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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회 함께하는 역사탐방] [옛 향기 찾아가는 역사학교] / 동학농민혁명 속으로 정읍
동학농민혁명 속으로 정읍
탐방경로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 생선구이정식(점심식사) -> 피향정 -> 무성서원 -> 김동수가옥 -> 옥정호 구절초 지방공원 -> 민물매운탕(저녁식사)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답은 정읍에 있다
[탐방 여정 소개]
1. 역사속에 잠자던 이야기!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 맛 나는 세상! 19세기 순조, 헌종, 철종 3대 60년간에 걸쳐 나이어린 왕들이 즉위하자 안동 김씨, 풍양 조씨로 이어지는 세도정치(외척세력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비정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중앙정치의 기강 문란을 가져왔습니다.중앙정치의 문란은 탐관오리의 득세를 가져왔으며, 그로 인하여 사회는 동요되고 삼정의 문란을 초래하였습니다. 삼정이란 봉건적 수취체제의 기본이 되는 전정(토지세), 군정(16-60세에 해당하는 성인남자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대신 내는 세금), 환곡(춘궁기에 관곡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도록 한 제도)을 말하는데, 이것이 지방관들의 농간으로 수탈의 수단으로 변하여 농촌사회의 파탄을 가져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이래의 지주제의 확대 발전과 농법(이앙법)의 발달은 농촌 사회의 계층을 급속히 변화시켰으며, 봉건적 수취체제는 군현단위로 세금을 징수하는 총액제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양반 토호들은 빠져버리고 그 몫까지 농민들이 부담하게 되었습니다.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산 속에 들어가 화전민이 되거나 고향을 떠나 유랑민이 되어 굶어 죽는 자가 속출하였고, 이로 인한 민중의 불만이 더욱 커지면서 봉건사회의 모순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주인의식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은 안으로는 조선사회 내부의 모순이 표출되고 밖으로는 자본주의를 앞세운 서구열강의 침략이 노골화되어 봉건사회의 낡은 틀을 무너뜨리며 새로운 사회로의 발전을 모색하는 전환기였습니다. 특히,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청· 일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으로 인해 조선에서의 주도권은 청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이에, 일본은 조선에서의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고자 경제적 침략에 주력하게 되어 조선은 일본의 식량 공급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값싼 생필품을 미끼로 한 일본의 쌀 수입이 늘어나게 되자 국내 쌀값은 폭등하게 되어 조선 민중은 고물가와 식량부족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도 관리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민중을 수탈하였으며, 관직을 직접 매매하는 매관매직도 여전히 성행하였습니다. 돈으로 벼슬을 산 관리들은 그 동안 들인 비용 충당과 축재를 위해 각종 부정부패를 저지름으로써 민중의 삶은 고통이 가중되어 갔습니다.이러한 봉건사회 경제체제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은 봉건통치 계급의 무자비한 착취와 외세 자본주의 침략에 대항한 민중의 저항의식으로 발전되어 갔습니다. 이와 같이 봉건체제의 모순이 깊어가는 가운데 1862년 이래 삼남의 70여 고을에서 농민봉기가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농민봉기는 1892년경에는 전국적인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이러한 농민항쟁의 조직과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은 동학이었습니다. 동학은 경주출신의 몰락양반 최제우가 자본주의 열강이 점차 침략의 야욕을 뻗쳐오던 1860년 서학(천주교)에 대항하여 창시한 민족종교였습니다. 동학사상의 핵심내용은 ‘사람이 곧 하늘’ 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당시 봉건 지배계층은 백성을 오로지 수탈의 대상으로만 보았으나 동학은 평등사상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봉건 지배계층의 입장에서 볼 때, 유교적 기존질서를 뒤흔드는 불온사상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지만 민중의 요구를 반영한 이념이었기에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갔습니다.
2. 점심식사
점심식사는 생선구이정식으로 합니다. 평일에도 예약하지 않으면 1시간 이상을 대기해야 하는 최고의 맛집입니다. 특히 바지락전골은 바지락 살과 미나리의 향이 조화를 이루어 국물맛이 끝내줍니다. 곁들여 나오는 간장게장의 게도 살이 통통하고 알이 차 있습니다.
3. 피향정
1963년 보물 제289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호남 제일의 정자로 널리 알려진 피향정(披香亭)은 원래 이 정자 앞뒤로 상연지(上蓮池)와 하연지(下蓮池)라는 연못이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었으나 상연지는 일제강점기 때 메워지고 현재는 하연지만 남아 있습니다. 연못에 연꽃이 피면 향기가 주위에 가득하다 하여 「피향정」이라 이름 했습니다. 신라 시대에 최치원 선생이 태산 군수로 재임 중에 이곳 연지가를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 다는 전설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정자는 조선 시대 중기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입니다. 4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주위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습니다.신라 정강왕때 태산군수를 지내던 고운 최치원이 이 곳 연못가를 거닐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현재의 건물은 조선 인조(1623~1649)때 태인현감 유근(柳根)이 다시 고친 것입니다.
4. 무성서원
이 건물은 신라말(新羅末)의 유현(儒賢)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과 조선(朝鮮) 중종(中宗)때 태인현감(泰仁縣監)이었던 신 잠(申 潛)을 향사(享祀)하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원래는 태산서원(泰山書院)이라 하던 것을 숙종(肅宗) 22년(1696)에 사액(賜額)됨으로써 무성서원(武城書院)이라 하게 되었습니다.
사우(祠宇)에는 최치원(崔致遠)을 비롯하여 신 잠(申 潛), 정극인(丁克仁), 송세림(宋世琳), 정언충(鄭彦忠), 김약묵(金若默), 김 관(金 灌) 등의 향현(鄕賢)을 배향(配享)하였습니다. 현존 건물로는 현가루(絃歌樓)를 비롯하여 강당(講堂), 동서재(東西齎), 사우(祠宇), 비각(碑閣) 등이 있습니다.
사우는 성종(成宗) 15년(1484)에 세워진 것이나 헌종(憲宗) 10년(1844)에 중수(重修)되었고, 강당은 순조(純祖) 25년(1825)에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순조(純祖) 28년(1828)에 중건하였습니다.
이 서원에는 성종(成宗) 17년(1486) 이후의 봉심안(奉審案), 강안(講案), 심원록(尋院錄), 원규(院規) 등의 귀중한 서원 연구자료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신라(新羅)시대 대문호(大文豪)이며 정치가(政治家)였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신라 정강왕(定康王) 1년에 태산군수(泰山郡守: 지금의 泰仁)로 와서 있는 동안 치적(治積)이 뛰어나서 군민의 칭송을 받다가 합천(陜川)군수로 떠나게 되니 그를 흠모하는 나머지 선생의 생전(生前)에 월연대(月延臺: 지금의 칠보면 무성리 성황산의 서쪽 능선)에 생사당(生祠堂: 생존하고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세우고 태산사(泰山祠)라 부른 것이 시초였습니다.
이 사당은 고려(高麗) 말에 훼파(毁破)되었다가 조선(李朝) 성종(成宗) 14년(1483. 정극인 선생 사후 2년)에 유림(儒林)들의 발의로 월연대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지금의 그 자리에는 불우헌 정극인(不憂軒 丁克仁)이 창설한 향학당(鄕學堂)이 있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그 뒤 조선 중종 39년(1544)에 태인 현감(泰仁 縣監)이던 영천 신 잠(靈川 申潛)이 부임하여 7년 동안 선정(善政)을 베풀다가 동 서 남 북 학당(東 西 南 北 學堂)을 세우는 등 많은 치적을 남기고 명종 4년(明宗 1549)에 강원도 간성(杆城)군수로 이임하니 역시 주민들이 그를 사모하여 생사당(生祠堂)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숙종 22년(肅宗 1696)에 무성(武城)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아 이 두 사당(祠堂)을 병합하여 무성서원(武城書院)이라 했으며, 삼현(三賢)을 더 모시다가 뒤에 두 분을 더 모시니 칠 현(七賢)을 더 배향(配享)하게 되었습니다.
배향된 분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영천 신 잠(靈川 申潛), 불우헌 정극인(不憂軒 丁克仁), 눌암 송세림(訥菴 宋世琳), 묵재 정언충(默齋 鄭彦忠), 성재 김약묵(誠齋 金若默), 명천 김 관(鳴川 金 灌) 등입니다.
그 뒤 정조(正祖) 8년(1784)에 쌍계사(雙溪寺)로부터 최치원의 영정(影幀)을 모시었습니다. 이 서원은 고종(高宗) 5년(1868)에 대원군(大院君)의 서원 철폐령(撤廢令)에 의해서 위기에 처했으나 당시의 현감, 유림(縣監, 儒林) 등이 청원하여 화를 모면했을 뿐 아니라 전라도(全羅道)의 철폐령에서 제외된 세 개(三個) 서원으로 필암(筆巖), 포충(褒忠), 무성(武城)서원 중 하나이고 원노(院奴) 30명, 세미(稅米) 3결(結: 약 9,000평)을 보조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건물로는 사우(祠宇) 3칸, 명륜당(明倫堂) 5칸, 현가루(絃歌樓) 2층 3칸, 장수재(莊修齋) 4칸, 흥학당(興學堂) 4칸, 서호순비각(徐灝淳碑閣) 1칸, 고사(庫舍) 3칸 등이며 1992 년에 병오창의기적비(丙午倡義紀蹟碑)를 김성년(金成淵) 정읍군수(井邑郡守)가 세웠습니다. 문루(門樓)인 현가루(絃歌樓)는 원주(圓柱)를 세운 2층으로 된 기와집이며 문을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2칸의 강당(講堂)이 있고 3칸 대청(大廳)과 그 좌우에는 단칸의 협실(夾室) 이 있으며 동서재(東西齋)인 강수재(講修齋)와 흥학재(興學齋)가 있었으나 현재는 강수재만 남아 있습니다.
사우는 성종 15년에 지었으나 현재의 것은 1844년에 중수한 것이며 강당은 1825년에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1828년에 다시 지은 건물입니다.
동서재(東西齋)도 숙종(肅宗)때 건립하였으나 현재의 건물은 그 뒤 중수한 것입니다. 사우(祠宇)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이며 이 서원에는 성종(成宗) 17년 (1486) 이후의 봉심안(奉審案), 강안(講案), 심원록(尋院錄), 원규(院規) 등의 서원연구(書院硏究)의 자료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5. 김동수가옥
이 가옥은 김동수씨의 육대조(六代祖)인 김명관(金命寬)이 1784년에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창하산(蒼霞山)을 배경(背景)으로 앞에는 동진강(東津江)의 상류(上流)인 맑은 하천(河川)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전에 세운 주택용(住宅用) 건물(建物)입니다.
바깥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룬 사랑채가 보입니다.
다시 사랑채의 안대문을 들어서면 집의 구조가 대청(大廳)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左右 對稱)을 이루며, 좌우전면의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한 특이(特異)한 평면(平面)의 안채가 있습니다.
안채의 서남쪽으로는 안사랑채가 있는데 입향조(入鄕祖)인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그 자신과 목수들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 합니다.
또 안채의 동북쪽에는 작은 사당(祠堂)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비교적 섬약(纖弱)한 부재(部材)를 사용했는데 이는 조선후기(朝鮮後期)에 지은 중류이상(中流以上)의 주택건물에 보이는 일반적 특징입니다.
이 가옥은 소박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건립자(建立者)의 독창성(獨創性)을 엿보게 합니다.
후세(後世)에 보수(補修)하거나 개조(改造)되지 않고 거의 원형(原形)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주택과 주위 환경이 잘 정돈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집의 주위에는 여덟 채의 호지(護持: 노비의 집)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두 채만 남아 있습니다.
이 집에서 누대(累代)를 살아오면서 재산을 누리고 살아온 이름 있는 터(基)로 점을 쳐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알아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주목이 되는 풍수설(風水說)의 터이기도 합니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니 좋은 집터라 하여 이익이 생겨지는(生利) 집이라 하여 집을 보고 길흉(吉凶)을 점쳐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을 뒤에 두고 물을 앞에 둔 터전에 동서(東西)로 65m, 남북(南北)이 73m의 장방형 담으로 둘려 있고 주 건물(主 建物)은 동서면(東西面)을 향하여 세워져 있습니다.
개울을 건너가면 대문(大門)앞에 큰 못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졸아들어 버렸습니다.
문간(門間棟)채는 길게 설치되어 있으나, 쓰임에는 두 가지로(兩分)되어 있습니다.
대문(大門)을 들어서면 우측에 마구간(馬廐間)이 있고 좌측에 방, 마루, 또 방이 있고 거기에서 꺾이면서 북쪽에 있는 칸에 방과 부엌을 한 칸씩 두고, 이어 약간 간격을 둔 뒤에 바깥 남자들이 쓰는 변소(外厠)를 세웠습니다.
이 하나의 담으로 둘러쳐 막은 곳(一廓)에 한 곳을 사이벽(間墻)을 쌓고 동편에 일각문(一角門)을 세워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는데 동쪽 정원에 사랑채가 남쪽으로 향하여 있고, 그 앞에 대문간채(大門間棟)에서 이어진 고간(庫間)이 일곱칸 계속 되다가 ㄱ자로 꺾이고 북쪽으로 가면서 부엌과 방 두 칸이 더 있습니다.
사랑채에는 정면으로 다섯 칸, 옆면으로 세 칸의 一자형(字形) 평면인데 높은 기둥에 세운 안에 들이고 그 앞뒤로 툇간을 두었습니다.
방은 두 칸과 뒷방 한 칸이며 부엌과 안창고(內庫)가 있는 외에는 전부가 마루로 된 시원한 양청(凉廳)이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랑채에선 전퇴(前退) 서단간(西端間)에 횃대처럼 한 가닥만 기둥 사이에 건너질러 난간처럼 꾸민 구조가 주목되고 있다. 난간의 발달과정 등에 유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언급하는 학문적인 자료가 거기에 있습니다.
중문간채(中門間棟)가 사랑채 뒤편에 길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변소(厠間), 허간(虛間), 고간(庫間), 내외벽이 있는 두 칸의 중문(中門), 이어 헛간과 고간이 계속되다가 아홉간(間)채에서 꺾이어 북쪽으로 부엌과 방이 두 칸 이어집니다.
중문(中門)을 들어서면 안마당에 ㄷ자형의 안채가 있다. 몸채의 가운데 여섯칸이 대청 (大廳)이며 세칸이 두불작입니다. 그 좌우에 방이 각각 있고 이어 꺾인 날개부분에 부엌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안채의 서쪽에 별당(別堂)이 한 채 있어 역시 남향입니다. 一자형인데 정면 다섯 칸, 옆면 칸반이 되는 규모입니다. 역시 가운데에 대청(大廳)이 있고 좌우에 방이 있으며 서쪽 끝에 부엌 한 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별채의 남쪽에 부속건물이 하나 더 있고 안채의 동북쪽에 따로 이룬 가묘(家廟)가 있습니다. 특히 사랑채에는 팔각지붕에 네모난 기둥인 방주(方柱)를 사용했으며 주위로는 잘 다듬은 화강암의 길게 다듬어 만든 돌인 장대석(長帶石)을 둘러 놓았습니다.
이 건물은 균형미가 넘쳐 있으며 처마 흐름이나 기둥의 배열 등이 이루는 건축미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나타내주고 있어 조선조(朝鮮朝) 사랑채 건물로서는 전국에서도 빼어난 건물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기둥은 다른 건물과는 달리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의 기초인 주초(柱礎)도 밑면보다 상부가 좁아지도록 깎아낸 원형 화강석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집 주위에 여덟 채의 호지집(護持家)과 집에 관한 풍수설 등도 특이하려니와 행랑채(行廊棟) 전면에 파놓은 연못과 이 집을 세울 때 주위에 느티나무를 심어서 마을에 땅 값을 지불하는 등 이 이야기로 미루어 집 자체 뿐 아니라 주위의 조경(造景)에 대해서도 건축주(建築主)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6. 옥정호 구절초 지방공원
옥정호 상류인 추령천이 휘감아 도는 야트막한 소나무 동산에 가을야생화인 구절초 공원을 조성하여, “솔숲 구절초와 함께하는 슬로투어(slow tour)” 컨셉에 부합하는 자연친화적인 공원분위기로 전국적인‘출사명소’, ‘여행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한민국 10월의 대표축제 5선 선정(한국관광공사, 2012)’‘국내 여행지 베스트 그곳 선정(한국관광공사, 2014)’, ‘전국 지자체 상징꽃 선정(문화체육관광부, 2015) 등 관광명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7. 저녁식사-민물매운탕
잡어가 섞인 매기매운탕. 정말 옛 맛 그대로의 맛. 시래기의 깊은 맛이 일품입니다.
1. 탐방일시 : 2016년 9월 24일 (토)
2. 출발 장소 : 지하철 2,3호선 교대역 9번 출구 네오여행버스
3. 세부 시간 계획
* 06:55~ 네오관광버스 탑승 완료
* 07:00~ 정시 출발
* 07:20~ 죽전 정류장
* ~07:30 신갈 정류장
* ~10:40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도착(전문해설사님과 합류)
* 10:40~11:40 동학농민혁명기념관 탐방
* 11:40~12:00 금거북으로 이동
* 12:00~12:40 생선구이정식으로 점심식사
* 12:40~13:00 피향정으로 이동
* 13:00~13:30 피향정 탐방
* 13:30~13:50 무성서원으로 이동
* 13:50~14:20 무성서원 탐방
* 14:20~14:40 김동수가옥으로 이동
* 14:40~15:10 김동수가옥 탐방
* 15:10~15:40 옥정호 구절초 지방공원으로 이동
* 15:40~17:00 옥정호 구절초 지방공원 탐방
* 17:00~17:20 뚝방가든으로 이동
* 17:20~18:20 민물매운탕으로 저녁식사
* 18:20~22:00 서울로 이동
5. 모집 인원 : 선착순 44명
* 신청은 댓글로 하시며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6. 참가비: 육만원 (60,000원)
+ 입금계좌 : 국민은행 443101-01-129315 (예금주: 사색의향기 문화원)
+ 참가비 입금은 참가 신청 시 납부하시기 바랍니다.
[포함 내용]
+ 생수, 김밥, 과일, 2식(점심식사, 저녁식사) 포함
+ 사회공헌금 5% 및 여행보험료 등 경비 일체
7. 여행 취소시 환불 규정
* 여행 출발 14일 전까지 취소는 100% 환불
* 출발 7일 전 취소 50% 환불
* 이후 취소는 환불 불가하오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8. 준비물 : 모자, 트레킹화, 선글라스, 디카, 사색의향기 패스포트 등.
9. 문의사항 연락처
회 장 : 김혜련(010-3743-8089)
총 무 : 이상례(010-5588-4221)
사무국 : 070-76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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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호님 정효진님 변지은님 김예은님 김예원님 이수빈님 김인애님 고원재님 이상현님 유진영님 서유정님 박규리님 이상례님 박원정님 심재선님 최인자님 이상희님 김선영님 박경옥님 최규엽님 이석하님 설경화님 김지선님 이청미님 지미혜님 김호웅님 한정순님 백기덕님 김증자님 정정옥님 이양숙님 유현숙님 김경민님 강진규님 배영민님 윤혜경님 한정숙님 김경옥님 이화자님 백경란님 정임훈님 이미숙님 정서현님 김혜련님(44분)
대기자 명단 : 김영화님, 나인월님, 나인희님, 박금실님
김민경, 신청합니다!!
김민경님 환영합니다. 010 3743 8089 (김혜련)로 폰번호 주세요.
김영화님 정읍 탐방 같이 하시게 되었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읍 역사탐방 잘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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