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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 149회] 남양주
[역사문화탐방 149회] 남양주
봄소풍 가요~ 남양주로요~
+4월20(토) 09:10
+09:30 정시 출발( 5분 이상 정차 못함)
+2호선 종합운동장 2번 출구 지상
+인원 :40명
+참가비 : 25,000원 (버스비 +여행자보험 +점심 +입장료 +사회공헌금)
● 탕방지 : 다산유적지/홍유릉 /사릉
● 입금계좌 : 국민은행 443101 - 01 - 129315 (예금주 사색의향기 문화원)
● 승차지점 : <잠실> 아니고 <종합운동장>임
● 3일내로 입금하실 분만 신청하세요.
● 취소나 환불은 여행사 규정에 의합니다.
● 17년, 18년 두 차례 경험했던 <찰밥 점심>의 낭만을 즐기고자 다산 유적지의 야외 마당에서 점심을 합니다.
● 그때 식사를 하셨던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찰밥과 된장국에 네가지 반찬이 다 맛있습니다.
● \"어쩜 이리도 맛나지?\" 맛도 있고 낭만도 있는 야외에서의 점심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찰밥 잡수러 오세요. <밥퍼>도 등장하고 <돌쇄>도 등장하는 야외 점심 즐겁습니다.
● <밥퍼>와 <돌쇄>가 오느냐고요? NO!
● 여성 회원님은 <밥퍼>가 되고 남성 회원님은 <돌쇄>가 되어 돌쇄는 식사 후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넣어 주시면 됩니다.
● 자세한 것은 소풍일 즈음에 다시 올립니다.
● <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누구보다 망국의 아픔을 겪었을 고종을 조명하려 홍릉을 갑니다.
●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의 유릉도 갑니다.
● 유릉에 합장된 순정효황후는 을사늑약 때 국새를 치마폭에 감추었던 분입니다.
● 왕비의 치마를 들추고 빼앗아간 옥새가 을사늑약에 사용되었고 왕비의 치마를 들춘 이는 왕비의 백부 윤덕영이었습니다.
● 윤덕영은 친일의 댓가로 옥인동 땅의 절반을 받아 자손대대로 누리리라 샹각했겠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날아가 버립니다.
《고종과 황태자 시절의 순종》
● 1926년 6월 10일 순종 인산일(장례일)에 6.10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 순종이 등극하자 순조의 후계자로 <황태제>로 책봉된 영친왕은 11살 어린 나이에 이토오 히로부미에 의해 일본에 인질로 끌려 갑니다.
● 영친왕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중 땅바닥에 앉아 주먹밥을 먹고 있는 활동사진을 보고 엄귀비는 입에 물고 있던 떡에 급체하여 이틀 후에 사망합니다.
● 고종, 순종 실록에 엄귀비의 사인은 장티푸스로 되어 있으나 실은 급체라 합니다.
● 양정, 진명, 숙명학교를 설립한 황귀비는 민 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된 후 고종을 섬겨 영친왕을 낳았습니다.
● 민비는 자신이 믿었던 엄상궁에게 \"후궁은 물론, 궁녀조차 왕의 곁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는 밀명을 내릴 만큼 질투가 심했다 합니다.
● 엄상궁은 민비의 시종으로 고종의 바람기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민비의 심복이었습니다.
《고종》
● 너무 못생겨 고종이 탐낼 까닭이 없다 여겼던 엄상궁이 고종의 침소에서 치마를 뒤집어 입고 나왔으니 민비의 심기는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 첫 승은을 입은 날 치마를 뒤집어 입고 나오는 것은 이제 귀한 몸이 되었다는 표시요, 누구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싸인이었다 합니다.
● 민비는 고종의 승은을 입은 여인은 그 누구도 궁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음은 물론 궁궐에서 쫓겨난 뒤에도 죽음을 면키 어려웠다 합니다.
●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엄상궁이 고종의 침소에서 치마를 뒤집어 입고 나와 질투의 화신 민비는 엄상궁을 죽이려 했습니다.
● \"황제국으로 끝난 왕조의 왕비였으니 <황후>라는 호칭이 맞다하나 민비라 하여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고 합니다.
● 전에 <민비>는 일제가 황후를 격하시키려고 붙인 호칭이니 <민비>라 함은 잘못된 표현이다고 했습니다.
● 고종 비의 심한 질투를 얘기하면서 <황후>라 하고 보니 어쩐지 좀 이상해서 이 부분에서는 <민비>라 호칭했으니 이 점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외척 정치에 데인 흥선대원군은 부모가 없는 민자경을 부인의 추천으로 왕비가 되게 했습니다
● 왕비가 된 첫날 밤부터 승은을 받지 못하고 밤을 지새운 데는 고종의 곁에서 침소를 지킨 궁인 이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고종은 민비가 입궁하기 전부터 궁인 이씨에게 빠져 있었고 이씨가 낳은 완화군을 운현궁에서 흥선대원군이 키울만큼 남편과 시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씨였습니다.
● 민비는 고종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2년간을 쓸쓸히 보내면서 학문을 쌓았고 타고난 영특함을 더해 정치에 입문하면서 고종의 정치파트너가 됩니다.
● 고종 초기 집권기는 흔히 <대원군 시대>라 하고 그 후는 중전이 고종보다 더 막강한 실권자가 됩니다.
●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귀인 장씨가 의친왕을 낳자 린치를 하여 궁궐 밖으로 모자를 쫓아 내 장씨는 끝내 린치에 의한 후유증으로 죽습니다.
● 궁인 장씨 린치 즈음에 고종곁에 파견한 심복인 엄상궁이었으니 민비의 분노는 하늘을 찔러 목숨 부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 고종은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엄상궁의 목숨을 구했고 못생긴 시종에게 남편을 뺏겼다 생각한 민비는 엄상궁을 쫓아 냅니다.
●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민황후시해사건> 5일 후 고종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엄상궁을 불러 들입니다.
● 부동항을 얻기 위해 조선에 진출한 러시아, 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 조선에 발을 들인 미국, 영국과 러, 미의 막후 외교와 친일파 등
●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정세 속의 엄상궁은 고종에게 제갈공명이었으니 고종과 엄상궁은 덕수궁 <정동시대>를 열어 갑니다.
● 성공을 했으니 망정이지, 아관파천(러시아 공사관 진입)은 엄상궁이 목숨을 걸고 고종을 지켜낸 일입니다.
《러시아 공사관》
● 엄상궁은 러시아 공사와 공모하에 자신의 가마에 고종과 세자를 태워 덕수궁 뒤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빼돌립니다.
● 그때가 명성황후 시해 4개월 후로 경복궁의 건춘문이 열리며 두 대의 궁궐 가마가 궁을 빠져 나갔던 것입니다.
● 뱃심이 강하고 정치감각이 뛰어났던 엄상궁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며 훗날 사람들은 군사 전문가도 해 낼 수 없는 전략이었다 합니다.
● 아관파천을 위해 평소에 궁궐 수비대의 눈에 두 채의 가마가 눈에 익도록 일부러 거들먹 거리며 수시로 건춘문을 왕래했다 합니다.
● 궁궐 수비대에게 계속 봉투를 건내 경계심을 늦추게 해 두었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김홍집》
● 러시아 공사관 생활 1년간 러시아의 보호를 받으며 고종은 그곳에서 국사를 보아 친일내각 수반 김홍집을 제거합니다.
● 조선 왕실은 아관파천 이후 친러파가 장악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아관파천은 1904~1905년의 러일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됩니다.
《을사늑약 마친 직후의 이토오 히로부미》
●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체결하고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 받습니다.
《을사5적》
● 결국 1905년 11월,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궁궐을 포위하고 고종 황제와 대신들을 위협하여 이완용 등을 앞세워 <을사늑약>에 서명케 합니다
《을사늑약 원문》
● 을사늑약 체결 후 고종은 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세계 각국에 일제에 의해 강요 되었음을 알리는 친서를 보냅니다.
《헤이그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
● 1907년 네델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하여 조약이 무효임을 밝히려 했습니다.
● 헤이그 밀사 파견이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이 작전을 기획하고 모든 비용을 댄 분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 이런 구국 활동을 소리없이 지원한 분이 바로 <우당 이회영>입니다. 우리 역탐에서는 번개로 4월9일 <우당 기념관에서의 특강>을 의뢰해 놓은 상태입니다.
《네델란드 만국평화회의장》
● 우리의 국력이 약해져 고종의 의지와는 달리 세계는 대한제국에 무관심하였고 결과적으로 <헤이그특사파견>을 빌미로 삼아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 시키고 순종을 즉위케 합니다.
● 국권이 일제로 넘어가 조선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제는 만국평화회의 참가국에게 외교전을 펴 놓아 우리의 헤이그특사는 회의장 입장이 거부되었습니다.
《영친왕과 이방자여사》
● 엄귀비는 황태제였건만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 군인이 되어 군사훈련 도중 땅바닥에서 주먹밥을 먹고 있는 영친왕의 영상을 봅니다.
● 이때 순헌황귀비는 입에 있던 떡에 급체해서 사흘만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 이토오가 주는 장난감을 좋아했고 이토오를 믿고 의지했던 어린 영친왕이 철들어 가면서 느꼈을 아픔을 달래러 유릉을 갑니다.
《정순왕후 릉인 사릉》
● 1454년 열 다섯의 나이에 열 네살 단종과 혼인하여 왕비에 책봉되었던 정순왕후 송씨는
● 1455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내어 주고도 1457년 사육신의 복위 운동으로 인하여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의 비였기에 군부인이 되어 궁에서 쫓겨 납니다.
● 단종과 함께 한 세월이 고작 3년뿐, 단종은 영월 장릉에, 정순왕후는 양주의 사릉에 계십니다
● 기구하기로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비운의 정순왕후는 세조의 도움도 거절한 체 지금의 숭인동에 있는 청룡사(정업원)에서 기거하며
● 정순왕후는 동묘 옆의 여인시장에서 상인들이 관원의 눈을 피해 몰래 주는 야채와 옷고름과 소맷단으로 쓰일 옷감에 물들이는 일을 하면서 살아갔다고 합니다.
● 작년에 청룡사도 정순왕후가 염색일을 했다는 <자주동천>도 탐방한 바 있습니다.
● 정순왕후의 눈물을 닦아 드리려 사릉 갑니다.
● 다산 유적지도 갑니다.
● 수원 화성 축조 당시 사용되었던 다산 정약용의 기중기도 보게 됩니다.
● 규장각 문신으로 있던 정약용은 서양의 기술서 등을 참고하여 기중기를 재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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