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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162회] 《마포나루 마을여행 ㅡ옹기, 도화, 품다》

2019. 10. 01. 오후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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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162회] 《마포나루 마을여행 ㅡ옹기, 도화,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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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and.us/n/a7a91bA0deS1W


+10월16일(수) 14:00 탐방시작
+인원 : 20명
+회비 : 5,000원(사회공헌금 포함)
+냉면 각자 부담
+회비는 당일 현장 수납


● 만나는 시간이 <A형과 B형>으로 두 가지 타입이 있으니 신청 때 <냉면탐방> 또는 <탐방만> 이렇게 표기해 주세요.


● A형 (냉면+탐방) : 12:30까지 <아소정>으로 바로 오세요


● B형(탐방만) : 13:30분까지 5호선 공덕역1번 지상으로 오세요.




● 탐방 경로 : 공덕역 1번 출구 ㅡ경의선 숲길(아소당 터) ㅡ정구중 가옥 ㅡ복사꽃 어린이 공원 ㅡ석불사 ㅡ마포어린이 공원 (마포종점)




● <마포종점>하면 웬지 외롭고 쓸쓸하고 먹먹하며 개발시대 변두리의 서러움이 떠 오릅니다.


● 서울시내 전차는 대한제국이 선포된 직후 1899년 도입되어 69년간 운영되었다 1968년 운행을 종료했습니다.


● 마포는 경복궁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터로 한성 물류의 시발점이자 종점으로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 <마포종점> 가사에는 전차의 마포 종점, 영등포, 당인리 발전소, 여의도 비행장까지 구체적으로 네 곳의 지명이 등장합니다.


● <마포종점>은 서울의 지명을 다룬 대표적인 노래이며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에 이은 두 번째인 노래비를 남깁니다



《100년전의 마포나루》


● 마포는 조선시대 경복궁과 종로로 들어가는 물자보급의 창구로 전국의 물자가 이곳에 내려져 종로로 들어 갔습니다.


● 마포나루는 1392년에 생겨 570년 동안 번성했던 곳으로 돈과 사람이 모여드는 그야말로 <핫플레이스>였다 합니다.



《1945년 마포나루 새우젓 시장》


● 마포의 <서서갈비>를 아시나요? 하역 인부들이 일을 끝내고 서서 고기 한 점에 막걸리 한 사발을 먹은데서 유래합니다.


● 요즘 매년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를 하는 것은 위와 같은 역사가 있는 마포나루였기 때문입니다.



《용강동의 정구중 가옥》

● 이 집은 조선 말기 용강동의 부농이 무남독녀에게 주기 위해 당시 장안에서 이름난 목수 안영달을 시켜 지은 집입니다.



● 이 집의 나무는 압록강 유역의 홍송과 백송을 뗏목으로 옮겨와 한강에 2년 담가 두었다가 1년 건조하여 지은 집으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아소정》


●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장성하여 친정을 하고자 할 때 깨끗하게 물러나지 못하여 아들내외와  정치적인 알륵이 있었습니다.


● 청군의 힘을 빌린 며느리에 의해 운현궁에서 유폐생활을 하던 중, 아끼던 장손 준용마저 유배를 가게되자 분기탱천.


● 자기 손으로 낙점한 며느리에게서 받은 설움으로 흥선대원군은 스스로를 비웃다는 뜻의 <아소정>에 머물게 됩니다.


● 흥선대원군은 <아소정>에서 부인의 죽음을 맞았으며 자신 또한 그곳에서 스스로를 비웃으며 생을 마감합니다.



● 1800년 정조가 세상을 뜨고 11살, 그의 어린 아들 순조가 즉위하자 순조의 할머니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합니다.


● 정순왕후는 영조 66세에 맞은 15세 계비로 중전에 간택되어 옷 치수를 재는 상궁이 뒤로 돌아라 할 때 네가 돌면 될 것 아니냐 했던 당찬 규수였습니다.


● 간택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하고 영조가 물었을 때 꽃으로 옷도 해입고 따뜻한 이불도 만들 수 있는 목화와 간을 맛추는 소금이라 답했던 그 규수입니다.


● 정순왕후는 46년 동안 실질적으로 국모의 지위에 있으면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으나 영조, 정조 시대엔 그런대로 소리없이 지내다가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본격적으로 배후에서 막강한 파워를 발휘했던 인물입니다.


● 이렇게 장황하게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으니, 정순왕후로부터 시작되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끝에 흥선대원군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 당시는 왕손이 귀한 조선에 왕위를 이을 인물을 찾는 게 아니라 왕이 될만한 왕족은 역모로 몰아 왕족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 왕위와는 한참 멀리 있었던 왕족 중에서 이하응의 아들이 철종의 뒤를 잇는 임금이 된 데는 조대비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속내를 감추고 상갓집 개를 자처하며 파락호로 위장한 이하응이 조대비에 연줄을 댄 결과 그의 아들, 명복이 고종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 할머니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정조가 이룬 정치질서를 뒤엎고 정조의 지지세력들을 탄압하고 복수하기 위해 천주교도들을 숙청합니다.


● 안동 김씨 집권기부터 왕은 허수아비가 되고 <전정, 군정, 환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은 고달파집니다.


※ 전정 : 토지에 대한 세금

※ 군정 : 남자들이 군대가는 대신에 배로 짜 만든 군포로 바치는 세금

※ 환정 : 가난한 농민에게 나라의 곡식을 꾸어 주고 추수할 때 이자를 붙혀 갚게 하는 원래는 좋은 제도였습니다.


● 위의 세가지를 <삼정의 문란>이라 하는데 관리들은 안동 김씨에게 뇌물을 바치고 관직을 사기 위해 백성들을 더욱 괴롭혔습니다.



● 있지도 않은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유아나, 사망자에게도 군포를 물리고 춘궁기에 빌린 쌀에 과도한 이자를 붙혀 갚아야 하는 <삼정의 문란>으로 조세제도를 고쳐 달라는 민중 봉기가 일어납니다.




● 안동 김씨로 부터 받았던 친정 풍양 조씨의 서러움과 스트레스로 몹시 힘들어 한 일도 있었던 조대비는 흥선 대원군에게 왕의 권한을 대행시켰습니다.


● 그렇게 하여 왕위에 앉혔던 아들한테서 버림받고 간 곳이 마포의 <아소정>입니다.



● 12살 고종이 아버지에게 왕권을 위임했다고 하여 계속 아버지의 그늘에 있으려 하지는 않았을 터, 섭정 10년째가 되자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지요.


● 권력은 강하게 쥐려고 하면 할수록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지듯 빠져나가 결국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그때의 흥선대원군은 망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 <권불10년>의 이치를 좀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치를 떨었던 대원군 이하응이 자신도 세력을 놓으려 하지 않다가 강한 왕권을 기치로 내걸었던 시작과 달리 조선이 망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 순조가 눈을 감자 순조의 손자인 헌종이 8세로 등극하는데 헌종은 올 여름 역탐을 뜨겁게 달궜던 효명세자의 아들입니다.


● '효명세자가 좀 더 살았더라면~' 하고 역사가들이 아쉬워 하는 효명세자의 아들 헌종은 후사없이 23세의 나이에 눈을 감고


● 왕으로 모시러 간 대신들에게 \"왜 이러십니까?\"하고 놀라서 도망가려 했던 강화도령 이원범이 철종이 됩니다.


● 안동 김씨네는 영민한 임금을 원하는 게 아니어서 강화에서 잡초처럼 살아가던 이원범을 가마에 태워 와 왕좌에 앉혔던 것입니다.



● 제대로 임금 노릇 했을 리 없는 철종 또한 후사없이 세상을 뜨자 정순왕후 사후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던 조대비로 인해 임금이 될 확률이 낮았던 이하응의 아들 명복이가 고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 상갓집 개를 자처하고 파락호 행세를 하였기에 아무도 이하응을 눈여겨 보지 않아 그의 아들이 고종이 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하응은 야심가였습니다.


● 순조 11세, 그의 손자 헌종 8세(조선 최연소 임금), 철종 19세, 고종 12세에 등극하다보니 임금은 사실상 임금노릇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봉원사의 염불당》


● 6월6일 신촌 봉원사의 <야단법석> 때 번개로 보았던 봉원사의 염불당(대방)은 아소정 별채가 옮겨 지어진 건물입니다.



《역탐 번개로 보았던 봉원사의 영산제》


● <야단>은 야외에 세운 단이며 <법석>은 불법을 펴는 자리란 뜻입니다.


● 야외에서 펼쳐지는 불법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보니 시끄러웠다 합니다.


● <야단법석>이 펼처질 때 시끄러운 상황을 보고 시끄럽고 부산한 광경을 후세 사람들은 <야단법석>이라 했다 합니다



● 흥선대원군이 스스로를 비웃으며 지냈던 그 별장은 지금은 <아소정>이라는 유명한 냉면집이 되었습니다.


● 공덕역에 가면 \"을밀대에선 물냉면을, 아소정에선 비빔냉면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만큼 <을밀대>와 <아소정>은  냉면계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 이 프로그램은 동네를 잘 아는 주민이 해설하는 프로그램입니다.


● 골목투어이기 때문에 20명은 많은 편에 속합니다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아소정과 마포종점이기에 20명으로 한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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