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알림

게시물 상세보기

101회 역사문화탐방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한 영도교와 뮤지컬 모래시계

2017. 12. 07. 오전 10:19
2336

101회 역사문화탐방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한 영도교와 뮤지컬 모래시계


https://band.us/n/a4aavcFdn4X1I

역사탐방 밴드 바로가기



+12월 13일 오전 10시
+1,6호선 동묘역 10번 출구 지상에서 만나 다함께 마을버스로 03번 종점갑니다.
+탐방경로 : 비우당 ㅡ정업원 터 및 청룡사 ㅡ동망봉 ㅡ낙산 묘각사 ㅡ풍물거리시장 ㅡ동묘ㅡ영도교
+회비 : A형 숭인동탐방 ㅡ 5,000원
            B형 숭인동탐방+뮤지컬 모래시계 ㅡ 마감



● 단종이 영월로 유배된 후 궁궐에서 추방된 정순왕후는 숭인동 동망봉 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알게된 정순왕후는 아침 저녁으로 이 산봉우리에 올라 유배지인 영월을 향해 통곡했다고 전합니다.


● 곡소리가 산 아래 마을까지 들려 온 마을 여인들이 땅 한 번 치고 가슴 한 번 치는 <동정곡>을 했다 합니다. 동망봉도 정순왕후가 동쪽을 향해 통곡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입니다.


● 동네 여인들이 반찬거리를 주곤했지만 그녀와 가깝게 지내면 조정에서 요주의 인물로 주목받게 됨으로 송씨부인에게 쉽게 먹거리를 줄 수도 없었다 합니다.


● 동네 여인들이 송씨 부인을 돕기 위해 절묘한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많은 여인들이 드나들 수 있는 여인시장을 만들어 채소와 곡식을 팔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고 못을 박았다 합니다.


● 이렇게 해서 관원들의 눈을 피해 송씨부인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었고 동네 여인들의 지혜와 도움으로 82세까지 한맺힌 삶을 살다 갑니다.


● 제 1차 왕자의 난 때 태조 계비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경순공주 남편 <이제>가 이방원측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 경순공주는 머리를 깎고 청룡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습니다.


● 청룡사는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인목대비에 의해 광해군 때 억울하게 죽은 영창대군의 명복을 빌고 사찰을 중건했습니다.



● 비우당은 황희, 허조와 함께 대표적인 청백리 유관의 집터였습니다. 어느날 임금이 출행하였다가 그의 집에 울타리가 없는 것을 보고 그가 모르게  밤중에 울타리를  둘러 주라 하였다고 합니다. 임금은 그가 알면 사양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자주동샘을 보기 위해서는 비우당의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자주동샘이 비우당의 뒤뜰에 있다보니 비우당이 정순왕후의 초가집으로 생각될 수 있는데 정순왕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 비우당은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의 조선조 실학자 이수광이 살았던 집입니다. 낙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 곳에다 복원했는데 집이 너무 크고 번듯하여 잘못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 비우당은 태조부터 세종 때 까지 3대 35년간 정승을 지낸 유관이 울타리도 없는 집에서 살았는데 나라에서 받은 녹은 동네 아이들의 필묵값이나 다리를 놓고 길을 넓히는데 썼고 자신의 집은 지붕을 고치지 못하고 우산을 받고 비를 피했다 합니다.


● 유관이 살던 집터는 호조, 병조, 예조판서를 지내면서도 옷은 몸 가리는 것으로 족하고 밥은 창자를 채우는 것으로 족하다는 철학을 가진 이희검이 이어 받지요.


● 청빈하기가 유관 못지 않았던 이희검의 집에 사람들이 와서 어찌 이리도 누추한 집에 사는가 물으니 우산에 비하면 이것도 과하다 했다는 이희검이 세상을 떠날 때 친지들이 추렴을 해서 장사를 치뤘다고 합니다.


●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된 집터를 이희검의 아들인 지붕, 이수광이 청빈철학의 성지로 복원하여  <비우당>이란 당호를 답니다. (이수광은 유관의 외 5손)



● 정순왕후는 생계를 위해 옷감에 자줏빛 물감을 들여 댕기, 저고리 깃, 옷고름, 끝동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샘에서 빨래를 하면 자주색으로 염색이 되었다 하여 이 샘을 <자주동샘>이라 하였습니다. (비우당 한켠에 있음)



● 청룡사는 고려 때 왕건이 도선국사의 조언에 따라 개경을 위협하는 지세를 누르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 정순왕후가 영월로 유배를 떠나는 단종과 마지막 밤을 보낸 <우화루>입니다.



● 옛날 청룡사 근처에는 아카시아 등 꽃나무들이 많아서 꽃이 질 때는 꽃잎이 비오듯 했다하여 '우화루'라 했다고 합니다. 우화루 아래 작은 쪽문을 통해 정업원터를 갑니다.



● 단종을 떠나보낸 정순왕후는 삭발하고 허경스님이 됩니다.



● 정업원은 자식이 없었던 선왕의 후궁들이 불법에 귀의하여 모시던 왕을 빌며 노년을 보내던 곳입니다.



● 영조는 정순왕후를 추모하기 위해 <정업원이 있었던 터>라는 뜻의 <정업원구기>라는 비석을 세웠습니다. 요즘은 자물쇠를 채워놓아 벌어진 문틈으로 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 정순왕후가 단종의 명복을 빌며 여생을 보낸 곳이라는 사실을 안 영조가 눈물을 머금고 쓴 정업원구기 비각 현판(영조 친필)



● 동망봉은 그 일대가 채석장으로 쓰일 때 산이 깎여 나갔고 지금은 흔적만 있는데 이곳에서 나온 돌로 조선총독부 건물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골동품시장은 동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고 동묘 풍물시장은 주로 헌 옷과 저렴한 전통품을 취급합니다.



● 우측 숭신초등학교 담장의 우체통옆에 <여인시장 터>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숭신초등학교는 예전에 우시장이었고 그 부근에 도축장이 있었다가 마장동으로 옮겨 갑니다.



● 동묘는 중국 한나라 장수였던 관우의 제사를 지냈던 곳입니다. 관우의 사당이 지어지게 된 것은 문묘만 모시는 조선의 임금에게 임진왜란 당시 군대를 주둔시켰던 명나라 장수가 지적을 하여 생겨난 슬픈 역사의 산물입니다.



● 정순왕후가 영월로 귀양가는 16세 남편 단종과 이곳에서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는 영도교



● 숭인동 탐방은 <정순왕후 종합편>과 같습니다. 정순왕후는 곧 단종이고 단종을 얘기하려면 세조가 빠질 수 없죠.


● 숭인동 골목길 투어는 좀 복잡합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많은 사람이 떼몰려 가는 건 주민들에게도 민폐가 되고 진행도 산만하여 20명 미만으로 제한합니다.


● 오전에 숭인동 골목길 탐방하고 희망자에 한해 1/n점심식사를 합니다. 점심후 뮤지컬 모래시계팀은 충무아트홀로 이동합니다.


댓글 3개

김혜련 2017. 12. 07. 오전 10:23

《지난번 뮤지컬 모래시계 공지때 신청하신 분입니다.》 A형 (탐방만) 이선희님 권춘자님 최복수님 권성연님 김봉기님 이승식님 B형 (탐방+ 모래시계) 안종순님 유길자님 이상희님 이진영님 박수현님 강춘희님 이철숙님 배영민님 김혜련 C형 (모래시계만) 최경옥님 이화자님 백경란 조성자님 김경옥님

김혜련 2017. 12. 07. 오전 10:24

역사문화탐방은 주중 2번, 주말 1번 운영됩니다 자주 만나다보니 밴드가 활성화 되었고 싸이트공지 전에 밴드에서 먼저 얘기됩니다. 한 달 세번 탐방에 번개도 자주 있습니다. 그리고 싸이트 공지하는 날은 룰로 정해저 있는데 한달에 세번은 기본이고 수시로 있는 번개모임을 행사 임박해서 공지하여 진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밴드에서 미리 얘기되고 어떤 행사는 밴드에서 마감되기도 합니다. 싸이트 공지후에 진행하면 좋을 일이지만 어려움이 않아 밴드에서 미리 얘기되는점,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밴드에 관심있는 분은 본 글에 있는 초대장 누르고 들어 오세요. 언제든지, 누구든 다 환영합니다. 들어 오세요.

김혜련 2017. 12. 07. 오전 10:25

[사색의향기 - 역사문화탐방] 밴드로 초대합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 들어오세요. https://band.us/n/ada4v8F0o1PbY From 김혜련 이사/역사문화탐방회장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