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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회 역사문화탐방] 손기정 청동투구
[107회 역사문화탐방] 손기정 청동투구 보러가요
+2월21(수) 오전 10시 20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로비
+회비 : 5,000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위치
https://m.store.naver.com/places/detailMap?id=18664755
역사탐방 밴드 바로가기
https://band.us/n/a8a3ves0N6G7a
●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개최를 계기로 <한국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근현대사 속 스포츠의 역사와 우리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스포츠를 찾아 떠납니다.
● 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책정되었으나 우승자에게 전달되지 못했다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찾게된 손기정 선수의 청동투구가 지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선수들의 땀이 서린 유물, 사진, 영상 등을 보면서 당시 열광했던 순간을 추억해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10시 30분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해설을 듣고 <한국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는 해설없이 우리끼리 관람하고 8층 옥상으로 가서 일품인 경복궁 뷰를 봅니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8층 테라스는 경복궁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면서 가장 예쁜 경복궁이 보이는 뷰 포인트입니다
● ● ● 아래 링크는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시상식 등이 실렸던 지난 우리 역사문화탐방 밴드입니다.
● https://band.us/band/53211347/post/1265911424
●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메인스터디움에는 12만여명의 관중이 2시간 넘게 마라톤 우승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갈채와 환호속에 나타난 주인공은 가슴에 일장기를 단 손기정 선수였습니다. 일본인의 이름으로 우승한 그는 훗날 \"상상은 했었지만 내 우승의 표시로 일장기가 올라갈 때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습니다.
● 일장기와 함께 시상대에 섰던 그의 사진을 보고 '인간이 표현 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이라고 했던 한 독일인의 말처럼 손기정은 비장한 심정으로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것입니다.
● 1875년 독일 고고학자에 의해 그리스 올림피아 광장에서 발굴된 이 투구는 완벽한 원형을 유지한 것으로 비교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 기원전 490년 아테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후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약 40km를 단숨에 달려온 병사 '페이디 피데스'는
● \"우리는 이겼노라\"고 외친 후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졌다고 합니다. 훗날 페이디 피데스롤 기리기 위해 마라톤이 생겨났고 마라톤은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이긴 지역의 이름입니다.
● 그리스는 마라톤 우승자에게 1900년부터 그리스유물을 내 놓았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는 청동투구를 내놓은 상태에서 베를린올림픽부터는 아마츄어 우승자에게 메달 이외에 부상은 없다는 규정이 생겼다고 합니다.
● 손기정은 이런 사실조차 모른 채 귀국했고 일제는 이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죠. 1970년대 손기정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어 투구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 박물관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이때부터 반환운동을 시작했으나 반환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독일올림픽위원회는 진품은 돌려줄 수없고 복제품은 가능하다고 했으나 독일정부는 베를린올림픽 50주년을 맞이하여 손기정 선수를 초청하여 직접 전달하였습니다.
● 청동투구는 50년만인 1986년에 손기정의 품으로 돌아왔고 투구를 보관해 오던 손기정은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 우리나라로 돌아오기전 50년 동안 독일의 샤로텐부르그 박물관에 전시된 이 청동 투구의 설명판에는 <코린트 시대의 투구/마라톤 승자를 위해 아테네 브라디니 신문사가 제공한 기념상/손기떼이(손기정의 일본식 표기)/일본/2시간 29분 29초>라고 독일어로 씌어 있었답니다.
● 1936년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의 세계재패를 축하하는 자리에 여운형, 송진우 등의 민족지도자들이 있었으며 그 자리에 최승희도 초대되었습니다.
● 그날의 자리를 마련한 여운형이 손기정에게 박수를 보내자며 <손기정 만세>를 부르자, 손기정은 \"인간의 육체는 의지에 따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저는 불가능할 것 같던 그 길을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여러분들도 조선의 독립이 더 빨리 오도록 열심히 달려 주십시오. 저 역시 계속 달릴 것입니다.\"
● 큰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올 때 여운형이 다시 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소개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손군처럼 조선을 빛낸 애국자, 최승희입니다\"
● 우익 정계의 거두 송진우와 좌파대표인 여운형은 모두 최승희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
● 손기정 선수에게 찬사가 쏟아지고 있을 때 친일파'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합니다. 황국위문공연이다 뭐다 하면서 번 돈을 다 갖다 바치고~ 최승희는 친일~
● 그때 손기정 선수가 \"그렇다면 내가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뛴 것도 친일이요?\"했다고 합니다.
● 그 무렵 천하의 손기정과 천하의 최승희가 맺어지는가를 놓고 잡지들이 떠들어 댔고 두 사람의 관계가 온 겨레의 관심사였다고 합니다.
● 최승희는 훗날 좌파 문인 안막과 결혼해 월북합니다. 상록수의 심훈은 최승희를 짝사랑했고 최승희의 첫사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이었습니다.
● 영랑은 휘문재학중 만세운동을 위해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신발속에 숨겨 오다가 적발되어 옥고도 치루고 14살 때 결혼하여 15살에 상처합니다. 그후 22살의 영랑은 13살 최승희와 불같은 사랑을 하지요.
● 강진의 천석꾼 영랑의 집에서는 타이즈 입고 온 몸을 흔드는 신여성은 우리 가문에 필요없다 하고 최승희네 집에서는 강진 촌사람에게 딸을 보낼 수 없다 하여 서로의 집안에서 반대했다고 합니다.
● 영랑은 실연으로 강진 생가의 동백나무에 목을 메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합니다. 영랑은 제 친구의 외삼촌이어서 그런 얘길 자주 들었습니다.
● 고향으로 내려와 뜰에 핀 모란을 보면서 최승희가 떠올라 지었다는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하마터면 쓰레기통에 버려질뻔 했다고 합니다.
● 어느 봄날, 영랑의 생가에 내노라하는 문인들이 모여 각자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영랑도 앞마당의 모란을 보며 즉흥적으로 시를 한 수 지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구겨 버리려던 것을 춘원 이광수가 \"왜 그래, 이리 줘봐\"해서 대신 읊어 찬사를 받았고 그래서 살아남은 게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고 합니다.
● 손기정 선수와 가까이 지내던 어느 어르신의 얘기입니다. 손옹의 지갑속에는 사진이 있었는데 가끔씩 꺼내 보았다 합니다. 그 사진은 명월관에서의 최승희와 손기정의 사진이었답니다.
● 1935년 경성축구단의 김용식 축구화
● 1930년 경평축구 대회에서 사용했던 축구공
● 축구가 도입되던 시기 새끼줄로 동그랗게 말아 엮어 만든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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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강춘희님 김미숙님 김봉기님 김수영님 김영화님 김혜자님 심화정님 안종순님 유길자님 정정애님 최종임님 최인자님 김혜련 (13명 신청하셨습니다.)
역사문화탐방은 주중 2번, 주말 1번 운영됩니다 자주 만나다보니 밴드가 활성화 되었고 싸이트공지 전에 밴드에서 먼저 얘기됩니다. 한 달 세번 탐방에 번개도 자주 있습니다. 그리고 싸이트 공지하는 날은 룰로 정해저 있는데 한달에 세번은 기본이고 수시로 있는 번개모임을 행사 임박해서 공지하여 진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밴드에서 미리 얘기되고 어떤 행사는 밴드에서 마감되기도 합니다. 싸이트 공지후에 진행하면 좋을 일이지만 어려움이 많아 밴드에서 미리 얘기되는점,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밴드에 관심있는 분은 본 글에 있는 초대장 누르고 들어 오세요. 언제든지, 누구든 다 환영합니다. 들어 오세요.
사색의향기 - 역사문화탐방 밴드로 초대합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 들어오세요. https://band.us/n/a2a9wek9k5Q5w From 김혜련 이사/역사문화탐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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