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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역사탐방] 경희궁 특별전 - 경희궁은 살아있다.

2016. 02. 12. 오후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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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역사탐방] 경희궁 특별전 - 경희궁은 살아있다. 



그동안 보내주신 회원님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역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내다 역사탐방을 통하여 서울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반가운 문자를 몇번 받았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31회 역사탐방]은 무료로 진행합니다. 

금번 탐방은 수요일 아니고 화요일입니다.


 

+ 탐방일시 : 2월 23일 오후 2시


+ 만남시간 및 장소 : 2016년 2월 23일(화요일) 오후 1시 50분 
                            - 서울역사박물관 1층 안내데스크

  
+ 진행 : 회장 김혜련(010-3743-8089)
             총무 권성연(010-8944-6271)
              

+ 회비 : 없음


+ 참가 인원 : 20명


+ 복장 : 편한옷, 운동화





<탐방지 소개>  

  
경희궁 특별전 - 경희궁은 살아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조선 숙종과 영조, 정조 등 많은 왕들이 사랑했고 창덕궁에 버금가는 궁궐이었던 경희궁 당시의 모습을 조망하고 되살려 시민들에게 알리는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희궁]


경희궁(慶喜宮)은 숙종과 경종이 태어난 곳이며 숙종·영조·순조·인헌왕후·인선왕후·인경왕후·선의왕후1)가 승하했으며 경종·정조·헌종이 즉위한 곳입니다. 이런 사실이 상징하듯 경희궁은 조선 후기 정치사의 중심무대로서 지금 서울에 남아 있는 어느 궁궐에도 뒤지지 않는 비중과 중요성을 간직한 궁궐이었습니다. 이 점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이라 부르고 그와 짝을 이루어 경희궁을 서궐이라 일컬으면서, 인조 이후 역대 왕들이 당시의 법궁인 창덕궁과 이곳을 번갈아 오가며 정무를 보고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더불어 서울의 5대 궁궐로 꼽히던 경희궁은 그러나 어느 결엔가 궁궐이 아닌 제례 공간 종묘에 그 자리를 넘겨주고 잊혀진, 사라진 궁궐이 되어버렸습니다.

                                                            경희궁 전경


경희궁은 광해군 9년(1617)부터 짓기 시작해 1620년에 완성된 조선 후기의 이궁입니다. 광해군은 선조의 서자이자 차남으로 여러 곡절 끝에 임진왜란 중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선조의 장자인 임해군과 적자인 영창대군이 존재하고 있던 1608년에 당시 행궁이었던 경운궁에서 불안한 등극을 하게 됩니다. 즉위 후 광해군은 전쟁으로 파괴된 종묘와 창덕궁의 중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광1615년 4월 창덕궁으로 이어합니다.

광해군 8년(1616),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이궁 건립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져 인왕산 아래 인경궁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무렵 술사들 가운데 새문동(지금의 신문로2가)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으니 그곳에 이궁을 지어야 한다는 청을 하는 자가 있었는데, 왕기가 서려 있다는 곳은 구체적으로 선조의 다섯째아들이자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정원군(定遠君)의 옛집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취약한 정통성 때문에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던 광해군은 이 말을 그냥 넘길 수 없어서, 마침내 그 집을 몰수하여 궁을 짓게 되니 이것이 경덕궁(慶德宮), 훗날의 경희궁입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들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광해군은 결국 경덕궁으로 이어를 준비 중이던 1623년 3월 12일에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새 궁궐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비운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당시 반정으로 등극한 인조가 바로 정원군의 장남 능양군(綾陽君)이었으니 새문동 왕기설은 어느 정도 적중된 셈이었습니다.


서궐도 :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서궐도안 : 고려대학교 밧물관 소장. 보물 제1534호


경덕궁은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머물면서 왕궁의 구실을 착실히 해냈습니다. 인조는 즉위 다음해인 1624년에 이괄의 난을 겪습니다. 충청도 공주까지 피난을 갔다가 보름 만에 돌아온 인조는 난으로 크게 훼손된 창덕궁과 창경궁으로 입궁하지 못하고 경덕궁에 임어하여 9년을 살았습니다. 이로써 경덕궁은 이궁의 지위를 갖게 되었고, 동궐에 대비되는 서궐로 불리면서 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궁궐로 자리잡아갔습니다. 조선 후기의 새로운 양궐체제가 확립된 것입니다.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으며, 숙종대부터 헌종대까지 대부분의 왕이 이곳에서 즉위하거나 승하했다는 기록을 통해 궁궐로서 경희궁이 차지했던 비중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崇政殿)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1820년대 경희궁 전경을 그린 〈서궐도안〉(西闕圖案)을 보면 당시 120여 채가 넘는 경희궁의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서궐도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건물의 배치가 경복궁이나 창덕궁과는 아주 다르다는 점입니다. 경복궁이 남북 일직선상의 축에 출입문과 정전, 내전이 차례로 배열돼 있고, 창덕궁은 정문에서 진입하여 오른쪽으로 나아가 외전에 이른 다음 외전의 오른쪽 뒤편에 내전이 위치하는 반면, 경희궁은 외전과 내전이 좌우로 나란히 놓이고 정문은 오른쪽 모서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문에서 들어갈 때 내전의 앞을 먼저 지난 뒤 오른쪽으로 꺾어 나아가야 외전에 이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격식을 벗어난 경희궁의 이런 전각 배치는 법궁보다는 형식의 얽매임이 덜한 이궁이기에 가능했고, 또 처음부터 궁궐터로서는 비좁은 공간을 실용에 맞게끔 자유롭게 활용한 지혜의 소산일 것입니다.

경희궁 숭정전

경희궁 태녕전


그러나 경희궁은 고종 때부터 궁궐로서의 위상과 기능을 점차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종 초, 경복궁을 중건하여 그곳을 법궁 삼아 왕이 이어하면서 경희궁은 빈 궁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희궁이 급격히 궁궐의 면모를 잃어버리는 것은 20세기 초 일제의 통치가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1910년 일제는 경희궁의 전각 대부분을 헐어내고 일본인 학교인 총독부중학교를 세웁니다. 이 학교는 1915년 경성중학교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경희궁의 면적은 절반 정도로 축소되고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던 궁궐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갔습니다.

궁궐 전체가 수난을 당하는 판에 낱낱 건물이 온전할 리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은 중학교 교실로 사용되다가 1926년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조동종의 조계사에 매각되어 이건되었고, 궁궐의 다른 전각들도 기숙사나 교실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정문인 흥화문(興化門)은 한반도 침략에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기 위해 1932년 남산 자락에 세운 절 박문사(博文寺)의 정문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뒤로도 일제의 경희궁 파괴는 집요하게 계속되어 궁궐 영역에 관공서의 관사를 짓거나 그 일부를 도로로 편입시키기도 했으며, 남아 있는 건물들은 모두 외부로 매각처분하였습니다. 결국 1920년대를 거치면서 경희궁은 일부 회랑만을 남긴 채 우리 곁에서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터만 남다시피 했던 경희궁이 최근 우리에게 다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해방 이후 서울중·고등학교가 들어섰던 경성중학교터는 1978년 이 학교가 이전하면서 민간기업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1984년 서울시에서 매입, 경희궁터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 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는 시민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흩어졌던 전각 가운데 단 한 채이긴 하지만 경희궁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이 1988년부터는 장충동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쓰이는 곡절을 다시 한번 겪은 뒤 1994년 비로소 지금의 위치로 돌아왔습니다.

경희궁 홍화문



 
 

[역사탐방 규정] 

     (1) 역사탐방 중 안전 책임은 회원 본인에게 있습니다.
     (2) 참가 자격은 12세 이상으로 제한합니다.
     (3) 회비는 투명하게 집행하고 운영위원회에 공지합니다.
     (4) 잉여금은 동호회 기금으로 적립합니다.
     (5) 사회공헌금(5%이상)을 통하여 행복한 문화 나눔을 실천합니다.
     (6) 규정에 의거하여 운영진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7) 우천 시에도 행사는 진행합니다.


 

참석여부는 댓글로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22개

김혜련 2016. 02. 12. 오후 08:27

이종원님, 최해숙님, 윤영란님, 나기화님, 강옥녀님, 이금희님, 이혜련님, 김영희님, 정정옥님, 이경숙님, 조욱제님, 황효인님, 최재호님, 박주현님, 최규자님, 성범모님, 김영길님, 한정숙님, 권성연님. (19분 밴드에 신청하셨습니다.)

박세호 2016. 02. 12. 오후 08:45

박세호 신청합니다

박세호 2016. 02. 12. 오후 08:46

신청합니다박세호

김혜련 2016. 02. 12. 오후 08:47

네, 네, 박세호님, 환영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김혜련 2016. 02. 12. 오후 08:48

또, 환영합니다. 역사탐방 3월부터서는요, 더 재미있을 거예요.^^

강정애 2016. 02. 12. 오후 09:48

참석합니다//강정애 항상 열정적으로 이끌어주시는 모습 멋지십니다^^

김혜련 2016. 02. 12. 오후 09:57

반갑습니다, 강정애님. 환영합니다.^^

박세호 2016. 02. 13. 오전 07:33

서틀러서박세호가중복되어죄송합니다ㆍ 많이기대됩니댜

김혜련 2016. 02. 13. 오전 08:39

그러신 줄 알았습니다, 죄송할 것 까지야~^^

김혜련 2016. 02. 13. 오전 08:41

밴드에 이민자님, 백경란님 신청하셨습니다. 환영합니다.^^

권성연 2016. 02. 13. 오후 03:02

이종원님 최해숙님 윤영란님 나기화님 강옥녀님 이금희님 이혜련님 김영희님 정정옥님 이경숙님 조욱제님 황효인님 최재호님 박주현님 최규자님 성범모님 김영길님 한정숙님 박세호님 강정애님 이민자님 백경란님 권성연 김혜련회장님 이상24분신청하셨습니다 많은신청바랍니다..

김혜련 2016. 02. 13. 오후 11:23

밴드에 백경란님, 윤차숙님 신청하셨습니다. 환영합니다.^^

이청미 2016. 02. 14. 오후 03:40

참가 신청합니다

김혜련 2016. 02. 14. 오후 04:51

이 얼마만입니까? 이청미님, 환영합니다.^^

홍승엽 2016. 02. 15. 오후 01:54

수고 많으시네요. 저도 신청합니다.

김혜련 2016. 02. 15. 오후 02:12

네. 네. 홍승엽님,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김혜련 2016. 02. 18. 오후 12:31

윤영란님 나기화님 강옥녀님 이금희님 이혜련님 김영희님 정정옥님 이경숙님 조욱제님 황효인님 최재호님 박주현님 최규자님 성범모님 김영길님 한정숙님 박세호님 강정애님 이민자님 백경란님 백경란님 윤차숙님 이청미님 홍승엽님 권성연님 김혜련 (이상26분신청하셨습니다.)

김혜련 2016. 02. 18. 오후 01:07

밴드에 안명순님, 나미라님, 이경애님. 효순님, 김인숙님 신청하셨습니다. 환영합니다.^^

김혜련 2016. 02. 18. 오후 05:32

윤영란님 나기화님 강옥녀님 이금희님 이혜련님 김영희님 정정옥님 이경숙님 조욱제님 황효인님 최재호님 박주현님 최규자님 성범모님 김영길님 한정숙님 박세호님 강정애님 이민자님 백경란님 백경란님 윤차숙님 이청미님 홍승엽님 안명순님 나미라님 이경애님 효순님 김인숙님 권성연님 김혜련 (이상 31분 신청하셨습니다.)

임은숙 2016. 02. 20. 오전 09:20

안녕하세요? 처음인데 함께 하고 싶어요

김혜련 2016. 02. 20. 오후 08:58

임은숙님, 반갑습니다. 선생님 폰번호 010 3743 8089로 보내 주시면 진행에 도움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혜련 2016. 02. 23. 오후 06:16

관심 갖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31회 역사탐방, 경희궁 잘 마쳤습니다. 3월 부터서는 밖으로 밖으로 나갑니다. 많이 참여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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