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알림
게시물 상세보기
[역사문화탐방 137회]
[역사문화탐방 137회] <대고려 918 2018 그 찬란한 도전>
역사문화탐방 밴드 바로가기
+12월19일(수) 오후 1시20분까지
+4호선, 경의중앙선 이촌역 2번 출구 지하
+회비 : 5,000원(당일 수납)
+다함께 만나 특별전 입장권은 박물관 로비에서 각자 티켓팅 합니다.(운영진이 안내함)
<12월4일 고려가 옵니다>
● 대한민국의 영문 명칭인 <코리아>라는 국명은 <고려인이 사는 나라>, <고려인의 땅>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 그만큼 고려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시기이지만 한국의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 역사의 500년은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 고려의 수도 개경을 비롯한 정치, 종교, 문화, 역사의 중심지가 북한에 있어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번 전시는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 2007년부터 2015년까지 7차례에 걸쳐 만월대 공동조사가 있었습니다. 2016년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조사는 중단되었습니다.
● 만월대는 조선 건국 이후 폐허가 된 고려 궁궐터의 산세와 땅 모양이 보름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남북공동조사에 의해 발굴된 금속활자》
● 2015년 11월 개성 만월대에서 말 그대로 보물이 나왔습니다. 가로 1.36센티, 세로 1.3센티, 높이 0.6센티의 금속활자가 출토된 것입니다.
《개경의 만월대》
● 만월대가 홍건적의 난으로 소실된 1361년까지 황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1455년 제작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최소 한 세기 앞선 것으로 학계에선 평가합니다.
● 손톱만한 크기의 금속활자를 찾아내기 위해 당시 조사단은 \"흙도 유물이다\" 라는 구호 아래 일일이 체에 흙을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 합니다.
● 이 과정에서 금속활자뿐 아니라 고려 황실에서 사용된 반지와 못, 바둑돌 등 희귀 유물도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 금속활자는 크기가 너무 작아 대규모 인력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앞으로 안정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된다면 더 많은 금속활자가 출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2016년 남북 공동 발굴조사가 중단된 이후 북측에서 단독 진행한 조사에서 추가로 4점의 금속활자가 발견되었다 합니다.
● 만월대 금속활자들은 이번 12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에서 직접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 합니다.
● 현재 유물 대여 절차를 북과 협의 중이라 합니다.
●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은 1377년 (공민왕)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한 <직지심체요절> 입니다.
● 직지심체요절을 만든 고려인이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구텐베르크의 할아버지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로 금속활자를 대량 보급한 것과 달리 최초 발명국이던 고려의 금속활자는 그 존재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후퇴하였다 하겠습니다.
●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1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러시대 불감과 관음보살이 귀향했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후원 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이들이 일본의 고미술상으로부터 구매한 뒤 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12월19일 이 <불감과 관음보살상>도 볼 수 있습니다.
● 이 불감은 높이 13.5센티, 너비 13센티인 상자로 14세기 말에 제작되어 가치가 높습니다.
● 함께 돌아온 관음보살상은 8.6센티, 5.2센티로 불감에 안치되었던 것으로 봅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은 연면적으로 세계 6대 박물관이며 단일 건물로는 세계 최대 박물관입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공간뿐 아니라 공연장, 문화상품점, 레스토랑, 커피점 등 다양한 문화시설과 편의시설이 함께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레, 뮤지컬, 클래식, 재즈, 대중가요 콘서트 등이 펼쳐집니다.
《기념품샾의 물건들도 품질이 참 좋습니다》
● 인공호수인 거울못과 곳곳에 한식, 양식당, 커피숍 등의 휴게시설과 식음료 공간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 2018년을 장식할 역사문화탐방지로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선택했습니다.
● 탐방 후 박물관 내의 커피숍에서 뒷풀이가 있겠습니다. 너른 박물관 마당에서의 여유있는 티타임은 역탐이 부담합니다.
● \"유럽에선 박물관으로 놀러 간단다\" 박물관은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것 쯤으로 알고 있던 시절에 들었던 박물관으로 놀러 간다는 말은 엉뚱깡뚱하게 들렸습니다.
● 문화가 무엇인지 알고부터는 박물관 찾는 횟수가 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모임 장소로 중앙박물관을 권합니다.
《사진1》클릭해 보세요. 어제 촬영했어요.
● 격조높은 중앙박물관에서의 모임을 갖어 본 사람들은 중앙박물관으로 피크닉을 갑니다.
《사진2》클릭해 보세요. (어제 촬영한 모과)
● 사진1과 2는 같은 장소로 담소하기 좋은 야외 공간입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우아합니다.
●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나타나는 가족이나 연인이 주로 찾는 이 공간, 참 좋습니다.
● 티타임 후에 희망자에 한해 용산가족공원 산책이 있겠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산속 같은 느낌이 나는 공원입니다.
● 고려건국 1,000년되는 1918년은 일제강점기로 천년기념식을 할 수 없었습니다.
● 고려가 918년에 건국하였으니 올해가 1,100주년. 남과북, 해외 그리고 국내 다른 박물관에 있는 고려 유물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빌려 오는 일은 쉽지 않아 우리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임대를 꺼리고 있습니다.
● 사립박물관이나 사찰로부터 빌리려는 고려 불화나 불상도 <도난 불상 사건> 여파로 애를 먹고 있다 합니다.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
●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 1800년대 말 주한 프랑스 공사가 직지심체요절을 돈을 주고 샀다 합니다.
● 이후 골동품 수집가의 손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된 상태라고 합니다.
● 한국내에서 전시되고 있는 동안 <압류나 몰수를 금지>한다, 또는 반드시 돌려 준다는 조건을 붙히는데 국회에서 논의하다가 현재는 답보 상태라고 합니다.
●세계기록유산인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찍어낸 책 중에서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책은 대장경판이 만들어진지 600년 뒤에 나온 강원도 월정사 소장본입니다.
● 위 책은 일본의 오타니대 도서관이 소장한 고려대장경의 인쇄본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 이 대장경은 587상자 4995첩의 방대한 분량으로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의 발문(책끝에 발행 경위를 적은 글)이 붙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대장경이 일본으로 간 까닭은?
● 조선초기의 한일관계사를 들여다보면 14~16세기는 한ㆍ일 양국 관계는 선린외교이자 <대장경 교류의 역사>였다는 기록이 있다 합니다
● 1395년(태조 4년) 왜구가 잡아갔던 조선인 570명이 송환되자 조선은 감사의 뜻으로 대장경 2질을 하사했다고 했습니다.
● 이 기막힌 보물을 얻게 된 규슈의 절도사는 \"절하고 읽어보니 귀국의 은혜에 감동됨이 마치 바다가 끝이 없는 것과 같사옵니다.
● 이로부터 일본은 조선이 요구하지 않아도 섬마다 조선인 포로들을 수색하여 송환하면서 끈질기게 대장경을 달라고 했다 합니다.
● 심지어 대장경판 자체를 달라고 떼를 써서 사신이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 세종이 이 요청만은 끝까지 거부하자 일본 사신은 한때 왜구를 해인사에 침투시켜 대장경판을 약탈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 당시 일본의 외교 사절 대부분이 승려였던 것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했다고 하겠습니다.
● 1556년(명종11년)까지 대장경을 요구한 횟수가 100회를 넘었는데 조선은 이중 반 이상은 들어 주었다 합니다.
●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던 관계로 어느 시점부터는 \"대장경 그거 다 줘 버리자\"는 결정을 내려 버립니다.
● 이런 상황에서 대장경이 일본의 오타니대로 가게 되었다 합니다.
● 태종실록 14년의 기록에 태종은 \"일본의 풍속은 불법을 숭상하기 때문에 존경하고 믿는 것이 여기의 배가 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 그후 태종은 예조에 명해 여주의 신륵사에 소장된 대장경 전부를 일본에 보내도록 합니다.
● 이런 일이 150년 넘게 계속되다보니 조선에는 고려대장경 책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일본으로 건너간 대장경들은 일본의 불교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겠습니다.
●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고려대장겅의 고판본은 오타니대 소장본까지 16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 고려대장경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어 1710년 고려대장경의 정확성을 입증한 <여장대교록>이 나왔습니다.
● 오늘날 고려대장경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같은 일본인들의 연구 덕택이었다는 말이 있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2월에 개최대는 <대고려전>에 북측 문화재를 함께 전시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 북측 최고자가 협력하겠다 해서 북쪽의 고려 유물이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옵니다. <고려가 옵니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 우리쪽에서 대여를 희망하는 유물 리스트를 북에 보냈는데 그 중에는 남과북이 공동 발굴한 만월대의 유물도 포함되었다 합니다.
●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남과북 소통의 의미인 남쪽의 스승과 북쪽의 제자 상봉입니다.
● 부처님의 모습을 따온 <고려 태조 왕건상>과 <관음사 보살상> 등 주요 불교 문회재가 등장할 것입니다.
● 왕건은 희랑대사를 스승으로 모셨고 희랑대사는 왕건을 도왔습니다. 후삼국통일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 우리가 염원하는 남과북 소통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며 개최되는 이번 특별전에 국민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 문화를 통하여 남과북이 하나가 되기를 염원하는 이번 대고려 특별전에 회원님을 초대합니다.
●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합천 해인사의 대장경과 희랑대사좌상이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 918 2018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을 위해 11월 10일 모셔졌습니다.
● <대고려 918 2018 그 찬란한 도전>의 전시를 위해 해인사에서 11월9일 <대장경과 희랑대사좌상> 이운 행사를 시작하는 의식.
● 대장경이 가마에 태워졌습니다.
● 해인사에서 고불식을 마치고 연천 숭의전 (사실상 고려 종묘)으로 향하는 이운팀
● 희랑대사 : 해인사에 모기가 유난히 많아 수도하는데 어려움이 있자 다른 스님들이 모기에 물리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가슴에 구멍을 뚫어 피를 흘림으로써 모기가 자신만 물게 하였다 합니다.
● 가슴의 검정 부분이 스스로 뚫은 구멍이라 합니다. 특별전 관람시 꼭 보시기 바랍니다.
● 이 목조 조각상은 희랑대사가 열반하시기 직전 자신의 좌상을 만들고 열반하셨다 합니다. 한국불교 회화사에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 왕건상 : 희랑대사를 스승으로 모신 왕건과 희랑대사의 만남은 남과북에 커다란 축제가 되리라 예상합니다.
● 중앙박물관과 문화관광부가 대여를 희망하는 리스트에 위 사진의 태조 왕건상도 있습니다.
● 무진동 차량에 의해 숭의전으로 모셔질 <희랑대사좌상> 이운팀
● 희랑대사좌상과 대장경은 위 사진의 무진동 차량에 의해 이운되었다 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으로 들어서는 이운팀
● 해인사와 조계사의 스님들이 이운대열을 따라 입장하고 있습니다.
● 무진동 차량에서 가마로 모셔진 희랑대사좌상
● 중앙박물관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는 이운팀
● <대고려 918 2018 그 찬란한 도전>의 전시에 <대장경과 희랑대사좌상>을 영접하는 식장의 입장을 위해 가마가 멈췄습니다.
● 어제(11월10일) 대고려 사전행사 모니터에 권성연님이 보였음.(앞쪽 중앙 베이지색모자)
● 소원지를 써서 벽에 걸고 어둑어둑해질 때 불켜진 소원등을 거울못에 띄웠습니다.
● <팔민대장경>하면 김영환 장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6.25당시 인민군들이 해인사를 중심으로 가야산에 숨어 들었습니다.
●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미군 사령부는 해인사에 공중폭격을 주문합니다. 당시 편대장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의 중요성을 알고 폭격 명령 지점인 해인사 앞 마당 상공에서 기수를 돌립니다.
● 이로 인해 김영환 대령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었으나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은 일본의 교토와 프랑스 파리는 문화유산이 많아 폭격하지 않았다.\"
● \"나 역시 적을 소탕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잿더미로 만들 수 없었다\"라고 당당히 항변했다 합니다.
● 그 후 그는 많은 공을 세워 준장으로 진급하였습니다. 그러나 1954년 강릉지구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34세의 나이로 순직합니다.
● 해인사에서는 매년 음력 5월16일 김영환 장군을 기리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 김영환 장군이 아니였다면 팔만대장경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해인사에 갈적마다 이 이야기를 꼭 누군가에게 들려 줍니다.
댓글 1개
<고려가 옵니다> 특별전 22명 참여하고 잘 마쳤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