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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145회] 한강 순례길

2019. 02. 28.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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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145회] 한강 순례길



+3월16일(토) 오후 1시40분
+순례길 탐방 : 14:00시작
+5호선 마포역 1번 출구 지상
+소요시간 : 2시간30분
+사회공헌금 : 1,000원(현장수납)
+인원 : 30명
+탐방경로 : 마포음식문화거리 ㅡ한강 순례길 특화구간 ㅡ절두산 순교성지 ㅡ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해설사 배정은 3월에 해 주겠다 했습니다. 해설사는 통상 10명당 한 명 배정되는데 몇 명 배정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친한 사람들끼리 묶으면 부작용이 있어 신청 댓글 순서대로 조편성하겠습니다.




● 이 코스는 2018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국제순례지 승인을 받은 <천주교 서울 순례길>에 관광지를 접목시킨 코스입니다.




《마포나루》

● 마포역에서 나와 5분 정도 걷다 보면 맛집들이 즐비한 마포음식문화거리가 나옵니다.



《 마포나루의 노점 식당》


● 옛부터 굵은 천일염을 고기에 뿌려 먹던 것이 유래가 되어 마포의 대표음식으로 자리 잡은 마포갈비부터 보쌈, 칼국수 등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는 맛집 거리입니다.



● 천주교인이 처형됐던 한국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 사적지입니다. 당시 수많은 천주교인의 머리가 잘려 숨졌다고 하여 <절두산>이란 지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 외국의 어느 묘지공원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곳에는 한국을 사랑하던 500여 명의 외국인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 조선시대 수상 교통의 요지였던 마포나루는 한강의 대표적인 나루터였으며  새우젓을 파는 사람들이 많아 <마포 새우젓장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포나루》


● 마포 사람들은 포구를 드나드는 선박들의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나루 굿을 했는데 6.25로 인해 사라졌다가 1991년부터 해마다 실시하고 있습니다.



《막대기같은 배들이  소금배입니다》


● 이곳에는 소금배가 자주 왕래하여 염리동이 생겼으며 용산강과 양화진을 합하여 <삼개나루>라고도 했습니다.



《당시 마포나루》


● 양화나루는 한강 가운데서도 가장 경치가 아름답고 정자가 많았던 곳이라 합니다.


● 반면 상해에서 암살당한 개화사상의 선각자인 김옥균의 시체가 청나라 정부에 의해 능지처참 당한  곳이라고도 합니다.



● 1866년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 일행이 조선의 천주교 탄압을 문제 삼아 군함을 이끌고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에 정박했습니다.



● 흥선대원군은 오랑캐에 의해 더렵혀진 양화진을 천주교인들의 피로 씻어내야 한다는 명목으로 누에가 머리를 들고 있는 것 같다는 잠두봉에서 천주교인들의 목을 베었습니다.


● 절두산 절벽은 천주교인들의 목이 아래로 떨어져 <피의 절벽>이 되었다고 합니다.



● 1966년 천주교회는 병인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 일대를 매입한 뒤 잠두봉을 중심으로 성당과 순교기념관을 건립하여 한국 성인들의 유해를 옮겨와 안치하였습니다.


●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선교와 근대화를 위해 몸바친 선교사와 그 가족의 묘지가 <외국인 선교사묘원>에 있습니다.



《헐버트 박사묘》


●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라는 유언을 남긴 헐버트박사도 양화진의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인터넷의 헐버트 박사 69주기 추모식》


● 작년 헐버트 박사 69주기 추모식에 역사문화탐방님 22분이 참여하셨습니다.


● 올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에 꼽힌 헐버트 박사 70주기입니다.



《마포나루》


● 헐버트 박사에 관한 글입니다.
https://band.us/band/53211347/post/1265912867



《마포나루》


●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한양의 4대문 안쪽에 시전이 들어서 개성으로 향하던 물류가 한강을 통해 새로운 도읍지인 한양으로 운반됩니다.


●그 과정에서 경강상인들이 성장하게 됩니다.


● 농촌의 인구가 한양으로 모여들면서 본업인 농업보다 상업에 종사하게 되어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마포나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 조선 중기 학자 이지함은 학자이면서 직접 상업에도 참여함으로써 당시 천하게 여겼던 상업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설파합니다


● \"어찌하여 물속에 넘쳐나는 물고기를 못잡게 하며 넘치는 바닷물로 소금 만드는 일을 못하게 한단 말입니까?\" 이런 상소도 올렸다 합니다.


● 소금은 조선시대 내내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화폐처럼 취급될 정도였다 합니다. 이들은 평안도나 황해도 등지에서 소금을 사서 경강으로 실어 날랐다 합니다.


● 경강상인은 자본을 공동으로 출자하여 지방의  물산을 싸게 사서 이문을 많이 남기고 판매하는 등 마포나루는 도매시장이 되었습니다.


● 정조 임금은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수원 현륭원을 왕래할 때 배다리를 놓도록 하였는데 그 배다리 설치에 경강상인들의 배들이 동원 되었다 합니다.


● 이후 이들에게 세곡운송의 독점권을 주었고 경강상인들의 조직은 더욱 활발하게 사업을 벌여 경강변은 한양최대의 도매시장이 됩니다.



● 강서구 염창동은 소금 창고가 있던데서 유래되었고 마포구 염리동은 소금이 있던 동네였기에, 또 동막골은 새우젓동이, 소금동이로  쓸 옹기를 구워냈다하여 동막골이라 했다 합니다


● 6호선에 <광흥창>이란 전철역이 있습니다. 마포나루로 들어오는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인데 공무원들의 급여에 해당하는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가 광흥창이었다 합니다.


● 지명을 보면 대개 짐작이 갑니다. 역사문화탐방하다 보면 반은 점쟁이가 됩니다.



● 마포나루가 시끌벅적했던 시절에는 뱃사공들이, 전차 종점이 있던 시절에는 통금을 피하려던 사람들이 쉬어갔습니다.


● 마포종점 전차가 끊기면 한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마포의 여관에 머물렀습니다.


● 당시 여관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한방에 섞여 쪽잠을 자곤 했다 합니다.


● 가난했던 시절이라 여관에 돈 대신 시계를 맡기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합니다.


● 통행금지는 1982년에 해제 되었음에도 까마득한 옛날 일로 기억됩니다.


● 천주교와 마포나루에 얽힌 이야기도 더듬어 보면서 오랫만에 한강변을 걷는 낭만day가 되길 바랍니다.



PS : 스케쥴을 미리 알면 근무날자를 조정하겠다는 의견이 있어 좀 빠른 감은 있으나 오늘 공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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