리고 있는가 겨울이 풀린 계곡에 메아리도 울리고 있는가 마음의 얼음도 풀리려는가 너와 나는 본래 적이 아니다 사랑이 오려는가 이 반목의 계절은 이제 가고 이해의 바다가 열리려는가. 우수절 강물도 풀리는데 나는 너를 미워할 수가 없구나 사랑하려고 죽기까지 사랑하려고 사랑 앞에는 원수도 없다고 들려오는가 해빙의 나팔소리가 이 계절에 메아리처럼 울려오고 있는가 이 우수절에. ☆★☆★☆★☆★☆★☆★☆★☆★☆★☆★☆★☆★ 《44》 이슬 황금찬 목신이 부는 구름의 피리 오르페우스가 울었다. 풀잎에 새겨지는 두 줄의 시 이슬 한 방울 ☆★☆★☆★☆★☆★☆★☆★☆★☆★☆★☆★☆★ 《45》 진실의 나무에게 황금찬 언제나 하늘의 입을 열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너 나무여 바다 같은 귀를 열고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 의로운 과실이여 지금은 20세기말 진리를 위하여 저 언덕을 넘어야 하고 산악 같은 세파도 잠재워야 하느니 너 진실의 나무여 이성의 칼날은 선한 꽃인데 불의를 일삼는 오늘의 녹슨 파편들이 이 시대에 홍수처럼 흘러가고 있다 나무여 이 시대의 선한 나무여 사랑과 이해의 열매를 열리게 하라 간혹 구름이나 새들이 날아와 길을 묻거든 나무여 사랑과 이해의 길이 여기 있다고 말하라 나무여 말하려나 진실의 길은 언제나 등불 앞에 있다고 말하려나. ☆★☆★☆★☆★☆★☆★☆★☆★☆★☆★☆★☆★ 《46》 촛불 황금찬 촛불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 대부터 종말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어두움을 밀어내는 그 연약한 저항 누구의 정신을 배운 조용한 희생일까 존재할 때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간의 국한을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 한정된 시간을 불태워가도 슬퍼하지 않고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 춤추는 촛불 ☆★☆★☆★☆★☆★☆★☆★☆★☆★☆★☆★☆★ 《47》 출발을 위한 날개 황금찬 선구자의 길은 험하고 또한 가난하다 하지만 언제나 광명을 찾고 길을 열어 현재를 미래로 날아오르게 한다 어둠 안에서 빛은 하늘이 되고 불의와 비정 안에서 선은 향기로운 장미의 꽃이 된다 이성의 칼날은 집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바른 판단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내일의 소망은 더 크고 더 넓다 어제도 정의롭고 오늘도 의가 아닌 길은 가지 않지만 내일은 사랑으로 이루는 바다 그 바다 위에 구원의 배를 띄우라 이 일을 우리는 바라고 있느니 열매없는 잎만 무성한 나무뿌리에 도끼를 놓았다고 예언하라 저 나단의 입을 빌어 하늘은 언제나 푸르라고 그렇게 일러야 하고 이 땅의 올바른 지혜들을 위하여 다윗의 가락을 빌어 노래하여야 한다 선구자의 길은 좁고 험하지만 그 길에 하늘의 광명이 있느니 그것을 선택하는 이 시대의 빛나는 양심이 되자. ☆★☆★☆★☆★☆★☆★☆★☆★☆★☆★☆★☆★ 《48》 하늘 황금찬 대답하라고 천 년을 흔들어 깨웠느니라 들리는 것은 언제나 하늘에 파도소리 따라가고 있었다 해가 뜨고 태양이 기우는 그 허공 외롭지 않았다 반복되는 것은 아침이 열리는 것과 저녁이 오는 것일레 갈릴리 호숫가에 발소리 이제야 알겠노라 혼자 가는 것이라고 이제서야 알겠노라. ☆★☆★☆★☆★☆★☆★☆★☆★☆★☆★☆★☆★ 《49》 한글 황금찬 한글은 우리말의 집이다. 하늘의 뜻을 받아 우리말의 집을 지으신 분에게 나는 영원히 감사를 드린다. 영혼의 말을 적는 글은 한글이다. 내가 살아온 평생 나는 한글에서 우리들의 얼을 찾았고 겨래의 음성을 또 거기에서 들었노라. 지금 그는 어찌되었을까 43년 동경 신지꾸 작은 우리의 책방에서 최현배 님의 '우리말본'을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성도, 이름도, 고향도 모르면서 그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알고 싶구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주시던 한글 그 글자 속에 어머님의 음성과 아버지의 음성이 지금도 숨 쉬고 있다. 한글은 모국어의 집이다. ☆★☆★☆★☆★☆★☆★☆★☆★☆★☆★☆★☆★ 《50》 행복 황금찬 밤이 깊도록 벗 할 책이 있고 한 잔의 차를 마실 수 있으면 됐지 그 외에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지만 친구여 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연인은 있어야 하겠네 마음이 꽃으로 피는 맑은 물소리 승부에 집착하지 말게나 3욕이 지나치면 벗을 울린다네. ☆★☆★☆★☆★☆★☆★☆★☆★☆★☆★☆★☆★ 《51》 행복과 불행 사이 황금찬 길은 모든 길은 행복과 불행 사이로 나 있었다 나는 그 길로 가고 있다 바람이 파도를 일으킨다 내 배는 그 물결 위로 가고 있다 그네를 타고 앞으로 치솟다간 다시 뒤로 물러선다 정지되면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삶이란 흔들의자에 앉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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