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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회 역사문화탐방 가장 가까운 유럽, 블라디보스톡 3일

2017. 12. 11. 오후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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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회 역사문화탐방 가장 가까운 유럽, 블라디보스톡(2박 3일)


https://band.us/n/a4aavcFdn4X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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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2018년 1월 22일~24일 (2박3일)
+인원 : 16명
+금액 : 559,000원 (사회공헌금 10,000원 포함)
+계약금 : 100,000원 (11월 15일까지)
+입금계좌 : 국민은행 443101 - 01 - 129315  (예금주 사색의향기 문화원).




● 극동지역의 중심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은 동해 연안의 최대 항구도시이자, 군항지입니다.



● 항일 독립운동의 최대 근거지였던 블리디보스톡은 안중근 의사의 혼이 숨 쉬는 곳이기도 합니다.


●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하얼빈역으로 출발했던 블리디보스톡 역, 블라디보스톡 근처 우수리스크에는 안중근 의사의 후원자 최재형의 유적과 헤이그밀사 이상설 등에 관한 역사가 있습니다.


● 연해주는 고구려와 발해가 문화를 꽃 피웠던 지역으로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발해의 멸망으로 잊혀졌다가 다시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860년대라고 합니다.


● 한인들이 러시아로 이주를 시작한 것은 1863년(철종때) 으로 농민 13가구가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강 유역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 대부분 흉년으로 굶주리던 농민들의 농업 이민이었으나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망명 이민도 많았다고 합니다.


● 이후 1905년 조선 외교권이 일본에 의해 박탈당해 한인의 해외이주가 억제당하면서 순수 농업이민은 불법적인 망명인이 될 수 밖에 없었지요.


● 러시아는 연해주를 개척하는 한인 이주민들을 처음에는 반겼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 1904년 러일전쟁에서 패하면서 러시아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게되자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 러시아는 사람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에 참가했습니다. 레닌의 혁명으로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 사유제를 폐지하고 개인 토지를 몰수하며 집단 농장을 만들어 부유한 농민을 제거했습니다.


● 따라서 한인 이주민들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1930년대 만주까지 점령한 일본은 우수리강을 사이에 두고 소련과 자주 충돌했지요.


● 러일전쟁에 패한 경험이 있는 소련은 연해주 지역의 고려인들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시켜 버렸습니다.


● 강제 이주는 전 과정이 강압적이고 위협적이었다고 증언합니다. 2~3일전에 이동 통보를 받았고 단 한명의 이탈도 허용하지 않는 사례로 입원한 사람은 퇴원시켜서,  복무중인 군인은 제대시켜서 열차에 오르게 했다 합니다.



● 창문없는 깜깜한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렸고 화장실도 없어 기차가 멈추면 기차 밑에서 일을 보다 깔려 죽기도 했답니다.


● 연해주에서 목적지인 중앙아시아(알지도 못하고 태워졌지만)에 도착하는데 약 40일이 걸렸고 가는 동안 식량부족과 위생상태가 불량해 병마에 시달리게 되었고 따라서 기차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 당시 고려인 수가 17만 5천여 명이었으나 이 가운데 1만 1천명이 도중에 숨졌다고하니 그 고통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리오~


● 이주 당시에 7살이었던 어느 고려인이 들려준 얘기에 의하면 기차가 멈출 때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천으로 덮어 플랫폼에 두기도 하고 시신을 창문 밖으로 내던지기도 했답니다.



● 버려진 한인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었고 배움의 길도 닫혀 있었습니다. 취업 등 사회진출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 주거환경 또한 집단수용소나 다름없었고 이주 다음해에 7,000여 명, 그 다음해에는 4,80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모진 학대와 고생을 이겨내며 농토를 개간하고 볍씨를 심어 3년 만에 자립 기반을 일구었다고 합니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외에 11개의 독립국가로 분리되었고 거주하는 국가에서도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어 고려인들은 직장에서 추방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 강제 이주로 70년 정든 땅에서 쫓겨난 고려인들은 소련이 개방될 때 까지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강제 이주가 비인도적이고 불법적이었다고 인정한 것은 반세기가 지난 1989년, 러시아는 잘못을 인정하고 원래 거주지인 연해주로 귀화할 권리를 주었답니다.


● 두 번씩이나 강제 이주를 당한 것과 다름없는 고려인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 고려인의 후손들이 우리 풍습을 지키고 아리랑을 부르고 있습니다.


● 강제 이주 당시 17만 5천명이었던 고려인 인구는 현재 45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사할린 제외)  하지만 고려인 45만 명 중 겨우 7%만이 연해주로 돌아오고 나머지 93%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 그러나, 재이주민들의 삶 역시 평탄하지 못해 다른 언어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 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다 합니다. 오히려 재이주하지 않고 그대로 중앙아시아에 남은 고려인들이 더 나은 삶을 산다고 합니다.


● 고려인, 카레이스키 만나러 블라디보스톡 갑니다.



고려문화센터



고려문화센터는 고려인들에게는 포근한 고향집과 같습니다.



블라디보스톡 시내와 주변 섬들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독수리전망대에서 본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사장교.



한인마을



시베리아 횡단열차 시발점인 블라디보스톡 역



시베리아 횡단은 (총길이 9.288km)  급행열차로 일주일 걸린다고 합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1시간 탑니다.



블라디보스톡 시내



설원을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율브린너는 블라디보스톡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북한에서도  살았고 만주에서도 살았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한국의 수출품인 목재를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조선 말기 고종이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의 힘을 빌릴 때 러시아가 많은 걸 요구했습니다. 러시아가 금광 채굴귄과 산림 벌채권을 무리하게 요구했는데 울릉도와 두만강 주변의 산림 벌채귄을 인수 받은 사람이 율브린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였습니다.





댓글 3개

김혜련 2017. 12. 11. 오후 12:18

《블라디보스톡 확정 33명》 이상희님 안종순님 민경인님 배영민님 이상례님 김경모님 김선희님 정은미님 김영화님 김향옥님 박영옥님 안정화님 최인자님 최해숙님 이종원님 권성연님 권춘자님 최복수님 한명옥님 김미숙님 신영교님 이화자님 최보윤님 김혜정님 이한민님 이귀옥님 임애선님 이현숙님 김경희님 이석란님 정정애님 김수영님 김혜련

김혜련 2017. 12. 11. 오후 12:18

역사문화탐방은 주중 2번, 주말 1번 운영됩니다 자주 만나다보니 밴드가 활성화 되었고 싸이트공지 전에 밴드에서 먼저 얘기됩니다. 한 달 세번 탐방에 번개도 자주 있습니다. 그리고 싸이트 공지하는 날은 룰로 정해저 있는데 한달에 세번은 기본이고 수시로 있는 번개모임을 행사 임박해서 공지하여 진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밴드에서 미리 얘기되고 어떤 행사는 밴드에서 마감되기도 합니다. 싸이트 공지후에 진행하면 좋을 일이지만 어려움이 않아 밴드에서 미리 얘기되는점,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밴드에 관심있는 분은 본 글에 있는 초대장 누르고 들어 오세요. 언제든지, 누구든 다 환영합니다. 들어 오세요.

김혜련 2017. 12. 11. 오후 12:19

[사색의향기 - 역사문화탐방] 밴드로 초대합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 들어오세요. https://band.us/n/a1abv4F8o8h1r From 김혜련 이사/역사문화탐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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