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회 함께하는 역사탐방] 최고의 교육기관 성균관
● 성균관 : 조선시대 최고 국립교육기관
● 향교 : 지방의 고등교육기관
● 서원 : 인재 양성을 위해 세운 사설기관
● 서당 : 사설 초등교육기관
+ 탐방일시 : 11월 2일 (수) 오후 1시 30분
+ 만남 장소 :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 지상
+ 진행 : 회장 김혜련(010-3743-8089)
+ 회비 : 5,000원
+ 복장 : 편한옷, 운동화
[탐방지 이모저모]
성균관
성균관(成均館)은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입니다. 이곳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설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을 마치고, 서울의 경우 국립고등교육기관이랄 수 있는 사학(四學), 지방의 경우에는 관립고등교육기관인 향교에서 공부하면서 소과(小科)에 응시하여 생원, 진사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입학하여 교육을 받았습니다. 16세기부터 발달해온 서원 또한 성균관과 유사한 수준과 질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점차 그 힘이 강화되었지만 서원은 어디까지나 사립기관이었고 성균관은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 여전히 조선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존재하였습니다.
성균관은 고려 충선왕 때 당시 최고 교육기관이던 국학(國學)을 성균관으로 개칭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공민왕 때 잠시 국자감(國子監)이라 불리다가 다시 그 이름을 회복하여 조선으로 이어집니다. 태조는 한양으로 천도한 뒤 종묘와 사직, 경복궁을 차례로 창건한 다음 1397년 2월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 명하여 성균관의 터를 선정케 하고, 다음달에 공사에 착수해 이듬해(1398) 7월에 준공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지금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구내에 현존하는 성균관의 출발입니다.
성균관은 단순히 교육만을 담당하는 기관은 아니었습니다. 유학의 역사에 공헌한 선현의 제사를 받드는 향사(享祀) 역할이 교육 못지않은, 또는 그 이상 가는 성균관의 중요한 기능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균관 건축은 이른바 전묘후학(前廟後學)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앞쪽에 선현의 제사를 받드는 향사 공간을 마련하고 그 뒤로 교육 공간을 배치하였습니다. 지금의 성균관으로 보자면 남향한 대성전을 중심으로 그 앞쪽에 동서로 길게 마주보고 있는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대성전과 남북 일직선의 축을 이루며 신문(神門)이자 성균관의 정문이 되는 외삼문과 그밖의 부속건물로 이루어지는 일곽이 향사 공간, 즉 문묘가 됩니다. 그리고 대성전 뒤편 담장 너머, 역시 대성전과 동일한 축선상에 남향한 명륜당과 그 앞쪽에 서향과 동향으로 길게 마주보고 있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중심으로 편재된 일련의 건물군이 교육 공간을 이룹니다.
명륜당 : 서울의 성균관이나 지방의 각 향교에 부설되어 있는 건물로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 보통 '명륜당'이라 할 때는 '서울 성균관의 명륜당'을 말하며 왕이 직접 유생들에게 강시하기도 했음
비천당 : 성균관의 별당. 임금이 성균관에 친림하여 과거를 시행할 때 시험장소로 사용되던 곳
영조가 당쟁의 폐습에서 벗어나 공정하게 관리를 뽑는 탕평책의 뜻을 성균관의 유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세운 탕평비
대성전 앞 묘정에 있는 묘정비각
문묘(성균관)의 연혁을 기록한 묘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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