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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 139회] 와 특별전
[역사문화탐방 139회] <딜쿠샤>와 <경강> 특별전
+1월16일(수) 오전 10시50분까지 오세요
+오전 11시 상설전시 해설 시작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서 만나요.
+사회공헌금 : 1,000원
+인원 : 20명
※ 특별전 전시는 해설사가 부족하여 거의 해설없이 진행됩니다. 더구나 1월 16일은 방학기간으로 인하여 특별전 예약이 되지 않습니다.
※ 1월2일에 특
별전 해설사와 일단 통화하기로 하였으나 특별전 해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 5호선 광화문역 7번(470m, 7분 소요)
※ 5호선 서대문역 4번(600m, 8분 소요)
※ 3호선 경복궁역 7번(720m, 10분 소요)
※ 1호선 시청역1,2,3번(850m, 15분 소요)
※ 2호선 시청역 12번(980m, 16분 소요)
● 역사도시 서울에는 오래된 것이 참 많습니다. 빽빽하게 채워진 새 건물들 사이에서 간신히 자리잡고 있는 옛 풍경을 볼 때마다 기분좋은 설렘이 있습니다.
● 2019년은 3.1절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서울시가 19년 광복절에 맞춰 딜쿠사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려고 한참 원형 복원중인 <딜쿠샤>를 소개합니다.
● 딜쿠샤는 힌두어로 <희망의 궁전>이란 뜻이며 <이상향>을 말합니다.
●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1923년에 지어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간 아내와 함께 머문 집입니다.
● <딜쿠샤>는 건축의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그보다 딜쿠사는 3.1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3.1절 100주년이 되는 2019년 공개를 위해 관계자들이 발벗고 나서 준비중에 있습니다.
● <딜쿠샤> 답사때마다 가슴 답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훼손되어 가는 속도가 그 어느 건물보다 심했기 때문입니다.
● <딜쿠샤>는 주인 테일러가 1942년 추방당한 뒤 한동안 비어 있는 상태에서 한국전쟁 후에 피난민들이 들어와 살았습니다.
● 그후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장기간 점유하면서 안전진단 최하위인 D등급 판정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 서울시, 기획재정부, 문화재청, 종로구가 딜쿠사를 문화유산으로 회복하는데 뜻을 같이해 무단점유자들에 대해 최대한 배려하는 선에서 무단 점유 문제를 해결해 지금은 전원 퇴거한 상태에서 복원 진행중입니다.
●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와 남경대학살 당시 중국인을 구한 <존 라베>와 같은 <딜쿠샤>의 주인이었던 <알버트 테일러>에 관한 얘기입니다.
● <알버트 테일러>는 금광 기술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 생활 중에 한국 독립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합니다.
● 한국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여길 정도로 좋아해 서울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서울을 둘러싼 성곽을 걷다가 커다란 은행나무를 발견했다 합니다.
● 그 은행나무는 권율장군이 심었다고 알려진 나무로 테일러의 부인이었던 메리가 좋아했다 합니다.
● 그들은 그곳을 좋아해 마침내 1923년 딜쿠사란 저택을 짓게 되었습니다.
● 메리는 결혼 전 연극배우였는데 공연차 인도에 갔다가 <딜쿠샤>란 궁전을 보고 너무 좋아서 집을 짓게되면 <딜쿠샤>라는 이름으로 짓겠다고 마음 먹었다 합니다.
《인도의 딜쿠샤 궁전》
● 이들이 신혼이었던 1919년 2월 마지막 날 세브란스병원에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날 세브란스 병원에선 다음날인, 3월 1일에 사용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있었다 합니다.
● 그때 첩보를 입수한 일경이 들이 닥쳤는데 다급해진 간호사들이 테일러의 아들 요람밑에 독립선언서를 숨겼다고 합니다.
● 그리고 이 독립선언서는 당시 UPA 통신기자이기도 했던 알버트 테일러에 의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 이밖에도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타전해 알리는 등 일본의 눈엣가시 같았던 그는 태평양전쟁이 터지면서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 그의 부인 메리도 테일러와 같은 기간을 가택연금 당했다고 합니다. 그후 1942년 추방당했으나 늘 한국을, 또 <딜쿠샤>를 그리워 했다 합니다.
● 테일러는 해방된 한국을 다시 찾으려 했으나 1948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그의 유언대로 그의 유해는 합정동의 양화진 묘역에 묻혔습니다. 올 여름 헐버트 69주기 추모식에 우리 역탐이 참여해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 <딜쿠샤>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집 주변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불렸고 1990년대에는 <대한매일신보 사옥>이나 <베델 하우스>로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 그러던 중 서일대학교 김익상 교수가 미국인 <브루스 테일러>의 의뢰를 받아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을 찾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 2006년 <브루스 테일러>는 67년만에 자신이 태어난 집을 찾았으며 이로써 은행나무골 붉은 벽돌집 <딜쿠샤>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의 간호사가 브루스 테일러의 요람 밑에 감추었던 독립선언문》
● 앞에서 언급한대로 <브루스 테일러>는 <알버트 테일러>의 아들로 다음날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있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났고 일경이 독립선언서 인쇄현장을 급습할 때 간호사들이 인쇄물을 감춘곳이 <브루스 테일러>의 요람밑이었습니다.
《딜쿠샤에서 사용했던 은제 식기》
● 이번 전시회 타이틀인 <딜쿠샤의 호박목걸이>는 1917년 부터 1942년까지 테일러 부부의 서울살이를 기록한 자서전입니다.
●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 1982년 메리 테일러가 세상을 뜨자 그의 아들인 <브루스 테일러>가 정리하여 1992년에 출간하였습니다.
● 이 책에 등장하는 <호박목걸이>는 메리 테일러가 <알버트 테일러>에게서 결혼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 책의 모든 내용은 <호박목걸이>를 통해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상징성이 매우 큰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딜쿠샤의 사람들》
● <딜쿠샤>의 인물 중 <김 주사>는 집안일과 사업도 도와 주었던 사람으로 개화파 인사였으며 영어도 능숙했다 합니다.
● <김 주사>는 테일러 부부가 강제 추방 당한 후 종로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숨졌다고 합니다.
● <호박목걸이>는 당시의 서울사람들의 모습, 민속신앙, 금강산 유람 등을 보고 느낀대로 기록한 생생한 기록물과도 같다 하겠습니다.
● 1916년 테일러 가족으로 부터 기증받은 유물들을 전시합니다. <호박목걸이>는 테일러 가문에서도 보물로 여기고 있다 합니다.
《돈의문박물관 마을》
《돈의문박물관 마을》
《홍난파 가옥》
《권율장군 집터》
● <딜큐샤>와 <경강> 특별전 관람 후에 <딜큐샤> 현장 답사를 할 계획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과 딜쿠샤는 가깝습니다.
● <딜쿠샤> 현장 가는 길목에 돈의문 박물관 마을, 경교장, 홍난파 가옥, 권율장군 집터가 있어 일단은 외양을 보면서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 일단 <딜쿠샤>를 보고 그 후는 동행하는 회원들의 뜻을 취합해 발길을 놓겠습니다.
● 서울박물관 이후는 정해진 시간이 없으니 각자 적당한데서 빠지면 됩니다.
● 돈의문박물관 쉼터는 우리 역탐과 분위기가 맞습니다. 일회용 커피나 티를 준비해 오시면 뜨거운 물과 컵은 준비되어 있으니 티타임도 가능합니다.
● 황포돛배가 누비던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를 <경강>이라 했습니다. 9m 실물로 제작된 황포돛배와 경강 상업 관련 유물 150여점이 전시된 <경강>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 <경강>은 전국을 연결하는 뱃길의 중심지로 한강진, 동작진, 노량진, 양화진 등의 나루와 더불어 마포, 서강 등의 포구도 있었습니다.
● 한양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한양은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국가 조세곡 운송의 종착지가 되었습니다.
● 한강진 주변의 동빙고, 서빙고는 관영빙고로서 국가 제사용 얼음과 고위 관료에게 나누어 줄 얼음을 보관하였던 창고입니다.
● 그 얼음은 물론 겨울에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을 쪼개어 창고에 보관했던 것입니다.
● 국상을 당해 능에 뭍힐때까지는 평균 5개월이 걸렸다 합니다. 능 조성하는 기간과 석물 준비 기간 등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 국상이 나면 시신 부패 방지를 위해 얼음을 사용하였는데 얼음 아래 마른 미역을 깔아 마른 미역이 물을 흡수하면 수시로 미역을 교체했다고 합니다.
● 이때 나온 얼음 물 먹은 미역은 서민들의 밥상에 올랐고 미역값이 떨어지면 산골의 사람들도 국상난 줄을 알았다 합니다.
《 동빙고 터의 현재 모습》
● 동쪽의 얼음창고, 서쪽의 얼음창고가 있어 <동빙고동>, <서빙고동>이 태어났습니다. 지명을 보면 그 지역 역사가 보입니다.
《동빙고 터》
● 뚝섬과 밤섬은 낭한강 상류에서 벌채된 목재가 뗏목형태로 운송되어 집하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조선업과 목재판매상이 성행했습니다.
● 그런가하면, 경강 하류인 망원, 합정 지역은 사빙고가 많아 냉장선, 빙어선의 영업이 활발했다 합니다.
《한강이 12센티 이상 얼었을 때 얼음을 잘라 지하의 얼음 창고에 보관》
《동빙고의 얼음은 국가 제사용으로 사용》
《서빙고의 얼음은 궁중과 관원들에게 공급》
《도성도》
● 한강과 임진강까지의 영역을 그린 지도와 17세기 용산과 서강 포구의 모습을 그린 지도, 19세기 도성 밖에 조밀하게 들어선 가옥을 그린 <도성도> 등이 전시되는 이번 경강 특별전에 초대합니다.
● 이번 <경강> 전시회는 탑승이 가능한 황포돛배가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시회장 중간중간에 설치된 오디오 해설을 통해 도움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댓글 2개
웅원합니다.^^
20명 참여하고 정기탐방후 홍난파 가옥, 딜큐사 현장, 권율장군 집 터, 경교장 둘러보고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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