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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회 역사문화탐방] 독립운동에 바친 이회영일가와 통인시장의 엽전도시락
[91회 역사문화탐방] 독립운동에 바친 이회영일가와 통인시장의 엽전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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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and.us/n/a0a3UfZ3N7q9d
● 엽전도시락 체험희망시 ㅡ 9월20일 12시
+3호선 경복궁역 4번출구 지상
+회비 : 5,000원
+엽전도시락은 각자 엽전(5,000원 개인 부담)을 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 서울역사박물관의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자유의길ㆍ민국의 길> 탐방
+5호선 서대문역 3번 출구 직진하여
+9월20일 오후 1시 50분
+서울역사박물관 1층로비
+회비 : 5,000원
● 서울역사박물관 위치(클릭하세요)
https://m.store.naver.com/attractions/detailMap?id=11784657
http://naver.me/xX3j06qE
● 우당 이회영의 애국의 길
https://www.youtube.com/watch?v=qcEVGVTSd6A&feature=youtu.be
●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우당 이회영
https://www.youtube.com/watch?v=0KbLHVp8Qdc&feature=youtu.be
● 이회영ㆍ이완용
https://www.youtube.com/watch?v=zOU64otCOaw&feature=youtu.be
● 우당은 조선조 이항복의 10대 손으로 10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의 자손이며 이조판서와 우찬성(부총리급)을 지낸 이유승의 넷째 아들입니다.
● 이항복 이래 사후에 추증된 네 명을 포함해 아홉명의 영의정과 한 명의 좌의정을 배출한 집안이었고 고종 때만 해도 이유원(이석영의 양아버지)이 영의정, 이유승(이회영 형제 부친)이 이조판서를 지낸 기득권층 중의 기득권층이었습니다.
● 강제병합으로 한반도가 왜적의 것이 되었을 때 \"왜적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하게 도모한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랴\"하시며 다섯 형제에게 항일투쟁의 대의를 밝히자 다섯 형제가 흔쾌히 찬동하여 항일투쟁에 나섰습니다.
<청산리 전투 승전후 기념촬영>
● 세계적으로 우당가문과 같은 투쟁과 헌신은 유래를 찾을 수 없다 하겠습니다. 월남 이상재는 우당 일가의 망명 소식에 \"해방이 되면 우당 가문에 빚을 갚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당 이회영>
● 우당 형제는 구차하게 목숨을 도모하지 않았습니다. 우당 이회영은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어 안중근 의사가 처형된 뤼순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절명했습니다.
● 첫째 형 건형, 둘째 형 석영, 셋째 형 철영. 여섯째인 동생 호영도 망명지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가장 많은 독립자금을 댔던 둘째형 이석영은 중국 빈민가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 항일 투쟁에 목숨 바친 이는 다섯 형제뿐이 아닙니다. 첫째 이건영의 둘째 아들 이규면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병사했고 이건영의 셋째 아들 이규훈은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하던 중 실종되었습니다.
● 둘째 이석영의 장남 이규준은 밀정 김달하와 박용만을 암살하는 등 독립운동하다 병사했고 우당의 둘째 아들 이규학은 밀정 암살에 가담했고 셋째 아들 이규창은 친일파 암살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13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 우당의 딸 이규숙은 태어나자마자 강보에 싸여 만주로 건너간 일가의 최연소자였습니다. 북경어가 능통한 그녀는 독립운동단의 무기 운반책으로 활동함과 동시에 사촌오빠 이규준과 일본 밀정을 암살한 혐의로 중국 공인에 체포되어 옥고도 치뤘고 독립운동가 장해평과 결혼 후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우당 이회영의 유품>
● 우당 가문은 목숨만 바친 게 아니고 가산 전부를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3만석 재산에 조상 제사 지내는 위토까지도 처분하였고 노비들을 해방했습니다.
● 우당이 평소 아들처럼 아끼던 육당 최남선에게 저택과 고서 등을 헐값으로 넘긴 돈이 600억원(현재 화폐로 환산가)이었고 현재 가치로 2조원이라 합니다.
● 기득권을 누리던 대부분의 양반들은 일제가 주는 작위나 합방 사은금을 받았고 일제하의 기득권층으로 편입되는 걸 보면서 심산 김창숙은 \"나라가 망하니 사대부가 먼저 망했다\"고 개탄했다 합니다.
●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이 간도의 이회영 선생 집을 찾아 갔을 때 초췌해진 우당에게 \"공원에 산책이라도 나가자\" 고 하니 우당이 난감해 하는 걸 보고 아들인 규학에게 물으니 \"이틀동안 밥을 짓지 못했고 의복도 전당포에 잡혀 아버지가 문 밖을 나서지 않으려는 것은 입고 나갈 옷이 없기 때문입니다.\"
독립자금이 8년만에 바닥이 나 그후에는 하루 죽 한끼도 어려웠다 합니다.
● 우당 일가는 끼니도 못 잇고 딸 규숙의 옷까지 팔아 겨우 입에 풀칠을 하였기에 외출도 할 수 없었다 합니다. 이불을 저당잡혀 먹을 것을 마련하는가 하면 아들 규창은 부잣집에서 땐 매탄재를 주워다가 땔감으로 쓰고 시장에 버려진 배추시레기를 주워와 국을 끓였다 합니다.
● 삼한갑족의 후예로서 너무나도 처절한 영락이었습니다. 우당 이회영의 둘째 아들인 이규학의 아들이 <정치가 이종찬>, 다섯째 아들 이규동의 아들이 <정치가 이종걸>입니다.
● 압록강을 건넌 우당 일가 권속 60명 중에 고국땅을 밟은 이들은 20여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토록 바라던 광복은 되었건만 다섯 형제를 잃은 우당의 동생 이시영만이 살아 돌아와 초대 부통령이 됩니다.
● 올해는 우리나라 최고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 인물인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입니다.
명동 YWCA 의 <이회영 생가터 표석>
● 우당은 최고의 가문으로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우당의 생가가 있었던 명동의 YWCA터를 비롯해 서울 명동 땅의 절반이 우당 집안의 소유였다고 합니다.
● 일제는 우당 집안의 재산 유지를 약속했지만, 우당 일가는 우리에게`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 경복궁역에서 만나 통인시장을 갑니다. 엽전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역사박물관으로 갑니다.
● 통인시장의 엽전도시락은 4시에 문을 닫기에 탐방후에 엽전도시락 체험은 불가하여 통인시장을 먼저 갑니다.
코인 하나는 500원. 코인 갯수만큼 음식을 줍니다.
이 부분을 읽어 주세요. 엽전도시락 순서입니다.
통인시장의 대표주자 <기름 떡볶이 >
빨간 떡볶이보다 간장 떡볶이가 더 인기입니다.
부침개ㆍ떡ㆍ팥죽ㆍ잔치국수ㆍ오뎅 등 식성대로 엽전으로 삽니다.
엽전을 산 이곳, 도시락까페에서 엽전도시락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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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개
권춘자님 김복순님 김지선님 신청하셨습니다.
김호웅님, 한정순님 신청하셨습니다.
박수현님, 백경란님 신청하셨습니다.
안종순님, 유재숙님 신청하셨습니다.
장순희님, 최복수님 신청하셨습니다.
신청합니다
이청미님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김봉기님 신청하셨습니다.
권명자님 신청하셨습니다.
김성실,정복희 신청합니다
김성실님, 정복희님 환영합니다. 010 3743 8089로 폰 번호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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