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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148회] 을지유람

2019. 04. 01. 오후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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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148회]  을지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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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and.us/n/a5a5z6GdJ3c2x



+4월17일(수) 13:40
+14:00 투어 시작
+인원 : 15명(한 팀만 운영)
+사회공헌금 1,000원
+2.3호선 을지로3가역 3번 지하광장

● 꼭 참여하실 분만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탐방경로 : 송림수재화 ㅡ오구반점 ㅡ원조녹두 ㅡ을지면옥 ㅡ을지다방 ㅡ통일집 ㅡ안성집 ㅡ조명거리 ㅡ 공구거리 ㅡ재봉틀거리 ㅡ조각거리

● 을지유람은 을지로 골목골목에 숨겨진 곳들을 탐방하는 여행입니다. 을지로는 과거의 흔적과 오늘날의 변화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 이번 코스는 서울 한복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옛날 모습이며  재개발로 인해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골목입니다.

● 못 만드는 것이 없다던 을지로의 산업 이야기, 오랜 전통의 맛집, 변화를 시도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 등 골목골목을 탐험하는 도시 여행입니다.



《원조녹두집의 고추전》



《을지로의 명물, 노가리 골목》



● 우리나라 최초 등산화의 산실인 <송림제화>. 산악인 허영호 대장을 비롯하여 많은 등산인들이  <송림제화>의 등산화를 신었다고 합니다.



《번지수가  5 - 9, 오구반점. 아들 이름도 오구》



《을지로 안성집의 물냉면》



● 개인 이어폰을 가져 오시면 좋습니다.



《일제강점기 시대 건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월3회 오셨다는 양미옥》



《을지다방》



《예전의 조선호텔》


● 4월17일 공식 일정은 을지유람에서 끝나고 희망자에 한해 우리끼리 고종이 황제국임을 선포했던 <환구단>을 갑니다.


● 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일인들의 휴식처인 철도호텔로 되었다가 조선호텔로 변한 <환구단> 흔적을 찾아 소공동의 조선호텔을 갑니다.



《왼쪽 팔각정은 황궁우, 오른쪽은 환구단》


● 대한제국(1897~1910)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을 위해 <환구단>을 만들어 그곳에서 조선이 황제국임을 선포하는 의식을 치루었습니다.


●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베이징의 천단을 본떠 지은 <환구단>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3층의 제단이 있었고 천신의 위패를 모신 <황궁우>가 있었습니다.


● <환구단>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남별궁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는 상징성도 있었습니다.


● 하지만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환구단>의 시련도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 자칫하면 식민지 백성들의 구심점이 될지도 모르는 황제국의 상징인 <환구단>을 일제가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 바로 환구단을 없애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지어 우리의 기를 꺾어 버렸습니다.


● <조선총독부>를 세운 일제는 <대한제국>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지금도 대한제국의 흔적은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습니다.



《팔각정인 황궁우》


● 조선호텔의 정원에 있는 <황궁우>를 저는 소싯적에  호텔 정원의 고풍스런 정자로 알고 뱐도아케이드에서 차를 마시고는 의례 위 사진의 팔각정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놀았습니다.


● 우리들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 그렇게 멋지고 늘 비어있는 팔각정을 아지트로 삼았습니다.


● 늘 조용했고 아름다웠고 아무도 오지 않는 그곳이 <환구단>이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러시아 공사관》


● 고종이 일제에 의해 민황후를 잃고 위협속에 지내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숨어 들어간 아관파천 때 러시아는 고종에게 많은 이권을 요구합니다


● 그 예로 함경도 지방의 산림 벌채권과 광산 채굴권이 러시아로 넘어 갔는데 <러시아>는 개인을 내세워 러시아와는 관계가 없는 모양새를 갖췄습니다.



● 함경도의 광산 채굴권과 산림 벌채권, 그리고 울릉도의 울울창창했던 산림의 벌채권도 영화배우 <율 브린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로 넘겼다 합니다.



《율 브린너 생가의 동상》


● 작년 1월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때 이 동상 앞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 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던 <율 브린너> 소년은 여름이면 함경도의 할아버지 별장에서 지냈다 합니다.


● 그런 연유로 율 브린너는 'korean summer  boy'라고 불리웠고 실제로 율 브린너는 우리 말도 조금 할 줄 알았다고 합니다.



● 위 사진의 기와 지붕을 잘 보시어요.



《다시 찾은 환구단의 정문》


● 제가 20대에 수유리에 있는 호텔 입구의 멋진 기와정문을 지나 그린파크호텔을 자주 갔습니다.


● 갈 때마다 멋진 기와대문이 호텔과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잊고 살았습니다.


● 이런 느낌이 또 들었던 두번 째의 기와정문은 장충동의 신라호텔이었습니다. 두 개 대문의 실상을 얼마전에 거의 동시에 알게 되었습니다.


● 수유리의 그 기와정문은 <환구단>의 대문이었고 신라호텔의 그 기와대문은 경희궁(경덕궁)의 <흥화문>이었습니다.


● 다행히 지금은 그 두 개의 대문이 제자리는 아니지만 비슷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라호텔 내부》


● 정부가 국빈용 숙소로 직접 운영하던 장충동의 <영빈관>을 삼성그룹이 인수해 호텔 신라가 들어섰습니다.


● <장충단>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죽은 궁내부대신 이계훈과 시위연대장 홍계훈 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고종이 세운 제단입니다.


● 일제는 제사를 금지시켰고 그들의 상징인 벚꽃을 심어 <장충단>의 의미를 지우고 장충공원화 했습니다.


● 일제는 국립묘지격인 <장충단>을 공원화한데 그치지 않고 민족의 원흉인 이토오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라는 사찰을 지었습니다.



《환구단의 석고각을 박문사에서 사용》


● 이토오 히로부미(이등박문)의 이름을 딴 <박문사> 사찰을 지을 때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어진을 모셨던 경복궁의 선원전을 옮겨 본전과 부속 건물을 지었습니다.


● 일제는 일본인 자제들을 위한 경성중학교로 변해버린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가져다가 박문사 정문으로 썼습니다.


● 조선 5대궁의 하나인 경희궁의 대문을 민족의 원흉인 이등 박문의 사당 정문으로 사용하여 조선을 철저히 파괴하였던 것입니다.



● 1988년 경희궁 복원때 신라호텔에서 흥화문을 가져 왔으나 원 자리에는 구세군빌딩이 들어서 있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 지금은 박문사의 흔적도 없이 진즉에 헐려졌으나 박문사 터에 영빈관, 신라호텔이 들어 섰을 때도 정문은 그대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 1988년 경희궁을 복원하면서 흥화문은 경희궁으로 옮겨가고 신라호텔은 새로 만든 문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왼쪽 흥화문, 오른쪽 박문사》


● 이토오 히로부미를 입에 올리고 싶은 한국인이 있겠습니까만 미래를 위해서도 지나간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 우리 땅이었던 대마도가 부지불식간에 일본령이 되었고 간도의 그 넓은 영토가 한번도 싸워보지 않고 중국 영토로 편입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 좋지 않은 역사라도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역사는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등 박문의 사당인 박문사》


● <박문사>를 알고나니 <흥화문>이 보였습니다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였던 흥화문》


● 서울역사박물관 탐방때 서대문에서 내리신 분은 이 <흥화문> 앞을 지났을 것입니다.



● 위 사진의 대문은 1967년 조선호텔 건축때 우이동의 그린파크호텔 정문으로 쓰였고 문화재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조선호텔 옆의 자그마한 시민공원으로 돌아 왔습니다.


● 도시계획으로 잘게 쪼개져 이젠 제 자리로 돌아갈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42년만에 비슷한 곳으로 왔다는 데에 위안을 삼아야겠지요.


● 16년 8월로 기억되는데 태종의 작은 공주가 살았다 해서 <소공주 동네>, <소공동>으로 불렸다는 소공동 일대를 우리끼리 아이스크림 먹어가며 탐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 당시에는 <황궁우>를 비롯하여 남아있던 환구단 일대를 재정비하느라 가림막으로 가려 있었지만 우리는 가림막을 들추고 보았습니다.



《왼쪽 철도호텔. 오른쪽 황궁우》



《사진 중앙은 환구단의 삼문》



《조선호텔 환구단의 삼문》



《조선호텔 내에 있는 환구단의 석고》



《조선호텔의 정원이 된 환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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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조명희 2019. 04. 30. 오전 05:37

환구단을 가서 본 적은 있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건물만 본게 부끄럽습니다. 홍화문도 잘 알고 갑니다. 장충단의 내력은 조금도 몰랐는데 이렇게 뜻깊은 곳 인줄 이제라고 알게됨을 기쁘게 생각 합니다. 꼭 다시 한 번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바로 알리는 일이 실로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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