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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회 역사문화탐방] 독립운동에 바친 이회영일가와 통인시장의 엽전도시락

2017. 09. 04. 오후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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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회 역사문화탐방] 독립운동에 바친 이회영일가와 통인시장의 엽전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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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and.us/n/a0a3UfZ3N7q9d

 

● 엽전도시락 체험희망시 ㅡ 9월20일 12시
+3호선 경복궁역 4번출구 지상
+회비 : 5,000원
+엽전도시락은 각자 엽전(5,000원 개인 부담)을 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 서울역사박물관의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자유의길ㆍ민국의 길> 탐방
+5호선 서대문역 3번 출구 직진하여
+9월20일 오후 1시 50분
+서울역사박물관 1층로비
+회비 : 5,000원
● 서울역사박물관 위치(클릭하세요)
https://m.store.naver.com/attractions/detailMap?id=11784657
http://naver.me/xX3j06qE
● 우당 이회영의 애국의 길
https://www.youtube.com/watch?v=qcEVGVTSd6A&feature=youtu.be


●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우당 이회영
https://www.youtube.com/watch?v=0KbLHVp8Qdc&feature=youtu.be


● 이회영ㆍ이완용
https://www.youtube.com/watch?v=zOU64otCOaw&feature=youtu.be



● 우당은 조선조 이항복의 10대 손으로 10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의 자손이며 이조판서와 우찬성(부총리급)을 지낸 이유승의 넷째 아들입니다.


● 이항복 이래 사후에 추증된 네 명을 포함해 아홉명의 영의정과 한 명의 좌의정을 배출한 집안이었고 고종 때만 해도 이유원(이석영의 양아버지)이 영의정, 이유승(이회영 형제 부친)이 이조판서를 지낸 기득권층 중의 기득권층이었습니다.



● 강제병합으로 한반도가 왜적의 것이 되었을 때 \"왜적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하게 도모한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랴\"하시며 다섯 형제에게 항일투쟁의 대의를 밝히자 다섯 형제가 흔쾌히 찬동하여 항일투쟁에 나섰습니다.



<청산리 전투 승전후 기념촬영>
● 세계적으로 우당가문과 같은 투쟁과 헌신은 유래를 찾을 수 없다 하겠습니다. 월남 이상재는 우당 일가의 망명 소식에 \"해방이 되면 우당 가문에 빚을 갚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당 이회영>
● 우당 형제는 구차하게 목숨을 도모하지 않았습니다. 우당 이회영은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어 안중근 의사가 처형된 뤼순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절명했습니다.
● 첫째 형 건형, 둘째 형 석영, 셋째 형 철영. 여섯째인 동생 호영도 망명지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가장 많은 독립자금을 댔던 둘째형 이석영은 중국 빈민가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 항일 투쟁에 목숨 바친 이는 다섯 형제뿐이 아닙니다. 첫째 이건영의 둘째 아들 이규면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병사했고 이건영의 셋째 아들 이규훈은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하던 중 실종되었습니다.
● 둘째 이석영의 장남 이규준은 밀정 김달하와 박용만을 암살하는 등 독립운동하다 병사했고 우당의 둘째 아들 이규학은 밀정 암살에 가담했고 셋째 아들 이규창은 친일파 암살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13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 우당의 딸 이규숙은 태어나자마자 강보에 싸여 만주로 건너간 일가의 최연소자였습니다. 북경어가 능통한 그녀는 독립운동단의 무기 운반책으로 활동함과 동시에 사촌오빠 이규준과 일본 밀정을 암살한 혐의로 중국 공인에 체포되어 옥고도 치뤘고 독립운동가 장해평과 결혼 후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우당 이회영의 유품>
● 우당 가문은 목숨만 바친 게 아니고 가산 전부를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3만석 재산에 조상 제사 지내는 위토까지도 처분하였고 노비들을 해방했습니다.
● 우당이 평소 아들처럼 아끼던 육당 최남선에게 저택과 고서 등을 헐값으로 넘긴 돈이 600억원(현재 화폐로 환산가)이었고 현재 가치로 2조원이라 합니다.
● 기득권을 누리던 대부분의 양반들은 일제가 주는 작위나 합방 사은금을 받았고 일제하의 기득권층으로 편입되는 걸 보면서 심산 김창숙은 \"나라가 망하니 사대부가 먼저 망했다\"고 개탄했다 합니다.
●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이 간도의 이회영 선생 집을 찾아 갔을 때 초췌해진 우당에게 \"공원에 산책이라도 나가자\" 고 하니 우당이 난감해 하는 걸 보고 아들인 규학에게 물으니 \"이틀동안 밥을 짓지 못했고 의복도 전당포에 잡혀 아버지가 문 밖을 나서지 않으려는 것은 입고 나갈 옷이 없기 때문입니다.\"



독립자금이 8년만에 바닥이 나 그후에는 하루 죽 한끼도 어려웠다 합니다.
● 우당 일가는 끼니도 못 잇고 딸 규숙의 옷까지 팔아 겨우 입에 풀칠을 하였기에 외출도 할 수 없었다 합니다. 이불을 저당잡혀 먹을 것을 마련하는가 하면 아들 규창은 부잣집에서 땐 매탄재를 주워다가 땔감으로 쓰고 시장에 버려진 배추시레기를 주워와 국을 끓였다 합니다.
● 삼한갑족의 후예로서 너무나도 처절한 영락이었습니다. 우당 이회영의 둘째 아들인 이규학의 아들이 <정치가 이종찬>, 다섯째 아들 이규동의 아들이 <정치가 이종걸>입니다.
● 압록강을 건넌 우당 일가 권속 60명 중에 고국땅을 밟은 이들은 20여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토록 바라던 광복은 되었건만 다섯 형제를 잃은 우당의 동생 이시영만이 살아 돌아와 초대 부통령이 됩니다.
● 올해는 우리나라 최고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 인물인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입니다.




명동 YWCA 의 <이회영 생가터 표석>
● 우당은 최고의 가문으로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우당의 생가가 있었던 명동의 YWCA터를 비롯해 서울 명동 땅의 절반이 우당 집안의 소유였다고 합니다.
● 일제는 우당 집안의 재산 유지를 약속했지만, 우당 일가는 우리에게`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 경복궁역에서 만나 통인시장을 갑니다. 엽전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역사박물관으로 갑니다.
● 통인시장의 엽전도시락은 4시에 문을 닫기에 탐방후에 엽전도시락 체험은 불가하여 통인시장을 먼저 갑니다.




코인 하나는 500원. 코인 갯수만큼 음식을 줍니다.



이 부분을 읽어 주세요. 엽전도시락 순서입니다.





통인시장의 대표주자 <기름 떡볶이 >
빨간 떡볶이보다 간장 떡볶이가 더 인기입니다.



부침개ㆍ떡ㆍ팥죽ㆍ잔치국수ㆍ오뎅 등 식성대로 엽전으로 삽니다.

















엽전을 산 이곳, 도시락까페에서 엽전도시락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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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개

김혜련 2017. 09. 04. 오후 02:57

권춘자님 김복순님 김지선님 신청하셨습니다.

김혜련 2017. 09. 04. 오후 03:01

김호웅님, 한정순님 신청하셨습니다.

김혜련 2017. 09. 04. 오후 05:44

박수현님, 백경란님 신청하셨습니다.

김혜련 2017. 09. 04. 오후 05:57

안종순님, 유재숙님 신청하셨습니다.

김혜련 2017. 09. 04. 오후 06:05

장순희님, 최복수님 신청하셨습니다.

이청미 2017. 09. 05. 오후 03:23

신청합니다

김혜련 2017. 09. 05. 오후 09:58

이청미님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김혜련 2017. 09. 06. 오전 07:18

김봉기님 신청하셨습니다.

김혜련 2017. 09. 12. 오후 01:57

권명자님 신청하셨습니다.

김성실 2017. 09. 13. 오후 05:39

김성실,정복희 신청합니다

김혜련 2017. 09. 13. 오후 07:04

김성실님, 정복희님 환영합니다. 010 3743 8089로 폰 번호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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