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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회 역사문화탐방] 중국 서안
● 서안은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오래된 도시>로 중국의 대표 역사도시입니다. 한나라, 진나라, 당나라의 수도였습니다.
● 진시황은 기원전 246년 13살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아 중국 최초로 통일제국을 이루었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수도와 지방을 연결하는 도로를 냈고 사상까지 통일했다 합니다
● 진시황은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한 마오쩌둥이 가장 존경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 병마용갱은 진흙으로 빚은 병마용이 진시황을 지키는 군대가 있는 곳으로 진시황릉에서 1.2km떨어진 시골마을에서 우물을 파기 위해 땅을 파던 농부가 툭이한 파편을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 병용은 높이 1.7m~ 2m, 마용은 1.5m높이에 길이 2m로 실물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졌습니다.
● 자연채광을 이용한 병마용갱 박물관에는 당시 모습 그대로 서쪽의 능묘를 지키도록 동쪽을 향하여 배열되어져 있습니다
● 병마용갱 도록 기념품 숍에는 영감님이 한 분 계셨는데 도록을 산 사랑에게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바로 그 영감님이 우물을 파려했던 그 농부라 했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는 건 도록을 사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몇 년전에 보았습니다)
● 진시황릉 안에는 지하궁전이 있을거로 추측합니다. 지하궁전은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천상과 지상을 모방하였다고도 합니다. 심지어 도굴자가 접근하면 화살이 자동발사되는 비밀스런 장치도 갖추었다고 하는데 아직 발굴로 입증되지는 않았습니다.
●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중 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중독시키는 아편 꽃에 양귀비란 이름을 붙힌 것으로 보아 그녀의 미모는 치명적이었던 같습니다.
●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으로 노래와 춤에 능하고 미모가 출중해 당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수왕의 비가 되었습니다. 수왕은 황제계승권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진 왕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 당 현종의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수왕과 천수를 다하며 해로하였을지도 모르고 당나라 역시 자멸의 길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가 죽자 외로워하던 현종을 위로하기 위해 중국 전역의 미녀들을 뱩방으로 수소문하여 수왕의 아내 양옥환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아낸 환관 고력사가 양옥환을 찾아 갑니다.
● 양옥환은 음악 애호가였던 현종이 연주하는 가락에 맞춰 자신의 장기인 춤을 선보였는데 예순을 바라보던 현종의 마음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 망설이는 양옥환에게 물량공세와 구애가 이어졌고 아무리 황제라 하나 주위의 시선때문에 아들의 아내를 바로 뺏을 수는 없어 화산에 있는 도교의 도사로 입문시킵니다.
● 도가에서는 일단 입문하면 그 이전에 있었던 속세의 일들은 다 지워지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현종은 이런 도가사상을 자기의 몰염치한 사랑에 이용했습니다.
● 미안해진 현종은 아들 수왕에게 위씨 성을 가진 여인과 재혼케 했고 꿈에도 그리던 여인을 맞이 하게 됩니다.
● 도사를 모셔와 가르침을 받는다는 명분으로 태진궁을 짓고 그곳에 양옥환을 살게 하면서 양귀비로 책봉합니다. 양귀비는 비록 비의 신분이었지만 현종이 황후의 자리를 비워둔 채 지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황후와 다름없는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 현종은 젊었을 때 정치를 잘 하여 태평성세를 구가하기도 했으나 양귀비를 맞으면서 사랑에 눈이 멀어 정치는 관심 밖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 그러는 사이 양귀비를 낀 환관과 탐관오리가 득세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민심은 흉흉해졌습니다.
● 현종에게는 오로지 양귀비 뿐이었습니다. 양귀비를 위해 유명한 온천, 화청지에 궁을 짓고 양귀비와 사랑하는 일에만 올인하면서 양귀비의 아름다움 앞에는 꽂조차도 부끄러워 한다고 양귀비를 극찬했다고 합니다.
● 양귀비가 즐겨 먹는다는 과실 여주를 이천리 밖에서 매일 공수해 오고 앙귀비가 원하는 사치를 다 누리도록 했다 합니다.
● 양귀비의 3자매까지 한국, 곽국, 진국 부인에 봉해졌고 .이 때 등용된 6촌 오빠 앙소는 건달 출신의 간신배였지만 '국충'이라는 이름까지 하사했다 합니다.
● 양귀비는 현종의 사랑을 붙잡아 두려고 매번 새로운 화장법을 개발하였고 목욕을 즐겨 늘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 역사는 그녀의 용모를 '자진풍염'이라 적고 있는데 이는 풍만하고 농염하다는 의미입니다.
● 백거이는 장한가에서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봄 밤이 너무 짧아 해가 높이 솟았구나
황제는 이날 이후 조회에도 안 나오네
후궁에 미녀들은 3천명이나 되었지만
3천명 사랑을 한 몸에 받았네~
●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하였던가~
양귀비의 권세도 오래 가지 못해 양귀비의 몰락은 양귀비가 총애하던 두 남자 사이의 알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안록산은 일개 군졸에서 시작하여 용맹으로 공을 세워 일약 중앙정계로 진출한 인물이었습니다.
● 20대의 양귀비는 40대의 안록산을 수양아들로 삼아 그를 가까이 했는데 현종은 그걸 모르고 양귀비가 안록산을 총애하는 것 만큼 안록산을 더욱 높은 지위로 등용하였다 합니다.
● 그것이 양귀비의 사촌오빠 양국충과 안록산 사이에 갈등의 원인이 되어 안록산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양국충이 그를 제거하려 하자 이를 눈치 챈 안록산이 변방에서 난을 일으켜 당나라 수도인 장안까지 쳐들어 왔는데 이를 <안사의 난>이라 합니다.
●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피난을 가는데 장안에서 100여리 떨어진 마외파에 도착했을 때 성난 군중들과 현종을 호위하던 병사들이 나라를 이꼴로 만든 양귀비와 그 일족을 처벌하기 원했습니다.
● 현종은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했는데 양귀비와 장렬히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현종은 양귀비를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 양귀비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를 수수방관함으로써 그녀를 죽음으로 내 몰게 되었습니다. 정치를 팽개치고 나라를 몰락하게 만든 책임을 양귀비에게 덮어 씌운 것이 되었습니다.
● 현종의 뜻을 알아차린 환관 고력사가 그녀를 죽음으로 끌고 갔습니다. 양귀비가 자결 아닌 자결로 생을 마감하고 나자 현종은 그녀의 시체를 수습해 조그마한 산에 장사지냈다 합니다.
● 양귀비가 죽고 피난길에 올랐던 현종은 아들 숙종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태상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들 숙종에게 안사의 난을 진압하도록 모든 것을 맡긴 채 앙귀비만을 그리워하면서 그녀를 지키지 못한 회환과 그리움 속에서 6년을 보내다 78세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 양비의 죽음에 대해서 다른 전설이 있는데 양귀비가 너무도 아름다워 따라간 군졸들이 차마 죽이지 못하여 그녀를 일본으로 탈출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 일본으로 건너간 양귀비는 30여 년을 더 살았고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유물과 사당, 무덤이 일본 야마구치현에 남아 있는데, 실제로 양귀비 후손이라고 족보까지 들고 나선 사람도 있답니다.
● 양귀비를 <황제를 지배한 여인> <강요에 못이겨 자살한 후비> <사랑과 배반사이의 양귀비> 이렇게도 부릅니다.
● 서안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입니다. 진시황릉은 진시황의 무덤으로 37년에 걸쳐 완공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 내부 발굴을 할 기술이 없어 무덤을 밖에서만 볼 수 있는데 무덤이 아니라 야산과 같습니다.
미니 전동카나 마차로 진시황릉 주위를 돌거나 주변에 전시해 놓은 유물을 구경하는 것으로 진시황릉을 보게 됩니다.
+2018년 2월 22일~25일(목ㆍ금ㆍ토ㆍ 일)
+참가비 : 389,000원(사회공헌금 10,000원 포함)
+인원 : 20명
+계약금 : 100,000원 (11월 15일까지)
+입금계좌 : 국민은행 443101 - 01 - 129315 (예금주 사색의향기 문화원).
● 자세한 내용은 서안 단체 카톡방에 올리겠습니다.
● 3박 4일 서안여행 소개
http://m.modetour.com/package/Itinerary.htm?Pnum=40979309
진시황제
병마용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르키는데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병마용갱은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용기가 실제 병기들이고 흙으로 빚은 병사들은 제각각 자세도 다르고 표정도 다릅니다.
진시황은 죽어서도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능과 토병들을 만들었습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 땅에서는 연리지>하며 양귀비와 속삭였던 당현종이 안록산 난 때 양귀비를 버리지요.
양귀비의 피부는 너무도 맑아 그녀가 무얼 먹었는지도 알 수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치명적인 미녀였다고도 하지요.
영원히 사랑하자는 의미로 지었다는 장생전은 현종과 양귀비가 결혼식을 했던 곳입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결혼하면서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고 약속했다는군요.
<꽃으로 태어나 독이 되다>고 씌어 있네요.
양귀비가 목욕하고 머리를 말렸다는 정자
현종과 양귀비가 거처하던 집, 비상전과 의춘전
임금이 거처하던 곳, 비상전은 온천수를 하수도로 방을 한바퀴 돌리는 난방을 했다고 합니다.
화청지의 양귀비 벽화
중국전통 샤브샤브(특식)
양귀비가 즐겨 먹었다는 교자연(특식)
댓글 1개
서안 25명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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